소설리스트

262화 (262/604)

보나의 합격을 마지막으로 2차 시험은 모두 끝이 났다.

“시험에 응시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신 여러분께 귀가 안내와 함께 소정의 위로금이 전달될 예정입니다.”

홀 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다.

이미 합격 후 대기하고 있던 응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시간 기다릴 그들을 위해 홀 바로 옆의 로비 역시 테이블을 세팅해 두고 각종 다과와 차를 제공하고 있는 터였다.

제퍼와 헤르마는 불합격자들을 과수원 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바로 안내하며 이번엔 검은 주머니가 아닌 종이 백에 포장된 선물을 안겨 주었다. 꽤 격하게 불만을 투덜거리면서도 다들 선물을 잘 챙겨 갔다.

“이리스, 리스트에 적어 주세요.”

“네, 재응시가 불가하게 블랙리스트로 따로 관리하겠다는 거죠?”

“이미 뇌물 건으로 이름이 오른 사람들도 있지만, 시험장에서 돈벌이를 하거나 행정 관리원 앞에서 테라리움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다시 얼굴을 내미는 일은 없어야죠.”

이리스는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과수원 밖을 나가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건가요? 합격은 하신 건가요? 갑자기 드라이어드를 소환해 저흴 모두 내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안에서 다른 시험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마지막 합격자가 나올 때까지도 제이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더 퍼스트 매지컬 레이디 조원들이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아직 내가 행정 관리원이란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정체를 밝힌 후 홀 문을 나선 사람들은 합격의 기쁨을 누리느라 바빴던 건지, 아니면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건지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이리스가 행정 관리원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전 합격이 정해져 있다고 했잖아요.”

내가 싱긋 웃자 다들 의문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식당을 미리 통째로 예약해 뒀습니다. 그대로 이동하시면 될 거예요.”

“그럼 아직 시간이 이르긴 해도 축하 파티를 해 볼까요?”

이리스는 다른 이들에게 보란 듯이 날 보좌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목을 가다듬고 응시자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2차 시험에 합격하신 여러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이대로 3차 시험이 또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하시겠지만 시험은 2차로 끝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고용 확인서가 전달될 예정입니다.”

발언자가 이리스가 아닌 나라는 사실에 다들 놀란 얼굴을 했다. 홀 안에서 정체를 밝혔을 때와 반응이 다를 바 없었다. 놀란 반응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들이 최종 합격했다는 기쁨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는 기본적으로 테라리움 내에 숙소가 제공됩니다. 또한 테라리움 내 모든 식당에서 직원 신분을 댄다면 식사를 무료로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동반 가족과 지인 역시 무료로 식사가 제공되니 28번째 테라리움으로의 이주 혹은 관광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아주 파격적이지? 본래 직원 복지가 쩌는 회사는 회사 근처에 숙소도 제공해 주고 식사도 제공해 줌으로써 직원들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회사다. 물론 돈을 많이 주는 것은 기본이고.

이상한 시험으로 이리저리 굴려 댔으니, 그만큼 합격한 맛이 나게 해 줘야지.

“또한 곧 안내해 드릴 식당에서 여러분들을 위한 입사 축하 파티가 밤까지 이뤄질 예정입니다. 참여는 자유이니 당장은 쉬고 싶으신 분들은….”

손짓을 하자 노토스가 나와 앞에 섰다.

“여기 이분께 직원용 숙소를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혹은 테라리움 내 관광을 즐기시고 싶으신 분은 마음껏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축하 파티를 위해 예약된 식당은 여기 이분께서 안내해 주실 겁니다.”

내 말에 로웰라가 응시자들을 향해 손을 방방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 그 말은… 행정 관리원이셨어요?”

“응시자들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한 장치였지요. 제가 바로 합격이 보장된 치터였어요. 속여서 죄송해요.”

“그것도 모르고… 저 혹시 안에서 제가 실수라도 한 건 없는지… 전 그냥 같은 응시자인 줄 알고….”

벤에플은 홀 바닥을 위조 카드로 더럽힌 것을 지적받았을 때보다 더욱 당황한 얼굴이 됐다.

“전 즐거운 기억만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함께 일하게 돼서 영광이에요.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지만 전 다음 일정이 있어서 가 봐야 될 것 같네요.”

“저… 그럼 전남친 이야기는?”

잠자코 있던 일레이디아가 내 곁에 선 시들링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차….”

“전남친?”

이리스가 새된 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그게….”

“이분도 전남친이 아닌 게 맞으신가요? 단순히 행정 관리원이라 시선을 숨기지 못했던 거군요. 뭐, 괴롭힘을 당하고 계시던 것이 아니라 안심입니다만…. 전 또 집착이 아주 심한 전남친이 제이 님의 직장 생활을 힘들게 만들까 봐 걱정했잖습니까.”

저건 복수하는 거다. 레이디가 정체를 숨긴 내게 복수를 하고 있는 거였다!

일레이디아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쌤통이란 얼굴을 했다.

“저언나암치인? 시들링이?”

그리고 이리스는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어그로를 끌었고…. 가뜩이나 놀림거리에 예민한 제퍼를 자극했고….

“제이 님! 시들링이랑 사귀었던 사이예요?”

“아니! 이럴 땐 어떤 연유로 그런 이야기가 오갔는지부터 팩트 체크를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마스터! 아이언비스트를 쥐락펴락했던 건 그런 이유였습니까!”

제퍼에겐 사실 여부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미끼를 문 붕어처럼 신난 얼굴로 주둥이를 열심히 놀려 댔다.

“아냐! 우린 시작도 안 했어! 그저 안에서 시들링의 끈질긴 시선 때문에 내 정체가 들킬 뻔해서 거짓말한 것뿐이라고요!”

“시작도 안 했다는 건 시작할 의향은 있다는 말인가요?”

“제이 님! 좀 더 자상하고 다정한 남자를 찾아봐요!”

이제 알겠다. 이리스도 미끼를 문 붕어 옆에서 이미 낚인 채로 어망에서 팔딱이던 붕어2라는 것을.

“뭐라는 거야!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기지였다니까? 시들링,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우린 헤어진 건가?”

“야! 그렇게 말하면 저 붕어 두 마리가 더 신나서 날뛰잖아!”

“그럼 아직 헤어진 건 아닌가?”

“마스터! 시들링은 제이 님을 못 잊겠다는데요!”

“제이 님, 벌써부터 집착의 낌새가 보이는데요!”

“내가 못 살아, 진짜! 축하 파티에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준비해 달라고 했으니 마음껏 즐기다 가세요! 전 이만 가 볼게요.”

도망치듯 과수원을 뛰쳐나오자 좌 제퍼 우 이리스가 입체 서라운드로 쉴 새 없이 달라붙어 떠들어댔다.

“소감 한 말씀 해 주시죠! 악명이 자자한 아이언비스트와의 연애는 어떤 느낌입니까?”

“제이 님! 얼굴 본다면서요! 화려한 얼굴이 취향이라면서요!”

“소감이라면 지금 당장 둘을 길드에서 제명시키고 싶은 기분?”

그제야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뚝 다물었다.

아주 놀려 먹을 거리 생겼다고 득달같이 달라붙는 꼴을 봐.

둘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시들링의 모습이 날 더욱 속 터지게 했다. 얘, 넌 내가 집착 심한 전남친이라고 거짓말한 게 기분 나쁘지도 않니? 반론을 했어야지!

과수원 직원 채용 시험은 끝났지만, 아직 양성소 직원 채용 시험이 남아 있었다.

양성소 쪽은 필기시험은 없었고 따로 경력이 적힌 이력서만 받았다. 애초에 응시 인원도 적어서 이력서만 확인하고 필터링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 말 없이 양성소로 이동하는 내내 제퍼와 이리스가 간식 훔쳐 먹다 걸린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죄송합니다.”

“너무 나댔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제발 길드 제명만큼은….”

놀린 만큼 나도 되갚아 줘야지. 양성소에 도착할 때까지 묵언 수행을 했더니 둘에게 충분한 복수가 되었다.

“화난 거 아니에요. 저도 똑같이 놀려 줬을 뿐.”

“마스터가 하는 놀림은 무게가 다릅니다. 저 벌써 짐 싸고 테라리움에서 쫓겨나는 것까지 상상했어요.”

“제퍼가 제일 나댔으니 쫓아내더라도 제퍼만 쫓아내세요.”

“배신자.”

양성소엔 시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전부 드루이드였다.

과수원 직원 1차 시험의 합격자가 100명인 것에 비해 양성소 직원은 10명이 예선 통과했다.

“안녕하세요, 2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 제이입니다.”

내 인사에 다들 이쪽을 주목한다. 다행히 다들 인상이 좋아 보였다.

파필리온이 전해 준 시험 중엔 양성소 직원 선발과 관련된 시험도 존재했다.

하지만 난 수많은 전장을 구른 노련한 드루이드들을 겨우 시험만으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양성소 직원 시험에 응시해 주셔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께서 보실 시험은 간단합니다.”

난 테라리움 아티팩트가 채워진 손목을 주무르며 풀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줄에 종이 카드가 꿰어진 목걸이를 꺼냈다. 급조된 티가 났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이 목걸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져가시면 돼요. 당연히 어떤 드라이어드를 꺼내셔도 되고 가진 모든 드라이어드를 꺼내셔도 됩니다. 숙련된 드루이드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전투를 보여 주세요.”

역시 드루이드의 자질을 보려면 전투만 한 것이 없지.

손짓을 하자 미리 이야기된 어린 드라이어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섬에서 온 로즈마리 드라이어드였다. 그 아이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보시다시피 묘목인 드라이어드니 절대 이 드라이어드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목걸이를 가져가셔야 해요.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순간 시험은 불합격입니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해 목걸이를 뺏기지 않게 수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드라이어드를 전부 불러왔다.

눈부신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내 드라이어드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메스키트에 이어 엘더, 데이지, 바곳, 가막살나무, 마거리트까지. 모두 기세 등등한 얼굴로 필드에 도열했다.

“부족한 뉴비 드루이드에게 한 수 가르쳐 주세요.”

뉴비 치곤 덱이 화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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