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1/604)

어찌나 펑펑 울었던지 두 눈이 개구리처럼 퉁퉁 부어 버린 미미르에게 휴식을 줄 겸, 그에게 실새삼을 안겨 따로 빈방에 보내고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31번째 테라리움에 가서 극진한 대접을 받느라 3일 만에 돌아온 제퍼를 포함한 모두가 모였다. 길드원들을 소집한 이유는 베스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인페르노와 일전을 치르지 않은 로웰라를 위해 베스탈리스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그녀는 꽤 머리가 비상해서 금방 이해했다.

초보이며 어린 드루이드인 그녀를 위험한 인페르노와 대적하는 길드로 초대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로웰라는 오히려 두근거린다고 해 주었다. 만일 그녀가 위협을 느껴 길드를 탈퇴하겠다고 해도 이해해 주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3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인 미미르는 베스탈리스 온건파 집안의 막내아들이에요.”

“아직도 있어요? 집에 간 줄 알았는데.”

제퍼가 미미르가 있는 방의 방향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럴 사정이 있어요. 어쨌든 전 미미르를 발판 삼아 온건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온건파를 이용해 인페르노를 견제하겠다는 거죠? 이해했어요. 어쩌면 같은 베스탈리스니 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예요.”

“아무짝에 쓸모없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꽤 거물이었는디.”

“그렇다면 마스터 바로 다음가는 부자란 거 아냐? 아들 좋은 집안에 장가보내려고 테라리움을 안겨 주는 정도면 엄청 부자잖아요? 친하게 지내면 되는 겁니까?”

제퍼가 돌연 태도를 바꾸며 다시금 미미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꽤 오래 묵게 될 거니까 그동안 미미르에게 다들 잘해 주도록 해요. 베스탈리스 온건파와 손을 잡는 건 다들 긍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요. 그리고 미미르의 집안과 연을 트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면, 어쩌면 38번째 테라리움의 내부 사정에 관여하게 될 수도 있어요.”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아예 빌미를 만들어서 38번째 테라리움을 뒤엎어 버리세요. 행정 관리원도 아니면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꼴이라니.”

“그래도 빌미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보여도 꽤 오래 자문인들이 모여 테라리움을 통치해 온 것으로 보이니 외부인이 끼어들 틈을 만들기 어렵겠죠.”

길드원들이 모인 김에 은둔자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해 주었다. 미리 미미르에게 강제로 실새삼을 맡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리스는 내 눈 색이 변한 이유가 내가 쓰러진 것과 관련되어 있을까 봐 자기들끼리 쉬쉬하며 묻지 못했었다고 말해 주더니 원인을 알게 되니 한결 나아졌다며 반색했다. 은둔자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은 간단히 정리하기엔 너무 길어서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루프와 약속했던 대로 필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근황을 이야기했다.

필라는 아직 연금술사란 직업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데, 28번째 테라리움에 연금탑이 설립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그에게 넌지시 연락 수단을 개편하거나 높은 곳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 같은 걸 개발하면 다이아 방석에 앉혀 주겠다고 했더니, 필라 안에 잠든 욕망이 깨어난 것인지 식사를 하는 내내 몸을 들썩거렸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또 그들에게 은둔자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적당히 필터링해 가며 이야기해 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귀엽지 않아? 아예 둘 다 내가 데려갈까?”

식당을 나와 과수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 멈춰 섰다. 그들은 미미르를 포함해 따로 점심을 먹으러 나와 갈라졌었는데.

“진짜 열심히 할게요! 영혼의 연결은 제 오랜 꿈이었어요!”

“하지만 작은 세계수님. 이 아이들은 불과 방금 전까지 영혼의 연결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난 회복형이 필요하고 이 아이들은 네 도깨비바늘처럼 괴이한 타입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이면 노토스의 소나무들처럼 연리지로 키워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외모 보고 혹한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길드원들이 드라이어드 교습소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뚝 선 그들 사이로 익숙한 연분홍색 머리가 둘 보였다. 달콤한 디저트 같은 생김새, 길드원들의 화제의 중심은 발레리안 아이들이었다.

“아니, 뭐. 외모는 겸사겸사인 거지. 누가 드라이어드를 외모를 보고 뽑니? 난 그저 이 애들이 회복형이라길래 혹한 거지.”

“너무 묘목인 거 같은디. 실전에서 제대로 힘도 못 쓸 것 같은디.”

“전투에 바로 투입하기엔 너무 어리다.”

발레리안 드라이어드가 회복형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리스는 도깨비바늘이 있는 제퍼나 월계수가 있는 헤르마와 달리 파티원 중 유일하게 회복형 드라이어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파티로 움직이는 이리스네가 수에 비해 회복형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회복형 드라이어드를, 정확히는 디버프 해제 능력을 가진 드라이어드를 영입하라고 지원금을 쥐여 줬었다.

하지만 발레리안 아이들은 회복형이라 하더라도 디버프 해제 계열은 아닌 것 같은데.

“빨리 자랄게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둘이 너무 많으면 저라도 데려가 주세요!”

“너, 반칙이야!”

“음, 역시 너무 어린가? 하지만 길드 지원비가 많으니까 양분 열매들을 좀 사 먹이면 되지 않을까?”

“회복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발레리안 아이들은 마치 이리스가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이 보였다.

아하,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영혼의 연결을 핑계로 도망가고 싶은 거구나? 호전적인 모감주나무도 고분고분하게 만들 만큼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이 작정하고 은둔자의 정원에서 온 드라이어드들을 굴리던 것은 자주 보았다.

그들은 이미 웃자란 은둔자의 정원의 드라이어드들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을 무척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지원형은 어떠세요? 저도 잘 보면 예쁜데요!”

“아니, 난 외모로 드라이어드를 뽑는 드루이드가 아니라니까?”

“공격형은 어때? 나 배도 띄울 수 있어! 바다나 강이나 물 위는 전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긴 바다도 없는데 배가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저를 뽑아 주세요! 제가 업고 다닐게요!”

물 위로 뿌린 떡밥에 모여드는 잉어 떼처럼 갑자기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이 이리스 파티에게로 몰려들었다.

다들 발레리안 아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리스에게 영입되면 훈련을 피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고렙 드루이드라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이 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독하게 굴릴 것 같은데….

이리스는 즐거운 표정으로 몰려드는 드라이어드들을 훑어보았다.

“음, 지원형은 충분해. 차라리 방어형이라면 모를까. 공격형은 모집한다면 확실히 성목인 드라이어드가 낫지.”

“제가 잘할게요!”

“나 묘목처럼 보여도 다 컸어!”

뒤늦게 합류한 드라이어드들이 아무리 졸라도 이리스는 발레리안 아이들에게 미련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도통 그녀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드라이어드들은 로웰라나 시들링에게로 타깃을 옮겼다. 특히 레몬밤을 데리고 있는 로웰라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았다.

“미안, 난 더 이상 드라이어드를 영입할 수 없어. 영혼의 한계에 다다랐거든.”

이리스 파티의 새 드라이어드 영입을 바라는 것만큼 로웰라도 좀 더 드라이어드 수를 늘리길 바랐는데, 벌써 COST 한계치가 다 되었다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난 레벨1이나 다름없었던 초반에 스페셜과 유니크 등급을 영입 가능했는데 벌써 로웰라의 COST가 다 찼다고? 로웰라는 지금 레벨이 더 높을 텐데? 왜 나와 로웰라의 영혼의 한계에 차이가 있는 거지?

“그럼 영혼의 연결은 나중에 하더라도….”

“글쎄, 오래 걸릴 거야. 그리고 난 지금 내 엉겅퀴와 레몬밤의 합을 맞추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믿었던 로웰라가 막혔다고 시들링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들링에겐 회복형이 단 하나도 없기에 급한 것은 맞았으나 저쪽은 드라이어드들이 텃세가 심했다.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겁도 없이.”

“가서 햇빛이나 더 받고 오렴.”

“내가 한가하게 너희 이파리나 닦아 줄 나무로 보이니?”

“우리 부케는 너희 같은 온실 속 화초들을 감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단다.”

칼미아가 거만한 표정으로 드라이어드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활짝 펼친 날개를 방패막이 삼아 제 드루이드를 가리고 있었다. 칼미아에 가세해 페리윙클도 팔짱을 낀 채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시들링이 새로운 회복형 드라이어드들을 영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쟤네 텃세 때문이 아닐까? 차라리 이리스 쪽보다 너희가 어린 드라이어드를 영입해서라도 키워 놓는 게 낫지 않겠니? 언제까지 우리 엘더에게 빌붙을 거니?

“쟤네 마음에 차는 회복형 드라이어드가 있기나 할지 모르겠네.”

발레리안 아이들에게 도통 눈을 떼지 못하는 이리스로 보아, 조만간 그녀에게 설익은 열매가 두 개 필요하게 될 것 같았다. 미리 좀 건네줄까 하는 생각에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레이트 빈 연합의 매니저가 날 불렀다.

“제이 님.”

“아, 네. 안녕하세요. 채용 공고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찾았답니다. 이젠 시험 일시를 정확히 공고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테라리움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공고를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원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네? 벌써요?”

우스갯소리로 그런 공고를 붙이면 바로 다음 날부터 테라리움 입구에 지원자들로 바글거릴 것이라곤 했지만, 정말 벌써 지원자가 몰렸다고?

“요 며칠 대형 마차가 여럿 테라리움에 정차했습니다. 마차 두 대는 꽉 채울 인원이 이미 여관에서 시험 날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요?”

테라리움에 낯선 사람들이 많아진 건 눈치챘지만 그들을 단순히 일꾼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원자들이었을 줄이야.

그 많은 사람들이 시험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서둘러 일정을 잡아야만 했다. 또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시험장도 급하게 마련했다.

식당이 생기기 전, 일꾼들이 간이 급식소로 이용하던 목조 건물을 깨끗이 치웠다. 가구점을 낸 섬사람들에게 대량의 책상과 의자 주문 제작이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시험 일정 전에 세팅이 완료되었다.

나 또한 시험 일정에 맞춰 문제를 뽑고 면접 질문을 마련하기 위해 미미르와 길드원들과 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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