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새삼은 섬에 강한 드루이드가 나타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수의 축복을 담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짭신 엘더가 개입해 아이들을 바다로 빼돌렸었다.
망망대해에 배 한 척만으로 목숨을 유지한 채 떠돌아다녔을 아이들. 어쩌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로웰라의 말을 들으니 다행히 많은 아이들이 구조되었나 보다.
“섬에서 만났던 예쁜 엘더 플라워가 내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잖아. 언니는 쓰러졌고, 내가 대신 엘더 플라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어. 하루 빨리 가족들 품에 돌려보내고 싶기도 했고.”
그 후 로웰라는 31번째 테라리움에 도움과 협조를 요청했다. 섬에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하고 가족들의 품에 되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행정 관리원은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바다에서 구출되는 고아들이 많아진 현상에 의문을 품고 있었대. 더구나 아이들이 전부 기억을 잃어서 원인은 계속 불명이었고.”
31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은 사정을 딱하게 여겨 로웰라를 전적으로 도와주었으나, 로웰라는 어쩐지 과하게 열성적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보를 모으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풀었고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아이들의 신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합류한 이리스 언니가 그러는데, 내가 제이 언니의 사람이기 때문에 31번째 테라리움에서 열성적으로 임한 것이라고 했어. 아마 내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인 은둔자의 정원 사람들이 요청했다면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진 않았을 거래.”
대의를 위해 일을 진행하기엔 이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은둔자의 정원 사람들은 어느 테라리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우리 테라리움으로 이주함으로써 28번째 테라리움의 정식 주민이 되었지만. 뿔뿔이 흩어진 고아들을 찾아 데려오기엔 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로웰라가 내 사람이기 때문에 31번째 테라리움에서 기꺼이 나서 주었다는 건, 어쩌면 나와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게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을 찾았어. 아이들이 드루이드이기 때문에 특정 지어서 찾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아직 찾지 못한 아이들은, 어쩌면 드루이드로서 여행을 떠나서 소식이 닿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그래도 계속 31번째 테라리움에서 맡아서 수소문해 보기로 했어.”
“다행이네.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식들이 돌아오니 섬 사람들이 한시름 놓았겠는걸. 나머지 아이들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 좋을 텐데…. 의미 있는 일을 앞장서서 하다니, 로웰라 대단하네! 잘했어.”
역시 됨됨이가 바른 아이야. 자기도 나 못지않게 은둔자의 정원에서 큰일을 당하고 왔는데, 쉴 생각보다 아이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다니.
“그런데 찾은 아이들이 전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건 또 아냐.”
로웰라가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기억을 잃었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에 자신을 거둬 준 양부모에게 더 정이 들어 버린 아이도 있었고, 드루이드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해서 여행을 계속하겠다는 아이들도 있었어. 물론 세월이 너무 오래 흘렀는지 아이라고 부르기엔 묘한 내 또래도 있고… 음, 나이가 나보다 더 많은 사람도 있었어.”
“음, 그래도 아이의 생사를 알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각자 알아서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래도 살아 있으니 언젠간 낳아 준 부모를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완전한 이별이 아니란 점에서 너무 낙심하지 마.”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로웰라는 문득 자신의 옆에 선 레몬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다시 생기가 돌아온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언니, 우리 테라리움에도 양성소를 만드는 게 어때?”
“양성소? 드라이어드?”
“아니, 드루이드를 위한! 흩어졌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잖아. 그런데 전부 드루이드이고. 재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드루이드 훈련을 받으러 다른 테라리움에 가기엔 너무 아쉬운 느낌이라.”
“양성소라….”
그러고 보니 18번째 테라리움에는 초보 드루이드를 위한 양성소가 존재했던 것 같다. 기초체력을 키워 준다거나 여러 훈련을 시켜 줬던 것 같은데. 하지만 기간이 한 달이나 된다고 해서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난 생각을 접었다.
“너도 양성소에 다녔어?”
“음, 그게 보통이니까. 나도 당연히 다녔지.”
나는 뽑기 운이 따라서 좋은 드라이어드들과 꽤 쾌적한 여행을 떠났지만 모든 드루이드들이 그렇진 않을 거다. 밖은 뒤 번대의 테라리움으로 내려갈수록 불의 위협이 거셌다.
이젠 알고 있는 사실인데, 꼭 불만 위협이 되는 건 아니었다. 초보 드루이드에겐 같은 드루이드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위험했다.
막 여행을 떠나기 전의 드루이드에게 적당한 훈련과 상식을 제공하고 자신의 드라이어드와 합을 맞추며 연습하는 것은, 어쩌면 로웰라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꼭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겠지. 게임으로 치자면 모험을 떠나기 전의 튜토리얼을 마련해 주는 거다.
마침 내 테라리움엔 은둔자의 정원에서 이주해 온 어린 드라이어드들도 바글거렸다. 양성소의 과정을 끝낸 초보 드루이드에게 하나씩 짝지어 주는 것도 꽤 좋을 것 같다. 더구나 입혀 줄 초보자 장비도 가득하고.
전부터 내 테라리움을 튜토리얼 콘셉트로 만드는 건 어떨까 생각은 했었는데, 이젠 실천에 옮길 때인 것 같다.
당장 건물과 가르칠 사람만 빼고 모든 것이 준비된 거 아냐?
“좋은 제안인 것 같아. 바로 고려해 볼게.”
“와, 이렇게 바로? 그런데 언니는 어디 양성소를 다녔어?”
“난 양성소를 다니진 않았어.”
“정말?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해?”
정확히는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내 드라이어드들과 내 다이아가 강한 것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저질 체력에 허덕이는 중이었으며 더구나 한 달이나 누워 있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조금이나마 쌓았을지도 모르는 체력 스탯을 다 날려 먹은 기분이었다. 이참에 나도 28번째 테라리움에 머무는 기간 동안은 운동을… 좀 해야겠어.
“드루이드들도 학교를 다니는구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미르가 중얼거렸다.
“음, 양성소라고 부르긴 하지만 의미만 두고 본다면 학교와 다름없지요. 미미르 님도 학교를 다녔나요?”
“네, 저도 2번째 테라리움에서 아카데미를 다니긴 했는데… 그게….”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금세 미미르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그 어린 나이에 대체 뭐 그리 좋지 않은 일을 많이도 겪었는지.
그나저나 2번째 테라리움엔 아카데미가 있구나. 아카데미가 있는 테라리움이 또 있을까? 우리 테라리움도 드루이드를 위한 양성소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를 짓는 걸 고려해야 할까?
“38번째 테라리움이 고향 아니야? 그런데 왜 2번째 테라리움에 있는 아카데미를 다닌 거야?”
“무려 아카데미 중 제일인 곳이야…. 그리고 38번째 테라리움이 고향은 아니야….”
로웰라의 질문에 미미르는 살짝 자부심이 어린 표정으로 우물쭈물 답했다. 2번째 테라리움의 아카데미는 우리 세계로 치면 강남 학군 같은 건가? 집안이 재벌이니 학교도 엘리트 코스를 밟는 거겠지?
로웰라에게 마침 양성소 설립에 대한 제안을 받았겠다, 더 미루지 말고 테라리움 내 인력 채용을 제대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수원 일을 도울 직원들 외에 양성소를 운영할 직원과 교사가 일단 당장 필요하겠지.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던 것을 멈추고 과수원으로 돌아가며 데이지2를 불러 그레이트 빈 연합의 매니저를 호출했다. 그레이트 빈 연합은 많은 인력을 보유 중이라고 했으니 인력 채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은둔자의 정원을 떠나기 전 마음먹었던 것을 실행하기 위해 섬의 촌장급이었던 노인도 함께 불렀다.
한 가지 더, 16번째 테라리움의 파필리온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칼롱에게도 말벌을 보냈다.
받아 적을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