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 (213/604)

내가 한 번 죽었다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마거리트는 날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온몸으로 날 끌어안았다.

“으어엉… 진리가 죽었어. 죽어 버렸어!”

“무슨 소리야! 나 살아 있어! 여기 이렇게 잘….”

“으허엉… 깔려 죽었어. 바닥이 무너지고 진리의 손을 잡았는데 놓쳤어! 아무도 진리를 잡지 못했어! 엄청 큰 돌이 진리의 몸 위로 떨어졌단 말이야! 순식간에 쾅 하고!”

마거리트는 마치 내가 죽었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처럼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내 시체를 찾기도 힘들 정도로 돌덩이들에 파묻혔다고….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내 모든 드라이어드들이 일제히 영혼의 연결이 끊기며 열매로 변해 버려서 모든 장면이 뚝 멈춰 버렸다고 했다.

드라이어드들이 죽는 것… 그것은 주인인 드루이드가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을 뜻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말하니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로 날 짓누르는 돌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마거리트의 설명이 너무 상세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무섭다.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기분이다.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살아나는 캐릭터. 그리고 마거리트는 내 세이브 포인트. 속이 울렁거린다.

“으앙! 내 진리가 죽으면 다 죽이고 나도 따라 죽을 거야!”

대꾸해 주던 내가 말을 멈추자 마거리트는 더욱 목청을 높여 울며 내 어깨를 적셨다. 어쩐지 축축해져 오는 어깨 덕에 내 머릿속을 잠식해 오던 불안감의 늪에서 불쑥 현실로 끌려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생각하지 마.’

‘깊게 생각하지 마.’

“제이!”

“제이 님!”

오래 지나지 않아 날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스키트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한 채 긴 다리로 한달음에 내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녀의 머리, 갑옷, 모든 곳이 흙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좀처럼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드라이어드가 이 지경이 될 정도로라면 붕괴의 여파가 실로 대단했다는 걸 뜻했다.

메스키트를 뒤따라오는 엘더와 바곳의 행색도 상당했다. 메스키트가 둘러 감았을 둘의 로브 허리께가 찢기고 주름져 있었다. 아니… 왜 전투를 벌였을 때보다 애들 장비가 개판이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제이가 잘못됐다면…. 난….”

또 잃을 순 없어, 항상 침착하던 메스키트마저 평소답지 않게 불안함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모든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 안 죽었어. 아니 죽을 뻔하긴 했는데. 이게 설명하기 애매하네. 조심히 메스키트의 손을 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켠 그녀가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츰 휘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걷혀 가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늦었다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어이없게도 저 녀석이 돌발 행동을 해서…. 너 얼굴이 왜 그래?”

다짜고짜 흰빛을 띤 손으로 날 구석구석 살피던 엘더가 마거리트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너도 보이니? 마거리트 얼굴의 검은 균열이….

“내 진리가… 진리가…!”

마거리트는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다. 너무 심하게 울어 대니 곁에 있던 바곳이 덩달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기… 내 짐작인데. 아무래도 마거리트가 예언의 힘을 사용한 것 같아.”

난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하지만 마거리트는 내가 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다. 예언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그녀가 무의식중에 그 힘을 발휘해 날 구해 낸 것.

내 말에 메스키트의 얼굴이 매섭게 굳었다. 위급했던 상황, 마거리트의 돌발 행동, 그리고 지금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마거리트의 모습.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말한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느낀 듯했다.

“내가… 내가….”

내가 진짜로 죽을 뻔했대. 정말로 죽어서 너희들이 전부 영혼의 연결이 끊기고 열매가 되어 버렸대. 이 말을 어떻게 내 드라이어드들에게 할 수 있겠어?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엘더가 지적했던 마거리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그녀의 왼쪽 볼에 자리한 검은 균열을 조심히 쓰다듬어 보았다. 하얀 볼에 대조적으로 문신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한 흉흉한 검은 선.

그 검은 균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플로라의 말이 떠올랐다.

“금난초는 꽃말의 힘을 사용해서 말해선 안 되는 미래에 대해 느낄 때 제게 주의와 경고를 해 준답니다.”

그렇다면 말해선 안 되는 미래에 대해 말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말해선 안 되는 미래가 뭐지?

내 죽음을 예언한 마거리트가 날 구하기 위해 행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내 죽음은 바꿔선 안 됐던 예언이었나?

그렇다면… 예언의 금기를 깬 마거리트에게 혹시 문제라도 생긴 건가?

“괜찮나?”

시들링이 뒤늦게 자신의 드라이어드들을 수습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도 처음 메스키트처럼 격한 감정들이 적잖게 드러나 있었다.

내가 죽을 정도의 사고였는데 같은 드루이드인 너도 죽었을까? 아니면 너는 피할 수 있었을까?

“난 괜찮아. 우리 마거리트가 재빠르게 날 피신시켜서 다친 곳도 없어. 너야말로 괜찮아?”

“나도 괜찮다. 좋은 드라이어드를 두었군. 잘했다.”

마거리트는 어리숙하니 위기 시 날 지킬 수 없을 거라 말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마거리트를 보는 그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서 마거리트에 대한 평가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내 드라이어드를 칭찬하는 태도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 마거리트는 정말 잘한 걸까? 잘한 건 맞지만….

“그나저나 저 자식! 다시 만나면 잘게 다져서 톱밥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엘더가 공중 정원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 그래. 짭신 엘더! 그런 괴팍한 방법으로 우릴 쫓아내다니. 악마 같은 드라이어드! 내가 여태 만난 드라이어드 중 방식이 과격하기론 네가 최강이다! 네가 짱 먹어라, 얼굴만 예쁜 녀석아!

그녀가 계단을 무너뜨리기 전에 뭐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너무 큰 충격에 다 잊어버렸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엘더 말처럼 곱게는 영입 안 할 줄 알아라!

“아, 레몬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넌 알고 있지? 좀 들어야겠어. 저쪽 엘더가 우릴 쫓아내려던 이유와 네가 우릴 끌고 가려던 이유가 다를 것 같진 않거든.”

칼미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린 레몬밤이 내 말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몸이 줄에 묶인 모빌처럼 휘청거렸다.

“괴물… 신전 안에 괴물이 살고 있어요….”

“그래, 그 괴물 말이야. 대체 뭔데 그래? 차라리 우릴 대피시킬 것이 아니라 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서 퇴치하는 것이 맞지 않아?”

“당신들은 강하잖아요…. 강하니까 안 죽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섬의 모든 식물과 드라이어드들은 죽을 거예요.”

이건 레몬밤이 꼭대기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드라이어드와 이야기할 수 있는 드루이드가 괴물을 불러온다더니. 그런 괴담이야?”

“괴물을 불러오는 게 아니에요. 괴물은 이미 섬에 살고 있었어요. 그걸… 신님이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괴물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식물과 드라이어드들을 말라 죽게 할 수 있어요.”

“말라 죽는다? 설마?”

“섬의 모든 식물이 말라 죽었던 건 병 같은 것이 아니었어요! 괴물의 능력이었어요! 만약 그 괴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면… 순식간에 저주를 내릴 거예요. 대피할 새도 없이 섬의 모든 식물이 죽는 거예요!”

마음에 들지 않는 일?

레몬밤은 이야기를 하다 무언가 떠오른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곤 품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냈다.

“이거… 전해 달라고…. 그리고 드루이드님께서 생각했던 것만큼 신님은 나쁜 존재가 아니란 걸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 종이는 로웰라가 벽화를 옮긴 종이였다. 펼친 종이엔 모든 문양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러분들만으론… 괴물을 물리치면서 동시에 섬의 모든 식물들을 구해 낼 수 없으니 지원이 필요할 거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이면 몰라도 드라이어드들은 널 괴롭힌 애들이잖아?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도 그들을 돕고 싶은 거야? 우린 그저 괴물만 물리치면 끝일 수도 있어. 자연의 이치가 뒤틀린 식물들 따위 섬을 떠나면 신경 안 써도 되잖아.”

짭신 엘더가 나쁜 존재가 아니란 말에 적잖이 화가 났는지 엘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식물이 모두 말라 죽으면… 사람들도 안전하지 못해요.”

“식량을 걱정하는 거야?”

“아니에요. 이 섬은 오랫동안 사람들과 식물들이 운명처럼 함께 살아왔어요. 섬이 외부인들에게 드러나지 않지만 섬 안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에요. 섬엔 아주 오랫동안 드라이어드들이 뿜어 댄 진정의 능력이 담긴 향기가 축적되어 있어요.”

섬에 도착하자 향수 코너를 방문한 것처럼 자욱하게 깔린 꽃향기를 맡았던 것이 떠올랐다. 하긴 아무리 향기가 강하다 하더라도 야외인데다가 바람도 부니 향기가 날아갈 법도 한데, 마치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진득했지. 그런데 그것이 축적된 향기라니?

“축적된 향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데다 섬을 지키는 드라이어드들이 향기를 밖으로 직접 옮겨서 뿌리니 섬 근처에 외부인이 접근해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이걸 부작용이라고 했어요. 너무 진정된 나머지 기억이 휘발된다고….”

배 안에서 사람들이 기억을 잃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섬 안의 사람들은 면역이 되어 있어요. 몸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섬 사람들은 집집마다 이 섬에서 자라는 모든 허브를 종류별로 한 포기씩 키우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 그 향을 맡으며 후각을 둔화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진정 능력에 버티는 건데…. 만약 식물이 모두 말라 죽어 버린다면….”

배 위의 선원들처럼 되는 건가?

“당신들처럼 강하지 않은 사람들이니 심할 경우…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했어요.”

해일이 덮쳐서 전멸하든가, 괴물에 의해서 전멸하든가. 섬에 속박된 기이한 운명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그래서 지원이 필요해요! 바다 위 어떤 섬엔 그 괴물의 능력과 상반되는 식물들이 살고 있다고 했어요. 드라이어드도 있고. 그 드라이어드들을 이 섬으로 불러들여 와 괴물의 능력과 맞서 싸운다면…!”

“사람들까지 위험하단 건 알겠어. 하지만 네 계획은 너무 허황된 거 아냐? 지원이라니…. 지금 로웰라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한시가 급한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섬에 가서 정체도 모를 드라이어드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죽어도 살아나는 드라이어드들이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말라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예요! 저 그 섬으로 가는 지도도 있어요. 신전 안에서 찾았어요. 제가… 제가 갈게요! 제가 가서 드라이어드들을 데려올게요!”

죽어도 살아나는 드라이어드? 나도 모르게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부활 능력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좀비? 아니 식물 흡혈귀가 설치더니 이젠 식물 좀비도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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