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604)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어마어마한 신전급 건축물에 통째로 금을 녹여 장식할 생각을 했는지, 엄청난 사치에 어쩐지 진 것 같아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가 되어야 대부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이아를 모은 사람일까?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에 놀러 오기라도 한 것처럼 들뜬 나와 로웰라와 다르게 시들링은 여전히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다 어느 곳을 보고 기민하게 말했다.

“사람이 있다.”

“엇, 정말 그러네. 언니 저기 모양은 이상한데 다 집 아니야?”

집이 있다고?

자세히 보니 토굴처럼 땅을 파 지상 1층 높이까지 돌로 벽을 쌓고 거대한 바위로 지붕을 올린, 정말 집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작은 공중 정원 아래로 여러 채 자리하고 있었다.

벽에서 자라난 우거진 수풀이 구조물을 온통 덮고 있는 바람에 교묘하게 위장되어 주변 풍경에 동화되어 있다 보니 한눈에 발견하긴 힘들었다.

이곳에 사람이라곤 최초로 정원을 꾸린 은둔자만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드라이어드들 사이로 시들링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즉, 이곳은 공중 정원임과 동시에 작은 규모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기겁하며 집으로 들어가 숨거나 도망쳤다. 그나마 신기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품에 감춰졌다.

여기에 어떻게 마을이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우리를 두려워하는 거지?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외부인이라니…. 필시 우릴 모두 죽이려고 왔을 거야….”

“아아… 신이시여.”

그들은 우릴 보고 저주받았다고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우리를 괴물 보듯 보고 있었다. 엘더를 신격화하는 드라이어드들처럼 그를 보면 호의적이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한참이나 빗겨 가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에 친화력이 좋은 로웰라마저 잔뜩 기가 눌려 어깨를 움츠렸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를 안내하던 드라이어드들은 사람들 틈을 지나 공중 정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돌탑의 뒤편에 기다란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라가면 내 폐가 버티지 못할 성싶은 천국의 계단이나 다름없었다.

연금탑엔 계단이 나선형에 중간중간 층이 끊겨 있기라도 했지, 여긴 등산 코스에 만들어 놓은 계단처럼 대각선으로 쭉 길었다.

난 엘더에게 여기서 멈추자고 열심히 눈치를 주었다. 내 저질 체력을 알고 있는 그는 기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었다.

“하지만 저 위가 신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드라이어드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마을 사람들이 공동 회관으로 사용하는 듯한 원형 광장으로 우릴 안내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처럼 아래로 지대가 낮아지는 넓고 둥근 구역에 계단이 나 여럿이 걸터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한쪽에 무대처럼 땅이 평평하게 다듬어진 단이 마련되어, 누군가 그곳에 서서 연설을 한다면 모두가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엘더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섰다.

나머진 계단에 앉아 엘더를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사람들이 있던데.”

엘더는 드라이어드들이 아닌 나만 줄곧 바라보며 내가 궁금해할 것을 물어봐 주었다.

“사람들이요? 아, 드라이어드가 아닌 자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신님께서 내려오시는 줄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감히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드라이어드들이 사람들을 지칭하는 묘사가 기묘했다. 드라이어드가 아닌 자라…. 그 대답에 어쩐지 이곳 사람들은 드라이어드들과 정상적으로 공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드루이드는 없는 건가?”

“드루이드가 뭐야?”

“글쎄?”

작은 드라이어드들은 엘더의 물음에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드라이어드가 드루이드에 대해서 모른다고?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야….”

로웰라가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소름 돋는다는 듯 자신의 양어깨를 문질렀다.

“아, 나 섬 밖으로 나가는 꽃들한테 들은 적 있어. 드라이어드들과 말할 수 있는 자들을 드루이드라고 부른대.”

“그럼 괴물을 불러오는 저주받은 자들을 말하는 거잖아?”

“그렇구나. 신님, 그런 불결한 것들이라면 신님의 말씀대로 모두 ‘사냥’했습니다. 또한 매번 살피면서 그런 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주의 깊게 살피고 있습니다.”

뭐? 사냥한다고? 내가 방금 뭘 들은….

갑자기 가슴이 지끈거리면서 아파 왔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가슴속에 박힌 느낌이었다. 온몸이 들썩일 만큼 강한 고통이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갑자기 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엘더와 바곳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내 드라이어드들만이 기민하게 내 이상을 알아차린 것이다. 난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신님과 가까운 자들이란 저자들도… 저주받은 자들 아닌가요? 언제 죽이실 건가요?”

“내 작은 세계수를 죽인다고…? 감히….”

태연하게 묻는 드라이어드의 말에 엘더가 불처럼 화냈다. 땅이 작게 울리며 사방에서 엘더의 하얀 꽃가지가 뻗어 나왔다. 회복형인 엘더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스킬이었다.

갑자기 전환된 태세에 시들링과 로웰라가 벌떡 일어나 방비했다.

어린 드라이어드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들을 공격할 것처럼 쇄도하는 꽃가지에 달음박질을 치며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토로했다.

“신… 신님께서 노하셨다!”

“으아악!”

“그렇지만… 분명 신님께서 우리들과 말이 통하는 자가 이곳을 멸망하게 할 것이라 예언하셨잖아요! 그래서 저주의 씨앗을 품은 놈들을 모두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엘더, 그만!”

내 외침에 꽃가지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나를 죽인다는 말에 과하게 반응한 엘더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이건 경우가 맞지 않았다.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었다.

어린 드라이어드들은 꽃가지가 움직임을 멈추자 자기들끼리 뭉쳐 끌어안고 땅에 주저앉아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

이젠 현명하고 오래된 지혜들이 필요했다.

나는 메스키트를, 시들링은 내 부탁을 받고 벨라돈나를 대신하여 그다음으로 오래 살았고 아는 것이 많아 보였던 칼미아를 불러냈다.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흩날리는 황금빛 꽃잎들 사이로 거대한 묵색 갑옷이 나타나자 어린 드라이어드들이 더욱 겁에 질려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가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짓누르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메스키트의 등장에 엘더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엘더가 나에 대해 과하게 반응하며 즉각적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중심을 잡으며 바로 곁에서 날 비호하는 철옹성의 부재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메스키트가 있는 한 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심적 안정감이 엘더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었다.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줄래?”

어린 드라이어드들은 명령의 주체가 엘더가 아닌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지배되어 우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미리 만났던 모감주나무의 반응을 보아 섬이 외부와의 격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걸 알 수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부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폐쇄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정원 주인의 후손들이라고 했다.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소문과 다르게 대부호는 일가친척들은 물론 가까운 이들을 모두 섬으로 이주시켜 살았던 듯했다.

또한 비교적 최근이라고 생각했던 소문의 생성일이 알고 보니 몇 세대에 걸친, 아주 오래된 전설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주인은 단순히 ‘대부호’로 칭할 수는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신께선 드라이어드가 아닌 자들과는 말로 소통할 수도 없고 소통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속속 알게 되었다.

섬 밖의 드라이어드들은 일방적이긴 해도 드루이드가 아닌 일반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체에 축적된 지식을 통해 그 사람의 행동, 분위기, 말투, 소리의 높낮이 등 모든 것을 읽고 도출해 낸다는 것이 내가 들어서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 섬의 드라이어드들은 일반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가 좀 전에 본 사람들과 드라이어드들이 제대로 공존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인공적으로 구현한 폐쇄된 공간이 자연의 이치를 비정상적으로 꼬아 놓았군요. 더구나 후대에게 제대로 지혜가 전승되지 않고 있어요.”

메스키트가 드라이어드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라이어드들이 너무 어려요. 왜 완전히 성장한 드라이어드들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제대로 왕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칼미아가 팔짱을 끼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메스키트의 말을 이어받았다.

가장 먼저 태어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화자를 맡게 된 어린 드라이어드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은 물론 드라이어드들도 말라 죽는 기이한 저주가 섬에 퍼졌다고 했다. 섬 밖에서 떠돌던 식물 흡혈귀의 괴담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동시에 신성한 힘을 사용하는, 엘더의 야생종으로 추정되는 신이 기적처럼 나타나 죽어 가는 드라이어드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다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고 했다. 그 신은 섬의 모든 드라이어드들을 한데 묶는 구심점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군요. 이젠 알겠어요. 이 섬엔 오랫동안 왕의 그릇이 될 수 있는 우성종이 하나도 태어나지 못했어요.”

“메스키트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다른 종의 드라이어드가 자신의 종이 아닌 드라이어드들을 통치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버팀목으로 삼을지언정 모체가 다른 이상, 작은 세계수에 비견될 만큼 강한 신뢰와 믿음을 기반하여 자신의 지배를 기꺼이 허락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단숨에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각 종을 대표하는 우성종이 없었기 때문이군요.”

메스키트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내 주인, 제이. 우리가 방문했던 민들레 군락지와 비교해 보면 어떤 점이 다른지 알 수 있겠나요?”

단델리온이 통치했던 민들레 군락지라…. 지금 보고 있는 어린 드라이어드들처럼 군락지에도 어린 민들레들이 많았지만 모습은 어려도 어쩐지 오래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라이어드들의 나이는 인간과 다르니 가늠하기 어렵지만 좀 천천히 자란다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지금 보는 드라이어드들은 정말 나이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느낌이었다.

“음… 생명력이… 좀 짧다?”

“맞아요. 지금 보는 묘목들은 햇빛을 덜 받은 식물들이 웃자라는 것과 같답니다. 영혼을 맡긴 왕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완전히 성장한 드라이어드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오랫동안 대대로 태어난 드라이어드들의 영혼이 보살핌을 받지 못해 명이 짧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계속 대물림되니 모두 일찍 죽고 없어졌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거랍니다.”

메스키트의 설명에 섬뜩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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