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604)

난 정말 인복이 많나 보다. 포르타 같은 장인이 내게 이런 대단한 장비도 만들어 주고.

다루기 힘든 흑요석이라면서 내 장비 파츠마다 빠짐없이 보석이 장식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18번째 테라리움에 질투가 날 정도로 아까운 인재다. 내가 끼고 살고 싶었다.

내 길드원들에게도 이런 장비들을 마련해 주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텐데.

“장비 가격을 지불해야죠. 얼마인가요?”

내 질문에 포르타는 크게 망설였다. 이런 범상치 않은 장비라면 가격대가 장난 아닐 것은 진작 예상했다. 내겐 액수의 크기는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다르겠지.

“그게… 전에 저희 상점에서 초보자 장비들을 다량 구매하셨을 때 지불하신 다이아….”

내가 입은 장비 한 세트가 초보자 장비 수십 벌의 가격이랑 맞먹는구나.

하지만 꽤 싸게 먹힌 건 아닐까? 내가 26번째 테라리움에서 처음으로 맞췄던 장비 세트가 150다이아였지만 이곳 장비 상점의 초보자 장비 세트는 품질이 좋은 만큼 세트당 250다이아에 거래했었다.

가게에 있는 대부분의 초보자 장비들을 사들였으니 최종 거래가는 할인 없이 한 15000다이아쯤으로 거래했던 것 같은데. 키르켄이 날 보면 눈을 다이아 모양으로 뜨고 반기던 이유에 이 거래도 한몫을 했을 거고.

한 벌에 만 다이아가 넘어가는 장비 세트를 입고 다니는 건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있는 걸까? 하지만 나보다 고렙들은 더 비싼 장비를 둘둘 두르고 다니겠지?

“그 두 배예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료들을 대부분 사용해 버려서….”

포르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두 배면 한 30000다이아?

그만큼 좋은 장비니까 내 목숨값으로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거지. 온몸에 드라이어드 열매 100개를 두르고 다니는 거랑 맞먹긴 하지만.

“대량 거래로 큰돈이 갑자기 생기니 저도 모르게 재료 사용에 너무 과하게 욕심을 내 버린 것 같아요…. 장비는 품질도 좋아야 하지만 거래될 수 있는 일반적인 적절한 가격선을 맞춰야 하는데….”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절주절 장비에 사용된 재료들에 대해 변명하듯 나열했다. 흑요석이 압도적으로 비싼 건 맞지만 사용된 옷감이나 가죽들도 전부 최고급만 사용했다는 소리였다.

“제이 님께서 꼭 입어 주셨으면 하는 장비였으니…. 이제 와서 장비를 해체하거나 다른 사람 손에 넘기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정말 말이 안 되게 큰 금액이란 건 알아요. 그러니 당장 지불하시는 대신 몇 년이 걸려도 괜찮으니 조금씩 상환하는 방법도 괜찮아요. 담보를 맡기실 필요도 없고….”

“몇만 다이아로 이 정도 장비를 얻을 수 있는 걸 알았다면 진작 구매했을 거예요! 지금 전부 드릴 수 있어요.”

내 말에 포르타는 더욱 하얗게 질렸다.

“저 행정 관리원이에요. 그 정도 다이아도 못 굴릴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행정 관리원이라면 테라리움에 사용해야 할 세금이….”

“아, 방금 그 말은 주민들 피를 말려서 사치하는 악덕 관리같이 들리긴 했네요. 따로 하는 사업에서 벌어들인 다이아예요. 오롯이 제게 사용해도 되니까 안심하세요. 다이아는 어떻게 지불해 드리면 되나요?”

그녀는 결국 다이아 지불에 사용하는 상자를 가지러 갔다. 가는 와중에도 계속 나를 뒤돌아보는 모습이 내가 언제라도 방금 결정을 되돌릴 수 있게 기회를 주는 듯했다. 3만이 넘는다 해도 우리 난쟁이들 성에도 안 찰 수량인데.

포르타가 가져온 상자에 다이아를 넣기 위해 모처럼 <무한 다이아> 화면을 켰다.

[주인님! 다이아를 쓰러 오셨나요?]

오늘도 무한 다이아 속 화면은 평소와 달랐다. 열심히 일을 하는 난쟁이들 뒤로 반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의 난쟁이들이 섞여 있었다. 로딩 렉인가? 작은 난쟁이는 처음 보는데.

그중 한 무리의 작은 난쟁이들이 줄지어 선 곳의 맨 앞에 깃발을 들고 서 있던 난쟁이가 내 시선을 끌기 위해서인지 미친 듯이 깃발을 흔들어 댔다.

[주인님! 어린 난쟁이들이 미래의 직업을 견학하러 왔어요!]

[주인님! 어린 난쟁이들도 주인님을 위해서 열심히 다이아를 캘 거예요!]

내게 곧 다이아 사용을 강요할 어린 꿈나무들이었다니. 항상 디폴트 크기의 난쟁이들만 보다가 작고 어린 난쟁이들을 보니, 이젠 정말 <무한 다이아>는 내가 알던 그 게임이 아닌 것 같다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꼭 진짜 난쟁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 한편을 엿보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 여기 보세요. 곧 우리의 주인님께서 다이아를 왕창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실 거예요!]

[와아아!]

작은 난쟁이들이 폴짝폴짝 뛰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일제히 날 바라보았다. 부담되는 시선이다.

[이건 흔치 않은 기회예요. 주인님께서 다이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일 잘하는 선택받은 난쟁이들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에요!]

[주인님께선 어린 난쟁이들도 보고 있으니 분명 다이아를 잔뜩 가져가실 거예요!]

[주인님이 다이아를 많이 가져가셔야 어린 난쟁이들도 일자리가 생겨요!]

또다시 작은 난쟁이들이 찌르르 우는 새처럼 환호를 질렀다. 마치 내가 여기서 다이아를 많이 가져가지 않으면 어린 난쟁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잔학무도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해서 32000 다이아예요….”

포르타의 말은 시들링조차도 표정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네가 듣기에도 장난 아니게 큰 액수가 맞구나.

상자에 적힌 숫자를 보며 폰을 뒤집었다. 평소의 난쟁이들보다 톤이 더 높은 환호가 섞여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 만 다이아를 털어 냈을 때쯤 잠깐 멈췄다.

“잠시만요.”

그리고 포르타에게 등을 돌리고 <무한 다이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난쟁이들이 아쉽다는 표정을 가득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모처럼 어린 난쟁이들이 견학을 왔어요!]

[주인님! 이것밖에 가져가시지 않으면 어린 난쟁이들이 미래의 직업에 회의감을 갖고 방황할 거예요!]

[주인님! 어린 난쟁이들을 위해서 잔뜩 다이아를 가져가는 멋진 주인님의 모습을 보여 주세요!]

역시나 만 다이아는 남들이 놀랄 정도의 수량이지만 우리 난쟁이들 간엔 기별도 가지 않는 수량이었다.

사실 중간에 다이아를 쏟다 말고 끊은 이유는 밀당을 위해서였다. 한 번에 3만 다이아를 털어 내도 쟤들은 분명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조삼모사를 응용해 보려고 했다.

“모처럼이니까 좀 더 써 볼까?”

난쟁이들만 들리도록 작게 이야기를 하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폴짝폴짝 뛰었다.

또다시 상자에 만 다이아를 부었다. 그리고 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단 좀 누그러진 듯한 표정들이 날 반긴다.

[주인님! 어린 난쟁이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셔야 해요!]

[주인님! 다이아를 더 가져가세요!]

[주인님께서 다이아를 더 가져가지 않으신다면 오늘 어린 난쟁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슬픈 일기를 쓸 거예요!]

“그럼 어린 난쟁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내 말에 다시 한번 무한 다이아 속 화면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량만큼 다이아를 채우자 포르타는 정말 한 번에 전부 지급할 줄은 몰랐다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다이아 상자를 들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사라졌다.

폰 화면을 바라보니 아쉽다는 표정은 곳곳에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해 보였다.

“아, 원래 더 쓸 마음 없었는데 어린 난쟁이들도 보고 있으니까 좀 더 쓴 거 알지?”

[주인님! 최고예요! 하지만 더 가져가셨으면 더 최고였을 거예요!]

그런데 어린 난쟁이들이 점만 한 손으로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감동했어요, 주인님! 저흰 얼른 자라서 주인님을 위한 다이아를 캐는 광부가 될 거예요!]

[주인님을 위해서 다이아를 더 많이 캘 거예요!]

이게 울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니. 앞으로도 적절한 퍼포먼스를 보여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이아 상자를 놓고 다시 돌아온 포르타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장비는 남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혹시라도 수리하실 일이 생긴다면 제게 다시 오셔야 해요….”

“뒤 번대 테라리움으로 내려갈 예정이라 18번째 테라리움에 다시 들르긴 힘들 것 같은데…. 최대한 수리할 일은 없게 만들어야겠네요.”

“튼튼해서 작정하고 망가뜨릴 마음만 먹지 않으신다면… 수리는 거의 필요 없을 테지만…. 그리고 혹시라도 남의 손에 맡겨 강화를 하는 일도 없어야 해요…. 가끔 품질이 낮은 보석들을 하급 강화석이라고 부르며 다이아를 받고 장착해 준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최상급 품질의 보석이라고 해도 그 장비는 남의 손을 잘못 타는 순간 전부 망가질 수도 있어요.”

“헐,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조심할게요!”

포르타가 장식해 준 보석에 전부 강화를 할 일도 까마득하지만 혹시라도 보석에 능력을 다 채웠다 하더라도 새로 보석을 박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겠다.

장비 상점을 나와 시들링을 데리고 쇼핑 스토어에서 시간을 때우다 연금탑으로 갔다. 새로 장비도 맞췄으니 빨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오늘이 가기 전 18번째 테라리움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롬가토는 예상했던 것보다 내가 빨리 돌아와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그의 후임 연구원들은 표정이 밝아 보였다.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완성된 수량만큼만 일단 주시겠어요?”

내 말을 들은 그가 가져온 상자 안엔 하얗고 뿌연 안개가 찬 엘더의 힘이 담긴 탄환 6개가 들어 있었다. 10개도 되지 않는 수량에 조금 아쉬웠다. 다른 상자에 들어 있는 꼬리겨우살이의 탄환도 딱 6개 분량만 더 늘어 있었다.

“6개면 시험 삼아 사용해 보기에도 아까운 숫자네요. 엘더 플라워의 탄환엔 어떤 힘이 들어 있는지 알 순 없나요?”

“아마 회복 능력과는 조금 다른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엘더의 힐링이 아니라면 좀 아쉽긴 하네. 그럼 대체 어떤 힘이 담겨 있는 거지?

“엘더가 사용하는 힘이라면 방어막을 쳐 주거나… 설마 엘더의 행운을 올려 주는 버프가 담겨 있으려나?”

“그렇다면 그 탄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니는 것만으로도 좋은 부적이 될 수 있겠군요. 모체 자체로도 행운의 부적으로 사용되는 꽃 아닙니까?”

엘더의 행운 버프는 쿨타임이 굉장히 길다. 탄환에 담긴 힘은 미약하지만 긴 쿨타임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면 꽤 좋을 텐데.

탄환을 모두 챙겨 넣고 연금탑을 나왔다. 비로소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모두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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