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604)

“말씀드렸다시피 16번째 테라리움의 이미지가 불미스러운 일로 좋지 않게 되어 한창 준비 중이던 큰 사업이 엎어졌답니다. 보스께선 대체품을 원하세요. 성미가 급하시니 당장이라도 주의를 돌릴 무언가가 필요하죠. 이를테면… 그래요. 16번째 테라리움에도 18번째처럼 단풍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요?”

16번째 테라리움에도 특산품이 있던가? 딱히 관련 서류를 본 적도 파필리온에게 들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부지는 이쪽에서 마련할 테니 단풍나무들은 물론 관리할 인력과 지식, 자재들을 모두 18번째에서 수출하는 거죠.”

키르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니면 단풍나무처럼 재배하여 이득이 되는 다른 식물들도 괜찮겠네요. 하지만 전 뒤 번대 테라리움에 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에 계속 이 일을 관리할 순 없으니 믿고 맡길 만한 다리가 되어 줄 사람이 있다면….”

“하하하, 이미 저희 테라리움이 단풍나무 특산지로 유명하기에 다른 곳에서 단풍나무를 재배하더라도 큰 이익을 보진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측백나무라면 어떨까요? 측백나무야말로 어울릴 것 같군요. 저흰 보유 중이지 않지만 12번째 테라리움에서 대규모 측백나무 농장을 조성하려다 실패하고 방치되고 있다고 하니 처치 곤란인 수목들을 낮은 가격에 사들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12번째보단 16번째가 측백나무 재배 토양엔 더욱 걸맞기도 하고요.”

갑자기 측백나무? 하지만 어쨌든 저쪽이 반응할 만큼 좋은 미끼를 던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흠… 12번째라….”

“하지만 앞으로의 16번째 테라리움과의 거래에 오해가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장애물이 될 수 있으니, 제가 18번째와 우방인 16번째 테라리움을 위해서라도 발 벗고 나서서 살피겠습니다. 저희 18번째 테라리움의 소식지를 비롯하여 적어도 10번대 테라리움의 소식지엔 16번째 테라리움의 ‘정확한 사정’이 기재된 기사가 실릴 겁니다.”

“키르켄 님이라면 좋은 다리가 되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어떻게 아무런 대가 없이 바라겠어요? 키르켄 님의 노고에 걸맞은 성의는 16번째 테라리움의 제 보좌관에게 잘 챙겨 달라고 이야기해 둘게요. 아, 혹시 소식 전하는 것이 느릴 수 있으니 엇갈리게 된다면 제 이름을 댄다면 바로 알 거예요. 대규모 사업을 준비 중이던 자금들이 일시 동결됐으니 어쩌면 다른 여러 사업들을 살펴볼 수도 있겠네요.”

물론 파필리온에게 미리 말할 생각은 없었다. 걔는 눈치가 빠르니 알아서 하겠지. 아마 넉넉히 잡아 둔 1년치 예산을 급하게 당겨써야 할 것이다. 예산이 동나기 전에 한번 들러서 다시 채워 주면 되겠지. 걘 제 몫을 챙기려고 열심히 짜 놨을 텐데 오늘 이후로 전부 다시 편성해야 될 것이다. 고소하다.

그리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과수원에서 새로운 소식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키르켄과 헤어져 시들링과 늦은 점심을 챙겨 먹을 때 내 입맛에 딱 맞는 기사가 실려 있는 소식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테라리움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진행된 16번째 연금탑의 불법 인공 개량?

테라리움의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행정 관리원의 눈조차 속일 정도로 치밀하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연금탑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