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리움의 내부는 재건을 위해 인부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과수원만큼은 사람을 고르고 골라 제한적인 사람들에게 맡기기 위해 아직 내버려 두는 중이었다.
많은 일꾼들을 제공해 주는 그레이트 빈 연합과도 재건 사업에 대해 이야기할 당시 이 점에 대해 중요하게 언질해 두었다. 또한 평상시에는 가막살나무와 데이지2가 돌아가며 경비를 서며 주변의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차단했다.
과수원 입구에서 나를 발견한 가막살나무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플로라를 보곤 표정을 굳혔다.
“안에서 보았던 모든 것에 대해 함구하셔야 해요.”
“꼭 지키겠습니다. 테라리움을 제게 준다 하더라도 절대 입을 열지 않겠어요.”
가막살나무에게 안심하란 의미로 천막 안에서 나눴던 당부를 다시금 되짚었다. 이미 굳은 의지가 담긴 답을 했지만 내가 하려는 양을 깨달은 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했던 답변을 그대로 다시 말하며 가볍게 받아쳐 주었다.
세계수의 가지는 이미 회복하여 그 어떤 가지들보다 때깔이 곱겠지만 그 가지가 있는 과수원 내부의 상황은 하나도 복구되지 못한 채 처참한 수준일 터다.
불로 인한 피해로 인해 새까맣게 타고 무너질 듯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테라리움의 과수원은 많은 직원들이 돌아다니는 것에 비해 이쪽은 사람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큰 화재가 있었다고 하지만 과수원이 제구실을 못할 정도라는 것을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내 드라이어드들이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둔 것인지 처음에 왔을 때 발길을 떼기도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상태가 많이 괜찮았다. 잿가루를 치워 내고 환기도 적절히 해 둬서 숨 쉬는 것도 편했다.
위태했던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두꺼운 목재들이 입구가 무너지는 것을 대신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방안에 도달했다. 졸졸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 반짝반짝 신성한 빛을 은은하게 두른 세계수의 가지가 검게 타버린 벽면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다행히 플로라는 여기 오기까지 눈치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당장 보이는 곳엔 열매가 없는데 어디 구석에 짱박혀 있는지 흩어져서 찾아봐요.”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 들떠서 흩어진 이리스 파티와 다르게 시들링은 내 곁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넌 안 가?”
“명령이라면 가겠다. 하지만 이곳은 곧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 너와 함께 입구 쪽에 서 있는 것이 낫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뻥 뚫려서 위층이 훤히 보이는 천장의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겪은 것은 나와 시들링이 유일했다. 그땐 참 많은 일이 있었지. 그날의 내가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얘와 다시 한 공간에, 그것도 같은 길드 소속이 되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놀랄까?
처음엔 고렙이 저렙을 무시하고 찍어 누른다는 생각과 내 데이지와 생이별하게 만들었던 분노에 시들링에 대한 인상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곁에 놓고 보니 갈수록 처음 인상과 달리 마냥 나쁜 애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죽음의 늪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른 채 드루이드를 공격했던 우리 바곳처럼 태어난 환경이 얘를 그렇게 만들었겠지.
내 울타리로 들어온 바곳이 차차 적응하여 이만큼 자랐듯이 내 길드가 된 이상 시들링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나아지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하나씩 고쳐나가면 된다.
“파필리온한테 되지도 않는 드립들을 배워 와 다 써먹은 걸 보면 습득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암기 수준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건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시들링이 슬쩍 날 내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스터, 찾았어요! 정말 열매가 있는데요?”
별안간 제퍼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뭐? 정말 열매가 맺혔다고?”
반사적으로 데이지2를 바라보았다. 항상 졸린 듯이 가볍게 반쯤 감겨 있던 그의 눈이 확연히 크게 뜨일 정도면 정말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데이지2가 내게 열매의 존재를 숨길 리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회복한 세계수의 가지가 단 한 개뿐이지만 열매를 맺는 것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와, 얘는 진짜 늦둥이네요. 이젠 설익은 열매도 전부 수확해서 빈 가지만 남을 시기에 드라이어드 열매라니.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숨어 있었을까요?”
제퍼가 있는 곳은 무너져 구멍이 생긴 온실의 벽면과 가지의 방의 경계면이었다. 자랄 대로 자란 가지가 제 방을 벗어나 온실까지 침범했던 모양이었다. 돌 더미가 입구로 들어온 우리의 시야를 정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신경 써서 찾지 않는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할 위치였다.
정말로 열매가 있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내 세계수 가지가 회복 후 처음으로 맺는 열매를 결국 플로라에게 넘겨야 되네. 대체 어떤 늦둥이 드라이어드가 이렇게 늦은 시기에 내 테라리움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세계수 가지는 잘도 내 꿈에 찾아오면서 왜 열매를 맺은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은 거야. 알았다면 빨리 선수 쳤을 텐데. 점을 봐 준 것은 고맙지만 차라리 다이아를 요구했다면 이렇게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열매를 찾기 위해 방안 곳곳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제퍼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엔 정말 투명하고 매끄러운 둥근 드라이어드 열매가 가지에 맺힌 이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앞서 봤던 드라이어드 열매보다 조금 작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모양이나 광택이나 이상은 없었다.
나는 아쉬움이 철철 넘치는 눈으로 열매를 바라보다 결국 플로라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환한 얼굴로 열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지에서 열매를 땄다.
온실은 많이 망가져 있었지만 흙도 있었고 양각된 문양을 타고 흐르는 물도 있었기에 제 기능은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박살 나 흙이 흘러넘치는 드라이어드 포트 위로 플로라가 열매를 놓았다. 투명한 열매의 속에 찬란한 금빛이 가득 차올랐다. 열매의 가장 윗부분이 계란 껍데기처럼 깨지고 앙증맞은 동그란 새싹이 얼굴을 내밀었다.
동시에 포트 옆의 여기저기 금이 간 석판 위로 푸른 문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거리트 (Marguerite)
칭호: 만인을 위한 예언자
꽃말: 예언, 사랑을 점친다, 비밀을 밝힌다
자생지: 노멀 필드 (★★★☆☆)
필드 발생 확률: middle-high (★★☆☆☆)
가치: 관상, 약재 (★★★☆☆)
특성: 지원형
최종 확정 등급: 레어(Rare)
예로부터 꽃점을 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꽃이다.
5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쑥갓과 같은 잎 모양과 목질화된 줄기로 인하여 나무쑥갓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