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604)

어디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보란 심정으로 <무한 다이아>로 화면을 바꾸었다.

28번째 세계수의 가지가 빨대 꽂은 날, 화면 가장자리에 프레임처럼 나뭇가지 장식이 생겼는데 그 줄기 수가 늘었다. 숫자 16이 새겨진 분재도 보였다. 16번째 세계수 가지도 내게 본격적으로 빨대, 아니 링거 바늘을 꽂았구나 싶었다.

화면을 슬라이드해서 난쟁이들의 강화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페이지를 열었다. 난쟁이들은 바뀐 페이지까지 쪼르르 쫓아오며 내가 보고 있는 강화 정보 창에서 조잘거렸다.

[주인님! 잘하고 계세요!]

[주인님! 드디어 다이아가 적절하게 빠져나가고 있어요! 이제 더 보람차게 일할 수 있어요!]

[주인님!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더 많이 가져가 주세요!]

[주인님! 일꾼이 더 필요하세요? 다이아가 더 많이 필요하세요?]

내 28번째 테라리움에 다이아 분수를 터뜨린 날 난쟁이 고용 수가 MAX+1Lv로 한계 돌파가 되어 있었지.

솔직히 그때와 마찬가지로 가진 다이아의 반도 다 못 썼는데 생산 능력이 향상되면 난쟁이들의 등쌀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하지만 감히 다이아로 승부 보려는 파필리온에게 이 쪼렙이 유일하게 강짜를 부릴 수 있는 기회였다. 재수 없는 콧대를 납작 눌러 주고 싶었다.

“엄청 많이 필요해. 지금까지 가져갔던 것 중에서 제일 많이.”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하고…. 내 말에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뾰족한 두 귀를 두 손으로 받치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시 한번만 더 말해 달라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이 동그랗고 귀여운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았다. 대체 이 말의 어디가 그렇게 감동적이길래?

[주인님! 저흰 감격했어요!]

[주인님! 드디어 다이아를 많이 가져갈 줄 알게 되셔서 기뻐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이 걸음마만 떼어도 낫과 곡괭이를 들고 다이아를 캘 거예요!]

[주인님! 많은 다이아를 캐기 위한 효율적인 작업에 대한 연구가 완성되었어요!]

그 순간 난쟁이들의 강화 옵션 탭에서 두 개의 탭 테두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난쟁이들의 행동 속도와 작업당 획득 다이아 수량의 레벨이 역시나 MAX를 뚫고 +1Lv이 되어 있었다. 이미 한계까지 찍어 둔 난쟁이들의 강화 옵션이 두 개나 한계 돌파를 한 것이었다.

세계수의 가지가 축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미친 듯이 다이아의 수량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난쟁이들은 내가 다이아를 요구하는 원인이 16번째 세계수 가지의 분재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듯 높아진 행동 속도를 이용해 분재에 다이아를 퍼 나르는 속도도 배가 되었다.

나 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높아진 작업량에 불만을 표할 법도 한데, 난쟁이들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에 겨워 보였다.

<무한 다이아> 화면 속은 마치 광란의 축제 현장이라도 된 것 같았다. 일하는 난쟁이들의 모습에 일종의 광기가 보일 지경이었다.

이따금 내 눈치를 보며 호시탐탐 다이아 호스를 릴리즈할 기회만 노리던 난쟁이들에게 지금은 마치 얽매였던 구속구를 훌훌 벗어 던진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물 만난 물고기란 표현이 이에 제격이었다.

[주인님이 다이아를 원하신다!]

[주인님이 다이아를 더욱더 많이 원하신다!]

축제와 전쟁, 광기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그 중간 경계에서 16번째 세계수의 가지가 담겨 있는 분재 화분이 내리누르는 다이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와장창 박살 나는 것이 보였다.

어…?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저거 부서질 수 있는 거였어?

분재에서 튀어나온 나무뿌리는 <무한 다이아>의 지반을 파고들었다. 뒤이어 28번째 세계수의 가지가 담겨 있는 분재 화분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박살이 났다.

이미 분수대를 조경해 둘 만큼 난쟁이들이 문화재 보존하듯 알뜰살뜰하게 챙겨 주고 있었기에 허망하게 박살 날 수준의 화분은 아니었다.

마치 가지 분재 스스로 화분을 깨뜨린 것처럼 보였다. 두 개의 나무뿌리가 합세하여 지반을 뚫고 내려가자 그 아래 위치한 지하 다이아 금고까지 금방 도달했다. 난쟁이들은 손뼉 치며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나무뿌리들은 더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지하 수맥을 찾아내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다이아 금고를 향해 뿌리를 처박았다.

화면을 몇 번은 내려야 끝이 겨우 보이는 다이아 금고의 구석구석까지 뿌리가 내려지며, 마치 양분을 축내는 기생충처럼 그동안 모아둔 다이아를 다이렉트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고에서 빼내거나 막 캔 다이아를 주긴 했어도 사료 통 습격한 고양이처럼 통 뚜껑 뚫어 버리고 퍼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계수 가지의 돌발 행동에 고착화된 지분율 기 싸움에 승패가 확연히 갈렸다. 이젠 내가 파필리온의 지분을 넘어섰다.

오라도 나의 것이 좀 더 녹빛에 가까운 색이 된 반면, 그는 갈수록 색이 연해졌다. 그때쯤 내 길드원들이 서로 기묘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뭘 하려는 걸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시들링은 테라리움 아티팩트가 자리한 손을 들어 까딱였다. 아티팩트 환경을 불러와 영역 선포를 하려는 건가? 하지만 파필리온의 아티팩트 영향권이라 불가했었는데. 혹시 내가 지분율을 전부 잡아먹으며 제한이 풀린 건가?

“제이 님은 저 사람이 능력을 쓰는 걸 본 적 있으세요?”

“어떤 능력이요?”

이리스가 여차하면 자신이 나설 모양인지 똑같이 아티팩트가 자리한 손을 들며 내게 다가왔다.

지분율을 완전히 역전해 버린 나 때문에 파필리온은 아주 큰 충격을 받고 패닉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주인이 그러하니 드루이드의 영향을 받아 드라이어드들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듣기론 저 사람 특기가 원래 다중 영역 선포예요. 보통은 한 번에 하나의 아티팩트 환경을 불러오는 것도 벅찬데 여러 개의 아티팩트 환경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해요…. 대체 저 사람은 영혼의 한계 크기가 어느 정도인 걸까요?”

다중 영역 선포라…. 그러고 보니 시들링은 불 마차 보스전 때도 두 개의 필드를 중첩해서 깔았던 것이 기억났다.

푸른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리는 노멀 필드와 높다란 바위들이 솟아오른 스톤 필드였던 걸로 기억한다. 엘더가 내게 처음으로 영역 선포에 대해 설명해 주며 놀라워했지. 한 번에 둘이나 중첩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시들링의 손짓에 아티팩트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투명한 반구의 막이 아티팩트에서부터 점점 커지더니 우리가 있는 동산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잘 선택해야 하는데. 영역 선포는 양날의 검이잖아요? 우리에게 유리한 필드가 반드시 저쪽에 불리하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더구나 저렇게 다양한 종의 드라이어드들이라면 어떤 필드라도 얻어걸릴 것 같은데.”

이리스가 불안한 눈으로 시들링을 보며 말했다.

“시들링! 벨라돈나가 나서야 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갑자기 칼미아 드라이어드가 시들링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땅이 크게 울리며 하얗게 병 걸려 있던 풀들이 땅속으로 모두 숨었다. 가뭄이 온 것처럼 메마른 회색빛 토양이 떠올랐으며 거칠고 높다란 바위들이 솟아올랐다.

눈치껏 어닝이 멀리 달음박질침과 동시에 짙은 포도주색의 꽃잎들이 휘날리며 시들링 부케의 메인 꽃이 나타났다.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창과 같이 위협적인 스태프를 휘둘러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내가 파필리온과 지분율 다툼을 하는 동안 이미 끔찍한 열기는 도착했던 것이다.

“와 숨 막혀. 대체 이 열기는 뭐야?”

제퍼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벨라돈나의 공격이 쏟아진 곳엔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이 있었다.

필드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불 몬스터와는 달랐다. 기어 다니는 용암 슬라임 덩어리처럼 붉게 타오르던 불 몬스터와 달리 저것은 은빛에 가까운 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노란빛 사이키 조명을 쏘는 것같이 화려하고 찬란한 빛의 불이었다. 그 중앙에 엄청난 장신의 사내가 있었다.

“저게 사람이 내는 불이라고? 그때 봤던 인간들이랑 같은 종류인 건가 싶은디?”

헤르마가 신중하게 새로 등장한 인물을 살피며, 이리스의 지시를 기다리듯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섣불리 누구 하나 나설 수 없을 만큼, 아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그자가 왜 걸어 다니는 화마라고 불리는지, 왜 그를 아는 자들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이 까맣게 탄 재로 변했다. 찬란하게 밝게 빛나는 불과 대조적으로 그가 걸어온 길은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은 기운만 감돌았다.

드디어 인페르노의 수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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