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604)

편지 두 장을 곱게 접고 그 위에 메스키트의 꽃을 올려 두었다. 꽃들은 작은 움직임에도 꽃잎이 고양이 털처럼 툭툭 빠졌다.

아이고 아까워라. 꽃잎은 잘 떨어져도 금세 종이에 은은한 스모크 향을 묻히는, 자기 주장이 참 강한 꽃이었다.

“이걸 그 사람에게 전해 줘요. 꽃을 잘 보이는 곳에 장식하고 꽃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전해 주면 돼요.”

난 윈터의 가운에 있는 가슴 포켓을 가리켰다. 저런 곳에 꽂아 두면 단순 장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꽃은 정확하게 벨벳 메스키트라는 꽃이니까 이름을 틀리면 안 돼요. 또한 길드 이름에 대해서도 물어보라고 해 주세요. 길드 이름은 ‘가이아’인데 길드원들 말곤 아는 사람이 없어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분들이 연금탑 뒤쪽의 동산에 동행하길 원한다면 그것도 도와 달라고 전해 주세요.”

당부의 말과 함께 윈터의 월렛으로 그 비밀 수행원에게 전달할 선수금 다이아도 전해 주었다. 어닝과의 볼일이 끝난 윈터는 편지와 꽃을 조심히 주머니에 숨기고 연구실을 떠났다.

윈터의 말에 따르면 비밀 수행원은 의뢰에 완수했을 경우 받을 많은 양의 다이아를 위해서라도 아주 열심히 테라리움 내를 돌아다니는 듯했다. 조언대로 가슴팍에 메스키트 꽃을 꽂고 최대한 의심 사지 않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길드원들과의 접촉을 기다렸다고 한다.

연금술사나 연구원들이 연금탑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니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는 것은 흔했다. 특히 비밀 수행원은 빚을 갚기 위해 이곳저곳에 손을 벌리고 있었기에 스케줄을 빡빡하게 채우며 내 발을 대신해 주었다.

다만 그의 노력과는 별개로 길드원들과의 접촉이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수맥이 검은 나뭇가지의 열기를 받아 테라리움을 뜨겁게 달구는 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부디 빨리 만나야 할 텐데.

엘더가 이야기해 준 바론 멸망에 따른 징조가 순서대로 일어났다고 했지만, 난 굳이 순서를 지킬 마음은 없었다.

이 정도로 대규모로 일어나는 사건은 순서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사람들이 징조를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의심하고 그 전부터 일어났다고 착각을 하면 됐다.

벌써 이틀을 오직 생수와 비상식량만으로 버텼다. 인벤토리에 대량 사재기해 둔 것으로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몰라 불편하게 잠을 자고 혹시라도 계획이 실패하면 어쩌나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난 온전히 연금탑 안에 몸을 숨긴 채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밖에 있을 내 인맥들이 잘 수행해 주기만을 기도해야만 했다. CCTV로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파피루스가 간신히 제 주인의 아티팩트로 돌아갔을 만큼 이 연금탑의 층고는 꽤 높아서 벌을 이용한 채팅 로그 훔쳐보기도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닝에게 점검을 받으러 온 윈터가 마스크를 하고 나타났다. 평소에도 두꺼운 옷을 칭칭 둘러 입고 있던 그였는데 커다란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영락없는 독감 환자로 보였다.

그전에도 숨을 헐떡이며 무척 힘들게 말했던 그는 이젠 단어만 주고받는 수준에 가까운 의사소통을 했다. 걷는 모습 역시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했다.

그가 답답했는지 얼핏 마스크를 내렸는데 방 안은 보통의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담배 연기 같은 하얀 입김이 나왔다. 기겁한 나와 달리 어닝은 두 눈을 살포시 접어 웃으며 말했다.

“정말… 연금탑의 지원을 아낌없이 사용한 건지, 머리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똑똑한 건지…. 진행도가 훌륭하구나.”

“어닝 님… 덕분….”

“당신, 내게 다이아를 좀 줘. 쭉 지켜보니까 행정 관리원치고도 다이아가 꽤 많은 것 같은데.”

어닝이 별안간 날 부르며 말했다.

“다이아는 왜?”

“세계수의 가지에 감염 확률을 높일 방법을 나도 나름대로 구상해 보았단다. 일이 잘 해결되어야 내 금은화도 구하고 우리도 빨리 몸을 빼지 않겠니? 그래서 나비 새끼가 쓰는 방법을 나라고 못 쓸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 이상한 기운을 입힌 다이아를 세계수의 가지에게 먹여서 숯으로 만든다고 했지? 그렇다면 같은 방법으로 녀석들이 제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도록….”

그녀는 내가 군말 없이 많은 양의 다이아를 넘기는 걸 보더니 윈터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곤 그의 손에 씌워진 장갑을 벗겨 냈다. 그리고 다이아 세 개를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다이아를 움켜쥐어 보렴.”

어닝의 말에 윈터는 다이아를 꾹 쥐었다. 다이아들이 그의 손에서 달그락거리는 청아한 소리를 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이 정도론 반응이 없네. 역시 피가 필요한가 본데.”

“내 앞에서 진짜로 손에 칼을 대거나 그러지 마.”

전에 어닝이 손목을 잘라 낸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절로 어깨에 소름이 끼쳤다.

“후후, 다이아에 단순하게 이 남자의 피를 묻힌다고 해결될 것 같니? 기운을 입히는 것 역시 연금술이 필요하단다.”

어닝은 윈터에게 다음에 올 땐 몇 가지 준비물을 함께 들고 오라며 종이를 건넸다.

“다만 이 작업은 드루이드가 아닌 당신은 할 수 없어. 다이아는 본래 드루이드의 영혼에 세계수에서 증발한 수액이 맺혀서 만들어지는 것. 드루이드인 연금술사가 해야 할 작업이지.”

3일째가 되는 날, 윈터는 어닝이 부탁한 준비물을 작은 가방에 담아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비밀 수행원이 내 길드원과 접촉했다는 희소식을 들고 왔다.

인상착의로 보아 그에게 처음 접촉한 사람은 시들링이 분명했다. 듣자 하니 꽃을 보고 알아본 것이 아니라 짐승 같은 감각으로 메스키트 꽃향기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대화 능력이 영 딸리는 시들링은 내가 그자로 인해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해 다짜고짜 비밀 수행원을 위협했고 이리스가 눈치 빠르게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이걸 전해 달라고….”

윈터는 비밀 수행원이 길드원들과 함께 동산까지 다녀오며 의뢰를 끝냈고 시들링이 내게 전하는 쪽지를 받아 왔다며 건넸다.

때를 맞출 수 있도록 항상 연금탑을 주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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