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604)

“그리고 사실 드루이드님이 찾으시는 종자 보관소는… 꼭대기 층에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윈터는 턱을 문지르며 느릿하게 말했다.

“연금탑은 해마다 위로 증축되고 있습니다. 잘 관리되어야 하는 종자 보관소를… 그때마다 옮길 순 없을 겁니다. 아마 생각보다 좀 더…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층의 정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제 권한이 허락하는 층까진 안내해 드릴 순 있습니다. 그 이후로부턴… 드루이드님의 몫이지만.”

“오…!”

“하지만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이 좀 더 안전할 건데… 정말 굳이 밖으로 나가시려는 건가요?”

“여기도 당장은 안전하지만, 곧 들킬 위험이 있다면서요? 가만히 있다가 잡히는 것보다 뭐라도 해 보고 잡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닝이 종자 보관소 근처가 이 연금탑에서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것들이 보관된 곳이라고 했으니까. 즉 수틀리면 다 때려 부순다며 협박용으로 쓸 수 있잖아?

“난 안 가.”

어닝이 다친 제 드라이어드를 돌보며 냉정히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높이 올라왔다고 생각해. 연금탑으로 피신하는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어. 난 내가 있는 건물 통째로 불에 타 죽을 것을 걱정했는데 그건 피했으니까.”

“건물을 통째로 태운다고? 그게 가능해?”

“내가 말했잖아. 이곳으로 오고 있는 건 화마 그 자체라고. 가려면 당신 혼자 가. 겸사겸사 내 금은화를 되찾아 올 방법도 알아 오면 좋고.”

그녀의 지식은 유용하나 이전 전투에서 내게 협업하지 않았던 모습들을 보면 앞으로도 크게 도움이 될 거란 보장도 없었다. 굳이 그녀와 함께 갈 이유가 없긴 했다.

어닝은 내 뒤에 굳건히 시립해 있는 메스키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곳에 남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지만 또 다른 이유론 제 드라이어드를 상처 입힌 메스키트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닝을 빈 연구실에 내버려 두고 윈터와 함께 복도로 나왔다. 내부를 알고 있는 윈터와 함께여서 어닝과 헤맬 때보다 경로 선택이 더욱 안전했다.

층을 두세 개 더 오르고 나자 윈터가 멈췄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권한이라며.

“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더 도와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혹시 더 도움이 필요하신 것이 있으세요?”

“아니에요! 그나마 얼마 안 남은 명 더 재촉하게 할 순 없잖아요.”

내 말에 윈터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는 이참에 어닝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물어보겠다며 그녀가 있을 빈 연구실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제부턴 정말 나와 내 드라이어드뿐이었다. 윈터는 이 층부터 자신의 권한 밖이라고 하였으나 아래층들과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숲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빈 연구실을 들어갔던 것처럼 문이 위장되어 있다면 어떡하지? 하나하나 다 만져 보면서 갈 수도 없고.

그때 바곳이 안절부절못하며 내 어깨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고개를 숙이고 꾸물거리던 아이는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제이 님…. 저곳에서 누군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바곳이 가리키는 곳엔 끝없는 복도만 존재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갑자기 소름 돋게 왜 그러니?

“제이, 바곳 아이의 말을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어쩌면 전의 데이지와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답니다.”

“데이지와 같은 것?”

메스키트의 말에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보다 눈높이가 좀 더 높아진 그녀는 자신이 언급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데이지가 처음으로 동족을 찾아냈을 때를 기억하나요?”

“동족이라면 데이지2? 28번째 테라리움에서 데이지가 갑자기 감이라면서 잔해 더미 밑을 살피긴 했는데…. 설마?”

내비게이션도 없는 마당에 마침 잘됐다. 내가 찾는 건 바곳의 정보. 동족의 기운을 느끼는 곳에 그 정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잠깐 동족이라고? 그럼 설마 바곳 드라이어드가 하나 더 있는 건 아니겠지?

바곳이 이끄는 방향으로 향하자 평범한 숲길 같았던 복도가 가까이 다가가자 변화하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연보라색 꽃들이 주렁주렁 포도처럼 열려 빼곡히 드리워지고 오렌지빛의 조명이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잔디밭의 바닥에 돌다리가 생겨났고 단순히 덩굴로 뒤덮인 벽엔 색색깔의 꽃망울이 터져 나왔다. 마술 같은 장면들이었다.

“와… 갑자기 변했어. 아름답다….”

상황을 잊을 만큼 황홀한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동화 속 요정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진입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복도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정말 여기가 맞아? 바곳은 자신이 이끄는 대로 갔으나 목적지가 막힌 벽이라 무척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여기도 위장된 문일까? 그러나 손을 대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윈터처럼 권한이 있는 연구원이 필요한 건가?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하지?

바곳이 홀린 것처럼 날 따라 벽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변화가 생겼다.

보호 대상종 확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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