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604)

“당신 미쳤어? 그 어닝이 만든 연금술 절대 수칙도 어겨 놓고 뻔뻔하게 어닝을 만나려고 해? 이 새끼 완전 미친놈이에요! 이곳에 데려오면 안 됐어요! 당장 내쫓아 버려요!”

루프가 윈터를 삿대질하며 하이톤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 대체 왜 몸에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루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에게 물었다. 동족을 감염시키는 말벌을 만드는 필라나 좀비 기생충을 만들어 내는 루프를 보면 연금술사들은 진짜 알 수 없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는데, 듣고 보니 윈터는 더했다. 연구를 한다고 자신의 몸에 병해충을 감염시키는 사람이라니.

“…‘백목마름병해충’은 목질화를 가속시켜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병해충입니다. 줄기뿐만 아니라… 잎도 꽃도 열매도 모두 하얗게 목질화를 시켜 햇빛의 흡수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전염성도 높아서… 한곳에서 병이 발생하면 그 일대가 모두 눈이 덮인 것처럼 하얗게 변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이미 백신 역할을 하는 영양제가 개발되어서 지금은 예전만큼 위협적이지 않긴 해요. 아주 옛날엔 엄청 넓은 지역의 식물들이 백목마름병해충에 당해서 일대가 스노우 필드처럼 보인 적도 있다고 했어요. 그래도 영양제가 모든 테라리움에 보급되어서 완전히 박멸시켰다고 했는데….”

루프는 그를 인간적으로 혐오하는 것과 동시에 내면에서 샘솟는 지식욕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눈으론 그를 경멸하듯 바라보지만 귀는 완전히 열고 있었다.

“저는 드루이드가 아닌 평범한 인간도… 드라이어드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자신의 일부가 식물이 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성공한다면 엄청 획기적인 아이디어이긴 한데, 그건 이미 온갖 저명한 연금술사들이 시도했던 것들이야. 하지만 자신을 식물화를 시키다니.”

루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의 말을 듣고 아주 깊은 생각에 빠진 걸로 보였다.

“전…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오직 한 그루의 드라이어드에게 묻고… 듣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체 그게 뭔데요?”

“그건… 그 드라이어드에게 가게 된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우!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음 화에서 계속’을 본 기분이다. 궁금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아!

“후후,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메스키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말이 맞다. 길을 막고 있다는 정체불명의 나뭇가지도, 윈터가 만나려고 하는 드라이어드도, 그 드라이어드를 만나야만 하는 이유도 전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다만 난 아무리 궁금해도 현재 혼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단 걸 안다. 하필 장소도 내 최종 목적지인 연금탑의 뒷동산이라니.

“거기 꼭 연구원과 동행 한 명밖에 안 돼요? 무조건 한 명이에요? 잘 생각해 봐요. 어떻게 한 명이라도 더 못 데려가요?”

내 추궁에 윈터는 강박적으로 손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높은 등급의 가드너라면…. 테라리움이 증명하는 신분이라 테라리움 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까…. 한 4급쯤…. 하지만 4급은 외부인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신분이라 조건에 맞는 드루이드를 찾기 힘들 텐데요….”

나도 4급 가드너인데. 비록 26번째 테라리움의 4급 가드너지만. 이 등급은 내가 행정 관리원 노인이 준 최고 어려운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서야 겨우 받은 것이었다. 28번째 테라리움의 진실을 조사하는 퀘스트.

“4급 가드너면 차라리 과수원 직원을 다이아로 매수하는 것이 빠르겠어요. 테라리움 내에서 그 정도로 높은 신임을 받는 드루이드를 어떻게 찾겠어요?”

이리스가 윈터의 말에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층의 옆방에서 묵고 있는 놈이 불현듯 떠올랐다. 16번째 테라리움의 의뢰를 전문적으로 수행해 왔다고 했지? 시들링이라면 혹시…?

“잠시만 기다려 봐요. 왠지 4급 가드너일 법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어서.”

내 방을 나와 복도 끝에 있는 방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해 노크를 했다.

“시들링, 나야. 물어볼 게 있어.”

곧장 문이 열렸다. 동시에 더운 수증기의 기운이 훅 몰려왔다.

“어… 씻고 있었어…?”

훌렁 벗은 상체를 가운 한 장으로 가린 시들링이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날 반겼다. 미친, 눈 둘 곳을 모르겠다.

“무슨 일이지?”

어째 묘하게 목소리가 더 가라앉은 느낌이다. 애써 시들링의 활짝 오픈 된 가운에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너 16번째 테라리움에서 가드너 등급 받았어?”

“받았다.”

“몇 급인데? 4급이면 좋겠는데.”

“4급이다.”

“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가 너른 가슴팍이 안녕, 하고 인사를 해 오니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놈은 왜 환한 대낮부터 이런 차림으로 이 지랄이야.

“아, 드루이드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 드루이드님의 각시투구꽃 드라이어드의 교육을 위해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시들링의 등 뒤로 벨라돈나가 다가와 말했다.

“네네, 다 좋은데 쟤 옷 좀 입혀요. 시들링, 이따 좀 보자.”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니 등 뒤로 “드루이드님이 뭐래? 생각이 바뀌었으니 여관에서 나가래?” 하고 묻는 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시들링이 내 방에 도착했다.

시들링의 드라이어드들이 신신당부하던 악명은 루머가 아니었는지… 이리스의 파티는 시들링을 보자마자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더구나 갑옷을 차려 입고 나타난 시들링에 다들 경계 자세가 되어 날 지키려고 했다. 그들은 철석같이 시들링이 내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믿었다.

“저자를 상대로 곱게 이길 승산은 없어요. 마스터라도 도망가세요! 온 힘을 다해 막겠습니다!”

소파에 퍼질러 누워 있던 제퍼가 다급하게 활을 꺼내 들며 그에게 겨누고 칼미아 드라이어드의 총구가 제퍼를 맞겨눴을 땐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길드 내 위계는 가입 순서대로라고 했지? 여기 드루이드들이 너보다 먼저 가입했으니까 네 위다.”

내가 애써 너스레를 떨며 자연스럽게 시들링도 가이아 길드원임을 소개했지만 이리스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제이 님, 저 남자가 누군진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 악명 높은 아이언비스트라고요! 많은 테라리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남자인데 절대 정상일 리가 없어요. 그가 제이 님을 속인 건가요?”

“와… 수배서로만 보던 투기장의 괴물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디….”

“뭐야, 너 수배서도 있어? 뭔 짓을 했길래 수배서가 걸려?”

수배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놀랐다. 칼미아가 시들링을 변호하며 내게 말했다.

“드루이드님, 시들링은 죄가 없어요. 그 길드가 오해한 거예요. 시들링이 판단하기에 그들의 능력에 벅찬 일이니 피해가 커지기 전 대신 나서서 처리해 준 것뿐이에요. 해명하려고 해도 그들이 시들링만 보면 공격을 하려 들어서….”

대체 그 일이 뭔데? 너 혹시 불 마차 보스전 때 내게 굴었던 것처럼 행동했니? 뭘 어떻게 그 길드를 열받게 했길래 수배서까지 걸게 해? 얘 상상 이상의 트러블 메이커였네.

“무려 5번째 테라리움에 스톤헨지를 두는 대형 길드가 내린 수배서에요. 앞 번대는 물론 50번 이상의 뒤 번대 테라리움까지 수배서가 쫙 깔렸다고요. 그를 아군으로 두면 대형 길드와 척을 지게 될 거예요.”

문제는 칼미아의 말처럼 시들링이 범죄를 저질렀다기보단 정말로 악의 없는 행동을 사회성 빵점의 언어 구사로 했을 것이 분명하단 것이었다. 얘를 직접 겪은 내가 장담할 수 있었다.

이리스의 파티에게 시들링이 길드에 가입하게 된 경위를 열심히 설명했다. 시들링과 있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놓고 나자 시들링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위험인물을 보는 눈에서… 좀 모자란 놈을 보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퍼는 특히나 충격이 커 보였다. “그 아이언비스트가 단순 사회성 결여 인간이었다니….” 하며 겨누고 있던 활을 맥없이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결정타로….

“와, 시들링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대화한 건 처음이에요!”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하는 칼미아 때문에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가 확 깨져 버렸다.

“설마 3번째 테라리움의 사설 투기장을 제패한 위명도 거짓은 아니겠죠?”

“어, 거짓말 아니에요. 시들링은 정말 투기장에서 5번 연속 우승했어요. 그 후로 출전 금지 처분이 떨어져서 참가할 순 없었지만.”

그 말에 이리스의 파티는 한데 모여 저들끼리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무언가 결론이 났는지 이리스가 대표로 내게 물었다.

“저 아이언비스트는 드루이드로서 길드에 큰 전력이 될 수 있긴 해요. 하지만 제이 님, 잘 판단해 주세요. 이미 대형 길드는 물론 많은 테라리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남자에요. 정말 길드원으로 남겨 두실 건가요?”

“그래도 내 길드원인뎅….”

악명은 높아도 능력이 되니까 파필리온 말론 한 자릿수 테라리움에서 데려가려고 난리라며? 걔네들도 난린데 28번째 테라리움이라고 못할 건 뭐야.

나도 잠깐은 쟤를 써먹다 길드 탈퇴를 시키려 했지만 예상외로 내게 너무 좋은 패였다.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막상 길드원이 되고 나니까 쟤도 어쨌든 내 새끼란 말이지.

“그래도 나름대로 규율은 걸어 놨어요. 길드원은 길드 마스터의 말에 절대 복종. 그리고 길드 내 위계는 길드 가입 순서로 따진다고. 쟨 이렇게 통제해야 할 거 같아서”

내 말에 제퍼가 차례차례 이리스, 헤르마, 노토스를 눈짓하며 손가락을 접었다.

“그럼 이리스가 여기서 길드 마스터 다음 서열이라고요? 심지어 난 두 번째잖아! 그때 월렛을 좀만 더 빨리 확인했더라면!”

아까워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제퍼가 울부짖었다.

“오호…. 그래요?”

내 말을 듣고 이리스는 시들링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제퍼를 발로 까기 전의 표정을 보는 것 같았다.

“제이 님의 결정이라면 따르겠어요. 듣고 보니 여기서 대형 길드를 두려워하며 아이언비스트를 내쫓으면, 우리 가이아 길드가 그 길드보다 못한다는 걸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우린 무려 테라리움 전속 길드인데. 그 대형 길드보다 더 커 나가면 되는 거죠.”

이리스가 보란듯이 팔짱을 끼며 시들링을 내려다보았다. 키는 그녀가 훨씬 작은데 분명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주 거만하게 고개를 틀자 볼에 붙어 있던 비 갠 후의 하늘 같은 머리칼이 주르르 어깨로 떨어져 내렸다. 쪽빛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

“우리 길드 마스터님을 아주 잘 지켜라, 후배야.”

“그럴 것이다.”

“야, 너 진짜 겁도 없다. 바로 그렇게 부르다니.”

제퍼가 이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왜? 길드 마스터님이 친히 정해 주신 규율인데 복종해야지?”

넌 내 아래, 이리스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콧방귀를 꼈다. 다소 거칠었던 길드원 소개 시간이 끝나 갈 동안 드루이드가 아닌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던 루프와 윈터는 정말 겁에 질린 햄스터처럼 잔뜩 웅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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