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604)

“뭐, 네가 ‘아이언비스트’라서 그래?”

말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아니 진짜 아이언비스트가 뭐냐? 하긴 소설이나 게임이나 유명한 사람들은 타이틀이 붙지.

시들링이 엄청 유명인인 건 파필리온의 반응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칭호 어떻게 딸 수 있어? 나도 딸 수 있나? 테라리움 어드벤처도 다른 게임에서 흔하게 있는 칭호 시스템이 있을 법한데? 아이언비스트란 칭호에 혹시 스탯도 붙니?

“앗!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왜 하필 아이언비스트야? 아, 이건 드라이어드들이 말해 줘도 돼.”

“아… 아이언은 시들링이 항상 입고 다니는 갑옷 때문에 그렇고 비스트는….”

칼미아가 머뭇거렸다.

“3번째 테라리움의 사설 투기장에서 시들링이 계속 우승한 후로 그렇게 불리고 있어요.”

“오… 투기장? 드라이어드들끼리 싸우는 곳이 아녔어?”

“드루이드도 참여할 수 있어요. 목숨이 위험할 수 있어서 다들 꺼리는 편이긴 하지만….”

“와 대단하네. 우승이라니.”

“그… 그렇죠? 시들링 대단하죠? 사실 투기장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줄 거란 기대로 참여한 건데, 오히려 우승 후 더욱 시들링을 꺼려 해서….”

게임으로 치면 경기장 1위 아냐? 경기장은 전투력발인데 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나도 내 드라이어드들과 참여하면 몇 위나 할까? 나도 1위 해서 칭호 생겼으면 좋겠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대답해 줘. 16번째 테라리움 행정 관리원이랑 친해? 아니 긴밀한 관계야? 여기서 나와 한 이야기들 그가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할 거야?”

그가 말없이 날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쟤도 파필리온처럼 푸른 눈이었네. 파필리온의 눈은 아침이 열리는 새벽의 청명한 푸른 하늘 같다면, 시들링의 눈은 어두운 밤하늘처럼 짙어서 밝은 곳에서 보지 않으면 남색에 가까웠다.

“아니, 그러지 않겠다.”

애매한데. 그래서 긴밀하단 거야, 아니란 거야? 그렇지만 쟤가 저렇게 말하니 정말 말하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럼. 저번에 나랑 만났을 때 16번째 테라리움에서 의뢰를 받아 수행 중이라고 했잖아. 그 의뢰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아주 샅샅이.”

“드루이드님, 그건 아무리 드루이드님의 요청이라도 그럴 수 없어요. 여기 테라리움에서 비밀리에 자세한 사항에 대한 발설 금지 조항과 함께 시들링에게 맡긴 의뢰라 이걸 어기면 시들링의 신뢰도가 떨어져요. 시들링을 받아 주는 테라리움은 많지 않아요. 여기마저 등을 돌리면….”

칼미아가 당황한 얼굴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아니 시들링도 입이 있는데 왜 자꾸 나서는 거야. 저번에 말했듯이 너무 감싸고돌면 악영향인데.

“듣기론 한 자릿수 테라리움들에서 널 데려가려고 난리라며?”

“네? 그럴 리 없어요. 시들링을 원하는 테라리움은 없어요. 얘가 추방당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의 드라이어드들이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파필리온은 시들링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고 말했다. 한 자릿수 테라리움에 시들링을 빼앗길까 봐.

“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랑 다르지. 너 사실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사람들이 널 피하는 게 아니라 알고 보니 인기가 대단한데 너만 모른다거나.”

시들링은 계속 날 응시하다가 내가 탁자를 습관처럼 톡톡 두드리자 그도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쟤 지금 나 따라 하는 거 맞지? 시험 삼아 슬쩍 손목을 잡고 돌리니 그도 따라서 손목을 돌렸다. 왜 저래?

“그래서 말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럼 더 이상의 용건은 없는데.”

“아….”

시들링의 드라이어드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정말이었다. 의뢰 내용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시들링은 필요 없었다. 밥도 먹여 놨는데 얻은 게 없네. 아, 칭호에 대해 조금 알았다고 해 둘까.

“의뢰에 대해 말해 주겠다.”

“앗, 시들링…! 벨라돈나가 필요해. 그녀가 없으니 너무 막 나가잖아.”

“그렇다고 이곳에 그녀를 부를 순 없어. 드루이드님이 위험하시잖아.”

그의 드라이어드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주인은 말하겠다고 마음먹었잖아? 말해 주겠다는 시들링의 입장에 찬성이기에 반대표를 내세우며 들고 일어나려는 드라이어드들이 아니꼽게 보였다.

우리 애들도 날 과보호하긴 해도 내 결정을 막아서며 반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결정에 걱정은 해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편이다.

그것은 내 드라이어드들이 나는 보호받아야 될 존재는 맞아도 일일이 떠먹여 줘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란 걸 아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들링, 잠시 아티팩트를 통해 벨라돈나와 이야기라도 해 봐.”

“네가 저 드루이드님과 더 오래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 있어. 벨라돈나는 늘 그렇듯 너에게 옳은 답을 줄 거야.”

시들링의 드라이어드들은 벨라돈나에 대한 믿음이 아주 대단해 보였다.

“너 스스로 결정했으면 좋겠는데. 아, 뭐 벨라돈나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상관없어. 그렇지만 네가 드라이어드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계속 흔들린다면… 너랑 대화하는 건 언제까지고 재미없을 거야.”

“그녀의 도움은 필요 없다.”

시들링의 말에 그의 드라이어드들이 모두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마치 이제부터 독립하겠다는 자식을 보는 부모처럼.

26번째 테라리움에서 내가 충고를 하긴 했는데 전혀 고쳐지진 않았구나. 하긴 시들링이 아기였을 때부터 키운 메인 드라이어드의 사고방식이 굳어져 버렸다고 하니…. 내가 충고 한마디 한다고 쉽게 고쳐질 리는 없었다.

“대신, 아직 영혼이 미성숙한 네가 위험한 일에 뛰어들겠다는 모습이 보이니 내가 버팀목으로서 곁에서 보호하겠다. 내 보호를 거절한다면 의뢰 내용 역시 말해 주지 않겠다.”

“누가 누굴 보호해?”

“내가, 너를.”

“난 성인이야, 드라이어드 묘목 같은 게 아니라고. 내가 작아서? 쪼렙, 아니 영혼의 한계가 작아서? 누가 버스 태워 달랬니? 너 말고도 내 드라이어드들로 충분…!”

잠깐. 열에 뻗쳐서 소리를 지르다가 멈췄다. 칼롱이 내게 보냈던 문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6번째 테라리움은 어쩌면 불을 숭배하는 조직과 우호 관계일 수도 있다. 그 정체 모를 조직은 나를 죽이기 위해 쫓고 있고. 전엔 고렙인 이리스의 파티가 날 지켜 줬지만 지금은 의뢰 때문에 곁에 없지.

테라리움 내부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테라리움 자체가 악의 소굴이라면 내가 위험한 것이 맞잖아?

조금 진정을 하고 시들링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절대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굳은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나의 높아진 언성에 시들링의 드라이어드들만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녀석 자체는 정말 짜증 나긴 해. 레벨 차이로 나를 하대한다고 느껴지니까. 보호를 허락하면 계속 귀찮게 굴겠지. 하지만 어쩌면 이리스의 파티보다 더욱 레벨이 높아 보이고 투기장에서 여러 번 우승한 경력도 있고.

인성 빼고 보면 드루이드로선 내가 정말 닮고 싶은 롤 모델이긴 해. 드라이어드들도 강하고 시들링 자신도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고.

그래프트 기술을 얻은 것도 시들링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었으니, 그가 곁에 있다면 고렙 드루이드의 스킬들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차분히 생각해 보니 시들링은 내게 유용한 ‘패’가 될 수 있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호하려고?”

나갈 준비 하라며 드라이어드들을 툭툭 치던 블루 멜로우가 자신이 든 수정구처럼 눈을 둥글게 떴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다른 드루이드가 가지치기를 시도하지 않도록, 널 합당한 구실로 보호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드라이어드들의 영혼의 연결처럼 너와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뭐… 뭐?”

쟤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겠지만 깊은 관계라고 하니까 미묘하게 들린다. 순간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다.

“주위에 함께 걷는 축복의 기운이 늘었군. 길드가 있는 것인가?”

“넌 길드 없어?”

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쟤 정도 되는 애가 길드도 없이 돌아다닌다고? 하다못해 파필리온이 이미 데려갔을 줄 알았는데.

“시들링은 사회성이 부족해서 인간들이 모인 작은 사회인 길드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요….”

내 길드는 이리스의 파티를 영입하며 초반부터 순조롭게 잘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저 인성 폭탄이 길드에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이리스의 파티들과도 좋지 않게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면?

그를 길드라는 제약으로 묶어 두는 것은 아주 좋은 수인데.

그것보다 시들링이 먼저 길드 얘기를 꺼낼 줄은 생각 못 했다. 깊은 관계라는 말에 엉큼한 생각이나 한 내가 부끄러워져 괜히 엘더를 바라보았다.

마음의 평화. 엘더는 틈틈이 내가 자신의 얼굴을 명화 감상하듯 바라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굴었다.

“길드 좋지. 우리 길드에 들어올래? 무려 28번째 테라리움의 전속 길드야. 내가 길드 마스터고.”

“네? 시들링을 그냥 길드 가입도 아니고 테라리움 전속 길드로 가입 제의해 주신다고요?”

칼미아가 손을 모아 쥐었다.

“대신! 우리 길드 규칙은 ‘길드 마스터의 말은 절대 법’이야. 무조건 지켜야 돼. 길드 마스터는 나니까 넌 내 말에 복종해야 돼. 그리고 길드 가입 순서로 위계가 정해져서 너보다 먼저 가입한 길드원들한테 조심히 대해야 해. 영혼의 크기를 다 제쳐 두고 무조건 가입 순서가 우선이야.”

방금 만들어진 규칙이긴 한데 뭐 어때. 내가 길만데?

“역시 인간들의 사회는 복잡합니다. 길드란 건 규칙이 명확한 곳이군요. 위계란 건 우리 드라이어드들 사이에서 통하는 등급과 같은 걸까요?”

“아니, 어쩌면 포레스트의 우성종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시들링, 이해할 수 있겠어?”

로즈우드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자 칼미아가 미간을 짚으며 대답했다.

“너를 합당한 구실로 보호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지키겠다. 다만 영혼의 한계가 작은 너의 길드니 많이 미숙하겠군. 너의 곁에 함께 걷는 축복의 기운들도 미숙한가?”

저게 진짜…. 쪼렙이 세운 길드라고 무시하니?

“그런 말투도 안 돼. 우리 길드에 이미 가입되어 있는 드루이드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야. 네가 날 무시하는 건 네 인성이 그러니 어떻게든 간신히 참아 주겠는데.”

나도 널 이용해 먹으려는 입장이니까.

“길드에 가입하는 순간 영혼의 한계라는 완장 떼고 모두 동등한 존재야. 오로지 길드 가입 순서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싫으면 말고!”

시들링은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답했다. 의심스러운데?

“계약서라도 써야 하나. 길드 마스터인 내 말에 절대 복종하겠다고.”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드루이드님의 말은 무조건 지킬 거예요. 다만 지킨다는 경계를 잘 모를 뿐이고…. 드루이드님은 시들링과 유일하게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해 주는 분이시니 얜 그 기회를 절대 놓치기 싫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시들링 신기록 세웠어, 그것도 한 공간에서! 오래! 하며 그의 드라이어드들이 다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길드 관리 화면에서 그에게 가입 제의를 보내자, 그 역시 이리스의 파티가 그랬던 것처럼 월렛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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