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돌아와 룸서비스를 시키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파필리온이라는 16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이 미친놈처럼 몰아붙이니 도통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방엔 야외를 내다볼 수 있는 테라스도 있었다. 그곳에 마련된 유리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대충 시선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16번째 테라리움은 28번째 테라리움과 아주 연관이 깊은 곳이었다. 세계수의 가지를 정체 모를 벌레가 좀먹자 도움을 요청한 곳이며 맹독초인 바곳을 실은 마차를 보내 준 곳이기도 했다.
다른 테라리움들에 비해 28번째 테라리움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최근 28번째 테라리움의 사정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 전 행정 관리원인 스케어크로우의 죽음으로 내가 행정 관리원을 위임받은 것이나.
세계수의 가지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여 테라리움을 망하게 만든 위험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니, 나와 테라리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28번째 테라리움의 속사정은 최대한 남들에게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16번째 테라리움은 28번째 테라리움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임과 동시에 연금탑에서 세계수에 위반하는 인공 개량을 진행 중인 곳이기도 했다. 파필리온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가 내게 접근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애초에 스케어크로우는 왜 똑같이 연금탑이 있는 18번째가 아닌 16번째에 도움을 요청한 걸까? 거리상으론 18번째가 더 가까울 텐데. 그녀는 파필리온을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걸까?
“정보가 필요해….”
문득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내 드라이어드들이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음식들도 왔었네. 언제 왔었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길래 일단 옮겨 왔어. 무슨 심각한 일 있어? 그 새끼 때문이야? 죽여 줄까?”
엘더가 어서 식사나 하란 식으로 내게 포크를 쥐여 주며 말했다.
“뭘 또 죽여 준대. 그 남자 이곳 행정 관리원이야. 함부로 죽이면 큰일 나.”
“내 주인, 제이. 그는 영혼의 한계가 아주 커 보이는 드루이드였답니다. 정말 전투를 원한다면 미리 말해 주세요. 엘더 꼬맹이를 좀 더 교육시켜 놔야겠어요.”
“메스키트까지 그러지 마. 그냥 그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파악이 잘 안 돼서 그래.”
드라이어드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테라리움 내의 연금탑에서 금지된 일을 하는 드루이드니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 주 의견이었다. 역시 그런가?
“그래도 역시 정보가 필요해. 잘 알고 있을 만한 놈이 있긴 한데….”
핸드폰을 꺼내 말벌의 칩을 이리스가 사다 준 꿀벌의 칩으로 갈아 끼웠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말벌과 다르게 조그맣고 귀여운 꿀벌이 간드러지게 날개 소리를 내며 화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곤 절대 먼저 연락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준비를 했다. 수신자는 시들링.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테라리움엔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어. 벌들을 좀비화시킬 만큼 강력한 내 말벌과 달리 꿀벌은 보안에 걸릴 위험이 있단 말이지. 파필리온이란 놈, 이상하게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내 꿀벌을 가로채면 어떡하지? 충분히 가능성 있는 놈인데.
생각을 바꿨다. 말벌의 칩을 다시 끼웠다. 칼롱에게 심부름을 시키자. 내가 어디에 있든 찾아올 수 있다고 했지?
부탁할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