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604)

나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엘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엘더 플라워라고 유니크 등급인데 얘의 힘으로도 탄환을 만들 수 있나요?”

“일단 새로운 드라이어드의 힘을 적용하려면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남의 드라이어드의 힘을 응용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아왜나무 드라이어드도 제가 가진 유일한 유니크 등급이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종이 가진 힘이 거품을 내어 불을 끄는 것이기에 완성된 탄환도 소화기용이 된 것입니다.”

꿈이 완전히 날아갔다.

“그럼 만약 연금술사님께 다른 유니크 등급 이상의 드라이어드나 포레스트가 큰 드라이어드가 있다면 새로운 탄환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거네요?”

“이론상 가능은 합니다.”

“앗! 그럼 연구를 지원할게요! 새로운 탄환도 만들어 주세요! 제가 쓸 만한 무기가 이 총뿐이라 다양한 탄환이 있다면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것은 돈 낭비가 아니라 미래의 날 위한 투자였다.

“정말 제 연구를 지원해 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네! 의심하실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저 트리 1단계예요.”

주머니에서 배지를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 보세요! 저 이런 사람입니다.

“다이아 많아요! 새로운 총알 개발 연구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쓰셔도 돼요!”

그가 진지한 얼굴로 아왜나무 드라이어드에게 명령했다.

“후임 연구원들을 불러오거라.”

그 모습이 마치 대학원생을 불러 모으는 교수님처럼 보였다. 연구실을 나섰던 아왜나무가 잠시 뒤 초췌한 얼굴을 한 다섯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롬가토는 내게 양해를 구한 후 그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서 엿들으려던 것을 멈췄다. 이 세계의 몰랐던 것을 알아 가는 것은 흥미롭지만 저건 아닐 것 같았다. 절대 우리 학과 지도 교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기 후원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한 번에 후원하실 생각이십니까? 금액은 정말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금액은 정말 상관없어요. 정기 후원할게요!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 저 18번째 테라리움에 계속 안 있을 건데.”

그는 주기적으로 내게 다이아 수레를 보내겠다고 했다. 월렛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두면 멀리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것이 자동 이체 시스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테라리움에서 세금을 걷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하며 이해를 도왔지만 그것도 방금 처음 알았다.

난쟁이들이 사고를 친 이후로 당분간 <무한 다이아>를 열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쟁이들에겐 거듭 당부를 했다. 수레가 도착하면 매번 딱 정해진 수량만큼만 채우기로.

자꾸 나대면 3일 동안 다이아 안 가져간다고 협박했더니 애들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 3일 넘게 <무한 다이아>를 켜지 않은 적은 많았지만 다이아를 안 가져가겠다는 협박이 먹혔는지 의심스럽긴 해도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다이아 빨대를 하나 더 꽂았으니 난쟁이들에겐 좋은 일 아닌가?

내 핸드폰과 롬가토 월렛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후 정기 후원이 결정되니 대학원생… 아니 후임 연구원들과 함께 그의 연구 계획 발표를 듣게 되었다.

내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등에 대한 발표를 하는 자리인 데다가 그의 말론 꽤 큰 액수를 매번 가져가는 것이기에 분위기상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강의를 듣다니.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버텨 내야만 했다.

강의를 빙자한 발표를 다 듣고 손뼉까지 힘껏 치고 나오니 저녁 식사를 먹어도 될 정도로 적당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필라와 루프에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곤 했지만 정말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빈속에 차만 계속 들이부어서 울렁거렸다. 얼른 건더기를 집어넣어야 해.

루프의 기대에 부응해 제일 좋아 보이는 식당으로 둘을 데려가 맘껏 즐기도록 해 주었다. 그때까지도 엘더가 영 기운이 없어 보여서 신경이 쓰였는데 메스키트가 내버려 두면 해결될 일이라고 했다. 대체 왜 그렇게 충격을 크게 받은 거람.

디저트를 즐길 때쯤 과수원에서 데리러 나왔다며 안내원이 내가 있는 식당을 용케 알고 찾아왔다. 행정 관리원의 월렛으로 테라리움을 훤히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위성 서비스 못지않네.

필라와 루프에겐 계속 식후 디저트를 즐기라고 말해 둔 뒤 과수원으로 향했다.

“저기요. 듣기론 과수원에서 드라이어드 영양제를 판매한다던데 그거랑 혹시 양분 열매 남는 거 있으면 수량 되는 대로 가져다주시겠어요? 아 설익은 열매도요!”

28번째 테라리움 경매가 일어났던 회의실로 안내받으며 안내원에게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했다. 제안서를 따로 받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엔 저번에 모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하, 서로 견제하려는 거구나?

오히려 내가 좀 늦게 온 감이 있었다.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입니다. 천연덕스럽게 자리에 앉으니 수많은 눈들이 서로를 향해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서포트를 맡은 것인지 정장을 차려입은 안내원이 차와 서류를 날랐다. 나와 1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 자리에만 제안서가 수북하게 올라왔다. 이거 다 읽고 싶지 않은데….

“음… 일단 저희 보스께서 필요하신 걸 먼저 말씀드릴게요. 혹시 제안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면 손 들어 주세요.”

날 무시하는 모습을 했던 사람들은 전과 달리 매우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다들 나이도 많은 것 같은데. 이래서 다이아가 깡패였다.

“마차가 좀 필요해요. 28번째 테라리움은 다들 아시는 상태이기에 빠른 교역이나 이송에 도움이 될 교통편 확립이 중요해요.”

동시에 세 명이 손을 들었다. 느낌상 저 셋이 호박, 옥수수, 콩일 것 같았다.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소를 내뱉거나 혀를 찼다.

이제 보니 경매 때 우리 테라리움의 가치를 깎기 위해 옥신각신했던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견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애초에 저 세 개의 단체는 앙숙인 것 같았다. 어찌나 셋이 사이가 좋지 않으면 자리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각지에 분점을 두고 있는 저희 황금 호박 상회야말로 제이 님이 원하시는 교통편을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장 28번째 테라리움에 교역 루트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마차도 원하시는 만큼 대여해 드릴 수 있습니다.”

“흥, 아주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려서 다른 작은 상점들은 살아남지도 못하게 막아 버리니 분점이 그렇게 많은 거겠지. 넓은 잎으로 낮은 풀들의 햇빛을 막아 죄다 죽여 버리는 그 식물 이름값을 하는 탐욕스러운 놈들이에요!”

황금 호박 상회 소속의 사람이 발언하자 건너편에 앉은 자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제이 님, 안전한 교역을 위해서라면 저희 보석 상회 주얼리 콘의 마차가 제일입니다. 보석을 이송하기 위해 아주 견고한 마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부 공격은 물론 불에도 강합니다. 저런 늙은 호박들이나 사용하는 보급형 낡은 마차론 성냥불만으로도 다 타 버릴 것입니다.”

“몇 대 없는 걸로 물량을 감당할 수 있겠어? 보석을 취급해도 취급하는 자기들까지 보석처럼 고귀하다 생각하는 콧대만 높은 멍청이들입니다. 최근 보석 생산량이 줄어서 빚도 많은 놈들이라 알맹이도 없는 맹탕 옥수수들이에요.”

이번엔 주얼리 콘 소속의 사람이 발언하자 또 다른 사람이 사냥개처럼 물어뜯었다.

“전부 쓸데없는 것들뿐입니다. 저희 그레이트 빈 연합이야말로 많은 인력 이송을 위해 초대형 마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번 오갈 필요 없이 한 번이면 집 한 채도 거뜬히 옮길 수 있습니다.”

“연합이란 콩깍지에 쥐 콩만 한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 저놈들은 실상 단합력도 없고 여기저기 뜨내기들을 가릴 것 없이 죄다 받아들이고 있어 질이 나쁩니다. 분명 운송 물품에 손대는 도적 같은 놈들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너 이 자식, 말 다 했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행정 관리원이 말렸지만 한번 불이 붙으니 아주 활활 타올랐다. 저 셋이 이곳의 실세나 다름없는지 모여 있는 다른 사람들은 조용했다.

제안서들 중 작물 트리오의 서류를 골라내어 확인했다.

황금 호박 상회, 5번째 테라리움을 본점으로 여러 테라리움에 분점이 상당히 많았다. 다양한 잡화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물자 확보에 용이하며 소상공인을 다 죽여 가며 분점을 내 상권을 차지했다는 옥수수의 평가답게 물품의 질이 좋고 가격대가 낮았다.

이야기가 나온 교역 루트 확보는 물론 28번째 테라리움에 꼭 필요한 자재나 식료품, 생활용품들을 교역품으로 거래하길 제안했다.

보석상회 주얼리 콘, 6번째 테라리움을 본점으로 세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이며 태양의 보석을 전문적으로 취급했다.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가 높고 액세서리는 물론 보석이 이용되는 모든 공예품에 대한 전문 장인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견고한 마차를 보유한 것 외에 교통편에 좋은 제안은 없었고, 28번째 테라리움이 과거 생산한 불멸의 다이아몬드 재건 사업을 제안했다.

그레이트 빈 연합, 4번째 테라리움을 본점으로 세 곳 중 비교적 신생인 곳. 인력 사무소로 다양한 길드나 연금탑, 드루이드들, 또는 기술자들과 연합하여 일자리를 중계 알선해 주는 곳이었다.

몰려드는 사람들만큼 흘러들어 오는 정보도 많이 입수되는 편이라 한쪽으론 정보 센터의 역할을 했다.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교통편에 해당하는 제안은 없었고, 다만 일손이 필요한 테라리움에 많은 인력을 이송시키다 보니 상당히 거대한 마차를 몇 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28번째 테라리움엔 복구 작업을 할 인력 파견 사업을 제안했다.

다들 내 테라리움에 꼭 필요한 제안들이긴 했다. 본점인 테라리움도 이웃사촌으로 줄줄이 붙어 있으면서 사이가 너무 나쁘네.

“그런데요.”

내 말에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왜 셋 다 작물로 이름을 지었어요? 호박, 옥수수, 콩이라니 우연치곤 기가 막히잖아요.”

웃기기도 하고. 이놈의 호기심을 참을 수가 있어야지. 너무 어이없는 질문을 했기 때문인지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건….”

다들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그들을 말리다 지친 행정 관리원이 내 질문에 대신 답해 주었다.

“그건 작물 이름으로 할 경우 사업이 풍요롭게 번성한다는 상인들 사이의 속설 때문입니다. 드라이어드들 중에서도 호박, 옥수수, 콩은 물론 당근, 배추 등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작물의 드라이어드들이 특히 온화하고 복이 많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부분 노멀 등급이지만 오히려 발생 확률도 높고 생명력이 질긴 점에서 분점을 많이 내고 경쟁 업체를 상대로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는 뜻을 부여하기도 하지요. 이 드라이어드들은 각자 이름을 딴 업체의 마스코트이기도 합니다. 해당 드라이어드를 가진 드루이드를 채용 시 우대하기도 하고 자연 발생 드라이어드를 영입하기 위해 일부러 작물을 많이 키워 강제로 군락지를 만들고 세계수의 축복이 닿도록 노력하기도 한답니다.”

“오… 흥미롭네요.”

이 세계엔 정말 재밌는 상식이 많아. 아까 롬가토의 강의보다 이런 것이 더 좋아. 제안서를 팔랑이며 콧노래를 작게 흥얼거리자 다들 내가 들고 있는 제안서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쭉 뺐다. 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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