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를 끔찍함으로 몰아넣었던 검푸른 나방들이 빼곡하게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을 마구잡이로 쏘며 나방들을 물리치려 했으나 메스키트의 모래 벽도 어떻게든 틈을 찾아 파고들었던 집요한 녀석들이었다. 나방들은 물량으로 몰아붙이며 끔찍한 푸른 가루들을 뿌려 댔다.
데저트 필드의 모랫바닥에 구멍이 생기며 무너지더니 그 자리에서 검은 물이 퐁퐁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금세 끈적하게 모래들을 삼키며 주변을 검은 늪지대로 만들었다. 적들은 물론 이리스 파티도 기겁하며 검은 웅덩이를 피해 발을 놀렸다.
“와악! 대체 이게 뭐예요? 이게 정말 드라이어드의 능력이에요?”
제퍼가 키가 큰 도깨비바늘에게 매달려 업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깨비바늘은 또 그런 그를 좋다고 업어 주는 것이 보였다.
“이게 스톤헨지에 묶인 우리들에겐 피해를 안 준다는 건 알지만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데요? 와, 진짜 끔찍한 힘이네요. 아니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에요!”
능력을 쓰는 바곳은 아슬아슬해 보였다.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아니라 몹시 괴로운 눈치였다. 바곳이 먼저 손을 뻗어 내 손에 깍지를 꼈다. 그러곤 힘을 주었다. 마치 더는 그날의 자신이 아니란 걸 되새기기 위해 하는 행동 같았다.
바곳의 힘은 이리스 파티가 기겁할 만큼 대단한 힘이었다. 순식간에 중독 상태에 빠진 적들의 눈가가 파래졌다.
아니 아무리 바곳이 대단하다고 해도 조금씩 시간을 들여 가며 중독시키던 것에 반해 오히려 저들이 너무 빠르게 중독 디버프에 잠식되었다. 저들이 드라이어드들의 디버프에 저항하기 위해 사용했던 무언가가 중독 속도를 끌어 올린 것처럼 보였다.
적들은 움직임이 둔해지고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는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독에 당한 드루이드들이 쓰러지자 그들의 드라이어드도 차근차근 무릎을 꿇었다. 모두 우리 쪽 드라이어드들의 무기 앞에 쓰러지고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힘을 실컷 사용한 바곳은 전투가 소강되자 어리광을 부리며 안겨 왔다. 귀엽긴 하지만 버릇 들어서 커서도 이러면… 고맙지. 그럼. 바곳은 귀여우니까 용서해 준다.
나와 함께 서 있던 이리스가 검집에서 검을 빼어 들곤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한치의 주저 없이 적들의 목을 꿰뚫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시작으로 도깨비바늘에게 업혀 있던 제퍼도, 삼단으로 접히는 창을 빼든 노토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무기가 없는 헤르마를 제외하곤 모두 무기의 날카로운 끝으로 적들의 급소를 찔러 죽였다.
드루이드가 죽자 주변의 드라이어드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곧 그들은 검은빛에 감싸이더니 이내 까만 드라이어드 열매로 변해 버렸다. 열매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퍽하고 터져 버렸다. 그러곤 반짝이는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내버려 뒀다가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가기라도 하면 분명 귀찮은 일이 생겼을 거예요. 자신들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우릴 해치우려던 놈들이에요. 다음엔 바곳 드라이어드의 힘에 미리 대비한 후 제이 님을 다시 뒤쫓아 오겠죠. 동료들을 더 많이 데려올 수도 있어요.”
이리스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이 님의 바곳 드라이어드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놈들이라 다행이었어요. 저조차도 투구꽃의 한 종류일 줄은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분명 바곳 드라이어드의 힘은 강하지만 사실 저 중에 독에 저항력이 강한 드라이어드나 해독 능력이 있는 드라이어드만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았을 거예요. 독을 가진 드라이어드는 희귀하니 방비를 미처 못 한 덕도 있겠네요.”
독에 내성이 있다던 카나비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어린 바곳의 힘이긴 하나 파티로 묶여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힘을 견뎌 냈지.
이리스의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잔인하다 생각하셔도… 이건 필요한 조치였어요…. 혹시 실망하셨나요?”
“어… 아뇨! 오히려 저라면 절대 못 했을 테니까….”
바람을 타고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 건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보기엔 힘들었다. 내 상태를 알아차린 엘더가 큰 손으로 눈을 가렸다. 달콤한 꽃향기가 역겨운 피 냄새를 지웠다.
“제이 님은 아직 많은 곳을 모험하지 않으셨죠? 치안이 좋지 않은 테라리움에선 이런 일이 빈번해요. 저흰 이제 이 정돈 익숙해서 괜찮아요. 제이 님께서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이 더 좋겠지만… 오늘 일로 보아 이런 상황을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여요. 저들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또 그것대로 문제겠죠. 앞으로도 계속 제이 님을 노릴 거예요.”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는 기분이다.
불에게 드루이드의 시체는 좋은 먹잇감이다. 예전에 메스키트가 그런 소릴 했지. 적들의 시체는 드라이어드들의 힘으로 땅속 깊이 파묻혔다.
“저도 저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죠!”
아직 내 핸드폰에 있는 칼롱의 수벌을 불러왔다.
뒤쫓던 놈들 해치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