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604)

나무가 줄어들었단 건 불을 대비할 수 있는 울타리도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불의 위협이 커지자 처음엔 강하게 반대하고 나무를 베는 사람들을 말리는 자들도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계수의 가지가 지켜 주는 테라리움을 강하게 염원하게 된 것이다.

나무를 베어 팔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고 했다.

“그 아이는 작은 손으로… 슬퍼하는 우리들을 위로했다. 그러곤 보여 줄 것이 있다며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지. 아이는 가막살나무의 열매를 심었다며 사라진 만큼 다시 심으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 후 그 아이와 함께 나무가 베어진 곳에 열매를 다시 심으며 다녔다. 아이는 희망과 미래를 심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지.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끼리 다시 예전처럼 웃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가막살나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손가락 틈으로 막지 못한 그의 슬픔이 섞인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그날이 왔어. 모든 것이 타 버리고… 죽고, 떠나 버린 그날이….”

그의 몸에 불길이 솟을 때보다 더 괴로워하는 말투였다.

“군락에 더 이상 나무를 팔지 않는 인간들만 남게 되자 상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 돈줄이 끊겼다며 매일 군락을 찾아와 빌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 드라이어드가 그때마다 매번 쫓아내자 그는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쫓아 버린 후 어느 날부터 나타나지 않아 안심했건만….”

“어떻게… 됐는데?”

“그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자신의 편이 되어 줄 다른 인간들과 이상한 기계를 끌고 왔다. 그러곤 불화살을 쏴 인간들의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들 나무로 만든 것이라 불에 강했지만 산 것보다 죽은 것의 힘은 덜했다.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불화살을 쏘니 결국 큰불이 나기 시작했다. 또한 불을 피해 도망 나온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헐, 미친…!”

“우리 드라이어드가 불을 끄고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바쁜 틈을 타 이상한 기계로 남아 있는 나무들을 전부 베어 옮겼다. 인간들이 도끼로 나무를 벨 때보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불은 불을 부르고 더 이상 그곳을 지켜 줄 산울타리는 없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불들이 모여들며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어.”

그럼 이곳이 이렇게 된 것이…. 그때의 일 때문에…?

“불이 날뛰자 그들은 목재를 포기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군락의 인간들은 빠르게 대피할 능력이 없어서 군락에 갇히고 말았지. 불은 우리 드라이어드를 아주 맛 좋은 먹이로 생각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참변에서 아이의 부모가 죽고 아이마저 무너지는 잔해에 맞아 정신을 잃어 도망칠 수 없었다. 아이만은 살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 중 하나가 아이를 데리고 우리가 불의 관심을 끄는 동안 멀리 도망치기로 했다. 그리고 이곳을 잊고 아이와 함께 오래 살아가라고 했지. 가다가 불에 당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아이가 무사히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론 내 모체의 힘을 사용해 불을 지금까지 동굴 안에 가두고 있었다. 불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 위험해.”

가막살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 불신이 커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막살나무의 모든 것을 파괴한 건 결국 인간이었다. 이 감정의 골을 메우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이리스의 파티는 보스전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지?

“그게… 사실 스케어크로우는 평범하게 나이 들어 죽은 게 아니야. 늙어 죽은 것은 맞는데… 생명력을 소모했기 때문이었어.”

한참 침울해 있는 그에게 너무 참혹한 팩트를 명치에 때려 박았다. 메스키트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내가 그걸 말할지 몰랐다고 했다. 분명 나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을 거다.

“스케어크로우도 너와 똑같았어. 그녀의 가막살나무 드라이어드와 함께 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28번째 테라리움 안에 봉인했어. 그녀가 가둔 불이 얼마나 컸냐면 저기 보이는 절벽만 했어. 그렇게 엄청난 불을 그래프트의 힘으로 생명력을 소모해 가며 막았어. 나는 세계수의 가지의 힘을 회복해 겨우 물리쳤는데 그녀는 드라이어드와 단둘이서 불을 막아 내고 있었어.”

“…….”

“다른 테라리움들이 무사한 것도 그녀 덕이야. 그녀가 만약 도망쳐 버렸다면 다른 테라리움들도 세계수 가지의 힘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피해가 컸을 거야. 너도 결국 저 불이 풀려나면 근처 테라리움들에 위험이 되니 목숨을 태워 가며 막고 있는 거잖아. 둘은 떨어져 있어도 의지가 이어지고 있었어. 이건 알아 줬으면 했어….”

그렇게 말하곤 그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을 막는 모습이 구조 신호를 받고 발견했던 스케어크로우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다.

스케어크로우는 비록 자신과 영혼의 연결을 맺지 않았어도 그를 자신의 드라이어드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가 자신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바랄까? 그녀는 잘 모르지만 그녀의 행동은 무척이나 의로운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스케어크로우는 결국 자신이 막아서 구해 낼 수 있었던 세상을 못 보고 떠났어. 하지만 너는 네가 불을 막아서 다음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볼 수 있잖아.”

“사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테라리움들이 아니다. 난… 아주 작은 묘목을 지키고 있다. 모두 불타 버린 그날… 그 아이와 심은 열매 중에서 딱 하나 살아나 싹을 틔운 것이 있었다. 아마 그것이 다 자라면 세계수의 축복이 깃들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와 아이가 심은 희망이었지. 아이와 모두가 떠나 버리고 모든 것이 타 버린 지금, 그 묘목만이 유일하게 행복한 날을 회상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불이 풀려나면 나는 도망칠 수 있지만 그 묘목은 도망칠 수 없어. 내 몸은 수시로 불타올라 묘목을 파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내 주인, 제이. 그 묘목에 저 드라이어드의 꽃말의 힘이 묶여 있는 것인가 보군요.”

가막살나무 드라이어드가 죽지 않으면 불은 죽지 않는다. 가막살나무가 죽으려면 무척이나 소중하게 길러 온 묘목을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스스로 절대 그럴 수 없으니 아픈 몸으로 묘목을 보호해 온 가막살나무 드라이어드가 무척이나 딱했다.

“당신이 솔직하게 말해 주니… 어쩌면 다른 인간들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저 불을 끝낼 방법을 알았으니 나의 묘목을 죽이고 나도 죽일 것인가? 말한 것은 나의 선택이니 당신을 탓하지는 않겠다. 인간들은 욕심으로 움직인다. 결국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아이와 같은 최후를 맞이하는 것에 만족한다.”

아니 내가 어떻게 그러겠냐고요!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는데요!

“내가 묘목을 옮겨 줄게! 우리 28번째 테라리움은 어때? 스케어크로우가 행정 관리원이었던 곳이잖아? 그녀가 살던 곳에 심는 거야! 세계수의 가지가 지켜 주고 있으니 묘목은 안전해. 그리고 너도 우리 테라리움으로 와! 이쪽도 좀 타 버리긴 했는데 스케어크로우의 유품이 많이 남아 있어. 살아생전 그녀의 젊었을 때 초상화도 있는데 보고 싶지 않아? 너의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스케어크로우가 지키고자 했던 28번째 테라리움을 네가 지켜 줘. 그녀와 같은 것을 지키고 그녀가 보고 싶어 했을 테라리움의 아름다운 미래도 대신 봐 줘.”

“나는… 당신의 드라이어드가 되어도 결코 내 아이를 잊지 못할 것이다…. 드라이어드는 본디 자신의 드루이드만을 보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할 것이다.”

엘더가 재수 없다며 저런 드라이어드는 반대한다고 소리쳤다. 얘는 내가 새로운 드라이어드를 영입할 때마다 소란이었다. 메스키트가 적절하게 엘더를 막을 법도 한데 묘하게 조용했다.

“상관없어. 내겐 나만 생각해 주는 드라이어드가 참 많아.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너는 계속 너의 아이를 생각해도 괜찮아.”

“그렇게 너의 영혼의 한편을 낭비하는 것인데….”

“낭비라니! 나 얻는 것 많아! 우리 테라리움에 데이지2 말고 좋은 방어형 드라이어드가 생기는 것인데. 가막살나무 열매를 심었던 일이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했지? 그럼 우리 테라리움에도 잔뜩 심어 줘. 세계수의 가지가 워낙 잘 자라고 있긴 한데 주변에 산울타리가 있으면 더 안전한 거잖아. 아, 이건 데이지2와 의견 조율을 해 봐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내 말은 들어줄 거야. 대신 빨리 가서 심지 않으면 레드 데이지로 자리가 꽉 차 있을걸?”

그가 고민할 새도 없이 남겨 두었던 설익은 열매를 꺼냈다. 그리고 열매를 들이밀며 그에게 종용했다.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때웠다. 이리스네 파티를 생각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이쪽 일을 해결해야 했다.

오래 고민하던 그는 결국 열매를 내민 내 손을 맞잡았다. 그의 큰 손에 열매와 내 손이 함께 덮였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 이래 보여도 대단한 드루이드야.”

“당신의 자신감에 찬 밝은 목소리는…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아이도 그렇게 항상 모든 일에 신이 나서 소리치곤 했지….”

차가웠던 열매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열매가 넘실거리는 황금색으로 가득 차 은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설익은 열매가 내 영혼의 힘으로 익어 가기 시작했다.

다 익었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떼었다. 가막살나무 드라이어드의 손에 열매가 넘어갔다. 열렬히 빛을 내며 존재감을 뿜던 황금빛 열매는 따뜻한 봄을 맞아 녹아내리는 눈처럼 그의 손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린 서로 눈을 마주했다. 그와 무척이나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속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며 그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혼의 연결이 맺어졌다.

상처 입은 그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잿가루가 떨어지고 새하얗게 빛을 발하는 은발이 드러났다. 죽어가던 밤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말쑥해 보이고 조금은 소년의 티가 나는 얼굴이 폈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어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작은 세계수여. 축복의 힘은 역시나 굉장히 위대한 것이군. 이 연결을 그 아이와도 맺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나 지금은 그저 감사한 마음이 더 앞선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세계수의 28번째 테라리움을 온 힘을 다해 비호하겠다.”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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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살나무 (Linden viburnum)

칭호: 최후의 방어선

꽃말: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자생지: 스톤 필드 (★★★★☆)

필드 발생 확률: middle-high (★★☆☆☆)

가치: 목재, 관상 (★★★★☆)

특성: 방어형

최종 확정 등급: 레어(Rare)

불에 강한 방화수로 산울타리로 쓰이는 나무이다.

5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작고 촘촘하게 핀 하얀 꽃들은 멀리서 보면 뿌연 안개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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