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604)

이리스 파티와 합류하여 다시 돌아가는 길에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제퍼와 헤르마를 찾아가니 그들이 이곳으로 향하던 중 날 쫓던 자들과 먼저 마주한 상태였다고 했다. 내가 드루이드 파티와 함께 테라리움을 나왔단 정보로 주변 드루이드들을 다 들쑤시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헤르마가 눈치 빠르게 수상함을 알아챘고 그들 역시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제이 님을 쫓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걸 제퍼와 헤르마에게 조용히 알렸어요. 우린 제이 님을 찾아내기 전에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그쪽은 저희가 제이 님과 함께 행동하는 자들인 걸 이미 눈치챈 것 같았어요.”

그때 조용하던 제퍼가 중얼거렸다.

“이상해….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이상한디?”

“그쪽에 드루이드가 아닌 사람들이 보였던 것 같아서. 왜 일반인이 함께 움직이나 궁금하지 않아? 드라이어드를 못 다루잖아. 그럼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데.”

“그랬나?”

드루이드가 아닌 일반인이라. 확실히 불이 활개 치는 테라리움 밖은 드라이어드와 함께가 아니면 위험하긴 하지.

“어쨌든 전투를 벌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쪽에서 월렛을 보더니 황급히 돌아가더라고요. 뭔가 연락을 받았나 봐요. 저는 쫓아가서 해치우자고 했는데 헤르마가 말렸어요.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포션도 넉넉해서 한번 붙어 볼 만했는데!”

“아, 그거 제가 했어요!”

날 보는 그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표정이 묘했다.

“제이 님이 그들에게 벌을 보냈다고요…? 그럼 벌 때문에 위치가 발각될 수 있는데?”

한순간에 날 쫓던 사람들에게 친히 연락을 한 이상한 애가 됐다. 나는 차분히 내가 가진 말벌과 기생충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이 있던 상황을 엿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것이나 적들의 메시지를 가로채 왜곡시킨 것까지.

“연금술사들은 대단하군요. 그런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제이 님이 가진 말벌과 같은 것들이 널리 퍼지면 정말 위험해질 수 있겠네요. 대단하지만 너무 위험한 기능으로 보여요.”

“아… 그게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아니에요.”

다이아가 아주 장난 아니게 깨지죠. 저처럼 다이아가 남아도는 사람이나 쓸 수 있답니다. 잠깐 사이에 천 다이아 이상이 깨진 걸 알면 그들이 어떤 표정을 할까?

“역시 노토스를 데려가서 먼저 가막살나무 군락지 정보를 얻었나 보구먼! 우리가 간 곳은 평지밖에 없었는데. 중간에 야영 흔적이 있는 걸 보니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었어.”

“제이 님의 민들레 드라이어드들의 도움을 좀 받았어.”

한참을 걷다 보니 이리스와 찢어졌던 곳까지 도착했다.

“그들이 돌아갔다곤 해도 다시 쫓아올 가능성이 높아요. 이쯤에서 제퍼와 헤르마의 드라이어드들로 훼방을 좀 놓아야겠어요.”

이리스가 동굴 출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제퍼가 아티팩트에서 드라이어드를 불러왔다.

이리스의 꾸짖음에 아티팩트로 돌려보낸 도깨비바늘이 다시 나오나 했는데 아니었다. 제퍼의 아티팩트에선 바곳과 닮은 청보라색 고수머리를 한 남성형 드라이어드가 나타났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본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커다란 면봉 같은 꽃 장대를 들고 있었다.

어… 저 꽃 뭔지 알 것 같은데?

그 드라이어드는 엘더와 견주어도 충분할 만큼 굉장한 미소년이었다. 엄청나게 화려한 얼굴. 완전 내 취향이었다.

“제퍼의 드라이어드인 히아신스예요. 모체가 신을 홀린 미모라는 신화를 가진 종답게 굉장한 미모죠? 엘더 플라워와 함께 지낸 제이 님의 눈높이엔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아, 제이 님의 눈에도 역시 잘생긴 것 같나 봐요.”

내가 넋 놓고 히아신스 드라이어드를 바라보고 있자 이리스가 작게 웃었다. 그때 엘더가 질투라도 하듯 뒤에서 내 어깨를 끌어안아 당겼다.

“저기 봐, 엘더. 난 드라이어드 중 네가 제일 잘생긴 줄 알았는데 저쪽도 장난 아냐! 완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잖아?”

내 말에 히아신스가 우쭐하는 것이 보였다.

“드라이어드는 본디 꽃. 작은 세계수님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현란한 겉모습을 가지고 태어나지요. 제가 마음에 드셨다니 영광입니다. 부디 다른 히아신스 드라이어드들도 어여쁘게 봐주어 영혼의 연결을 맺어 주세요.”

“저건 저런 자아도취 성향이 강한 꽃들의 견해일 뿐이야. 드라이어드의 외모가 아름다운 건 그저 꽃이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날 뿐이라고.”

엘더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 너도 너의 외모에 자신감 넘치지 않니? 그나저나 드라이어드들마다 견해도 다르다니. 신기했다.

“우리 히아신스 대단하죠? 무려 제가 과수원에서 무료 열매 지급으로 얻은 첫 레어 등급이랍니다! 크으… 그때 주변 드루이드들이 다 부러운 눈으로 봤던 걸 떠올리면 아직도 짜릿한데.”

“작은 세계수님, 불쾌하니 제 손은 잡지 말아 주세요.”

“아, 미안미안. 조심할게.”

“그렇다고 멀리 떨어지진 말아 주세요.”

제퍼와 히아신스 사이가 묘했다. 서로 엄청나게 닭털을 뿌려 대던 도깨비바늘과는 뭔가 반응이 천지 차이였다.

“그게… 히아신스 드라이어드는 남자들과 별로 호감도가 좋지 않아요. 둘이 함께한 시간이 길어도 제퍼는 아직 그를 잘 다루지 못한답니다. 저 히아신스 꽃들은 모체의 신화가 대대로 강하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체가 남신들의 사랑싸움 때문에 비극을 맞이한 것이기에 남자들을 싫어해요.”

“호오… 흥미롭네요.”

모체가 가진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민들레 드라이어드의 왕인 단델리온에게 들은 적 있었다.

그녀가 ‘신의 계시’ 꽃말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도 로드로서 선조의 신화를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드이기에 계승할 수 있었던 그녀와 달리 히아신스는 디폴트값인가 보다. 히아신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열심히 봤기 때문에 나도 알았다.

“저 히아신스 드라이어드는 지원형이에요. ‘유희’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 그 꽃말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려는 방향과 다른 곳에 능력으로 히아신스 꽃들을 피워 두면 향기를 맡은 자들은 모두 그곳에 오래 남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느끼게 될 거예요. 적들의 발목을 묶어 두는 거죠.”

“오호…!”

“아마 적들에게 이 힘을 풀 수 있는 드라이어드가 없다면, 히아신스의 꽃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영향을 받을 거예요.”

즉, 바곳처럼 디버프 해제가 가능한 드라이어드가 없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거네? 히아신스의 능력은 한마디로 디버프 계열이었다. 만약 전투 중에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공격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고 일방적으로 때려 팰 수 있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서 꽃을 피워.”

“네, 작은 세계수님. 명령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히아신스! 저기가 좋겠다!”

“싫습니다. 저는 저쪽에 피우겠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히아신스는 이리스의 말을 곧잘 듣는 것과 다르게 제퍼를 잘 무시했다. 호감도가 처참한 드라이어드와의 관계는 저 정도구나. 나는 다이아로 호감도를 풀로 채운 엘더와 아직 공략 중인 바곳을 바라보았다. 전혀 남 일 같지 않았다.

헤르마도 아티팩트에서 드라이어드를 불러왔다. 노란 빛 무리와 함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월계수 관을 쓴 남성형 드라이어드가 나타났다.

그는 하단이 별처럼 생긴 긴 장치마를 입고 여러 개의 나무줄기가 휘감아진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드라이어드는 특이하게도 눈을 감고 있었는데, 헤르마가 말을 걸 때만 살풋 연한 노랑의 눈을 보여 주고 다시 감았다.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날 보며 이리스가 설명해 주었다.

“헤르마의 드라이어드인 월계수예요. 만약 저 드라이어드가 여성형이었으면 제퍼처럼 헤르마도 드라이어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 거예요. 저 드라이어드도 제퍼와 같은 과수원에서 얻은 무료 열매에서 태어났는데 그 가지가 유독 비슷한 성향의 드라이어드가 몰려 있었나 봐요. 저 드라이어드들은 여성형인 경우에 대대로 모체의 신화가 강하게 적용되는 편이거든요.”

“제가 아는 드라이어드는 로드가 신화를 계승한다고 말해서 신기하긴 하네요.”

우리 애들은 뭐 신화 같은 거 없나? 갑자기 내 드라이어드들의 신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꼭 물어봐야지.

“제 드라이어드는 그 턴 오버(Turn over) 형이라고 들어봤을지는 모르겠는디….”

“앗! 그거 알아요! 우리 애도 턴 오버 형이에요!”

헤르마의 말에 바곳을 끌어 보여 주었다.

턴 오버는 드라이어드의 성향 중 한쪽만 선택하여 쓸 수 있는 형태. 바곳의 머리에 있는 단델리온의 스태프 조각을 뽑으면 수류탄이 터지죠. 그래서 강제로 지원, 회복형에 고정 중이랍니다.

하지만 그쪽 드라이어드의 머리엔 뭔가 꽂힌 게 없어 보이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회복형인데 턴 오버로 바꾸면 지원형의 기술을 쓸 수 있습니다만…. 알고 있어서 설명이 빠르겠는디.”

“월계수 드라이어드는 회복형으로 쓰일 때가 더 많아서 보통 저렇게 두고 있긴 해요. 저 드라이어드는 두 성향에 따라 다른 꽃말을 사용할 수 있어요. 잎과 나무의 힘을 집중적으로 쓰는 회복형 상태와 다르게, 꽃의 힘을 쓰는 지원형 상태에선 ‘불신, 배반’이라는 꽃말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요.”

“월계수, 지원형으로 바꿀게.”

헤르마의 말에 감겨 있던 드라이어드의 눈이 뜨였다. 그가 나무 스태프를 높이 들자 그 끝에서 노란빛이 강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곧 작고 노란 꽃들이 스태프 끝에 촘촘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쓰고 있던 월계관에서도 노란 꽃들이 피어났다. 오… 외형이 좀 바뀌는구나.

“월계수는 힘을 사용해 주변에 작은 월계수 묘목을 자라게 할 수 있는데, 그 묘목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불신, 배반’이라는 꽃말의 힘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드라이어드끼리 사이가 나빠지게 하는 거죠. 저항력이 없을 경우 서로 전투를 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이 힘 역시 풀어 줄 드라이어드가 없다면 적들 입장에선 굉장히 번거로운 상황이 될 거예요.”

월계수의 능력 역시 디버프 계열이었다. 게임에서 적들에게 저런 디버프를 걸어 서로 싸우게 하는 상황을 많이 봤다. 물론 아군이 걸리면 아군끼리 공격하게 되니 꽤 번거로운 디버프였다.

“능력들이 참 좋네요.”

“그렇죠? 이 주변에 작업을 좀 하고 이동하기로 해요.”

그렇게 제퍼와 헤르마의 드라이어드들이 함정을 까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중독 디버프 말고도 꽤 많은 디버프가 있었네. 이리스가 드라이어드를 아티팩트에서 꺼내지 않는 것이 비장의 패를 숨기는 것과 같다는 말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곳을 잘 키워서 빨리 디버프 해제 능력을 개화시키든지 해야지. 만약 메스키트나 엘더가 월계수의 능력에 걸려 봐. 내겐 지옥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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