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604)

“저희도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곳이라 다시 찾아가려 하면 못 찾을지도 몰라요.”

“그런 곳에 왜 메스키트 조각상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때 저희도 나름대로 그 장소와 조각상의 의미에 대해 열심히 조사해 봤는데 헛수고였어요. 던전 입구는 강하게 봉인되어 있어서 안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조각상들이 방치된 지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었거든요. 다만 추정하기로는 조각상의 수가 자생 필드의 분류 수와 똑같았고 석상 중 하나는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아마 고목 드라이어드들의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필드의….”

“후후…. 그만. 제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군요. 저는 그저 오래 산 드라이어드일 뿐이랍니다.”

그때 메스키트가 웃으며 방패를 들어 나와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필드의… 다음은 무슨 단어였을까?

그러고 보니 메스키트가 이렇게 이야기를 끊은 적이 또 있었던 것 같다. 시들링의 드라이어드들과 처음 만났을 때였지. 그땐 떠드는 것이 시끄러워 말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메스키트는 내게 무엇을 숨기고 싶은 걸까?

고개를 들어 높이 위치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그녀의 턱 끝밖에 보이지 않았다. 언제 웃었냐는 듯 입이 굳게 다물려 있었다.

뭐, 숨기고 싶다면 그만 궁금해하자. 내게 필요한 정보였다면 먼저 나서서 알려 줬을 거야. 내가 알면 별로 좋지 않은 것이기에 숨기는 거겠지. 내 드라이어드들은, 특히 메스키트는 날 각별히 생각하니까 이야기를 막는 것도 날 위해서일지도 몰라.

“음, 그럼 가막살나무 군락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메스키트의 방패를 밀어내며 말했다. 더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을게. 좀 전의 화제는 아까 끝난 거야.

이리스의 파티는 메스키트를 의문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애써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웃는 내 얼굴을 보곤 눈치껏 따라 주었다.

“아, 그랬죠. 어제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나름대로 모아 봤어요. 의뢰를 냈던 목공소도 찾아가 봤고요.”

오, 왜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지? 드라이어드들을 이용하여 주변을 다짜고짜 수색할 생각만 했지, 테라리움에서 정보를 모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단순 탐색형 퀘스트라 생각해 버렸네.

“듣기로는 오래전에 목공소에 주기적으로 가막살나무 목재를 공급해 주는 상인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분명 그 상인이 드루이드로 보이진 않는데 어디선가 목재를 많이 구해 오니 드라이어드의 힘을 이용한 것이 아닌 군락지를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했대요.”

“음… 그럼 군락지가 있는지조차 확실치가 않네요?”

“그것도 그렇지만 있을 걸로 추정되는 방향 정도는 건질 수 있었어요. 노토스, 그 애들을 불러와 봐.”

그녀의 말에 노토스는 자신의 테라리움 아티팩트를 내밀었다. 다른 이들은 드라이어드를 한둘씩 옆에 세워 둔 반면, 노토스의 곁에는 드라이어드가 없었다. 드디어 그의 드라이어드를 볼 수 있는 건가?

노토스의 아티팩트가 빛 무리에 감싸이며 머리가 녹색인 두 드라이어드가 튀어나왔다. 우리 민들레처럼 저쪽도 쌍둥이처럼 닮은 것을 보니 동일한 종의 드라이어드로 보였다.

사방으로 뻗친 머리와 무늬가 요란하지만 단정한 갈색 도복을 입은 드라이어드들이었다. 자주색 솔방울을 닮은 꽃들이 단추와 노리개처럼 매달려 있었다.

“노토스의 소나무들은 이런 의뢰를 수행할 때 꽤 유용해요. 소나무 드라이어드에 대해 아시나요?”

“아뇨, 오늘 처음 봤어요.”

뻗친 머리가 솔잎을 닮긴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외모만 보고도 드라이어드의 모체를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나무 드라이어드는 비록 노멀 등급에 지원형이고 제약도 있어서 전투에 불리한 편이라 선호되진 않지만, 그건 이 드라이어드들의 진가를 몰라서 그래요. 소나무의 꽃말은 장수, 소나무는 이 꽃말과 관련된 힘을 쓸 수 있어요. 과거에 한 번이라도 소나무가 나고 자랐던 지역이면 소나무 드라이어드 한 그루당 최대 10년 전 그곳의 과거를 현실처럼 볼 수 있답니다. 이미 없어졌더라도 마치 현재까지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노토스의 두 소나무는 연리지의 힘을 사용해 그 힘이 두 배가 되죠.”

“오… 그럼 20년 전의 과거까지 알 수 있다는 건가?”

“네, 소나무는 자생 필드가 노멀이라 여러 지역에서 잘 자라니 60번대 아래의 척박한 땅이 아닌 이상 이 지역에도 한 번쯤은 자생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제 탐방을 좀 해 봤어요. 상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낸 후 소나무들에게 살피게 했죠. 많은 정보를 알 순 없었지만 그가 이곳 테라리움의 동쪽 문을 자주 드나들었던 걸 겨우 알아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 아마 군락지는 동쪽에 있을 거예요.”

동쪽도 너무 막연한 정보긴 해도 무턱대고 주변을 전부 빙 둘러 수색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나저나 드라이어드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과거의 일까지 알 수 있다니. 엄청 유용한 드라이어드 아냐?

“와… 나도 소나무 드라이어드를 영입할까. 완전 대단한 힘을 쓸 수 있는데?”

“음, 확실히 소나무는 대단한 드라이어드예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소나무 드라이어드가 과거를 보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제약이 있답니다. 그 제약 때문에 이 힘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있어요.”

“제약?”

“네, 꽤 강한 제약이에요. 드루이드의 아티팩트에 소나무를 제외한 다른 종이 있어선 안 돼요. 소나무의 또 다른 꽃말 때문이에요. 정절. 오로지 소나무 드라이어드만이 드루이드를 지키고 있을 때, 드루이드가 소나무 드라이어드에게만 영혼의 연결을 허락했을 때, 온전히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오직 한 드라이어드만 테라리움 아티팩트에 키워야 저 사기에 가까운 과거를 보는 힘을 쓸 수 있다니. 내가 소나무의 힘을 쓰려면 우리 드라이어드들을 다 쫓아내야 한다는 거잖아. 절대 안 되지. 카드 게임의 꽃은 수집인데?

“보통 아티팩트에 소나무만 심는 드루이드는 없으니…. 그래서 노토스에겐 드라이어드가 소나무뿐이랍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제약이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노토스도 참 대단했다. 어떻게 소나무만 키울 생각을 했을까?

“동쪽으로 향하며 틈틈이 과거를 본다면 군락지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행선지를 정한 후 출발하기 전, 이리스의 파티에 다시 한번 초대되었다. 전처럼 임시 참여가 아닌 정식 파티원이었다.

시들링 땐 일방적으로 파티가 맺어졌었는데, 이번엔 정말 드루이드들과 함께 파티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들떴다. 다섯 명이면 대규모 파티인걸?

“이리스는 드라이어드가 둘뿐이에요?”

이리스의 곁엔 드라이어드가 둘, 제퍼와 헤르마의 곁엔 각각 하나씩 있었다. 민들레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드라이어드를 여섯이나 꺼내 놓고 다니는 나와는 확실히 비교되었다. 뭔가 나만 잔뜩인 느낌도 나고.

아니, 시들링도 드라이어드를 잔뜩 꺼내 놓고 다녔잖아. 나만 특이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뇨, 일단 종은 셋이랍니다. 다른 드라이어드들은 아티팩트에 있어요. 제퍼도 저와 마찬가지로 드라이어드가 셋이고 헤르마는 둘이에요. 노토스는 방금 보셨던 것처럼 소나무 드라이어드만 둘이에요.”

“그런데 왜 다 나와 있지 않은 거예요? 우리 드라이어드들은 제가 밖에 있을 땐 좀처럼 아티팩트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던데. 아, 그리고 이리스 정도의 드루이드들이라면 드라이어드가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상상했던 것과 좀 다르네요.”

“아, 이건 여러 사정이 있어요….”

이리스는 항상 네 명이서 같이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드라이어드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열매 때문에 드라이어드 영입 비용이 상당한 탓도 있고, 드루이드들이 함께 스톤헨지 모드에 있는 한 드라이어드를 하나 정돈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라이어드를 공유할 수 있다고요?”

그건 처음 듣는데. 뭐 내가 정상적으로 파티 플레이를 해 봤어야 알지. 이건 친구 영웅 빌려오기 같은 개념인가?

“네, 오래 데려다 쓸 수는 없어도 스톤헨지의 주도권 점유율이 동일할 경우 가능해요. 한 번에 하나의 드라이어드 영혼의 연결을 공유할 수 있어요. 결국 모든 드루이드는 모두 작은 세계수이니까요. 그래도 드라이어드의 최우선은 자신의 드루이드라 완벽하게 통제할 순 없긴 해요. 하지만 저희 드라이어드들은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내서 아티팩트만 다를 뿐이지 가족 같은 사이라 각자 말은 잘 들어요. 유독 제퍼의 한 드라이어드가 자기 주인 빼곤 절대 말을 안 듣긴 하지만. 그건 다 저놈이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요.”

역시 야매로 맺었던 파티보다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다.

“헐, 그럼 저도 공유할 수 있는 건가요?”

“음…. 제이 님은 저희와 주도권 점유율이 달라서…. 동등한 영혼의 힘을 발휘할 수 없어서….”

앗, 비율이 달랐던가? 핸드폰을 깨웠다. 스톤헨지 모드로 연결되는 것만 확인하고 껐는데.

아티팩트 네트워크 형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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