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지 마! 넌 정말 어닝 다음가는 벌레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세계수의 축복을 드라이어드가 아닌 생명체가 이겨 내고 살아남은 게 얼마나 대단한데! 넌 비록 세포 단계에 불과하지만 리틀 드라이어드나 다름없는 생명체를 만들어 낸 거라고! 연금탑 위원회 사람들은 그것도 몰라주고 연구물을 반려시키고…!”
“… 듣고 보니 내가 대단하긴 해. 난 연구원을 그만두고 가업이나 잇고 싶은데 재능이 가만두질 않는단 말이야.”
“기생충 보고 리틀 드라이어드라니…. 드라이어드를 어디까지 폄하하는 거야?”
내 말을 무시하고 둘이 루프의 칭찬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난 심각해졌다. 세계수의 일부면… 세계수의 축복이 영혼에 깃든 나 같은 드루이드는…? 저 기생충 새끼들 나도 먹는 거 아냐?
난 작은 세계수라고 불릴 정도인데? 이거 극혐인데? 아니 드라이어드는…? 드라이어드도 세계수에서 태어났고….
“세계수에서 떨어져 나온 거라면, 세계수의 축복을 형상화한 거라면, 살아 움직이는 것 외엔 다 먹습니다. 이파리나 껍질이나 수액이나 열매나. 지정한 숙주 외엔 생명체에 절대 해를 끼치지 않아요.”
“열매?”
“그러니 그렇게 질색하며 멀어지지 않으셔도 돼요. 설마 그 정도 위험도 생각 안 했을까 봐요. 전 유능합니다. 무려 1급 연구원이죠. 견습 연금술사나 다름없습니다. 사용자가 불안해할 연구물은 만들지 않아요.”
필라의 칭찬에 한껏 고조된 루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지만 고객의 월렛이 불안해하겠지”
필라가 중얼거렸다.
“애초에 드루이드가 저 기생충을 사용할 거라 생각한 거야?”
“먹잇값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다이아를 직접 벌 수 있는 드루이드밖에 없으니까요. 연금탑 물품들의 99%는 드루이드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집니다. 뭐 연금탑에도 드루이드를 겸직하는 연금술사들이 있으니 안전에 대비해야 하긴 해요.”
루프가 살아 움직이는 품질 보증서처럼 보였다. 뭐 그럼 다행이지. 열매라면 기가 막히게도 마침 내게 많이 있었다. 단 두 개만 사려고 했다가 몇 천 다이아어치 구매해 버린 그것들이.
주머니에서 설익은 열매를 꺼내기 시작했다. 게임 속 인벤토리 기능처럼 엄청난 양이 내 작은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왔다. 책상에 투명한 열매들이 빈틈없이 올려질 동안 필라와 루프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이 정도면 기생충한테 말도 가르칠 수 있겠어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조막만 한 생명체 중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난쟁이들로 족했다. 기생충이 말도 하면 어디까지 내 극혐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거야.
필라는 이 열매들을 다 써도 되냐고 물었고, 난 예비도 충분히 남겨 놨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마침 잘됐네요! 말벌들의 포식성을 기생충에 위탁시켜 놔서 배가 고프면 기생충들의 먹이를 대신 먹으려고 할 겁니다! 이제 말벌들의 주식은 벌이 아니라 열매가 되겠지만… 어르신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말벌들의 입이 고급이 됐다는 말이었다.
내가 루프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눌 동안, 필라가 말벌들과 기생충들을 융합시켜 왔다.
월렛에 설치하라며 투명한 판자 같은 것을 주길래 뭔가 했더니 벌집이란다…. 아니 생긴 건 꼭 액정 보호 필름인데?
“여기 이 암벌에 루프 기생충의 원본이 들어 있고 수벌에 감염시켰습니다. 기생충의 ‘목적’을 마음대로 조종하시려면 암벌을 벌집에 남겨 두시면 됩니다. 그리고 둘 다 배불리 먹여 놔서 당분간 먹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면서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주먹만 한 말벌들이 아닌 유심 칩 같은 작은 칩들이 자리했다. 참 복잡한 심정으로 암벌이라고 칭한 칩을 집어 들었다.
필라의 책상에 굴러다니는 옷핀으로 내 핸드폰 유심 칩 자리의 구멍에 찔러 넣으니 텅 빈 보드가 튀어나왔다. 스마트폰 기능을 상실하고 온갖 해괴한 기능들이 들어 있는 핸드폰에 유심 칩이 존재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고 여겨야 할지….
암벌이 들어 있는 칩을 넣으니 웽, 하는 벌 날개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기생충이 들어 있는 말벌이 내 핸드폰 속에 들어왔다… 오열하고 싶다….
잠들어 있는 핸드폰의 검은 화면을 빛에 이리저리 비추니 벌집 같은 육각형 홀로그램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핸드폰이 조금 예뻐졌군요, 이게 바로 연금 에디션입니다.
핸드폰 게임에서 룩덕질에 돌아 버린 고인 물이 나중엔 프로필 사진 프레임까지 돈 주고 꾸미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도 봐 주지 않아도, 나만 봐도 좋은….
유심 칩이 꽂히고 한참 뒤 앱 설치 같은 페이지가 팝업됐다. 내가 봤던 그 주먹만 한 말벌이 내 핸드폰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가끔 내가 핸드폰으로 다른 업무를 보려고 하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난쟁이들이 부디 이 화면엔 난입하지 않기를 바랐다. 말벌 눈 크기가 난쟁이만 했다. 다이아밖에 모르는 우리 난쟁이들은 자신들 몸집보다 큰 말벌 독침을 절대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 필라가 천을 걷어 소개해 줬을 때는 위협적으로 윙윙 소리를 내던 것이 조용했다. 어쩌면 필라의 말대로 배가 불러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럼 메시지를 보낼 때 얘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거지? 핸드폰 속에 있으니 터치한다고 나를 쏘거나 하진 않겠지? 나는 쫄보니까 손톱을 이용하자. 툭툭.
갑자기 말벌 위에 두 개의 버튼이 떴다.
[강화] [메시지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