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604)

“전 행정 관리원의 말에 따르면, 28번째 테라리움은 세계수의 가지의 힘이 약해질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열매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런 테라리움을 복구하여 정상 궤도로 올리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벽난로 속의 불과 같은 상황이군요. 꺼지지 않게 계속 다량의 장작을 넣어 주어야 하는 거죠.”

덤벼. 입찰하지 않으면 다이아를 쏜다. 월렛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있는데 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마치 상품을 평가하는 것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다들 28번째 테라리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는구나.

“하지만 20번대에 있다는 입지 요건이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비록 과거지만 그곳에선 불멸의 다이아몬드가 생산됐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가능성이 있겠지요. 또한 양옆의 테라리움들의 상권이 발달하여 방문객들의 수도 점차 회복될 겁니다.”

그의 말을 행정 관리원이 반박했다.

“그것보다 제이 님.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여기 계신 분들은 28번째 테라리움의 소유권을 입찰하기 위해 오신 분들입니다. 제이 님께서 도착하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신 분들이죠.”

그럼 좀 더 늦게 도착해서 애 좀 태워 볼 걸 그랬네. 감히 내 걸 넘보다니.

“최종 낙찰 금액은 수수료를 제외하고 모두 제이 님께 돌아갈 예정입니다. 수수료는 1번째 테라리움의 중앙관리행정부에서 준 권한으로 이 일을 주관하게 된 저희 18번째 테라리움이 갖게 됩니다. 이분들께서 높은 경매가를 제시하여 28번째 테라리움을 가져가시는 것이 저희들 양쪽 모두에게 이득인 거죠.”

아닌데. 내가 가질 건데.

“보고에 따르면 그 근방의 불의 개체 수가 위험 수준을 넘었다고 합니다. 수준이 낮은 드루이드들이 오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요. 그런 드루이드들을 이용하여 팔아야 하는 상품들이 처음부터 막히게 됩니다.”

“그럼 수준이 높은 드루이드들을 고용하여 정리해 두면 해결될 일이지요.”

“물론 거기에도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사방에 다이아를 투입해야 할 구멍이 넘치는군요. 여러모로 가치가 많이 낮은 테라리움이네요.”

내 테라리움 욕하지 마라. 내가 얼마나 곱게 키우고 있는데. 배가 터질 정도로 다이아를 먹여 주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이곳에 제일 먼저 달려온 쪽이 당신네 32번째 테라리움 아닌가요? 당신의 행정 관리원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있겠군요. 그는 항상 20번대 테라리움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었으니. 그런데 복구 비용을 감당이나 하겠어요? 경매에 다이아를 모두 써 버리면 다음에 폭삭 망할 테라리움이 어딘지 불을 보듯 뻔하군요.”

맞은편에 앉은 자가 살살 약 올리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남자를 보며 갑자기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턱을 괴고 말로 왕왕 싸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여기 왔을 때부터 주위에 늪이 있고 비옥한 토지가 없다며 흉을 보았지 않습니까? 농업이랑 전혀 상관없는 보석상이면서! 분명 28번째 테라리움에서 얻어 낼 불멸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있는 거겠지!”

“물론 불멸의 다이아몬드는 생산 가능한 테라리움이 극악일 정도로 희귀한 보석이긴 하지만 28번째 테라리움에서 또다시 생산될 확률 역시 아주 낮지 않습니까? 어쩌면 다시 생산할 수 없을 수도 있죠.”

“그런 것 치곤 이미 마케팅 준비를 끝내 놓은 것으로 아는데? 28번째 테라리움을 인수하기 위해 사업도 몇 개 정리한 걸로 알고 있고.”

“루머입니다. 아니, 대체 그런 것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겁니까?”

그 후로도 28번째 테라리움을 이용한 그럴싸한 사업 계획들과 테라리움을 차지하려는 다른 테라리움들에 대한 흉들을 오랫동안 듣게 되었다.

그중 이러한 설전에 참여하지 않고 처음부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포커페이스의 사람이 눈에 띄었다. 억지로 테라리움의 가치를 내려 가격을 깎을 필요 따위 없다는 태도.

내게 그나마 적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일 것 같았다. 뭔가 가진 자의 여유 같은 것이 보였다. 뭐 하는 사람일까?

회의실의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자정되기 전까지 말벌인가를 구해야 하는데.

“저, 이제 좀 시작하면 안 될까요? 볼일이 있어서요.”

내 말에 다들 말싸움을 뚝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전장에 참여하는 군인의 비장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반드시 28번째 테라리움을 얻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게 느껴졌다. 결국은 전부 내 적이었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초기 경매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알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다른 테라리움의 경제 사정은 함부로 알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제이 님께서 지분율이 100%라는 것만 알고 있지요.”

그 말에 나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경영 풋내기라든가 나 정도라면 이길 수 있겠다는.

“인수하신 금액을 알기 위해 현재 28번째 세계수의 가지와 저희 18번째 세계수의 가지를 엮을 것입니다. 가지에 넘어오는 정보들을 토대로 최초 경매가를 한 번 알아볼까요?”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실의 거대한 탁상에 나뭇잎 모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28번째 테라리움의 과수원에서 봤던 것처럼 USB 코드를 닮은 줄기가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뱀처럼 기어 나왔다.

“얼마가 됐든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며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량의 다이아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다이아가 더 생기면 난쟁이들이 극혐할 거 같은데.

핸드폰에 줄기를 연결하면서 행정 관리원에게 물었다.

“저는 경매에 어떻게 참여하면 되나요?”

“어렵지 않습니다. 제이 님께서 참여하신다면, 현재 28번째 테라리움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비용들이 초기 경매가에 덧붙여 자동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인수금이 100이고 관리 비용이 20이라면 제이 님은 120으로 경매에 참여하시는 겁니다. 그 가격에 월렛을 통해 수량을 점차 늘리시면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세계수의 가지에게 더 많은 다이아를 제시하며 가지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실 건데 정말 참여하실 건가요? 그냥 다이아를 받고 돌아가시는 것도 괜찮은데.”

나뭇잎 문양이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USB 같은 줄기를 자신들의 월렛에 꽂는 것이 보였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행정 관리원의 말을 듣고 평범한 경매가 아닌, 세계수의 가지라는 멍멍이에게 간식 많이 든 손을 선택해 달려가라는 것 같았다. 헤이, 굿 보이. 컴 온, 쮸쮸쮸.

빛을 발하는 나뭇잎 문양에 숫자들이 일의 자리부터 차례대로 주르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멈출 줄 모르고 제 몸값을 올려 가는, 28번째 세계수 가지의 숫자 던지기를 뒤로하고 참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단위가 높아질수록 해괴한 표정을 짓던 자들이 종래엔 새하얗게 질렸다. 처음부터 시종일관 같은 자세를 유지해 내가 예의 주시하던 그 사람도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저도 경매에 당연히 참여할 건데.”

그 말을 시작으로 숫자들이 폭주했다. 더 좋은 뼈다귀를 가져오신 분 계신가요? 우리 세계수 가지는 아직 제 난쟁이들의 수레를 몇 번이나 비워 낸 간식이 더 마음에 들 것 같은데.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여기서 나온 몇 개 사업들은 우리 보스가 아주 흥미로워할 것 같은데. 이렇게 돈이 남아도는 분이라 투자처를 좀 찾고 있어서요.”

숨이 넘어갈 것처럼 굴고 환각을 본 것처럼 눈을 비비는 사람들을 보며, 28번째의 세계수 가지가 얼마나 폭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현실 초월의 금액인지 알게 됐다. 또한 나라는 개인이 결코 홀로 지불하기엔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도.

우리 드라이어드들처럼 대충 넘어가 주기엔 금액이 너무… 엄청… 컸다. 실제론 없는 보스를 한 번 더 찾아야겠다.

밑밥 좀 깔았더니 덥석 문다. 그들에겐 더 이상 28번째 테라리움이 목표가 아니었다. 어디 소속이냐고 하길래 비밀이라고 했다. 솔직히 어떤 조직을 내놓아야 돈 좀 많이 갖고 있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지 잘 몰라서였다.

“아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사업 계획서를 보내 주시면 면밀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어디 보자… 어디로 보내라고 해야 될까나….”

“제가 기꺼이 중개해 드리겠습니다.”

미끼를 덥석 문 것은 참여자들뿐만 아니라 1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도 있었다. 수수료를 노리고 있었나 보다. 지금 상황으론 경매 수수료는 물 건너갔으니까. 아무도 입찰하지 못해서 경매는 끝났다. 수수료 따윈 상관없었다.

행정 관리원은 회의실도 쓰고 VIP전용 여관도 쓰고 수행원도 쓰라며, 계산적으로 굴었다. 수행원은 됐고 칼롱이란 남자가 좋은 여관을 쓰라 했었으니 VIP 전용 여관은 감사히 받았다.

내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다들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웽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어쩌면 저것이 내가 찾고자 하는 말벌과 관련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저들에겐 물어볼 수 없었다.

정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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