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604)

추첨을 진행했던 광장은 이전과 다르게 한산해 보였다. 그땐 사람이 참 많았는데. 저 멀리 내 애증의 대상과 다름없는 아티팩트 공방이 보였다. 랜덤 박스를 한정된 수량만 팔아 주었지. 내 정신 건강을 대신 걱정해 줬어!

그런데… 아티팩트 공방이라….

내 손목에 달린 테라리움 아티팩트를 들어서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링크가 끊긴 데이지2도 떠오르고… 28번째 테라리움도 떠오르고.

28번째 테라리움은 내 아티팩트에 귀속되어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데이지2도 내 아티팩트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나중에 민들레 아이들을 아티팩트로 보내 놓으면 28번째 테라리움까지 갈 수 있다고도 했고.

그리고 저곳은 아티팩트 공방이지.

내가 일개 마이 룸 꾸미기로 치부했던 아티팩트 가구들이… 28번째 테라리움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내 테라리움도 어찌 되었든 아티팩트니까? 특히 하우스라든가… 하우스라든가…. 그럼 집 같은 건물을 처음부터 지어야 되는 수고를 조금 덜게 될 수도 있고?

“무슨 생각 해요?”

아무 말 없이 아티팩트 공방만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걸 보며 메스키트가 물었다.

내 가설을 슬쩍 말해 주었는데 이에 속 시원하게 답을 내줄 수 있는 드라이어드는 없었다. 지식이 많은 메스키트라 하더라도 이전 주인이 행정 관리원이었던 적이 없으니 자신은 모르는 분야라는 것이다.

모르면 일단 시험해 보면 되지! 그리고 이 결정을 누구보다도 반긴 것은 엘더였다.

노멀 필드 둘에 데저트 필드가 하나. 이전에 한 번 아티팩트 공방 쇼핑을 하긴 했지만 새로 영입한 스왐프 필드 근접인 바곳 아이를 위한 가구는 하나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를 따로 쇼핑을 보내 보려 해도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같이 데리고 다녔다. 데이지2에게 미리 내 가설을 언질해 두고 시험 삼아 노멀 필드용 벤치를 구입하여 아티팩트로 보내 보았다.

“좋은 벤치예요. 맨땅이나 폐자재 위에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좋네요!”

그리고 내 잔머리가 맞았음이 증명되었다.

내게 중요한 건 하우스. 하지만 하우스는 랜덤 박스에서만 나오지.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기억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또 뵙죠! 제가 며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아직도 인당 한정 구매 수량이 있는 것이 유효한가요? 리셋 되었다고 말해 주세요!

“드루이드님께선 안타깝게도 이번 달 한정 구매 수량을 모두 소진하셔서 더 이용이 불가하답니다. 저희 26번째 테라리움에선 도박 중독을 방지하고자 한정 구매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럴 순 없어. 아니 전 도박에 중독될 만큼 돈이 절실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근본은 본전만 찾기! 본전치기에 달려 있는데 전 나올 때까지 깔 거라 도박 중독과 거리가 멀다구요!”

떼를 써도 들어주지 않았다. 대체 굴러 들어온 다이아복을 걷어차고 대체 누가 그런 법을 정했냐고 하니까 행정 관리원이라고 하더라. 제가 4급 가드너인데 어떻게 안 되나요? 안 된다고요? 아놔….

다시 과수원에 갔다 오기엔 귀찮은데. 난 28번째 테라리움에 공방 세우면 절대 구매 제한 따윈 두지 않을 거야!

잠깐만… 행정 관리원이라고 했지? 저는 4급 가드너지요. 이곳의 26번째 테라리움의 지분을 일정량 소유할 수 있는 신분이란 말입니다.

핸드폰을 깨워 행정 관리원이 보내 둔 지분 소유 안내서를 읽어 보았다. 내가 원한 부분을 찾아냈다. 특정 구역을 지정하여 소유할 수 있으며 금액은 그곳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대체하여 정해진다고 적혀 있었다.

즉, 내가 소유하려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세금이 예를 들어 월 1000다이아면… 내가 그곳을 소유하기 위해선 1000다이아를 월마다 지불해 주면 된다고.

지분을 소유하면 그곳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소유주의 권리는 해당 테라리움의 법보다 우선되었다. 그 말은 즉, 내가 여기 공방이 속한 지역의 지분을 구매해 버리면….

“행정 관리원이 정해 둔 구매 제한 법은 내게 안 통하겠네?”

안내서 페이지를 슬라이드로 넘기니 26번째 테라리움의 전체 지도가 보였다. 지역을 터치하여 구매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상가의 공방 지역을 미친 듯이 터치했다.

여기 이제 내 거. 가격은 노 상관.

터치를 하여 활성화된 부분을 보니 내가 구매하려는 아티팩트 공방은 물론 주변의 상가 몇 개가 함께 묶여 있었다.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구매창이 곧바로 뜨진 않았다. 해당 구역의 지분 구매에 대한 최근 기간들의 세금 발생액과 구매하려는 시점을 비교하는 표가 대신 떴다. 내가 구매를 하려는 타이밍엔 그래프가 확 치솟아 있었다.

구매 금액은 해당 구역의 최근 2주간의 세금 발생 평균을 내어 책정되고, 구매자의 판단으로 가장 다이아값이 낮을 때 지분을 구매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안내 문구도 함께 떴다.

구매 당시의 금액에 맞춰 잉여 수익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추가 안내까지. 즉 보통의 구매자라면 싸게 사야 이득인 경우였다.

뭐, 그래프가 확 튀어 오른 이유는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내가 이쪽 상가를 최근 2주 이내에 다이아로 털어먹긴 했지.

안내창 한쪽에서 무언가 꿈틀꿈틀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난쟁이들이었다.

난쟁이들은 안내 문구를 곡괭이로 툭툭 치며….

[주인님! 왜 다이아값이 낮을 때 사요?]

…도저히 이해 못할 문구를 본 것처럼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본이 한정된 사람들은 당연히 지불이 가장 적을 때를 노리지 않겠니? 우리처럼 자본이 무한한 사람들에겐 소용없는 안내지만.

[주인님! 더 다이아를 많이 내야 할 때 사세요!]

[주인님! 다이아가 많이 필요하신가요?]

앞으로 며칠을 더 기다리면 구매 금액이 더 낮아질 거란 안내도 떴다. 그러자 난쟁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빨리 구매해 버리라고 소리쳤다. 남들 눈으로 본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일 거야.

터치 몇 번을 더 하니 구역의 지분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안내창이 떴다. 토지 넓이는 맵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구역들 중 가장 좁았지만, 액수는 가장 높았다. 강남의 알짜배기 땅이라도 구매한 기분이다. 제일 비쌀 때 구매했으니 잉여 수익은 생기지도 않겠지.

랜덤 박스 코너의 직원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소유주: 제이’라는 이름이 잘 보이도록 손가락 끝으로 짚어 주며.

이제 이곳은 제 겁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땅을 샀죠. 직원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이제 이곳의 수익금만큼 세금을 계속 내셔야 해요!”

“더 크게 말해 주세요. 그걸 들어야 할 애들이 있어요.”

난쟁이들이 잘 들리도록 핸드폰을 고쳐 들었다. 잘 들었지? 이제 28번째 테라리움의 다이아 흡입기 세계수 가지 외에도 고정적으로 돈을 빨아먹는 곳이 또 생겼단다. 난쟁이들이 신이 나서 수레를 더 개조하자는 함성이 들려왔다.

“뭘 한 거야? 여길 샀다고?”

엘더가 머리카락만큼 새하얘진 얼굴로 달려왔다. 판단을 잘못했어. 크게 말하되 저 녀석은 들리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내게 하등 소용없는 잔소리가 나오기 전, 그 커다란 몸뚱이의 방향을 틀어주었다. 그리고 가게의 끝에서 끝까지 가리켜 주었다.

“엘더. 자, 이걸 보렴. 전부 네 거야. 원하는 건 죄다 가져다 너의 아티팩트 구역을 꾸며도 된단다.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거리는 것이 잔뜩 있네? 내가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서 가게 문을 닫을 테니 맘 놓고 골라도 돼. 다 챙기려면 시간이 부족할 텐데 어서 가 봐.”

그러자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던 목적을 까먹고 해맑은 얼굴로 사라진다.

“물론 비용은 전부….”

“네! 제 월렛에서 빠져나가겠죠. 안 들어도 뻔해요. 이미 빨대 하나가 꽂혀 있어서 예상은 했어요.”

그리고 그 수익은 다시 제 월렛으로 돌아오겠죠. 그리고 다음 달이 되면 세금으로 또 빠져나갈테고. 돌고 도는 다이아.

“제가 이곳을 구매했으니 랜덤 박스의 인당 제한 구매 수량은…. 해제할게요!”

직원은 설마 정말로 그런 이유로 구역을 샀냐는 얼굴을 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이지요.

이제 내게 남은 건 단순 노동뿐이었다. 서로 힘 빼지 말고 어차피 박스가 전부 오픈될 거, 하우스가 들어 있는 상자를 알려 달라 했으나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전부 일일이 열어 주어야만 했다.

가게 문을 닫아 보는 사람도 없으니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바곳이 날 따라 옆에 앉았다.

“내겐 운발이 좋은 드라이어드가 둘이 있는데 넌 어떨까 궁금하네. 한 번 까 볼래? 마음 가는 대로 다 까 보렴. 이건 울타리 박스라는 건데 상자에 울타리만 들어 있지만 가끔 다른 게 나오기도 하는 상자야.”

크… 이 손맛. 사실 울타리가 나올 걸 알고 있지만 다른 무엇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있는, 두근거리는 손맛.

바곳은 줄줄이 울타리 박스를 열었고 이 아이도 운 하나만큼은 나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바곳은 울타리 박스가 꽝이란 걸 알 리 없었다. 그저 상자를 여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물건들이 나오는 것을 신기해할 뿐이었다.

“우린 참 많이 닮은 것 같아. 이것 봐. 나도 여는 것마다 울타리만 나오고 있어. 완전 똑같지? 심지어 내가 깐 상자에서 하얀 울타리가 나오니 네가 깐 상자에서 하얀 울타리가 나오는 것도 똑같아.”

상황이 웃겨서 실실 웃음이 세어 나왔는데, 마주한 바곳의 얼굴에도 작게 미소가 여렸다. 늘 울상에 침울함이 가득했던 볼도 발갛게 불을 피웠다. 아이는 기뻐하고 있었다.

“내가 한정된 수량의 상자에서 울타리를 얻으면 그렇게 기쁘진 않았는데.”

바곳의 표정이 바뀌려고 했다.

“내 아티팩트만 꾸밀 때 말이야! 울타리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28번째 테라리움은 자재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지. 많이 파괴되었기도 하고. 여기 26번째 테라리움을 보면 외곽에 울타리도 많이 세워 놓고 담도 쌓아 놓았잖아?”

나는 바곳이 들고 있는 울타리가 담긴 상자를 함께 잡았다.

“네가 발견한 이 울타리들이 28번째 테라리움엔 아주 많이, 많이 필요할 거란 말이지! 지금 완전 잘하고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내가 할 일을 도와주고 있잖아? 네가 도와주고 있어서 너무 고마워!”

많은 칭찬. 바곳과 나의 친밀도 향상에 꼭 필요한 교감. 지금 상황이 내가 칭찬을 쏟아부어도 많이 어색한 상황이 아닌 게 맞지? 아이도 납득할 거야. 바곳의 볼이 다시 발갛게 물들었다.

울타리를 한 뭉텅이씩 아티팩트로 집어넣으니 데이지2가 앓는 소리를 했다.

“둘 곳이 없어요!”

쌓아 둔 상자를 거의 대부분 소진할 때쯤에 예쁜 오두막이 튀어나왔다. 이건 운이라기보단 압도적인 물량에 결국 나와야 할 것이 나온 격이었다. 노멀 필드 드라이어드의 회복 속도를 높여 주고 안정감을 주는 아티팩트 가구.

가로등이며 벤치며 조경물들을 한 차례 받아 낸 데이지2는 오두막을 넘길 때쯤엔 더 이상 아티팩트 가구들을 수용하기엔 28번째 테라리움의 복구도가 너무 낮다며 스톱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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