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604)

그에 따른 대답은 단델리온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준 퀘스트를 완료한 후 군락지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린 민들레 드라이어드의 유해나 다름없는 두 개의 다이아를 건네자 그녀는 슬픈 표정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군락지의 경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어요. 제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구하러 가기에는 너무 늦었지요.”

그녀의 슬픔에 동화된 다른 민들레 아이들도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불에 타 버린 아이들의 영혼은 돌아올 수도, 그렇다고 세계수의 품으로도 갈 수 없답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복수를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의 영혼은 제가 마음속에 묻어, 훗날 세계수로 돌아가게 될 때 함께 품고 가겠습니다.”

단델리온은 다이아를 내게 돌려주려고 했다.

“이 물건은 제게 필요 없답니다. 이렇게 정제되어 굳혀진 세계수의 수액은 저희가 사용할 수 없어요. 다만 드루이드님껜 필요하겠죠. 이걸 이용해 드루이드들은 인간들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또한 그렇게 돌고 돌아 언젠간 세계수로 도착하겠죠.”

내가 저 다이아를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나의 강한 만류에 두 개의 다이아는 단델리온의 손수건에 싸여 사라졌다.

“데이지 드라이어드에 대해 물으셨죠?”

나는 다른 두 드라이어드와 달리 데이지는 제한되어 있는 스킬이 없나 물었다. 다이아를 주고 난 후 무겁게 깔리는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 환기시키고 싶었다.

“뿌리의 한계 때문에 제한되어 있는 기술은 없어요. 제가 알고 있는 데이지 종이라면 말이에요.”

데이지가 그 말에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럴 순 없어! 등급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나는 거였어?

“하지만 새로 얻을 수는 있습니다. 저처럼.”

단델리온의 손끝이 데이지의 이마에 살풋 닿았다. 단델리온의 화관이 자리한 곳과 같은 위치였다.

“포레스트의 왕이 되면 된답니다. 뿌리가 작으면 여럿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뿌리로 보이게 되는 거예요.”

그 말에 데이지는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단델리온은 바위 아래에서 모양이 뭉툭하고 푸른빛이 도는 크리스탈 병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꼭 브랜드 향수병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병 안에 뽀얀 진주색의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액체는 군락지의 중심으로 새어 들어온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저게 퀘스트 보상인 걸까?

“우리 민들레 드라이어드들의 힘이 담겨 있는 파나케이아(Panacea)입니다. 우리의 모체는 많은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되는 만큼, 모체의 힘을 받아 태어난 드라이어드들도 회복의 특성을 가지게 된답니다. 이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특수한 병에 제 회복의 힘을 불어넣어 만든, 제 힘의 집결체랍니다. 알려진 대부분의 질병은 물론 드라이어드의 특수한 힘으로 걸린 몇몇 병들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오… 언뜻 들으니 만병통치약 같은 대단한 아이템을 얻은 것 같은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

아이쿠, 뭐 이런 걸 다…. 병에 걸려도 이거 한 병이면 뚝딱이라는 거죠? 이 무슨 모든 병원이 문 닫는 소리를…. 드라이어드에 의해 걸린 병은 디버프 같은 걸까?

내가 파나케이아 병을 받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드라이어드들도 흥미로운 눈으로 구경을 했다.

그중 엘더가 묘하게 반응이 컸다. 예쁜 에메랄드색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갖고 싶다는 뜻을 열심히 피력했다.

안 줘. 반짝반짝 빛나면 다 갖고 싶니? 응? 까마귀도 아니고.

“엘더도 회복형이잖아. 이런 거 만들 수 있어?”

“…나와 저 드라이어드는 같은 회복형이라고 해도 특성이 조금 달라. 물론 나도 비슷한 힘은 낼 수 있어. 이런 다이아 병에 힘을 농축시켜 넣는 것은 못하지만.”

“헐! 이게 다이아로 만든 병이라고?”

설마 푸른빛을 띠는 반짝이는 모든 물건을 버릇처럼 다이아라고 말하진 않겠지? 진짜 다이아로 만든 병이라는 뜻이겠지? 아니 다이아로 이런 병을 만들 수도 있어?

“알아보셨군요. 맞습니다. 그 다이아로 만든 병은 아주 오래전에 군락지를 방문한 연금술사분께 얻은 것이랍니다.”

“드라이어드의 힘이 빠져나가지 않고 한곳에 뭉쳐 있으려면, 힘의 근원지와 동일한 환경인 세계수의 수액 속만 한 것이 없지. 그리고 이 약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냐. 저 드라이어드처럼 오랜 세월을 살면서 계속 힘을 불어넣어야 이만큼의 한 병이 만들어지는 거지.”

“오….”

다행히 병원들은 자리를 보전하겠군! 엘더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단델리온은 얼마나 오래 산 걸까? 오랜 세월을 투자해야 하는 이 파나케이아를 만들어 낼 정도면. 확실히 단델리온의 모든 것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이렇게 귀한 걸 제게 줘도 돼요?”

“그에 맞는 도움을 제게 주셨으니 상관없습니다. 군락지의 안전을 지켜 주셔서 감사해요. 파나케이아는 또 만들면 된답니다. 그리고 제 성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헉 여기서 더 준다고? 이미 이 파나케이아만으로도 엄청난 보상 아냐? 드라이어드를 삼켰던 불에 좀 고전하긴 했지만 그 후로는 수월해서 체감 난이도는 낮았던 것 같은데….

단델리온은 자신의 기다란 스태프의 상단을 잡았다. 그러곤 스태프의 한 부분을 망설임 없이 똑 떼어 냈다. 무기를 훼손하는 그 행동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아니 그걸 그렇게 다뤄도 돼요?

떼어 낸 부위엔 하얀 솜털과 녹색 줄기가 함께 있어서, 얼핏 보면 커다란 민들레 꽃씨처럼 보였다.

“이걸 드릴게요.”

“무기를 부수면 어떡해요…? 이것도 엄청 귀한 것 아니에요?”

성능 떨어지면 어떡해요? 저에게 너무 과하게 퍼 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무척이나 탐욕적인 인간이라 일단 감사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락지 주변 청소도 좀 하고 쓰레기도 좀 줍고 그럴걸. 물론 쓰레기는 없는 깨끗한 들판이었지만.

“물론 귀한 것은 맞겠죠. 이젠 다시 이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순 없으니까요.”

아니 그럼 넣어 둬요. 넣어 둬. 이게 뭔 줄 알고 제가 덥석 받아요. 내 다이아 낭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급 아이템이면 모르겠지만, 제 살을 깎아서 주는 아이템이면 부담이 되잖아욥!

“이건 단순한 성의가 아니랍니다. 드려야 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드리는 거예요.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엔 다이아를 거절할 때처럼 만류해도 먹히지 않았다. 단델리온에게 하얀 솜털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스태프 파편을 건네받았다.

“제 모체의 잊힌 또 하나의 꽃말은 ‘신의 계시’. 아주 먼 옛날, 최초의 모체 민들레는 지상의 모든 것이 모두 잠겨 사라질 뻔한 거대한 홍수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답니다. 신의 안배로 꽃씨를 보전하여 물에 잠기지 않은 안전한 곳에 도착한 후 싹을 틔울 수 있었다고 해요. 그 후손들이 우리 민들레들이지요. 현재의 어린 묘목 드라이어드들은 모를 이야기지만, 왕이 된 저는 그 신화와 함께 또 하나의 꽃말과 힘을 계승받게 되었습니다.”

단델리온이 말한 신화는 예전에 접한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땐 신화나 전설에 흥미가 충만했던 상태라 꽃이나 요정이나 신들에 대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민들레에게 들으니 감회가 색달랐다. 진짜 있었던 일 같잖아?

“그 파편을 전달해 드린 것은 당신에게 드리는 저의 계시의 힘. 파편 또한 계시가 담긴 물건. 특별한 힘으로 또 하나의 힘을 깨우치게 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 포레스트의 왕인 단델리온이 준 물건이니 분명 대단한 물건이겠지만…. 솔직히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완전 위대한 물건일 거 아냐? 그런데 또 하나의 힘을 깨우치게 한다니.

나는 어느새 민들레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데이지를 손을 휘휘 흔들어 불러왔다. 그리고 단델리온의 스태프 파편을 갖다 대어 보았다.

뭐…. 기대와는 다르게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안 되네. 데이지의 또 하나의 힘이 깨어날 줄 알았는데. 이게 아닌가?

나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단델리온을 바라보았다.

이게 안 되는데요. 어떻게 쓰는 물건이죠? 설마 레벨 제한 있는 건 아니죠? 그럼 좀 슬플 것 같은데요.

단델리온은 스태프의 파편으로 데이지의 이곳저곳을 두드려 보는 내 행동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제게 계승되어진 정보는… 방금 말씀드린 것이 전부랍니다. 계시의 힘을 제대로 사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인지 두 가지 물건을 드루이드님께 전달해야 한다는 느낌밖에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힘을 깨우치게 한다는 의미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답니다.”

만약 게임이었으면 이 아이템 정보에 [???]가 떠 있는 것이 아닐까? 난 물음표에 진절머리가 난 상탠데…. 이거 완전 계륵이네. 대단한 물건 같은데 정작 어디에 쓸지를 몰라.

그래도 단델리온이 내게 꼭 이 아이템을 주고 싶어 했으니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뭐. 주머니 속에 잘 넣어 두었다. 솔직히 용도가 확실한 파나케이아만으로도 난 만족스러운 퀘스트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단델리온은 스태프를 높이 들어 안개의 일부를 회수했다. 우리가 군락지 주변의 불을 전부 해치움으로써 그녀가 좀 더 힘을 아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퀘스트도 완료했고 군락지 구경도 끝나서 마저 28번째 테라리움으로 향하는 길을 떠나려 했지만… 내게 크나큰 난관이 생겼다.

“산이라고 말 안 했잖아?”

“이게 어떻게 산이야? 그냥 평지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잖아?”

나와 엘더는 잡화점에서 산 지도를 펼쳐 놓고 갈 길을 마저 체크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고등학교 때 대충 배운 등고선이 보이더라.

아니 이거 지형의 높낮이를 체크하는 그거 아닙니까? 지리 시험 등수 밑바닥을 깔아 주는 나도 이게 뭔 줄 아는데요. 지도 한 번 보고 다 외웠다고 했으면서 왜 가는 길에 산이 있다는 걸 안 말해 주었니?

“나한텐 평지보다 10미터만 높아도 산이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엘더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내가 얼마나 계단이며 등산이며 오르는 것을 혐오하는데! 고등학교 땐 가까운 곳을 내버려 두고 일부러 평지에 있는 곳을 지원했을 정도라고!

대학교 땐 어쩔 수 없이 점수 맞춰서 갔기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진짜 귀찮을 땐 수업을 위해 건물을 오갈 때 택시를 탔다. 사람이 몸의 편안함을 위해 돈을 포기하게 되더라.

“케이블카는 없나?”

엘더를 보아하니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없네. 없구나.

지도만 봐도 벌써 힘들다. 운동 부족으로 지구력도 달리고 지각해서 뛰어갈 때 외엔 과한 움직임도 귀찮아하는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불에 막 따끈하게 구워지기도 해서 땀으로 온몸이 찝찝한데 시원하게 샤워도 못 하고.

내가 말만 안 했지,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하고 있자 메스키트가 부드럽게 중재에 나섰다.

곧 날이 어두워질 것 같으니 민들레 군락지에서 하루를 보내며 휴식하자고. 그래! 내일이 되면 또 기분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

오늘 여기서 민들레꽃들로 힐링하면 힘이 샘솟아서 산을 열심히 오를 수도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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