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604)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 열매가 다치면 안의 드라이어드도 다쳐.”

엘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메스키트가 엘더를 작게 질책했다.

“제이를 불안하게 만들지 말렴. 걱정 마요, 제이. 제이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예요. 앞만 보며 걷는 거예요.”

메스키트는 떨어뜨렸던 랜스와 방패를 다시 회수했다. 그러곤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가더니 크게 발을 한 번 굴렸다.

그녀의 앞으로 지반이 크게 파도치며 엘더의 꽃가지들에 꽂힌 끔찍한 그것들을 떠밀어 버렸다. 뒤틀린 땅에서 떨어져 나온 흙무더기들은 그대로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비로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내 여린 주인, 제이. 익숙해져야 해요.”

메스키트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끔찍한 광경을 자신의 얼굴로 한 가득 가려 버리며 진한 향기를 뿜었다.

“앞으로 제이가 갈 곳에선 저것들보다 더한 것을 볼 수도 있어요. 우리 드라이어드들은 제이를 위해서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어요. 내 주인을 가로막는 적은, 설령 하나의 가지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라 해도 제 랜스로 뚫어 버릴 거예요. 그리고 제이는 이걸 당연히 여겨야 해요.”

“널 해할 수 있는 건 없어.”

“맞아요. 내 주인, 제이. 당신은 우리의 생명이자 존재의 가치가 되는 작은 세계수나 다름없으니까요.”

엘더와 메스키트가 내 양옆에 나란히 섰다. 둘은 큰 체구를 이용하여 양옆의 처참한 무덤들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난 메스키트의 말처럼 앞만 보며 걸었다.

내 두 손 위엔 따뜻한 빛을 뿜는 데이지의 희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과수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내 조급한 마음이 담겼다. 나중엔 거의 날듯이 뛰는 속도가 되자 메스키트가 차분히 진정시켰다. 데이지를 빨리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는 길은 메스키트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길쭉한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가면 됐다.

엘더가 상점 이곳저곳을 스태프로 가리키며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가자고 졸랐다. 누구 다이아로? 내 다이아로.

너는 내 드라이어드가 맞지만 내 재산은 네 것이 아닌데요. 엘더가 예쁜 얼굴로 날 보며 웃었다.

“사 줄 거지?”

하지만 내 다이아는 썩어 넘치니 기꺼이 사 줘야지, 그럼, 그럼. 물론 올 때는 데이지의 손을 꼭 잡고 와야지. 엘더에게 노래하는 황금 새 조각상이 대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하는 바람에 엘더 버릇이 자꾸 나빠지면 어떡하지? 내가 진득하게 바라보자 엘더가 의아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았다.

쓰고 있던 후드가 마침 불어온 바람에 날려 벗겨지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예쁜 하얀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뒤로 후광이 비추는 줄 알았다. 버릇은 나빠져도 얼굴은 죄가 없으니까 괜찮다. 엘더 얼굴은 잘생기고 예쁘니까 무죄다. 속물인 내가 나빴다. 내가 다 나빴다.

마을 사람들을 죄다 모은 것처럼 붐비던 과수원이 이젠 많이 한적했다. 열매를 따고 볼일 끝난 사람들이 해산했기 때문이다. 무상으로 지급되는 열매를 얻기 위해 빙빙 돌려 줄을 세웠던 곳도 텅 비어 있었다.

다만 그곳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며 뒷정리를 하는, 매우 고단해 보이는 안내원들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날 알아본 안내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러곤 정중히 인사했다.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내 드라이어드들이여, 보아라! 이것이 위대한 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메스키트가 “제이, 혹시 어깨가 아픈 건가요? 제가 부축해 줄까요?” 하고 다정하게 물어 와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포트, 드라이어드 포트를 이용하러 왔는데요.”

“아, 열매를… 이미 가지고 계시군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난 안내원의 얼굴에 아주 빠르게 스쳐 간 실망한 기색을 보았다. 실적으로 고생하는 것은 내 세계나 게임 속이나 다름없는 서비스업의 비애였다. 아니 근데 제가 이미 한바탕 쓰고 갔잖아여?

다시 찾은 온실은 여전히 따스한 빛과 청량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엘더도 메스키트도 매우 평안한 얼굴이 되었다.

온실은 세계수를 흉내 냈다고 했지. 흉내만으로도 이렇게 환상적이라면 진짜 세계수는 얼마나 더 대단한 걸까?

내 드라이어드들은 나를 보고 작은 세계수라고 하였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다이아를 잔뜩 가진 것 외엔 평범했다.

아니 다이아를 산더미만큼, 아니…. 음, 산보다 큰 게 뭐가 있지? 하여튼 아주 많이 가진 것 외엔 평범했다.

“내 주인, 제이. 어서 이곳으로.”

메스키트가 드라이어드 포트 옆에서 날 불렀다. 나는 잡생각을 멈추고 황급히 포트로 향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흙 위로 데이지의 열매를 조심히 올려 두었다. 내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다정한 메스키트의 눈빛이 따라왔다.

“아!”

나는 황급히 안내원을 불렀다.

“절대! 절대 데이지 앞에서 등급에 대해 말하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마요!”

또 노멀 등급이 어쩌고 거름으로 저쩌고 이야기해서 데이지의 안 좋은 기억을 들쑤시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내 말에 안내원은 주의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내 작은 붉은 꽃을 다시 만날 때가. 흙을 만난 열매는 물기를 털어 내는 병아리처럼 바르르 떨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봐. 어쩜 데이지는 열매도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잔잔하게 푸른빛을 발하던 석판이 데이지의 유전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작은 글자들이 무수히 석판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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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데이지 (Red Daysi)

칭호: 사랑스러운 봄의 요정

꽃말: 희망, 평화

자생지: 노멀 필드 (★★★☆☆)

필드 발생 확률: high (☆☆☆☆☆)

가치: 관상 (★★☆☆☆)

특성: 공격형

최종확정등급: 노멀(Normal)

어느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도록 개량되었다.

4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작고 붉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탐스럽게 둘러싸여 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데이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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