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리움 어드벤처> 사전 예약 페이지의 화려한 일러스트가 현실로 변화하면 딱 저런 모습이겠지.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에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자체 보정인지 은은하게 후광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기가 막히게 잘생기고 예쁜데, 입을 여니까….
“이 몸을 개화시킨 게 겨우 후줄근한 너라고?”
인성…? 목소리도 좋다고 칭찬해 주려다가 쏙 들어갔다.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러는 거 있냐?
“원래 드라이어드들은 저렇게 싹수가 없나요? 데이지는 안 그랬는데. 혹시 인성과 등급은 반비례하나요?”
난 엘더 플라워 드라이어드가 들으라는 듯이 안내원에게 물었다. 내 대답에 드라이어드의 한쪽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친밀도 때문입니다. 막 세상에 불려 나온 드라이어드는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이죠. 자신이 충성할 드루이드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자체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드라이어드들이 있긴 하지만….”
기다란 로브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걸어온 엘더 플라워가 내 앞에 섰다. 키도 오죽 커서 내가 하염없이 올려다봐야 했다. 달콤한 향기가 진득하게 코끝에 눌러 붙었다. 엘더 플라워는 스태프로 내 코트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이 다 낡은 옷은 또 뭐야? 난 돈이 아주 많은 드루이드를 바랐다고. 너 같은 거지가 아니라. 이 몸은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이 우러러보는 신이 내린 선물. 세계수의 가장 고귀한 축복을 받고 태어난 몸이시다. 난 나에게 풍족한 대우를 해 줄 수 있는 드루이드를 원해. 황금으로 지어진 신전과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욕실, 나를 본뜬 황금 동상도 좋겠군.”
나는 안내원에게 이것 좀 보란 듯이 엄지로 엘더 플라워를 가리켰다. 이 인성이 정말 친밀도의 문제라고? 이 싹퉁바가지가?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니라 신이 내린 주둥이 같은데?
“자의식이 매우 강한 드라이어드군요. 그에 따른 친밀도 공략법이 있을 겁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지. 드라이어드의 낮은 친밀도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저 녀석에게 느끼는 감정 자체가 최악이었다.
이거 다시 무를 수 있나요? 나는 다시 엘더 플라워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진짜 내 세계에서나 보던 연예인보다 잘생겼다. 오똑한 코에 짙은 눈썹, 기다란 속눈썹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에메랄드색 눈, 새하얗게 깨끗한 피부에 붉은 입술, 날렵한 턱선까지.
얼굴 하난 끝내준단 말이다. 모델처럼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무르기에는 저 얼굴이 아까웠다. 인성만 어떻게 하면 진짜.
“나를 포기하도록. 나는 다시 세계수로 돌아가 적당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뭐? 이미 뽑은 거 무를 수도 있어요?”
“영혼의 연결을 끊으면 드라이어드가 야생 상태가 되긴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힘을 잃고 다시 세계수로 돌아가겠죠. 다만 드라이어드들에게 그렇게 좋은 경험은 아닐 겁니다. 야생으로 내버려진 드라이어드는 혹독한 추위와 끊임없는 갈증,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병충해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할 테죠.”
이번엔 안내원이 내가 아닌 엘더 플라워를 향해 말했다. 꼭 표정과 말투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느낌이었다.
“너 같은 녀석과 함께 다니느니 차라리 그게 나아. 나는 가난한 주인과 함께 골골대며 처량한 모험을 떠나고 싶지 않아.”
듣자 듣자 하니까 저게 아까부터 자꾸 내가 가난하다고 말하는데, 응? 내가 다 달려도 돈에선 남들보다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 있거든?
물론 내가 손에서 불도 뿜고 물도 뿜고 하는 건 못 해. 네놈이 스태프를 휘둘러도 내가 막을 만한 호신술도 없긴 해. 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다이아로 후려 던지기 정도는 할 수 있거든?
모 게임에는 돈 던지기 스킬도 있는데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 파워가 세지는 건 알고 있는지? 내가 가진 다이아 채로 널 때리면 MAX 대미지가 뜬다 이거야!
나는 저놈이 말하는 부의 기준이 다이아가 맞나 확인해 보기 위해 주머니에서 다이아 하나를 꺼냈다.
오, 시종일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던 엘더 플라워의 얼굴이 단번에 바뀌었다. 식물치고 너무 속물적인 것 아닙니까?
다이아 한 개를 손바닥에 올리고 주머니에서 몇 개를 더 꺼내 올려 보았다.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저 에메랄드색 두 눈에 푸른 다이아가 한가득 담겼다.
아이고, 눈도 못 떼네. 다이아 한 움큼을 꺼내 모두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언뜻 보니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였다.
엘더 플라워의 얼굴이 순해졌다.
“야, 너 진짜 알기 쉽다.”
“그거 다 네 거야?”
“네 꽃말의 열중은 다이아에 대한 열중이었니?”
내가 비꼬아도 되받아치지 않고 다이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이아를 든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엘더 플라워의 눈이 휙휙 잘도 따라온다.
데이지가 이럴 땐 마냥 귀여웠는데 저놈이 하니까 하찮아 보인다. 콧대가 드높아서는 다이아에 환장하는 꼴이라니. 속물도 저런 속물이 없다.
손바닥을 기울였다. 위에 가득 올려진 다이아가 와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 예쁜 쓰레기. 갖고 싶니?”
으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행동에 엘더 플라워의 자존심에 금이 간 모양이었다.
그러게 누가 첫 만남부터 사람을 그따위로 대하래? 그걸 곧이곧대로 넘어가 주기엔 이쪽 인성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으로 뽑은 드라이어드라 아주 아주 곱게 정성 들여 키워 줄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지.
핸드폰을 꺼냈다. 슬립 중인 핸드폰을 깨운 후 다이아를 떨어뜨린 바닥에 핸드폰을 털었다.
내가 손바닥에서 털어낸 것보다 많은 다이아가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엘더 플라워는 물론 안내원의 눈도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럼 주워. 무릎 꿇고. 부족해? 더 줄까?”
바닥의 고급스러운 금박 문양이 와르르 쏟아 낸 다이아로 덮여 가려졌다. 자존심을 지키기엔 액수가 너무 컸나 보다. 엘더 플라워의 무릎이 털썩 꿇렸다. 금세 순한 눈을 하고는 날 올려다보았다.
“이거 다 나 줄 거야?”
미친…. 모질게 대하려 했는데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 올려다보는 게 또 미친 듯이 잘생겼다.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얼굴 덕에 개새끼에서 강아지로 상승한 엘더 플라워였다. 속물적인 점도 다루기 쉽다는 장점으로 바뀌었다.
오냐 오냐, 다 줄게. 머리 위로 핸드폰을 한 번 더 털어 주자 다이아 비가 내렸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또 미치도록 예뻐서 손이 갔다. 후드를 쓴 머리를 토닥여도 얌전했다.
첫 만남에 비하면 손바닥을 수백 번 뒤집은 반전적인 태도였다. 잘생겨서 봐준다, 진짜. 그래, 내치기에는… 너무 예쁘잖아. 속물적인 것은 나였어.
“올바른 공략법을 찾으셨군요.”
“얜 그냥 돈 많은 드루이드가 소환했으면 다 된 거 아니었을까요?”
“그럼 맞는 주인을 잘 찾은 거겠군요.”
“못 볼꼴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얘가 다 못 주운 다이아는 음… 과수원 측에서 회수해도 돼요.”
“그건 안 되지!”
엘더 플라워가 다이아를 줍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의 로브 허리에 매인 주머니에 다이아가 쏙쏙 들어갔다. 행동이 하찮은데 예뻐서 봐준다… 진짜 예뻐서 봐준다.
“내 드라이어드가 그러고 있으니 쪽팔리니까 그만 줍고 일어나. 나중에 따로 줄게. 바닥에 떨어진 것보다 더 줄게.”
그러자 얌전히 일어나서는 내 옆에 조신하게 섰다. 하지만 아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다이아들을 바라봤다. 간식으로 강아지를 조련하는 느낌이었다.
“남은 열매도 마저 개화시키실 건가요?”
“뭐? 이렇게 완벽한 나 말고 더 드라이어드가 필요해?”
“넌 힐러잖아. 회복형. 공격형도 하난 있어야지.”
“나 싸움도 잘해.”
“그 부러질 것 같은 스태프로 휘두르면 적보다 네 스태프가 먼저 부러지겠다. 너 설마 다른 드라이어드들한테 갈 다이아가 아까워서 그래?”
분한 표정을 짓더니 휙 고개를 돌려 버린다. 진짜 알기 쉽다.
“걱정 마. 내가 가진 다이아는 네 주머니를 채우고도 훨씬 남아. 여기 온실, 아니 과수원을 다 다이아로 채워도 남을걸?”
그런데 그렇게까지 다이아를 쏟아 내면 이 세계에 다이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
엘더 플라워는 내 말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날 바라보았다. 꼭 사랑에 빠진 눈과 같았다. 정확히는 다이아와 사랑에 빠진 눈이겠지.
여기 테라리움 아티팩트 안에도 금으로 된 신전을 만들어 줄 수 있나? 저렇게 좋아하니 금으로 만든 동상도 세워 주고. 헐, 이거 완전 달기에 빠진 주왕이 주지육림을 만들 때의 마음 아냐?
얼굴이다. 저 얼굴이 위험하다. 저것은 내 정신을 휘저어 놓는 해로운 얼굴이다. 살면서 저렇게 잘생긴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야지. 완전 면역이 없잖아?
허튼 생각은 잊어버리게 포트로 향했다. 남은 열매 하나. 내 바람처럼 공격형 드라이어드가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꿍얼대는 엘더 플라워를 뒤로 하고 열매를 포트 위의 흙에 조심히 올려 두었다. 엘더 플라워가 태어날 때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던 열매가 점차 금빛으로 변했다. 아싸! 또 드라이어드다!
황금빛 앙증맞은 새싹 두 장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이번엔 엘더 플라워같이 인성 망한 드라이어드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데이지의 반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석판에 푸른빛이 진해졌다. 엘더 플라워를 감정했던 것만큼 장황한 글자들이 주르르 새겨졌다.
벨벳 메스키트 (Velvet Mesquite)
칭호: 강인한 사막의 수호신
꽃말: 강인한 마음
자생지: 데저트 필드 (★★★★★)
필드 발생 확률: low (★★★★★)
가치: 식재, 관상 (★★★★☆)
특성: 방어형, 지원형
최종확정등급: 스페셜(Special)
사막에서 뿌리가 지하수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관목이다.
4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최대 9미터 이상까지 자라는 거대한 나무. 기다랗고 통통한 노란 꽃들이 드리워져 장관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