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25화 (1,025/1,027)

< 1025화 7. 첫 번째 고난 (3) >

* * *

악령들은 강력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안이 버겁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신전 안의 악령들과 제사장은 오히려 신전 바깥에 있던 악신의 군대보다 훨씬 더 약했으니 말이다.

촤아악-!

‘하긴, 밖에 있던 놈들 수준이었으면…… 거의 퀘스트 깨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거겠지.’

그리고 이안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처음 이안이 신전 밖에서 싸울 때에는 전장에 세카이토의 신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때문에 신들의 군대가 중간계인 악령의 땅에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세카이토가 펼친 신역이라지만 악신들 또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결국 신전 바깥에서 이안이 상대했던 적들은, 신격을 가진 존재들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이안이 신전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카이토의 신역이 사라진 상태였고.

때문에 이안이 상대하는 악령들은 전부 중간자의 위격만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악신의 군대들보다 훨씬 약한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에카리스 신단의 ‘제사장’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제사장’의 생명력이 192,801만큼 감소합니다.

-‘제사장’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하여 신단을 지키는 제사장까지도 안정적으로 처치해 낸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첫 번째 고난이어서 그런가? 책정된 난이도에 비해 좀 쉬운 감이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아주 여유롭게 임무를 성공시킨 것은 아니다.

제사장을 베어 내는 마지막 순간, 이안의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으며.

생명력 또한 절반 이하까지 떨어져 내려 있었으니 말이었다.

‘엘이라도 소환할 수 있었다면…… 활력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하지만 항상 한계 난이도의 퀘스트를 플레이해 온 이안에게 큰 위험 없이 마무리된 첫 번째 임무는.

아무래도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띠링-!

-에카리스 신단의 제사장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지막 임무가 발동합니다!

이안의 대검에 가슴팍이 갈라진 제사장이 힘없이 쓰러지자.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황금빛으로 터져 나왔다.

-최종 임무 : 신단에 봉인되어 있는 ‘용천주’의 봉인을 해제하십시오.

-시간제한 : 5분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시, 용사 ‘레무스’의 용맹을 계승합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지체 없이 신단으로 뛰어올랐다.

타탓-!

제사장과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이안은 용천주의 위치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으니까.

‘봉인 해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어찌되었던 5분이라는 시간제한은 절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었고.

때문에 이안은 최대한 서둘렀다.

그리고 계단의 꼭대기에 올라 용천주의 앞에 선 순간.

이안은 봉인 해제의 방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띠링-!

예의 익숙한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한 줄의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봉인의 핵에 ‘용천대검(龍天大劍)’을 꽂아 넣으면, 용천주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안은 용천대검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검신(劍身)에 왠 용 문양이 새겨져 있더라니…… 레무스의 이 대검이 용천대검이었나 보군.’

등에 걸어 메고 있던 용천검을 다시 뽑아 든 이안은 침착하게 봉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보주를 확인한 뒤, 그 아래 힘껏 대검을 꽂아 넣었다.

콰쾅- 콰드드득-!

허공에 부유하는 보주를 휘감은 시커먼 기운들은 보주의 그림자 아래로 휘몰아치며 이어져 있었고.

그 시커먼 그림자가 봉인의 핵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퍼석-!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용천’의 힘이 악신의 기운을 분해합니다.

-악신 ‘에카리스’의 봉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현재 봉인 해제율 : 0.75%

이안의 검이 정확히 어둠의 그림자를 파고들자 서서히 검은 기운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봉인 해제율 : 3.38%

-현재 봉인 해제율 : 3.77%

……후략……

하지만 이안은 임무가 순조롭게 풀릴수록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뭔가 있을 텐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봉인 해제 속도대로라면 넉넉잡아도 2분 안쪽으로 보주의 봉인이 해제될 것 같았는데.

제한 시간은 그 두 배가 훌쩍 넘는 5분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세 가지 임무 중 마지막 임무인 봉인 해제가 이렇게 싱겁게 끝날 리 없는 것.

구우우웅-!

그리고 그런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이안의 근처로 스산한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

-신전의 주인 ‘에카리스’가 분노하였습니다.

-악신 ‘에카리스’의 사자(使者)들이 당신을 신단에 강림합니다.

파아아앗-!

봉인 해제율이 30%에 다다르자 신단을 통해 나타난 새카만 그림자들이 이안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한 가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쩌지? 검을 뽑아야 하나?’

지금 이안이 빙의한 레무스에게는 이 용천대검이 유일한 무기였고.

이 무기 없이 에카리스의 사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고민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감히 에카리스 님을 모독하다니!

-건방진 중간자여. 그대의 영혼을 소멸하리라!

에카리스의 사자들이 순식간에 봉인까지 도달했을 뿐 아니라 지금 검을 뽑아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검을 뽑으면 봉인 해제율이 초기화되는지…… 그걸 지금 확인해 봐야 해.’

아직 제한시간은 4분도 넘게 남은 상황이었고.

만약 검을 뽑아 해제율이 초기화된다 하여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

악신의 사자들을 막아 내는 데 검을 사용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우선 검을 뽑아 봐야 했다.

“흐으읍……!”

이안이 검병을 다시 잡고 힘을 주자 용천대검이 그대로 어둠 속에서 쭈욱 뽑혀 올라왔다.

스르릉-!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는 이안의 두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용천대검을 회수하셨습니다.

-악신의 기운이 봉인에 생긴 균열을 메우기 시작합니다.

-현재 봉인 해제율 : 30.02%

-현재 봉인 해제율 : 29.75%

……후략……

메시지를 읽자마자 이게 어떻게 생겨먹은 시스템인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검을 꼽아 넣으면 봉인이 해제되기 시작하고, 뽑으면 다시 해제율이 올라간다라…….’

해제율이 내려가는 속도와 올라가는 속도는 이안의 체감으론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말인 즉.

검을 사용해서 전투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봉인 해제를 더 앞당길 수 있다는 뜻.

‘저 악신의 사자인지 뭔지…… 최대한 빠르게 머리통을 쪼개 버리고, 다시 봉인에 검을 꼽아 넣어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쏜살같이 악신의 사자들을 마중(?) 나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까앙-.

이제는 레무스의 몸과 용천대검에 완벽히 적응한 것인지 능숙하게 검을 휘둘러 악신의 사자들을 상대하는 이안.

까가강-!

그리고 이안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세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 * *

“오랜만의 손님이로군요, 드라키시스.”

“어떤가, 드라키. 오천 년만에 자네의 잠을 깨운 친구 말일세.”

현자의 탑 꼭대기에 있는 팔각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홀.

홀의 중앙에는 집채만큼 거대하고 투명한 보주인 ‘현자의 구슬’이 박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세 사람이 나란히 둘러앉아 있었다.

새하얀 은발의 아름다운 여성과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적안의 사내.

그리고 푸른 청백색의 머릿결을 늘어뜨린 선풍도골의 노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뭐, 아직까지는 훌륭하다네. 하지만 기대는 너무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왜요?”

“후후. 그게 자네 마음대로 될까?”

각자 확실한 특징을 가진 외모의 세 인물들은 사실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있을 뿐.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청백발의 노인의 정체부터가 이안에게 고난을 내린 고룡 드라키시스였으며.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흑발의 청년은 고대의 명왕 라키아누스.

마지막으로 새하얀 은발 미녀의 정체는 조화의 정령왕 아르테론이었으니 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신(半神)’의 존재라는 것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이 현자의 탑을 시키는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나는 마음을 비운 지 오래라네. 이제는 이 탑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수준이니 말이지.”

“후후, 하긴. 내가 영감이었더라도 이미 해탈했을 것 같기는 하군.”

“호호. 지금이야 그러실지 몰라도 갈수록 더 기대되실 걸요?”

“경험담인가, 아르테론?”

“으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초월의 길 초입을 지키는 세 명의 현자의 탑 주인들.

세 사람이 보주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이안의 활약이었다.

같은 현자의 탑에 살면서도 일 년에 한 번 마주칠까말까 한 그들이 한데 모인 이유가 애초에 이안이었으니 말이다.

현자의 탑에 중간자가 발을 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희귀한 일이었고.

탑의 주인인 세 사람에게 이것만큼 활력이 되는 이벤트도 없었던 것이다.

“흥미롭군, 흥미로워…….”

“다행히 용맹의 계승 정도는 충분히 해낼 친구 같은데요, 드라키?”

“그랬으면 좋겠구먼, 그래.”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영감.”

“물론 저 영혼이 모든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네만…… 부디 첫 번째 고난에서 미끄러져 버리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네.”

“흐음, 5천년의 기다림이 너무 허무해서?”

“뭐, 비슷한 이유라고 해 두지.”

현자의 보주 안에서는 악신의 신전에서 고난을 수행 중인 이안이 치열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대검을 휘둘러 신의 사자들을 물리치며.

어둠으로 휩싸인 용천주의 봉인을 풀어내는 이안!

세 탑주(塔主)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 모두가 고난 속의 이안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가장 무미건조한 편이던 드라키시스의 표정 또한.

이안이 악신의 사자를 하나하나 쓰러뜨릴 때마다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슬슬 두 번째 고난을 준비해야겠는데요, 드라키?”

“재밌군……! 재밌어! 빨리 다음 고난을 준비하자고, 영감.”

일곱 번째 악신의 사자가 이안의 검에 쓰러진 순간.

이안이 용맹을 계승해 내는 것은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었다.

“흘흘, 그래야겠군.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에무스의 용맹을 계승할 자격이 있겠지.”

주름진 드라키시스의 입가에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옅은 미소가 살짝 번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펄럭-!

양 손을 들어 보주에 가져다 댄 드라키시스가 슬며시 두 눈을 감았다.

-연자여……!

-그대에게 용맹의 계승을 허하노라.

이어서 드라키시스의 칼칼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 바로 그 순간.

우우웅-!

그의 손에서 퍼져 나간 시퍼런 빛의 기운이 현자의 보주를 향해 빠르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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