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1화 6. 초월자의 자격 (2) >
* * *
이안이 그토록 밟고 싶어 하던 상위 콘텐츠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이자, 수많은 콘텐츠의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필드인 성운.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필드임에도 불구하고, 성운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성운은, 중간계 그 어디에도 없지만 또 어디에도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저런 식으로 떠다니는 것이…… 성운으로 이어지는 통로였군.”
성운은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구름’이다.
그 때문에 중간계의 하늘 어디에도 존재했지만, 아무나 그 구름이 성운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조차도 이번에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칭호를 얻기 전 까지는, 특별한 퀘스트의 조건을 통해서만 성운에 입성할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자격’이 생긴 이제는 달랐다.
이안은 어디에서나 ‘성운’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을 밟고 올라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탓-!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자격을 보유하였습니다.
-‘성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소르피스 한복판에서 성운을 탄 것은 아니었다.
중간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소르피스에서 그랬다가는, 수많은 유저들에게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었다.
성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겨도 모자랄 판에,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이안은 아니었다.
‘뭐 알려진다 해도 당장 달라질 건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선점할 수 있는 건 다 선점한 뒤에 정보가 퍼지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이안이 타고 올라 선 황금빛 구름은 어느 차원계의 성운이었을까?
그러니까 이안이 성운을 타기 위해 선택한 차원계는 이안이 갈 수 있는 중간계 중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용천이었다.
이안이 처음 성운에 대해 알게 된 차원계이자, 세 가지 성물 중 첫 번째 성물을 얻었던 차원계.
그리고 성운을 밟을 수 있게 된 지금, 가장 먼저 진행하려 했던 퀘스트의 근원지인 용천.
이안은 망설임 없이 용천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성운으로 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언을 타고 날아오른 용천의 하늘에는, 황금빛 구름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우우웅-.
하여 성운을 처음 발견한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밟고 올라섰고,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최초로 성운을 밟으셨습니다.
-명성(초월)을 30만만큼 획득합니다.
-성운에 처음 입장하셨습니다.
-‘초월자의 광장’으로 이동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눈앞으로 황금빛 섬광이 뿜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이안의 시야가 그것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눈앞이 새하얗게 변한 이안은 자연스레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이어서 어딘가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그 시간 동안, 이안은 성운에 오르기 전, 용천에서 가장 먼저 만났던 한 NPC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여, 오랜만입니다.”
“아니, 자, 자네는!”
소르피스의 로터스 거점에서 훈이와의 노예 계약서(?)를 작성한 뒤, 용천으로 넘어간 이안은 사실 처음부터 성운으로 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칭호를 얻은 순간부터 성운에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정보 수집의 필요성을 느꼈으니 말이었다.
‘사실 성운에 대해 아는 정보들이라고는 막연한 것들이 전부고…… 무엇보다 현자의 탑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전혀 감도 안 오니 말이지.’
물론 성운에 들어선 뒤 여기저기 헤딩을 하다 보면, 현자의 탑도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성운의 안에도 NPC는 존재할 것이고, 정보를 수집할 방법 또한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성운은 이안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이었고, 때문에 입성하기 전에 최소한의 준비는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여 이안은, 이 용천에서 그가 아는 NPC들 중 가장 영혼의 격이 높은 이를 찾아갔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아는’이라기보다, ‘찾아갈 수 있는’이 맞을 것이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솔바르.”
“무, 물론일세. 이안. 나야 이렇게 평화로운 시기에,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이안이 찾아간 이는 바로 암천의 천주 솔바르였고, 따지자면 이안이 아는(?) NPC들 중에는 솔바르보다 훨씬 더 격이 높은 인물도 하나 있었으니 말이었다.
‘용신 세카이토…… 그를 찾아갈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지.’
용천의 주인이자, 말 그대로 ‘신’의 위격을 가진 NPC인 세카이토.
그는 분명 이 용천에 존재하는 NPC였지만, 이안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곳은 오랜만에 와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군요.”
“암천궁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안의 말에, 솔바르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하였다.
“그럴 수밖에.”
“네?”
“자네가 떠난 이후로, 인재다운 인재가 나타나질 않았으니 말일세.”
용천의 각 가문들은, 유저의 활약에 따라 조금씩 발전한다.
소속된 유저들이 쌓은 공헌도와 재화를 가지고, 계속해서 가문을 발전시켜 가니 말이다.
이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암천궁이 그대로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고, 솔바르의 한숨 또한 거기서 기인한 것이었다.
“새로운 용사들이 잘 나타나지 않나 보죠?”
“그건 아니네. 자네가 있었을 때보다, 동맹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아졌으니 말이지.”
“그럼……?”
“다만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일세.”
솔바르의 고민을 들은 이안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어째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으니 말이다.
‘후후, 내가 그렇게 암천의 콘텐츠들을 탈탈 털어놨으니, 랭커들이 거의 암천을 선택하지 않을 수밖에.’
이안의 활약에 힘입어 다른 가문들보다 훨씬 더 빠른 성장을 거듭했던 암천.
물론 그것이 천주를 비롯한 암천의 NPC들에게 당장은 좋은 것이었으나, 가문을 선택하는 유저의 입장에선 별로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단순히 가문의 공헌도를 쌓는 난이도야 어느 가문을 가도 비슷하겠지만, 암천의 퀘스트들은 이안 덕에 어느 순간부터 보상 대비 난이도가 엄청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암천 소속 NPC들의 눈이 높아져 있었던 것.
물론 이것은 용천 가문들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카일란 기획팀의 기획의도였지만, 그런 것을 알거나 이해할 턱 없는 솔바르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을 한 시름 덜어도 되겠군.”
“예?”
“이안, 그대가 돌아왔으니 말이지.”
이안을 향해 활짝 웃어보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솔바르.
하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이안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천주님.”
“음……?”
“이번에 이곳에 온 것은, 암천의 동맹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이안.”
“아쉽게도 이번에 천주님을 찾아뵌 이유는…….”
“……?”
“성운에 대해 몇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니까요.”
이안은 솔바르에게 살짝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처음 그가 암천을 떠나기 전, 솔바르와 했던 마지막 대화가 다음과 같았으니 말이었다.
-휘유, 이 정도면 1인분…… 아니, 10인분 이상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저 한동안 다른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 그건 맞지만…… 한동안 무슨 일을 보러 간다는 겐가?
-바쁜 사정이 좀 생겨서요.
-늦어도 다음 달에는 돌아오는 거겠지……?
-뭐, 그 전까지 원소의 목걸이랑 혼령의 날개를 구할 수 있다면, 한번 고려해 보도록 하죠.
분명 이안은 세 가지 성물을 다 모으면 용천에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었고, 그때만 해도 그것을 다 구한 뒤 정말 암천에 돌아올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솔바르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안의 표정에 미안함이 가득했던 것과 별개로, 그는 이안이 예상치 못했던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안, 지금 뭐라 한 겐가?”
“예?”
“방금 분명, ‘성운’이라 하지 않았는가?”
“맞습니다, 솔바르.”
“……!”
“전에 말씀드렸던 혼령의 날개와 원소의 목걸이. 그것들을 전부 구했거든요.”
“허억……!”
사실 솔바르는 이안이 혼령의 날개와 원소의 목걸이를 구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가 떠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그의 상식(?) 선으로 두 가지 성물들은 그렇게 쉽게 구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해서 솔바르는 이안이 두 가지 물건을 구하다가 지쳐서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던 것.
“하, 한번 보여 줄 수 있겠는가?”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지요.”
하지만 이안이 보여 준 두 가지 성물은 분명히 진품이었고, 그것을 확인한 솔바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정말 초월의 자격을 얻어 온 것인가!’
이안은 알지 못했지만, 사실 그가 초월자의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암천과 솔바르에게도,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솔바르는 이안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고대 전장의 영웅.
이안이 그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임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안, 자네…….”
“예?”
“현자의 탑에 가려는 것이겠지?”
“그걸 어떻게……!”
“자네가 가려는 그 길을 시작하려면…… 드라키시스 님을 만나야 할 테니 말이지.”
“……!”
솔바르의 이야기에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곧바로 핵심을 이야기하였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결국 ‘고대 전장의 영웅’ 연계 퀘스트를 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암천의 천주들이었으니 말이었다.
그중 하나인 솔바르라면 능히 이안의 목적을 짐작해 낼 수 있을 터.
“역시 솔바르 님은 아시는군요.”
“허허…… 자네는 정말인지, 예측불허로구먼.”
“그렇습니까?”
“물론 일전에도 범상치 않다 생각하긴 했네만, 이렇게 빨리 초월자의 자격을 갖춰 올 줄은 몰랐다네.”
“하하. 그, 그런가요.”
“역시 대단해, 이안!”
갑작스런 솔바르의 칭찬에 이안은 살짝 당황하였다.
이안이 그와 쌓아 둔 친밀도가 최상급이기는 하였지만, 지금이 그에게 칭찬을 들을 타이밍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안은 솔바르가 그를 띄워 주는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안.”
“예?”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는 없겠나?”
솔바르는 이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게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부탁을요?”
“현자의 탑이 있는 곳은 내가 알려 줄 테니, 한 가지 간단한 부탁만 들어주시게나.”
“그게…… 뭔데요?”
그리고 솔바르의 부탁은 그의 말대로 정말 간단한 것이었다.
“현자의 탑에서 드라키시스 님을 만나 뵙게 된다면…….”
“예.”
“부디 자네가 ‘암천’의 소속임을, 꼭 좀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네.”
“지금 저 암천 소속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내가 바로 등록시켜 주면 될 일이고.”
띠링-!
-암천의 천주 ‘솔바르’가 당신에게 동맹을 제안합니다.
“하, 하핫…….”
“내가 꼭…… 부탁 좀 함세.”
솔바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확인한 이안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