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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018화 (1,018/1,027)

< 1018화 5. 지옥의 노가다 >

본래 연계 퀘스트의 순리(?) 대로라면, 이 혼령의 날개 제작 퀘스트는 아직 한참 뒤에나 나왔을 연계 퀘스트였다.

원래 유저가 갑주를 라르덴에게 넘기는 순간, 정체가 어느 정도 노출되게 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몇 가지 연계 퀘스트를 추가로 더 클리어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잔머리(?)를 잘 굴린 덕에, 이안은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혼령의 날개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것으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안이 여기까지 예상하고 머리를 굴린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단 혼령의 날개만 얻을 수 있으면, 정체가 들통 나도 상관없지. 곧바로 런하면 될 테니 말이야.’

어차피 이안은 명계의 콘텐츠에 큰 미련이 없었다.

혼령의 날개만 얻을 수 있다면 성운을 밟을 수 있게 되고, 그것은 곧 중간계보다 한 차원계 위의 콘텐츠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니, 굳이 명계에 더 미련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칼데라스나 발러 길드를…… 명계에서 역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말이야.’

게다가 이안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그것과 별개로 거점을 세우고 기반을 닦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명계 콘텐츠 진행은 이안의 입장에서 가성비가 별로 좋지 못한 콘텐츠인 것이다.

하여 대략적인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 이안은 망설임 없이 라르덴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좋습니다, 라르덴 님.”

“오……!”

“추가로 아티펙트까지 주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안의 시원한 대답에, 라르덴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사님.”

“예, 라르덴 님.”

“제게 혼령의 날개 제작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는 건…… 그것을 만들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도 아신다는 이야기겠죠?”

“물론입니다.”

“역시……!”

라르덴의 감탄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혼령의 깃털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지요.”

하지만 다음 순간.

“그 재료는 가지고 계시겠고요.”

“아니…….”

라르덴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던 이안은, 다급히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깃털은 없지만 카루아르크를 잡아서 수급해 오겠다고 하려고 하였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잠깐, 내가 여기서 카루아르크를 잡아 온다고 하면……. 정체를 들키게 되는 건가?’

지금 라르덴은 이안이 죽음의 기사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언데드인 죽음의 기사는 절대로 카루아르크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이 타르타로스에 거주하는 명왕성의 NPC들이라면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만약 이안이 카루아르크를 잡아오겠다고 말한다면, 그 순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순간적으로 말을 멈춘 이안은 재빨리 하려던 말을 선회하였다.

“당장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엇, 그럼……?”

“하지만 그 깃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깃털을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안의 말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라르덴.

하지만 이안은 능숙하게 라르덴의 반응에 대처하였다.

“죄송하지만 방법까지는 말씀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재료는 확실히 준비해 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믿겠습니다.”

혼령의 깃털은 망자들에게 가질 수 없는 수준의 무척이나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그것을 비밀로 해도 라르덴의 입장에선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고, 이안 또한 그 부분을 생각하여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깃털이 120개 정도면…… 제작이 가능하겠지요?”

“오호, 도안에 대해…… 정확히 아시는군요.”

살짝 놀란 표정이 된 라르덴을 보며, 이안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르덴 님의 대답은 들었으니…… 재료를 구하러 가야겠군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지요.”

라르덴과의 대화를 끝으로 이안은 곧바로 마도 상점을 벗어났다.

그리고 상점을 벗어나 명왕성 바깥으로 향하는 이안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후후, 좋았어.’

‘배덕의 기사단장’ 퀘스트가 클리어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대했던 이상의 퀘스트 진척도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대충 1시간 정도 지났나……? 훈이가 개인 메시지 겁나 보내 놨겠군.’

성 밖에서 투덜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훈이를 떠올린 이안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더 재촉하였다.

* * *

마도 상점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명왕성 밖으로 다시 나온 이안은 곧바로 다시 제이칸을 소환하였다.

이제 그로부터 카루아르크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낸 뒤, 훈이와 함께 파밍할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돌아온 이안의 이야기를 쭉 들은 제이칸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흐음, 용케도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군.

“설마, 내가 저 안에서…… 죽을 거라 생각한 거냐?”

-뭐, 그건 아니다.

“……?”

-네가 죽기라도 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을 기회가 날아가니까.

“그건 그렇군.”

-하지만 확실히…… 내 기대보다 잘하고 왔군.

“별로 네 기대에 부응할 욕심은 없었지만…… 여튼 그렇게 되었다.”

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제이칸은 겉으로는 틱틱대도 무척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안이 생각보다 깔끔하게 라르덴과 거래를 마치고 왔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불만에 가득 찬(?) 인물도 한 사람 있었다.

“차원코인은 돌려주시지.”

“음? 내가 왜?”

그는 다름 아닌, 성 밖에서 이안을 기다리고 있던 훈이.

“라르덴이 그냥 주기로 했다며!”

“그게 무슨 상관인데?”

“뭐……?”

훈이는 이안이 로브를 퀘스트 보상으로 그냥 얻게 되었다고 하자, 그것을 공동 구매(?)하기 위해 건넨 자신의 2,500 데스코인이 너무도 아까워진 것이다.

“그냥 준다고 해서, 로브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뭐, 코인은 돌려줄 수 있어.”

“……!”

“대신 로브는…… 너한테 주는 게 아니라 빌려 주는 걸로 하지 뭐.”

“치, 치사해……!”

물론 결과적으로는 달라진 것 없었지만, 배가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하지만 이안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훈이는 다시 충성(?) 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보니까 마도 상점의 로브들, 좋은 건 1만 코인도 훨씬 넘더라고.”

“헉, 정말?”

“퀘스트 클리어 등급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는 것 보니…… 잘만 하면 몇 만 코인짜리 로브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5천 코인 정도인 줄 알았던 죽음의 로브 가치가 1만 코인 단위가 넘어간다면, 2,500코인 정도는 아깝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니 말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제이칸이 확인까지 해 주었으니…….

-흐음. 확실히 고급 로브라면…… 몇 만 코인짜리가 있을 수도 있겠군.

“그, 그래?”

-예전 궁중 마법사가 쓰던 죽음의 로브 중에는 10만 코인 짜리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헉……! 시, 십만!”

훈이의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님.”

“응?”

“당장 출동하시죠.”

“웬 출동.”

“빨리 카루아르큰지 뭐시긴지. 잡으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 그럼 가 볼까?”

하여 그렇게 훈이의 충성심(?)까지 완벽히 확보한 이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제이칸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제이칸, 카루아르크를 사냥하기 가장 좋은 지역이 어디일까?”

-흐음…… 카루아르크 사냥이라…….

“일단 좀 난이도 낮은 필드로 추천해 줘.”

-그렇지 않아도 최대한 수월한 필드로 생각 중이다.

의욕 충만한 훈이를 필두로, 이안 일행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동쪽 균열이라면, 확실히 네놈 전투력으로 해 볼만 할 것 같군.

“균열?”

-타르타로스를 두르고 있는 거대한 어둠의 장벽을 우리는 균열이라 칭한다.

“오호.”

-정확히는 ‘죽음의 균열’이지.

“동쪽이 제일 괜찮은 이유가 있나?”

-지형이 가장 험난하거든.

“……?”

-험지이기 때문에 타르타로스의 수감자들이 탈출 시도할 생각을 잘 못하는 곳이고, 때문에 카루아르크의 숫자도 가장 적은 곳이 동쪽 균열이다.

“아하?”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안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좋아. 깃털 120개라…… 순식간에 파밍해서 돌아가겠어.’

이때만 해도 술술 풀리는 것 같았던 퀘스트가 상상치도 못한 지옥의 퀘스트였다는 사실 말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데 제이칸.”

-말하라.

“그 깃털이라는 거. 카루아르크 한 마리 잡으면 열 개 정돈 뽑을 수 있겠지?”

-그걸 내가 알 리가 있나. 잡아 봤어야 알지.

“하긴…….”

이 깃털 파밍 퀘스트는 중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퀘스트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악랄한 지옥의 노가다 퀘스트였던 것이다.

* * *

이안의 초월 레벨은 99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법 오래 된 레벨이었다.

정령계 최후의 전쟁 에피소드를 위해 정령왕 엘리샤를 구하러 가던 때에도, 이안의 레벨은 이미 99레벨이었으니 말이었다.

‘거의 3주일 정도는 지난 건가?’

정확히 계산해 본 적은 없었지만 거의 한 달 가깝게 레벨을 올리지 못한 것은, 중간자가 된 이후로도 이번이 처음인 것.

심지어 아직까지 경험치 게이지도 10% 정도나 남아 있었으니, 계산상 99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퀘스트 진행하느라 사냥을 많이 못 하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나긴 하네.’

하여 이안은 지난주쯤부터, 초월 100레벨에 뭔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예상하는 중이었다.

98에서 99레벨이 되는 데까지 1주일이 조금 넘게 소요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경험치 증가폭이 큰 게임이라 할지라도, 99에서 100레벨의 필요 경험치 구간이 비상식적으로 넓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혼령의 날개 퀘스트가 마무리되면, 한 사나흘 정도는 빡세게 사냥만 해야겠어. 느낌상 성운으로 넘어가기 전에 100레벨을 찍어 주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으니 말이지.’

100레벨 이상의 NPC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볼 때 그곳이 초월 맥스 레벨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100레벨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 있는 전환점일 것이라고, 게이머의 직감으로 추측한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이러한 계획은 카루아르크 사냥 1일 차에 완전히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

-하데스의 신조(神鳥) ‘카루아르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50 데스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카루아르크의 발톱’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후략……

-역시, 내 환영을 이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군. 카루아르크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쉽지 않았어, 인마. 한 마리 잡는 데 10분이나 걸렸다고.”

-난 1시간쯤 걸릴 줄 알았다, 인간.

“…….”

거의 1시간 정도 숨만 쉬며 카루아르크 사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인벤토리에는 고작 다섯 개의 깃털만이 들어와 있었으니 말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제이칸.”

-뭐가?

“이 페이스대로라면, 오늘 밤새 사냥해도 깃털 절반도 못 모으겠어.”

-120개만 모으면 되는 것 아닌가.

“……?”

-이틀 정도 밤새면 충분하겠군.

“후우…….”

노가다에 자신 있는 이안조차도 거의 사흘 정도 사냥을 해야, 깃털 120개를 모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설마…… 이러다가 여기서 레벨 업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안의 그러한 걱정(?)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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