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6화 4. 다시 혼령의 날개를 찾아서 (2) >
마도 상점의 마(魔)는 마계의 첫 글자와 마찬가지로 마귀의 ‘마’자를 사용한다.
하지만 마계의 첫 글자가 마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마도 상점의 첫 글자는 마법을 의미하는 것.
그 때문에 이 마도 상점은 마족이나 마계와 관련 있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망자들의 마법.
흑마법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특별한 마법 상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띠링-!
-‘마도 상점’에 도착하셨습니다.
-퀘스트 진행도 : 98%
-‘마도 상점’의 주인 ‘라르덴’을 만난다면,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간결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이, 천천히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안의 눈에는 금세 내부의 전경이 전부 담겼다.
‘아기자기하네.’
마도 상점은 한 층이 그리 넓지 않았다.
소르피스의 마법 상점들과 비교해도, 그 규모가 절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도 상점의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마도 상점은 한 층 한 층이 좁은 대신, 무려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끼이익-.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장내로 들어간 이안은 가장 가까이 보이는 NPC를 향해 다가갔다.
조용히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걸치고 있는 기사단의 갑주 때문인지, 이안의 발소리는 작지 않았다.
저벅- 저벅-.
그리고 그 발소리를 들은 NPC가 이안의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온통 새카만 로브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남자.
유령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외모를 가진 그를 향해, 이안 또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여기, 혹시 쓸 만한 로브가 있는지요?”
“쓸 만한 로브라면…….”
“죽음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괜찮은 로브를 구하려고 합니다.”
“아하, 죽음의 로브라면, 당연히 구비되어 있습죠.”
“몇 층으로 가야 합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최상품으로 찾아 드리겠습니다.”
이안을 상대하는 NPC의 태도는 무척이나 공손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도 상점의 NPC들 또한 이안을 라타르칸의 기사로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 명왕성 내에서 명왕의 기사는 무척이나 높은 직위.
한낱 마도 상점의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서는 까마득히 높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우우웅-!
이안을 대동한 NPC는 상점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안은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엘리베이터인가?’
마치 백화점에서 볼 법한 둥글고 투명한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마도 상점의 정중앙에 설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절반 정도만 맞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그것의 용도는 엘리베이터와 거의 비슷한 것이었으나, 엘리베이터처럼 기계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위이잉- 파앗-!
이안이 그 안에 발을 디딘 순간, 순식간에 다른 층으로 순간 이동된 것.
‘어우 씨, 깜짝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워프에 이안은 당황했지만,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지금 이 명왕성 안에서만큼은, 그는 이안이 아닌 라타르칸의 기사였으니 말이다.
하여 헛기침을 하는 이안.
“큼, 크흠.”
다행히도 NPC는 그런 이안의 당황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다시 이안을 안내하였다.
“자, 이쪽에 찾으시는 죽음의 로브들이 있습니다.”
“오호.”
“기사님의 눈에 차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씩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NPC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조심스레 로브들이 진열된 쇼윈도를 향해 다가갔다.
마치 백화점 명품관의 물건들처럼,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고급스럽게 걸려 있는 까만 로브들.
‘시커먼 천 쪼가리들을 뭐 이렇게 예쁘게 걸어 놨어?’
그리고 잠시 후.
“……!”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들의 상태(?)에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라타르칸 대마법사의 로브 : 17,540데스코인
-무한의 타르타로스 로브 : 23,980데스코인
-파괴의 마법사 로브 : 15,290데스코인
……후략……
‘이게 뭐야……?’
죽음의 로브가 비싸다는 것은 제이칸을 통해 미리 알고 이곳에 온 것이었지만, 그가 봉인되어 있던 오랜 시간 동안 물가가 상승(?)한 탓인지, 상상조차 못 했던 가격대들이 이안의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 * *
마도 상점에 도착한 이안의 주된 목적은 사실 훈이의 로브가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마도 상점의 주인 라르덴을 만나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라르덴을 만나 다음 연계 퀘스트를 받고 혼령의 날개 제작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지금 이안에게는 최우선 과제였던 것이다.
다만 이안이 로브를 먼저 보려고 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다음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훈이의 도움이 확실히 중요할 테니까.’
라르덴을 만나기 전에 죽음의 로브를 구입하여 훈이를 먼저 이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퀘스트 진행을 더 수월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로브들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생각지도 못 했던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곧바로 구입할 수 없을 만큼, 로브의 가격이 비쌌던 것이다.
‘무슨 천 쪼가리들이 이렇게 비싸냐고.’
물론 이안이 보유한 차원코인들이나 코인화 가능한 아이템들을 생각해 본다면, 1~2만 코인 정도는 퀘스트를 위해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 이안의 문제는 수중에 7~8천코인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수십, 수백억의 자산가라 하더라도 현찰을 몇 억씩 들고 다니지는 않는 것처럼.
이안의 재산은 대부분, 길드 거점의 금고나 현물(?)에 묶여 있었으니 말이다.
‘아, 돌겠네. 돈이 부족해서 퀘스트 진행이 막힌 건 또 처음이네.’
재벌3세 같은 대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이안.
당황한 그의 눈에는 로브의 옵션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살 수 있어야 옵션도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쩌지? 지금 거점에 갔다 올 수도 없는데…….’
만약 플레게톤과 레테의 사이에 로터스의 거점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 수는 있다.
일단 거점으로 귀환해서 차원코인을 인출한 뒤, 길드 포탈을 이용해 레테까지 금방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은 발러 길드의 도움 없인 다시 타르타로스에 도달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플레게톤을 넘는 퀘스트부터, 다시 찾아서 진행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발러 길드에 다시 도움을 구하는 것도 그림이 안 좋은데…….’
지금 이안이 진행하는 퀘스트는 상위 콘텐츠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퀘스트다.
때문에 아무리 발러 길드라 해도, 한 발 걸칠 수 있게 여지를 두는 것은 이안으로서도 싫었다.
지금까지야 이안과 발러 길드가 서로의 도움을 등가 교환한 셈이라면, 여기서 발러 길드의 도움을 더 받는 것은 빚을 지는 셈이니 말이다.
‘일단 라르덴인지 뭔지, 그 친구부터 한번 만나 봐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안.
그런 이안의 속사정을 모르는 NPC가, 조심스레 그의 옆에 다가와 물었다.
“기사님, 혹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들려온 NPC의 목소리에 이안은 흠칫했지만, 능숙하게 그의 말을 받아 대답하였다.
“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제가 직접 쓸 물건이 아니다 보니…… 물건을 고르기가 무척 힘이 들군요.”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런 이안의 임기응변에, NPC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긴, 기사님이시니…… 로브를 고르는 것은 쉽지 않으시겠군요.”
다만 이안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직원의 다음 대사를 예측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말이다.
‘으…… 자기가 골라 준다고 하면 어떡하지? 뭐라 변명해야 자연스러우려나…….’
하지만 그런 이안의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직원의 말에 뭐라 대답하려던 이안의 귓전으로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오호,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그 목소리를 들은 이안과 직원의 시선은 동시에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움직였고.
“아, 마스터……!”
직원의 반응을 확인한 이안은 새로 나타난 인물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자가…… 마도 상점의 주인 라르덴인가?’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차림새에, 마법사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남자.
그가 등장한 덕에, 이안은 좀 더 쉽게 선택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 일단 퀘스트 진행을 먼저 해 보자. 훈이의 로브는……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물론 그런 이안의 결정 덕에, 훈이는 조금 더 오래 성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었다.
* * *
잠시 이안과 대화하던 라르덴은 곧 그를 마도 상점의 꼭대기로 데리고 갔다.
우우웅-!
이안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 앞으로 라르덴이 손을 뻗자, 파랗던 워프의 불빛이 황금빛으로 변했으며.
“이쪽으로 오시지요, 기사님. 귀인께서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라르덴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 발을 들이자, 마도 상점의 최상층으로 곧바로 이동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직원 NPC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도 상점의 꼭대기 층은 라르덴의 개인 공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지금껏 그곳으로 손님을 모시는 경우는 그조차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르덴의 호의에 놀란 것은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지? 갑자기……?’
물론 명왕의 기사가 제법 높은 직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 해서 마도 상점의 주인이 이렇게 귀빈 대우까지 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명왕의 기사라는 게…… 훨씬 더 높은 직책이었나?’
하지만 이안의 그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라르덴님.”
라르덴이 이안을 자신의 연구실까지 데려온 이유는, 표면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또르륵-.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이안과 마주앉은 라르덴은 이안의 앞에 있는 컵에 따뜻한 찻물을 따라 주었다.
이어서 자신의 찻잔에 담긴 찻물을 한 차례 홀짝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향이 괜찮지요?”
라르덴을 따라 차를 한 모금 홀짝인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러네요.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군요.”
이안의 대답은 빈말이 아니었다.
라르덴이 따라 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실제로 머리가 맑아졌을 뿐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까지도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띠링-!
-기분 좋은 차향이 온몸에 퍼집니다.
-30분 동안 모든 저항력이 3%만큼 증가합니다.
-30분 동안 모든 소모값의 재생력이 5%만큼 증가합니다.
‘효과가 괜찮은데?’
요리도 아니고 단순히 차 한 잔으로 얻은 버프라는 부분을 생각하면, 이안으로서도 감탄할 만한 수준.
하지만 이안의 그러한 감상은, 그리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다시 이안을 응시한 라르덴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갑자기 여기까지 모셔서, 조금 당황하셨지요?”
“뭐, 그렇다기보다는…….”
“사실 이곳으로 모신 것은……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예……?”
잠시 뜸을 들인 라르덴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쓰고 계신 그 갑주…….”
“……?”
“어떻게 얻은 것인지, 혹시 여쭤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