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5화 4. 다시 혼령의 날개를 찾아서 >
‘혼령의 날개’를 구할 수 있는 방법.
제이칸이 언급한 그 방법은, 총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명왕이 되면 된다.
“뭐?”
-명왕을 쓰러뜨리고 그 위(位)를 계승하면, 혼령의 날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네가 라타르칸을 배신했던 이유가…… 이거였겠군.”
-뭐, 비슷하다.
“흐음…….”
-하지만 지금 네놈이 가진 힘으론,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겠지?
“왜? 네가 실패했다고 나도 실패하라는 법 있나? 내가 너보다 강한걸.”
-후, 웃기는 소리.
“……?”
-그대가 상대했던 내 환영은 내가 전성기 때 가졌던 힘의 절반도 채 갖지 못했다.
“오호, 그래……?”
-그러니 이 방법을 시도해 볼 생각이라면, 미리 접는 게 좋아.
“그럼 대체 왜 얘기해 준 건데?”
-방법은 방법이니까. 얘기해 준 것 뿐이다.
“…….”
그리고 둘째.
-하데스 님의 인정을 받고, 그의 친위대가 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의 친위대는 모두 혼령의 날개를 가지고 있지.
“하데스라면…… 이 타르타로스를 만들었다는 죽음의 신?”
-그렇다.
“그의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신들의 전쟁에 참가하면 된다.
“신들의 전쟁은 또 뭐야?”
-그건 나도 모른다.
“뭐?”
-나도 아직 참전해 본 적이 없거든.
“참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데스 님의 간택을 받아야 한다.
“후우, 그걸 말이라고…….”
제이칸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까지 들은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솔루션을 주는 게 아니라, 약을 올리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명계에서 열심히 명성을 쌓다 보면, 다음 신들의 전쟁에 간택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약이 없잖아.”
-그건 그렇지.
“내겐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친구.”
-가시적인 방법이라…….
“뭐가 있긴 있는 거야……?”
-그렇다면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겠군.
“……!”
-어쩌면 너만이 가능할지도 모를 방법.
“그게 뭔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방법은, 앞의 방법들처럼 뜬구름 잡는 것은 아니었다.
-‘혼령의 깃털’을 모아, 직접 혼령의 날개를 제작하는 방법이…… 네가 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인간.
“혼령의…… 깃털?”
-그래. 가장 원론적인 방법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지.
“혼령의 깃털은 어디서 구하는데?”
-혼령의 새를 처치하면 얻을 수 있을 거다.
“혼령의 새? 그런 것도 있어?”
-정확한 이름은 카루아르크. 타르타로스의 뇌옥을 지키는, 하데스 님의 신조(神鳥)들이지.
제이칸의 이야기를 듣는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혼령의 새를 잡아서 깃털을 파밍하라는 거지. 결국.’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은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이칸.”
-말하라, 인간.
“이런 방법이 있었으면, 넌 왜 쓰지 않았어?”
-음……?
“그렇잖아. 카루아르크인지 뭔지 그 새를 내가 잡을 수 있으면, 과거의 너도 분명 잡을 수 있었을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네 입으로 그랬잖아. 전성기 시절의 너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강했다고.”
-그렇지.
“그럼 당연히 카루아르크도 잡을 수 있었던 것 아냐?”
이안의 말을 듣던 제이칸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건 아니다.
“어째서?”
-카르아루크는, 망자(亡者)에게 있어서 천적이나 다름 없는 녀석이거든.
“으음……?”
이어서 그 대답을 들은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망자라면 아무래도 언데드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 카르아루크 라는 혼령의 새가, 뭔가 특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제이칸의 말을 듣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혼령의 새 카르아루크는, 처음부터 타르타로스를 지키기 위해 하데스께서 창조하신 종(種)이다.
“오호……?”
-망자로부터 받은 공격에는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 아주 특수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지.
잠시 뜸을 들인 제이칸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죄를 짓고 타르타로스에 갇힌 망자들이 탈출하거나 허튼짓을 할 수 없도록,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데드 이뮨인가……?”
-그런 셈이다.
고개를 주억거린 이안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흠, 그렇다면 확실히, 아무리 네가 강력했다 한들 잡을 생각을 할 수 없었겠군.”
-물론이다. 카르아루크는 명왕이라 해도 잡을 수 없는 녀석이니까.
제이칸과 대화를 나누던 이안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이제 대략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좋아. 그럼 깃털은 그 혼령의 새라는 녀석들을 털어서 모으면 되겠고.”
-쉽진 않겠지만, 너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군.
“그럼 모은 깃털로 날개를 만드는 방법은…… 어디서 도안이라도 구해야 하는 건가?”
-그럴 필요는 없다. 도안 같은 게 있는 물건도 아닐뿐더러, 도안이 있다 해도 네가 직접 만들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니까.
“그럼……?”
다시 당황한 이안의 표정에, 제이칸이 히죽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후후, 걱정할 거 없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혼령의 날개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라면…… 명왕성 내에 있다는 그 마도 상점?”
-그래. 그곳의 주인이라면, 충분히 혼령의 날개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지.
“휴우.”
제이칸의 이야기에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령의 날개를 얻기 위한 길이 더 복잡하게 꼬일까 걱정했는데, 일단 지금까지 들은 대로라면 길 자체는 명확했으니 말이다.
‘타르타로스 뇌옥을 지키는 혼령의 새들을 잡아서 혼령의 깃털을 파밍하고…… 그것을 모아서 마도 상점 주인에게 가면, 혼령의 날개를 완성할 수 있다는 거지.’
제이칸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한 차례 정리하며, 하나씩 계획을 세우는 이안.
“깃털은 몇 개나 모아야 되는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음?”
-그런 건 라르덴에게 물어보도록.
“라르덴?”
-마도 상점 주인의 이름이 라르덴이다.
“아…… 그렇군.”
그리고 이안이 이렇게 제이칸에게 정보를 얻고 계획을 세우는 사이.
끼이잉-! 쿠구구궁-!
이안과 제이칸은 드디어, 거대한 라타르칸 명왕성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윤곽마저 묻혀 버릴 만큼, 시커멓고 거대한 벽돌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곽.
그 성곽에 달린 거대한 회백색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경비병으로 보이는 NPC들이 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제이칸이 이안을 향해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럼 무운을 빌도록 하지.
“뭐? 어디 가?”
-내가 옆에 있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음……?”
-지금 나는 망령도, 그렇다고 생령도 아닌……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테니 말이다.
“아하.”
-필요할 때 다시 부르도록.
“오케이.”
-명왕성 안에서는 부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
이안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마친 제이칸이, 허공에서 마치 꺼지듯 사라졌다.
그런 그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응시하던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흐음, 결국 명왕성의 안에서는, 제이칸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단 말이군.’
물론 아직 반쯤 봉인 상태인 제이칸은 그 어떤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이안이 이야기하는 도움이란, 제이칸의 정보력을 말하는 것.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필요한 정보는 얼추 얻은 것 같으니 말이지.’
아쉬움에 살짝 입맛을 다신 이안은,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이칸의 말대로라면 기사단의 복장을 입고 있는 이상 문제없이 정문을 통과할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실수라도 해서 정체가 들통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니, 최대한 긴장을 풀려는 것이다.
저벅- 저벅-.
‘그래. 너무 긴장 말자. NPC 상대로 연기하는 건, 내 전문이니까.’
하여 뻣뻣해졌던 몸을 푼 이안은, 자연스레 성문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그 앞에 서있던 정찰병들이 이안을 향해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였으며.
“충성……! 기사님을 뵙습니다!”
“충……!”
“충성……!”
그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자연스레 경례를 받아 주며 성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휴, 다행히 경례하는 건, 지상계의 왕실기사단이랑 다를 게 없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 퀘스트 조건 달성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라타르칸의 ‘명왕성’에 성공적으로 잠입하셨습니다!
-퀘스트 진행도 : 70%
-라타르칸의 ‘마도 상점’에 도착한다면, 퀘스트를 전부 완료할 수 있습니다.
* * *
명계에는 총 일곱 개의 명왕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네 개의 명왕성이 지금 이안이 발을 디딘 ‘타르타로스’에 존재하는 명왕성이었으며, 나머지 세 곳의 명왕성이 엘리시움에 존재하는 명왕성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왕성이 타르타로스와 엘리시움 안의 ‘국가’같은 것은 아니었다.
타르타로스와 엘리시움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오로지 명계의 주인인 하데스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르타로스는 무한뇌옥이라 불리는 명계의 지옥이며, 엘리시움은 낙원이라 불리는 명계의 천국일 뿐.
다만 명왕이 다스리는 명왕성은 이 타르타로스와 엘리시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정확히 몰랐던 이안은, 명왕성 안의 모습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넓지 않잖아?’
이안은 그가 지상계에 세워 둔 왕국의 왕성만큼이나 명왕성이 넓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명왕성의 내부는 작은 소도시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퀘스트의 영향인지, 미니 맵에는 친절히(?) 마도 상점의 위치까지 찍혀 있었고.
그 때문에 이안은 쉽게 목적지를 찾아 움직일 수 있었다.
‘편해서 좋군.’
마도 상점의 좌표를 찾은 이안은 더욱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음, 특별히 빼먹은 건 없는 것 같고…….’
퀘스트 창을 아래까지 꼼꼼히 다시 확인한 이안이 살짝 눈을 빛내었다.
퀘스트 내용에서 놓친 부분은 없었지만, 퀘스트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 다시 확인하니 새로운 정보가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사단장 세트의 티어 상승이라는 보상은…… 이 마도 상점이랑 관련이 있겠어.’
이안이 지금 착용하고 있는 기사단장 세트 아이템들은 전설 등급의 초월 장비들이다.
하니 이 장비들의 티어가 상승한다면, 신화 등급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터.
다만 보상이 어떤 식으로 부여될지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도 상점’이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알고 나니 그 연관성이 눈에 보인 것이다.
‘정황상 마도 상점은 대장간이라기보다는 아티펙트 상점과 비슷한 느낌일 테고…… 혼령의 날개를 만들 수 있다는 라르덴이라는 NPC는 아티펙트 마법사겠지.’
하여 마도 상점의 앞에 도착한 이안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문고리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밀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