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14화 (1,014/1,027)

< 1014화 8. 신이 되고 싶었던 남자 (3) >

* * *

망각의 강 레테를 넘어 펼쳐진 광활한 어둠의 평원.

에레보스의 끝자락이자 무한지옥 타르타로스로 이어지는 이 공허한 땅 위를,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비행하고 있었다.

번쩍번쩍 윤기가 흐르는 시커먼 비늘을 가진, 유려한 몸체의 멋들어진 신룡.

모처럼 본체로 현신한 루가릭스의 등에는 훈이와 이안이 타고 있었으며, 그들의 옆에는 제이칸의 혼령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타르타로스를 밟아 보겠군. 비록 망령의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제이칸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훈이가 그를 슬쩍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타르타로스라는 곳에, 명왕 라타르칸의 명왕성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 꼬마.

다시 봉인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제이칸 덕에,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를 만났던 이안.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변수는 큰 무리 없이 해결되었다.

‘제이칸’이라는 강력한 죽음의 기사를 권속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이 대화가 풀렸으니 말이다.

결국 ‘배덕의 기사단장 (히든)(에픽)(연계)’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제이칸에게 정보를 얻어 명왕성에 성공적으로 잠입하는 것이었고.

이안과 이야기가 잘 풀린(?) 제이칸은 지금 이렇게 두 사람을 명왕성으로 데려다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예상보다 순조롭게 일이 풀린 것은 명계의 재미있는 시스템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제이칸.”

-말하라, 꼬마.

“저 음흉한 형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려고, 그렇게 쉽게 제안을 수락한 거야?”

“내가 음흉하다니.”

“당연하지.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음흉하다고.”

투덕거리는 이안과 훈이를 잠시 지켜본 제이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꼬마.

“뭐지, 나도 못 믿는 형을 네가 믿는다고?”

-저 괴팍한 인간을 믿는 게 아니다.

“음……?”

-스틱스강에 대고 한 맹세는 설사 신이라 해도 어길 수 없으니까.

명계의 다섯 번째 강이자 ‘증오의 강’이라는 수식을 가진, 타르타로스와 엘리시움 너머에 흐르는 광활한 강 스틱스.

적어도 명계에서만큼은 이 스틱스강에 대고 한 맹세는 절대로 어길 수 없는 것이 카일란의 시스템이었고.

그 덕에 별다른 무리 없이, 이안과 제이칸의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이다.(물론 유저끼리의 맹세에는 스틱스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안이 명왕성에 무사히 도착하고 그곳에서 ‘혼령의 날개’에 대한 단서를 얻을 때까지 제이칸이 성심껏 도와주면, 이안은 제이칸에게 영혼의 자유를 주기로 한 것.

그렇다면 대체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는 어떤 식으로 강제집행(?)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맹세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된다.

“얼마나 오래……?”

-그건 나도 모른다.

“응?”

-지금껏 살아오면서, 스틱스강에 대고 한 맹세를 어기는 존재는 본 적이 없으니까.

“…….”

제이칸은 스틱스강에 대고 한 맹세를 어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지만, 실제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NPC와 스틱스강에 대고 맹세를 한 순간, 그것은 시스템 로그에 기록되고, 맹세를 이행할 시점이 되면 시스템이 강제로 집행해 버리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타르타로스에 갇힐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오래 갇히는지도 알 방법이 없었던 것.

“저 형이 최초로 맹세를 어길 수도…….”

그렇게 셋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평원에 내리깔린 어둠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제이칸, 명왕성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다 와 간다. 이제 곧 타르타로스가 보일 거다.

“오오……!”

-이제부턴 최대한 낮게 비행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왜?”

-명왕성의 척후병들에게 발각당한다면, 네가 하려던 계획은 시작조차 해 보지 못할 테니까.

“아하, 그렇군.”

그리고 대략 10여 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

-저기군.

“오……!”

일행의 눈앞에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였고, 이안은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국과 지옥이 한자리에 공존한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네.”

명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성스러운 빛깔이 넘실거리는 대지와, 그 아래로 시커멓게 내리깔린 섬뜩한 어둠의 심연.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기준으로, 너무도 상반된 풍경이 위아래에 공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의 그 혼잣말을 들은 제이칸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통찰력이 제법이군.

“뭐가……?”

-이곳이 네가 말한 대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니 말이다.

“……!”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이 신비로운 장관이 바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정확히는 타르타로스와 엘리시움으로 나뉘는 차원의 갈림길이었던 것이다.

“기왕이면 천국으로 가고 싶은데…….”

훈이의 중얼거림에, 제이칸이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갈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응?”

-중간자의 위격을 포기하고, 평범한 영혼으로서 ‘사망’하면 된다.

“…….”

-아, 그럼 지옥으로 떨어지려나.

“왜 이러실까. 나,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라고.”

실없는 대화를 나누던 이안과 훈이, 그리고 제이칸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루가릭스의 등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차원의 갈림길에 가까워지자, 이안의 시야에 드디어 명왕성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 * *

이안이 제이칸을 불러낼 수 있었던 매개체인, ‘죽음의 기사단장’ 세트 장비들.

이것은 퀘스트 발동의 트리거이자 제이칸을 소환할 수 있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한 가지의 기능을 더 가지고 있었다.

명왕성에 잠입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기사단장 갑주를 착용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꼬마, 넌 여기서 기다려라.

“응? 여기서?”

-그 복장으로 같이 들어갔다간, 곧바로 경비단에게 척살당할 거다.

“오호……?”

전직 라타르칸의 기사단장이었던 제이칸의 갑주는 당연히 라타르칸 기사단 갑주였다.

때문에 그 복장을 착용할 수 있는 이안은 큰 의심 받지 않고 명왕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흑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있는 훈이는 달랐던 것이다.

“그럼 훈이는 들어갈 방법이 없는 거야?”

이안의 물음에, 제이칸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방법은 있다.

“뭔데?”

-왕성 내의 마도 상점에서, 죽음의 로브를 사다 주면 되지.

“죽음의 로브……?”

-대충 5천 데스 코인 정도면, 괜찮은 물건으로 구입할 수 있을 거다.

“…….”

현금 가치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액수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제이칸 덕에, 순간적으로 어이없는 표정이 된 이안.

하지만 그런 이안과 별개로, 훈이는 능글맞게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얼른 사다 주시죠, 형님. 제가 직접 가서 사고 싶지만, 저는 명왕성에 들어갈 수 없으니…… 아무래도 형님께서 사다 주셔야겠네요.”

그 죽음의 로브라는 게 단순히 위장용이 아닌, 강력한 초월 장비일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으니 말이다.

‘NPC 상점에서 5천 코인이나 하는 로브라면, 실제 가치는 몇 배 이상으로 비쌀지도.’

어쩌면 최상급 장비를 공짜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였으니, 훈이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안이, 훈이의 기대대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코인 내놔.”

“에이,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럼 얜 그냥 버리고 가지, 뭐.”

“아, 형……!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오.”

정말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명왕성으로 향하는 이안.

“가자, 제이칸.”

그런 그의 모습에, 훈이는 다급히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잠깐! 잠깐!”

“왜 또.”

“그럼 딱 반반으로 합시다.”

“흠.”

“어쨌든 형 퀘스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니까, 내가 쓸 로브를 산다 해도, 형이 절반 정도는 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훈이의 간절한 표정을 잠시 응시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

“좋아, 콜.”

“후우, 짠돌이 같으니라고…….”

그런 이안을 보며 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훈이와의 딜을 마친 이안은 다시 명왕성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둘을 지켜보던 제이칸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나는 확실히 알겠군.

“뭐가?”

-너희 둘 다, 천국은 글렀다는 사실 말이지.

“왜!”

이안의 반발에, 제이칸이 간결하게 대답하였다.

-엘리시온에서는 웬만하면 이기적인 영혼을 받아 주지 않거든.

* * *

이안이 제이칸과의 딜을 성사시킨 뒤, 그로부터 들었던 ‘혼령의 날개’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혼령의 날개라…… 그것에 대해 아는 중간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너는 알고 있나 보군.”

-물론이다. 내가 가려던 초월의 길…… 혼령의 날개 또한, 그것과 관련이 있으니까.

먼저 제이칸은 자신이 혼령의 날개를 얻으려 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한계를 초월하여 신격을 얻기 위함.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었으니, 혼령의 날개를 사용하려 했던 방식이 이안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었다.

-망자가 신격을 얻기 위해서는 스틱스를 넘어 망령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망령의 문……?”

-이 명계를 처음 만드신 죽음의 신 하데스께서, 이곳에 강림하실 때 만들어진 문이지.

“오호?”

-고대의 명왕들 중 이 망령의 문을 넘어, 신격을 얻은 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혼령의 날개를 이야기하다 말고, 이 얘긴 왜 하는 거지?”

-그 망령의 문에 도달하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물건이, 바로 혼령의 날개였으니까.

“아하, 그럼 너 또한 혼령의 날개를 얻지 못해서, 신격을 얻는 데 실패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럼?”

-나는 애초에 혼령의 날개가 필요하기도 전, 라타르칸 왕께 패배하여 망령의 형벌을 받았으니까.

“그렇군.”

이안이 혼령의 날개를 얻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 성물을 전부 모아 성운을 밟기 위함이다.

이 성운의 끝에 신계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중간계보다 더 고차원적인 콘텐츠들이 많이 있을 테니 말이다.

반면에 제이칸의 경우에는 ‘망령의 문’이라는 곳을 통과하기 위해 이 혼령의 날개가 필요하다.

둘 모두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도구로서 혼령의 날개가 필요한 것이기는 했지만 상황은 약간 다른 것이다.

-혹여나 혼령의 날개를 얻어 나처럼 망령의 문을 통과하려 하는 것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인간.

“왜?”

-아무리 혼령의 날개가 있다 한들, ‘망령의 문’은 망자가 아닌 자를 포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군.”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한들, 지금 이안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는 따로 있는 것.

“그래서 혼령의 날개라는 거.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건데?”

-흠, 혼령의 날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어……?”

그리고 제이칸의 입에서 나온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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