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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012화 (1,012/1,027)

< 1012화 8. 신이 되고 싶었던 남자 (1) >

카브리엘은 제이칸에 대해 알고 있었다.

훈이가 그 히스토리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흑마법사가 3티어 이상의 히든클래스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명왕’과 관련된 퀘스트를 무조건 진행해야 했으니까.

심지어 이 내용에 대해서는, 공식 카페의 베스트 공략에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명계의 지도자 명왕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최고의 어둠술사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명계에 명왕이라는 존재는 카일란의 세계관 안에 총 일곱 명이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 명왕들 중 고대 ‘죽음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이는 없었고.

또 그 죽음의 전쟁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건 중 하나가, 라타르칸의 기사단장 제이칸의 반역 사건이었으니.

라타르칸과 훈이가 제이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연히(?) 망각의 심연과 혼령의 땅을 찾아냈던 발러 길드와 달리.

카브리엘과 게스토 길드는, 제이칸과 관련된 퀘스트를 통해 혼령의 탑을 찾아왔었으며.

카브리엘이 죽음의 기사단장 대검과 투구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대검과 투구가 아깝긴 하지만, 이 정도 빅딜이 아니라면 이안이 혹할 리 없을 테니까.’

성능 자체는 지금 카브리엘이 착용 중인 장비들보다 오히려 떨어지지만, 그것과 별개로 상위 콘텐츠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키 아이템.

아마 어지간히 다급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카브리엘은 이 장비들을 이안의 앞에 내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 아이템들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준의 물건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길드 최정예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 것 보다는, 콘텐츠 하나를 포기하는 게 마스터 입장에서 옳은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콘텐츠를 완전히 버리는 것도 아니니까…….’

하여 이안에게 제안 던진 카브리엘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초조하였다.

어째서 이안이 가장 먼저 망각의 문 밖으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발러 길드의 인물들도 나타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워질 테니, 그 전에 승부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안은, 카브리엘의 제안에 대한 결정을 금방 내렸다.

“확실히…… 끌리는 제안이군.”

“그럴 수밖에. 콘텐츠 하나를 통으로 넘겨주는 수준인데 말이지.”

이안과 다시 눈이 마주친 카브리엘은,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제안을 이안이, 받아들일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이안은 그의 확신대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소.”

“하지만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할 생각이지?”

이안의 물음에, 카브리엘이 망설임 없이 답하였다.

“그야 어려울 것 없지.”

“흠?”

“내가 장비를 먼저 그대에게 넘기겠소.”

“오호……?”

“그럼 그대가 검을 거둬 주시오.”

카브리엘의 이야기에, 이안은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선뜻 장비를 먼저 넘겨주겠다는 카브리엘의 말은 의외였으니 말이다.

그것은 게스토 길드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위험한 선택이었으니까.

“날 믿나 보지?”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잖소.”

“그야 그렇지.”

잠시 뜸을 들인 카브리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쪽 입장에서도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오.”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브리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번에 이해했으니 말이다.

‘뭐, 저들을 전부 죽여 봤자 드롭되는 템이 엄청 좋은 수준도 아닐 테고…….’

게스토 길드의 정예를 처치해서 이안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이안’ 이라는 랭커의 대외적인 이미지 손실이 훨씬 클 수밖에 없었던 것.

만약 이안이 게스토 길드의 통수를 친다면, 카브리엘은 그 영상을 커뮤니티에 올릴 것이고.

그것으로 이안의 이미지는 제법 실추될 테니까.

“좋아, 그럼 대검과 투구를 내게 넘기도록. 나 또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은 없으니 말이야.”

이안이 성큼 다가가자, 카브리엘은 반사적으로 움찔 하였다.

하지만 이내 약속한 아이템들을 꺼내어 들고, 이안에게 마주 다가갔다.

“자, 여기 있소.”

“좋아, 확실히 세트 피스가 맞군.”

이어서 장비를 건네받은 이안의 눈앞에,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가 주륵 떠올랐다.

띠링-!

-‘죽음의 기사단장 대검(전설)(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죽음의 기사단장 투구(전설)(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그 검을 거둬 주시오.”

“그러도록 하지.”

카브리엘의 요구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인 뒤, 스스럼없이 심판 검들을 검갑에 꽂아 넣었다.

스르릉- 철컥- 철컥-!

이어서 그 모습을 확인한 카브리엘은, 곧바로 걸음을 돌렸다.

“그럼 우린 이만 가 보겠소.”

“뭐, 그러든가.”

“발러의 친구들이 나타나면 좀 곤란해질 테니 말이지.”

이안이 공격의사가 전혀 없음을 확인한 게스토 길드의 길드원들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응시하던 이안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이네.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군.”

세트 피스가 모여서인지 까만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죽음의 기사단 장비들을 보며, 이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게스토 길드의 조공(?) 덕에 다음 행선지까지 정해졌으니, 빠르게 레테를 건너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슬슬 지루한 표정이 될 즈음.

‘그나저나 이 친구들은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형, 오래 기다렸지?”

심연의 문 밖으로 나온 훈이의 목소리가, 이안의 귓전에 들려왔다.

* * *

심연의 문을 나선 이안과 발러 길드의 일행은, 금세 레테의 강변에 도달하였다.

-‘망각의 저주’에서 벗어납니다.

-모든 디버프가 해제되었습니다.

애초에 망각의 심연 자체가 레테의 수중(水中)에 있는 필드였으니.

뭍으로 나온 순간 그 곳이 바로 강변이었던 것이다.

“자, 다들 준비 되셨죠?”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이 배로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하려나……?”

이안의 걱정에 훈이가 툴툴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쓸 데 없는 걱정 말고 호리병이나 열어 형.”

“흠?”

“그거 말만 나룻배지, 제이칸의 기사단을 전부 싣고 레테를 건넜던 물건이거든.”

“오호, 그래?”

훈이의 말에 흥미로운 표정이 된 이안은, 악신의 호리병 병마개를 퐁 하고 열었다.

그러자 그 작은 병의 입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스하아아아-!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만큼 스산한 소리와 함께, 레테의 강 위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나룻배.

‘오호. 정말 호리병 안에 있던 작은 배랑 똑같이 생겼잖아?’

점점 윤곽을 갖춘 그 모습은 분명 나룻배의 그것이었지만.

훈이의 말처럼 그 크기는 결코 나룻배의 수준이라 할 수 없었다.

까만 합판으로 만들어진 배의 규모는,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을 한 번에 싣고도 충분히 자리가 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체 나룻배의 비율로 이렇게 언밸런스한 크기의 배를 왜 만든 걸까?”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는 올리버의 물음에, 훈이가 답해 주었다.

“거구를 가진 악신들이 사용하던 배라고 하더군요.”

“오호, 그래요?”

“애초에 인간이 타라고 만든 배가 아니었던 거죠.”

선미까지의 높이만 족히 3m는 될 듯 커다란 크기를 가진 혼령의 나룻배.

어지간한 도약력으로는 탑승조차 힘든 나룻배였지만, 이안과 발러 길드의 일행은 어렵지 않게 배에 올랐다.

이어서 모든 인원이 탑승하자, 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긍- 끼이익-!

그리고 움직이는 배를 본 아르케인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 이거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나룻배에 묶여 있는 거대한 노를 누가 저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배에 돛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거대한 나룻배가 어딘가를 향해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이안의 입에서 나왔다.

“그냥 출발하라니까 하던데요?”

“예……?”

“유령선 같은 건가 보죠 뭐.”

“…….”

어찌됐든 큰 문제없이, 빠른 속도로 레테를 건너기 시작한 혼령의 나룻배.

그리고 그렇게, 대략 십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덜컹-!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혼령의 나룻배가 드디어 레테의 건너에 성공적으로 도착하였고.

“읏차……!”

갑판(?)에 서 있던 이안이, 가장 먼저 도약하여 강변에 내려섰다.

타탓-!

그러자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새로운 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명성(초월)이 50,000만큼 증가합니다!

“오호……?”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뭐지? 우리가 처음이 아닌가?’

당연히 망각의 강을 처음 건넌 것일 것이라 생각하였건만, 최초 발견 메시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최초 발견 보상이 없는 필드도 존재하긴 했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는 분명 선지자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보다 먼저 레테를 넘을 만한 길드는, 결국 칼데라스 뿐일 텐데…….’

이안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그의 옆에 다가온 아르테인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객이 있나 보군요.”

“그러게요.”

“어디일까요? 칼데라스……?”

“아마 그렇겠죠?”

흥미진진한 표정이 된 이안과 달리, 아르케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떠올랐다.

이제 처음 레테를 넘어 거점을 세워야 하는 그의 입장에선, 칼데라스만큼 위험한 세력도 없었으니 말이다.

“빠르게 거점부터 만드셔야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레테를 건넌 이들이 있을 줄이야…….”

“뭐,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이는 게 맞는 방향이니까요.”

“그거야 그렇죠.”

이안이 호리병을 가방에서 다시 꺼내자, 강변에 정박해 있던 나룻배는 순식간에 연기로 흩어져 다시 병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판단을 마친 아르케인은, 길드원들을 불러세워 일사불란하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게이트부터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입니다, 마스터. 게이를 완성해서 전력을 수급하는 게 최우선 과제겠죠.”

“올리버.”

“응.”

“게이트 건설부터 진행해 줘.”

“마스터는?”

“난 빠르게 한 바퀴 순찰부터 돌고 올게.”

“오케이. 그러도록 하지.”

이어서 원정대 전원에게 오더를 마친 아르케인은, 멀뚱히 서있는 이안과 훈이를 향해 다가왔다.

“두 분께선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아르케인의 눈빛에는, 적잖은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이안과 훈이가 그들의 옆에 남아 준다면, 칼데라스와 같은 적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거점을 조성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안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저희는 이제 저희대로 움직여 보려 합니다.”

“아…….”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그렇군요.”

아쉬운 표정이 된 아르케인과, 더욱 멀뚱한 표정이 된 훈이.

“응? 해야 할 일?”

훈이는 이안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어떤 의문을 갖기 전에 이미 이안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마스터 아르케인.”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는 이안을 따라 움직이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 명의 전력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랭커인 올리버가 이안을 따라 나선다는 것은.

발러 길드의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어리둥절한 표정의 훈이만이, 이안의 뒤를 쫄쫄 쫓아올 뿐이었다.

“형, 대체 무슨 일인데?”

“음?”

“발러의 거점에 남아서 같이 움직여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어보았고, 그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간결하게 대답하였다.

“아니, 지금 바로 가야 할 곳이 있어.”

그리고 이안의 대답에, 훈이는 더욱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가야 할 곳……? 그게 대체 어딘데?”

훈이는 이안에게 또한 이곳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훈이는 당황을 넘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흘러나왔으니 말이었다.

“명왕성.”

“……?”

“난 지금 바로, 라타르칸의 명왕성에 가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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