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08화 (1,008/1,027)

< 2008화 7. 명왕의 기사 제이칸 (4) >

* * *

영혼 잠식은 무척이나 강력한 고유 능력이다.

발록류를 제외한다면 지금껏 태생적으로 영혼 잠식을 가진 몬스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 효과가 강력한 만큼, 영혼 잠식에 성공하는 것은 제법 까다로운 일이었다.

대상의 영혼을 잠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으니 말이었다.

우선 생명력이 5% 미만으로 떨어진 대상에게만 시전이 가능했으며, 생명력 조건을 충족했다고 해도 무조건 잠식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혼 잠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잠식시킬 대상보다 지능이 높아야만 했다.

영혼 잠식 성공률 = (시전자의 지능/대상의 지능×100)%

쉽게 말해 시전자의 지능이 100이고, 대상의 지능이 200이라면, 영혼 잠식에 성공할 확률은 50%가 되는 것.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수식상으로만 보면 자신보다 지능이 2배 높은 대상을 상대로 영혼 잠식을 발동시키더라도, 50%의 확률로는 잠식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건데, 결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공식 카페에서 가장 유명한 마수 소환술사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상위 레벨의 필드일수록, 몬스터에게 영혼 잠식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록의 저항 관통 능력을 극대화시켜야만 합니다. 대상의 저항력을 전부 다 관통해 내지 못한다면, 영혼 잠식의 성공률이 급격히 줄어들거든요.

사실 저항력과 저항 관통 능력. 그리고 영혼 잠식 성공률에 대한 상관관계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다만 저항력이 강한 상대일수록, 영혼 잠식을 성공시킬 확률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체감만 알려져 있을 뿐.

하지만 그 상관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공식적인 내용일 뿐이었고, 이안을 비롯한 마수 연구가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연구와 시행착오를 통해 알아내지 못하는 수식이란 거의 존재치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런 수식에 무척이나 민감한 이안의 경우에는 크르르를 파티에 넣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 상관관계를 알아냈었다.

‘그때 알아낸 걸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기본적으로 카일란에서 저항력과 저항 관통력은 덧연산으로 계산된다.

피격자의 저항력에서 공격자의 저항 관통력을 뺀 만큼이, 피격자에게 남는 저항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알아냈던 이 저항력과 영혼 잠식 성공률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지능 차이로 결정된 영혼 잠식의 성공률에서 최종적으로 대상의 저항력(공격자의 저항 관통이 차감된 이후의 저항력 수치)이 차감되며, 그렇게 계산된 퍼센트가 영혼 잠식이 성공할 최종 확률이다.

사실 이러한 수식은 일반적인 유저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혼 잠식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저항력을 최대한 올려야 하며, 상대를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저항 관통력을 최대한 올려야 하는 것이었으니.

그때그때 체감으로 게임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발록류의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유저도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커뮤니티에서 공론화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하지만 이안은 이 수식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저항력과 저항 관통력을 잘만 컨트롤하면, 영혼 잠식 확률을 변수 없이 0이나 100에 수렴시킬 수 있으니까.’

만약 저항력과 저항 관통 스텟이 영혼 잠식 성공률에 곱연산으로 계산된다면, 영혼 잠식에 100% 성공이나 100% 실패 라는 확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공격자와 피격자 중 하나의 지능이 0이 아닌 이상, 조금이라도 확률이 남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수식 관계가 덧연산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경우가 존재하게 된다.

1. 만약 차감된 이후의 성공률이 100% 이상이라면 영혼 잠식은 무조건 성공하게 된다.

2. 만약 차감된 이후의 성공률이 0% 미만이라면, 영혼 잠식은 무조건 실패하게 된다.

지능 차이로 계산된 상대의 영혼 잠식 성공률보다 자신의 저항력을 더 높게 올릴 수 있다면, 변수 없이 영혼 잠식에 저항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안다고 한들 지금 이안의 상황에서, 제이칸의 영혼 잠식에 저항해 낸 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표면적으로 기사 클래스라고 해도 제이칸과 같은 네임드 보스라면, 마법사 랭커보다도 지능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일 테니 말이다.

저항력 스텟을 아무리 많이 맞춰 봐야 다른 스텟을 완전히 포기한 세팅이 아니라면, 40% 이상 세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이 40% 정도의 저항력으로 완전히 영혼 잠식을 막아 내려면, 제이칸보다 지능이 2.5배는 높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그 수준의 장비 세팅이 가능할 리 없었다.

이안이 마법사처럼 지능 스텟에 몰빵된 클래스라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경우’에서일 뿐.

이안은 한계를 초월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 어떤 종족보다도 높은 지능을 가진 종족.

‘마법의 일족’이라고도 불리는 강력한 드래곤들이 이안의 소환수였으니 말이다.

이안은 소환수들의 고유 능력과 마법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한계를 초월한 지능 스텟을 만들어 내었다.

*비상한 두뇌(강화)

-자신의 ‘힘’능력치의 65%만큼 ‘지능’능력치가 추가로 증가하며, 모든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15%만큼 감소합니다.

*지식전이(智識轉移)

-자신의 ‘지능’능력치의 75%만큼을 일시적으로 대상에게 전이시킵니다.(10초)

-지식전이가 작동하는 동안 시전자의 지능 능력치는 절반으로 감소하며,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 회복 속도가 30%만큼 둔화됩니다.

이안에게는 많은 드래곤 소환수가 있지만, 그중 이안을 구원(?)해 준 것은 엘카릭스와 루가릭스. 두 쌍둥이 드래곤이었다.

비상한 두뇌 고유 능력은 대부분의 드래곤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으나, ‘지식전이’ 고유 능력은 용언 마법의 카테고리에 있는 마법이었으니 말이다.

어지간한 마법사들보다 높은 지능 스텟을 가진 두 신화 등급의 드래곤.

그 둘이 비상한 두뇌를 사용하여 자신의 지능을 더욱 강화하고, 강화된 지능을 ‘지식전이’를 활용하여 동시에 이안에게 몰빵해 주었으니.

일시적으로 이안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지능 스텟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이러한 시도는 무척이나 기발한 것이었다.

‘지식전이를 저렇게 쓸 생각을 하다니……!’

일반적으로 지식전이는 마법사의 파괴력을 순간적으로 강화시킬 때 많이 쓰는 고유 능력이었지, 이렇게 방어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능력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안의 이 기발한 시도는 너무도 완벽히 먹혀 들어가고 말았다.

지잉-!

이안을 향해 쇄도하던 붉은 빛줄기는 그대로 허공에 튕겨 나갔으며.

-이, 이럴 수가!

너무 당연히 성공하리라 생각했던 영혼 잠식이 저항당하자, 제이칸은 그대로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모든 사고가 일시정지 되어 버린 제이칸.

이 틈을 놓칠 이안이 아니었다.

쐐애액-!

영혼 잠식을 저항해 낸 이안이 허공으로 도약하자, 후방에서 쏜살같이 날아온 아이언이 이안을 태우고 쇄도한다.

이어서 주춤거리는 제이칸을 향해, 이안의 심판 검이 그대로 날아들었다.

퍼퍽-콰아앙-!

그리고 이안의 검격을 흉부에 직격당한 제이칸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방어 스텟이 높다 해도,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맞는다면, 일시적으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크허어억……!

유령마의 안장에서 떨어져 나뒹굴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제이칸.

물론 제이칸의 생명력은 아직 80%도 넘게 남은 상황이었지만, 이안의 이 한 수는 승기를 가져오는 데 충분한 것이었다.

“공격태세로 전환하라!”

“죽은 영혼의 사슬을 최대한 활용해!”

발러 길드의 원정대를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제이칸의 ‘영혼 잠식’이라는 카드가 허공으로 증발했으니.

아르케인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폭풍같이 오더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 휩쓸리기 시작한 제이칸과 그의 기사단은 천천히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크어어억……!

-이 거머리 같은 놈들! 떨어져!

원정대의 집중포화가 명왕의 기사 하나에 집중되자, 그가 입은 피해는 제이칸을 포함한 기사단원 전체에 분산되었고.

그렇게 누적된 피해량은 결국 제이칸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커헉!

발러 길드의 맹공에 의해 10% 수준까지 떨어진 제이칸의 생명력 게이지.

이어서 그 위로 떨어져 내린 커다란 심판의 번개.

우르릉-콰콰콰쾅-!

-크아아! 하찮은 중간자들 따위에 또다시 봉인되다니…….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제이칸의 앞에 시커먼 어둠에 휩싸인 훈이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어둠으로 회귀하라……!”

힘을 잃고 쓰러져가는 언데드들에게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흑마법사의 고위 마법.

훈이의 손에서 펼쳐진 ‘어둠의 낙인’이 제이칸을 그대로 집어삼킨 것이다.

콰아아-!

이어서 제이칸의 심장에 마지막 일격을 꽂아 넣은 훈이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띠링-!

-지옥의 기사 ‘제이칸’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처치 기여도 : 9%

-보스 처치에 기여한 모든 파티원이 ‘명왕의 징표 15개’를 획득합니다.

-처치 기여도가 가장 높은 파티원 ‘이안’이 ‘제이칸의 파괴갑주’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중략……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던 훈이는 순간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처치 기여도에 따라, 명왕의 징표를 추가로 9개 획득합니다.

-제이칸의 숨통을 끊어 놓은 마지막 공격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혼령의 목걸이(신화)(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칼로스키아의 부화석’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미, 미친!”

막 타를 치면서 솔직히 어느 정도 기대하기는 하였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을 두 개나 건졌으니 말이다.

‘혼령의 목걸이라니……! 이건 경매장에도 올라온 적 없던 장비잖아?’

신화 등급의 초월 장비라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대박이었는데, 거기에 ‘혼령의’ 수식어가 붙은 장신구 아이템이었으니, 아마 현 시점 경매장에 가져간다면 부르는 게 값일 수준의 아이템인 것.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혼령의 목걸이와 함께 드롭된 칼로스키아의 부화석은 바로 제이칸이 타고 있던 유령마를 부화시킬 수 있는 부화석이었으니까.

‘미쳤다……! 내가 이렇게 드롭운이 좋은 적이 없었는데…….’

함지박만한 웃음이 입에 걸린 훈이의 눈앞으로, 계속해서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훈이는 더 이상 메시지에 관심이 없었다.

드롭 아이템에 대한 메시지는 더 이상 없었던 데다 이미 혼령의 목걸이와 칼로스키아 부화석만으로도 훈이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으니 말이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혼령의 탑을 전부 클리어하셨습니다!

-‘망각을 초월한 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혼령의 탑 10층으로 향하는 문이 개방됩니다.

……후략…….

하지만 볼 장 다 본(?) 훈이와 별개로 아르케인을 비롯한 발러 길드의 유저들은 다른 의미에서 점점 더 표정이 상기되고 있었다.

“드디어……!”

시스템 메시지대로라면 드디어 혼령의 탑을 정복한 것이었으며, 탑의 꼭대기엔 그들을 레테의 건너편으로 이동시켜 줄 ‘혼령의 날개’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쿵-!

쓰러진 제이칸의 사체에서 검붉은 빛줄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그 빛의 회오리는 거대한 석벽을 향해 스며 들어갔다.

고오오-!

이어서 석벽에 음각되어 있던 고대의 문양이 붉은 빛깔로 반짝이더니, 천천히 굉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긍-그그긍-!

그리고 그 거대한 굉음에, 맞춰.

드르르륵-!

굳건히 닫혀 있던 거대한 석문이 좌우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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