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화 7. 명왕의 기사 제이칸 (3) >
* * *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아니, 이 전장에 있던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
제이칸의 전투 능력은 ‘규격 외’라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휘몰아치는 검풍(劍風)의 영역 안에만 잘못 들어가도, 한 번에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깎일 수준이었으니 말이었다.
콰아아아-!
-쥐새끼마냥 도망만 다닐 텐가!
심지어 난이도를 더욱더 지옥같이 만들어 주는 것은 제이칸이 소환하여 탑승한 검보랏빛의 유령마였다.
‘칼로스키아’라는 이름을 가진, 명왕의 기사들이 타고 있는 유령마 타노스키아와는 또 다른 외형의, 사납고 강력한 유령마.
게다가 어느 정도 정보가 있는 타노스키와 달리, 칼로스키아는 언데드에 빠삭한 정보를 가진 훈이조차도 처음 보는 유령마였다.
그 때문에 처음 녀석이 소환된 순간, 발러 길드의 원정대는 큰 위기를 한 번 겪어야만 했다.
-제이칸의 유령마 ‘칼로스키아’의 고유 능력, ‘유령군림’이 발동합니다.
-모든 파티원의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50초 만큼 증가합니다.
“뭐라고……?”
“미친!”
-‘언데드’타입을 가진 모든 적들의 물리 공격력이, 60초 동안 8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언데드’타입을 가진 모든 적들의 고유 능력이, ‘즉시사용’가능 상태로 변경됩니다.
“뭐 이런 사기적인 스킬이……!”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유령강림’ 고유 능력은 사실 1회성 스킬이었다.
처음 소환되는 순간에만 한 번 발동하여 강력한 효과를 전장에 부여하는 무척이나 제한적인 스킬이었던 것이다.
물론 소환 해제 후 재소환 시 다시 발동시킬 수는 있겠지만, 어지간해서는 한 번의 전장에서 두 번 이상 발동키기 힘든 스킬이었던 것.
그러한 제한성 때문에 유령강림은 어마어마한 스펙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발러 길드의 전력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싹 다 뒤로 빠져!”
“어떻게든 50초를 버티라고!”
제이칸을 비롯한 명왕의 군단은 모든 고유 능력이 장전된 반면, 모든 유저들은 스킬 사용이 50초 뒤로 밀린 상황이었으니 지금 전투를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유령강림의 효과도 ‘저항’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밀어 버리는 효과도 저항력 스텟으로 저항이 가능하였고, 저항에 성공한 유저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다.
-크하하핫! 모조리 다 죽여 주마!
제이칸은 신나서 날뛰기 시작하였고, 발러 길드원들은 그 공격을 피하고 버티기에 급급하였다.
쿵-!
콰아앙-!
이 와중에 생명력이 절반 밑으로 떨어진다면, 언제 제이칸의 ‘영혼잠식’고유 능력이 발동될지 모르는 것이었으니.
모든 정신력을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0초라…… 진짜 거지같이도 시간이 안 가는군.’
이안은 제이칸의 영혼잠식 발동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평범한 길드원들보다는 이안에게 어그로가 쏠리는 것이 훨씬 더 버텨 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기도 하였다.
“위험합니다, 이안 님! 그러다가 한 번 삐끗하기라도 하면……!”
걱정 어린 눈으로 이안을 응시하는 아르케인.
아르케인은 물론 이안의 실력을 확실히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칸의 ‘영혼잠식’ 발동 조건이 생명력 몇 % 미만인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만약 실수로 이안의 영혼이 잠식되어 버린다면, 그대로 공략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일반 길드원 하나가 영혼잠식에 걸려도 어마어마하게 위협적이었는데, 이안이 제이칸에게 잠식당하여 반대편에서 날뛰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원정대 입장에서는 그대로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올 테니 말이었다.
하니 아르케인의 걱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하지만 그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자신의 포지션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이안 또한 그 리스크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한 가지 꿍꿍이를 따로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조금 도박수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 방법이 아니라면 승산은 희박해.’
타탓-!
아르케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제이칸에게 달려드는 이안.
-크흐흐! 제법 용기 있는 녀석이로다!
그런 이안의 행동에 아르케인은 살짝 당황했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다른 유저도 아닌 이안이 저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여기서 이안을 다시 만류하는 것보다는, 그를 서포팅하는 게 승산을 높여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안을 서포팅하면서 그의 움직임을 최대한 이용하여, 파티원 전체의 안정성을 더 높이기로 생각한 것.
“사제 클래스들은 어떻게든 이안 님을 지키도록!”
“탱커들도 한 번씩 어그로만 당겨 주고, 안전거리를 유지해!”
그리고 그러한 아르케인의 재빠른 오더에, 이안은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발러 길드의 마스터라는 건가?’
아르케인의 판단과 움직임은 이안이 원했던 최상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이러면 더 수월하겠어.’
물론 이안이 세계 최고의 랭커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파티는 결국 발러 길드의 파티다.
만약 아르케인의 속이 좁았더라면, 이안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꼽게 보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아르케인은 오히려 이안을 서포팅하기 시작했고, 이안은 이것을 무척이나 높이 평가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성공시켜야겠군.’
제이칸의 대검이 날아드는 것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이, 살짝 반짝였다.
아르케인 덕에 ‘도박’의 성공률이 조금은 더 올라간 상황.
콰쾅-!
대검을 피해 낸 이안이 제이칸을 향해 역공을 시작했고, 그것을 확인한 제이칸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노옴!
아직 유령강림의 효과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안이 거꾸로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콰쾅- 쾅-!
심지어 아무런 고유 능력 없이 오로지 피지컬만으로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심판대검은 제법 아픈 것이었다.
-지옥의 기사 ‘제이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피격 대상이 제아무리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가진, ‘제이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었다.
-‘제이칸’의 생명력이 1,912만큼 감소합니다.
-‘제이칸’의 생명력이 2,028만큼 감소합니다.
쿠웅-!
이안의 연속된 검격에 정통으로 피격당한 제이칸의 생명력은 거의 10% 가까이 줄어들었고, 제이칸의 입장에서 이 정도 피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제이칸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안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히죽 웃고 있었다.
-재밌는 녀석이야. 이거 오랜만에 흥분되는군.
보스 몬스터이기 이전에 기사단장인 제이칸은,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그의 대사를 들은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지만 말이었다.
“뭐야, 처맞더니 흥분된다고?”
-……!
“너 혹시 변태냐?”
-죽여 주마……!
이안의 말에 더욱 분노한 제이칸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이안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후웅-.
콰아아아-!
이안은 침착히 제이칸의 공격들을 피해 내며 반격했지만, 그렇다 해서 아무런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명왕의 기사’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920만큼 감소합니다!
-파티원 ‘루리스’의 고유 능력, ‘치유의 흐름’이 발동합니다.
-생명력이 580만큼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580만큼 회복됩니다.
-강력한 검풍으로 인해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201만큼 감소하였습니다.
……후략…….
이안이 제이칸을 상대하는 동안 그가 소환한 명왕의 기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고, 때문에 힐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생명력은 야금야금 줄어들었던 것이다.
‘역시 강하군. 곧 생명력이 절반까지도 내려가겠어.’
하지만 이안의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더욱 조급해지는 발러 길드원들과 달리, 이안은 무척이나 침착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의 생명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형국은, 어느 정도 그의 의도 안에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45…… 46…….’
오히려 이안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정확히 시간을 재고 있었다.
유령강림으로 인해 밀린 50초라는 재사용 대기시간.
그 시간이 끝나는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50초라는 시간이 끝나는 순간.
“차핫-!”
한 차례 기합성을 내지른 이안이 그대로 제이칸의 검풍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안의 그 돌발 행동에, 이번에는 아르케인 또한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앗!”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저 검풍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게 뻔했으니 말이다.
동시에 당황한 훈이 또한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형, 미쳤어? 영혼잠식 생각해야지!”
이안이 제이칸을 향해 도약한 그 찰나의 순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응시하는 발러 길드의 원정대원들.
그리고 그들이 우려했던 상황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크하하하핫! 어리석은 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안을 확인한 제이칸이 광소를 터뜨리며 양팔을 번쩍 치켜든 것이다.
고오오오-!
이어서 제이칸의 두 눈은 붉게 빛나기 시작하였고, 그의 주변으로 시뻘건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지옥의 기사 ‘제이칸’이 고유 능력 ‘영혼잠식(강화)’를 사용합니다.
-강력한 어둠의 영혼이 나약한 영혼을 집어삼킵니다.
쿠구궁-!
훈이가 처음부터 우려했던, 그리고 이 전장의 모두가 걱정했던 고유 능력인 영혼잠식.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닌 이안을 향해 발동하였고, 그것은 곧 이 전투에 패색이 짙어짐을 의미하는 것.
하지만 당황한 표정이던 훈이는 곧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설마, 이것까지도 의도였나?’
영혼잠식이 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움직임에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고.
그 말인 즉, 이안은 이미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었다.
‘대체 어쩌려는 거지?’
초조함과 불안.
그리고 호기심이 공존하는 훈이의 눈동자.
하지만 훈이 눈동자에 뒤얽힌 그 감정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우웅-!
이안의 뒤편에서 명왕의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루가릭스와 엘카릭스.
두 쌍둥이 남매의 손이, 이안을 향해 번쩍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파티원 ‘이안’의 소환수 ‘루가릭스’의 고유 능력, ‘비상한 두뇌’가 발동합니다.
-파티원 ‘이안’의 소환수 ‘엘카릭스’의 고유 능력, ‘비상한 두뇌’가 발동합니다.
-파티원 ‘이안’의 소환수 ‘루가릭스’의 고유 능력, ‘지식전이(智識轉移)’가 발동합니다.
-파티원 ‘이안’의 소환수 ‘엘카릭스’의 고유 능력, ‘지식전이(智識轉移)’가 발동합니다.
“미친……!?”
두 드래곤으로부터 뻗어 나온 새하얀 빛이 이안에게 빨려 들어간 순간, 제이칸의 대검에서 뻗어 나온 잠식의 기운이 이안을 휘감았고.
고오오오-!
이어서 믿을 수 없는 한 줄의 메시지가, 모든 파티원들의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파티원 ‘이안’이 ‘제이칸’의 고유 능력 ‘영혼잠식’에 저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