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5화 7. 명왕의 기사 제이칸 (1) >
지금껏 발러 길드를 항상 좌절하게 만들었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혼령의 탑 8층.
이안은 죽은 영혼의 사슬 파훼법을 안 이상 8층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이안의 착각이었다.
7층과 8층의 난이도는,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올리버가 왜 껍데기만 1레벨이라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어.’
혼령의 탑 1층부터 8층까지,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초월 레벨은 분명 변함없이 1레벨이었다.
하지만 스텟 가중치가 다른 것인지, 어떤 특수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것인지.
8층에 등장하는 괴수들의 전투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안을 경악하게 했던 존재들은, 시커먼 유령마를 타고 있는 ‘명왕 라타르칸’의 기사들이었다.
확실히 ‘기사’ 수식어를 달고 있는 녀석들은 평범한 해골병사와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보여 줬던 것이다.
“쟤들이 타고 있는 거…… 혹시 타노스키아 아니냐, 훈아.”
“맞아, 형.”
“뭐 저런 무식한 놈들이…….”
기사들이 타고 있는 유령마를 본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타노스키아’는 말의 형상을 한 강력한 언데드 소환수였는데, 흑마법사 사이에서도 무척이나 귀한 언데드였다.
명계에서 정말 낮은 확률로 드롭되는 ‘타노스키아의 소환석’아이템이, 경매장에서 거의 3~4만 차원 코인에 거래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 최상위 랭커인 훈이조차도 가격에 부들부들 떨면서 한 마리 구한 수준.
그런 귀한 소환수를 수십이 넘는 기사들이 전부 탑승해 있었으니, 이안과 훈이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쟤들 잡으면, 타노스키아의 소환석이라도 드롭되는 거 아냐?”
“그럼 진짜 개꿀인데…….”
훈이와 이안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아르케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쉽게도 그런 대박은 없더군요.”
“그, 그런가요…….”
“저 친구들이 드롭하는 것도, 병사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명왕의 징표……?”
“빙고.”
“쳇.”
8층의 난이도가 어려운 만큼, 공략법은 7층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죽은 영혼의 사슬 파훼법을 알지 못했을 때야 선택지가 버티기 하나뿐이었지만.
이제는 차근차근 각개격파를 한다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여 발러 길드의 원정대는 이안, 훈이와 함께 기사들을 하나씩 격파하기 시작하였다.
“유령의 저주를 조심해야 합니다.”
아르케인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유령의 저주라면…… 타노스키아의 고유 능력이죠?”
“맞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도 없는 평타 스킬 같은 건데…… 위력은 강하지 않지만 침묵이 묻거든요.”
“으…… 그놈의 침묵.”
유령마 타노스키아의 가치는 침묵을 비롯한 강력한 CC 능력과 디버프 능력에 있었다.
유령의 힘이 묻은 공격에 당하면 기본적으로 침묵이 걸리는 데다, 광역 패시브 스킬인 ‘죽음의 안개’를 활용하여 범위 내의 모든 적을 디버프하고 모든 아군을 버프하니.
언데드 군단을 소환하여 전투하는 소환형 흑마법사에게, 타노스키아는 필수적인 0티어 소환수였던 것이다.
<죽음의 안개>
-자신 인근 50M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아군의 치명타 확률을 5%만큼 증가시키며, 방어 관통을 10%만큼 증가시킵니다. 반대로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의 회복 능력을 30%만큼 감소시키며, 저항력을 20%만큼 감소시킵니다.
“죽음의 안개가 중첩되지 않는 게 다행이네.”
훈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중첩됐으면, 여기 못 깨…….”
만약 이 죽음의 안개가 중첩됐다면 모든 적들의 방어 관통은 100%가 넘었을 테고, 아군의 저항력은 마이너스 대로 떨어졌을 테니, 답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었다.
“크, 타노스키아 하나 뺏어서 내가 타고 싶다.”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커버해, 인마.”
“쳇. 알겠어, 형.”
이안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열심히 흑마법을 캐스팅하는 훈이.
정령왕 엘리샤의 고유 능력들을 활용하여, 안정적인 전투력을 보여 주는 이안.
그에 더해 발러 길드의 원정대원들도 이제 두 사람과도 제법 호흡이 맞기 시작했고, 점점 시너지가 나기 시작하자, 8층도 결국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띠링-!
-파티 리더 ‘아르케인’이 네 번째 제단에 불을 붙였습니다!
-조건이 일부 충족되었습니다!(4/5)
“자, 조금만 더 힘내자고!”
“드디어 8층을 벗어나는 건가……!”
“아직까지 한 명도 아웃되지 않았다니…… 정말 기적 같군.”
발러 길드의 길드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중얼대며 더욱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안과 훈이의 합류가 기대했던 것 한참 이상의 효과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 이제는 모두의 머릿속에 ‘혼령의 탑 클리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르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8층까지 낙오가 하나도 없을 줄이야. 정말 클리어를 바라봐도 되겠군.’
아직 9층과 10층이 남긴 했지만, 아르케인은 희망적이었다.
‘칼데라스도 아직 넘지 못한 망각의 강을…… 우리가 최초로 넘을 수도 있겠어.’
8층의 마지막 제단에 불을 붙이며, 온갖 행복 회로를 돌리는 아르케인.
-파티 리더 ‘아르케인’이 다섯 번째 제단에 불을 붙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혼령의 제단 8층’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혼령의 제단 8층’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이 소멸됩니다.
……중략……
-클리어 등급 : S-
물론 아르케인의 머릿속 행복 회로가 그대로 현실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었다.
* * *
발러 길드의 배신자 세르누크를 만난 뒤, 카브리엘과 게스토 길드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세르누크에게 얻은 정보를 잘만 활용한다면, 발러 길드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물론, 전 서버 최고 랭커인 이안과 훈이까지도 벗겨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었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야.’
사실 카브리엘이 아무리 톱 랭커라고 하더라도, 게스토 길드가 발러의 정예와 이안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스토 길드 또한 전체 랭킹 10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최상위 길드였지만, 길드 랭킹 3~5위권을 언제나 유지하는 발러 길드와 비교한다면 확실히 전력이 열세였으니 말이다.
여기에 이안이라는 일인군단까지 가세한다면, 게스토 길드에서 비벼 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확실한 사실.
그러나 세르누크가 언급했듯, 지금은 조금 특별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게스토 길드의 존재를 모르지만, 게스토 길드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이 필드가 ‘망각의 심연’이라는 사실 또한, 게스토 길드의 승산을 확실히 올려 주는 부분이었다.
‘이 망각의 저주 안에선, 모두가 공평하니 말이지. 흐흐.’
장비까지 어쩔 수는 없지만, 적어도 레벨만큼은 완벽히 평등한 곳인 이 망각의 심연.
이 레벨 평준화를 통해 발러 길드와의 격차는 최대한 좁혀질 것이었고, 여기에 세르누크로부터 얻은 정보들까지 활용된다면.
이안과 발러 길드의 통수를 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이다.
“이제 발러 길드가 탑에 입장한 지…… 대충 2시간 정도가 지난 건가?”
카브리엘의 물음에, 세르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맞아, 카브리엘. 정확히 1시간 50분 지났군.”
“흐음…….”
지금 세르누크와 게스토 길드가 매복해 있는 곳은 ‘망각의 심연’ 내부이면서 ‘망각의 문’ 바깥이었다.
혼령의 탑에서 낙오한 유저는 혼령의 땅이 아닌 망각의 문 바깥으로 강제 소환된다는 사실을 카브리엘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혼령의 탑을 포함한 혼령의 땅 내부에선 생명력이 5% 미만으로 떨어지는 순간 망각의 문 바깥으로 빨려나오게 되니, 그렇게 튕겨 나온 발러 길드의 원정대원들을 하나씩 짤라 먹기에, 이곳만큼 완벽한 위치도 없었으니까.
“1시간 50분이면, 이제 슬슬 낙오자가 나올 때도 되었는데…….”
카브리엘은 머릿속으로 혼령의 탑을 한번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대충 7층과 8층. 그리고 9층까지 도달하는 데에, 얼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지난번 8층 공략을 성공했을 때…… 우리가 소모했던 시간은 대충 3시간 정도였어.’
시간을 계산하던 카브리엘은 점점 조급한 표정이 되어 갔다.
그의 계산으로 발러 길드에 이안과 훈이가 합류했다면, 게스토보다 더 빠른 시간에 7~8층에 도달했을 것이고, 2시간이 지났다면 이제는 슬슬 낙오자가 하나씩 나올 시점이 되었는데, 아직 망각의 문 앞에 발러 길드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물론 이해도가 낮은 세르누크는 답답한 소리를 했지만 말이었다.
“아직 낙오자가 나올 시간은 아니야, 카브리엘.”
“어째서 그렇지?”
“지난 번 공략때 우리 길드는 8층에 도착하는 데만 거의 4시간이 걸렸으니까.”
“…….”
세르누크의 말에 카브리엘은 입을 닫아 버렸다.
사실 이안보다도 ‘훈이’의 존재 때문에 발러 길드의 클리어 타임이 엄청 당겨질 것이라는 사실을 카브리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진 괜찮아. 발러 길드와 이안의 전력이라면, 7층까지도 낙오 없이 클리어가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카브리엘은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변수들을 감안한 결과,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3시간. 3시간까지는 기다려봄 직해.’
그의 계산에 아무리 오차가 있다 하더라도, 3시간을 채우기 전에는 낙오자가 망각의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던 것이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3시간 만에 발러 길드가 무사히 혼령의 탑을 클리어하고 나올 일은 없었으니, 3시간까지는 게스토 길드에게 안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발러 길드가 혼령의 탑을 클리어한다 해도, 낙오자는 나올 수밖에 없어. 9층에 있는 제이칸은…… 정말 미친 괴물이니까.’
하지만 어느정도 확신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초조해지는 카브리엘의 눈동자.
그런데 그렇게, 40분 정도가 더 흘렀을까?
우우웅-!
발러 길드의 원정대가 혼령의 탑에 들어선 지 정확히 2시간 5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우웅-!
미동도 않던 시커먼 망각의 문이 드디어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발견한 카브리엘과 게스토 길드원들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