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04화 (1,004/1,027)

< 1004화 6. 혼령의 탑 (4) >

차원 전쟁이 끝난 직후, LB사의 기획팀은 오랜만에 여유라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차원 전쟁 종료에 맞춰 상위 콘텐츠 기획 개발이 거의 끝난 데다, 큰 에피소드가 하나 마무리되어 그런지 특별한 이슈가 추가적으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주말다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개운한 마음으로 출근한 기획 3팀의 대리 유아영.

“자, 월요일 아침이니까…… 데이터부터 한번 뽑아 볼까?”

그녀의 첫 주간 업무는 혼령의 탑 콘텐츠 진행도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혼령의 탑은 명계의 콘텐츠들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였고, 때문에 1주일에 한 번은 꼭 진행 데이터를 뽑아 보도록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 보자…… 오늘은 뭔가 변화가 있으려나?”

현재까지 혼령의 탑을 공략한 길드는 전 서버 모든 길드를 통틀어 딱 두 곳이었다.

지금 이안과 함께 공략 중인 인간 진영의 발러 길드와,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아 공략 중이었던, 마족 진영의 게스토 길드.

그리고 이 두 길드 중 게스토 길드가, 발러 길드에 비해 조금 더 진행도가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이안과 함께하기 전까지 8층에 막혀 있던 발러 길드와 달리, 게스토 길드는 9층도 거의 뚫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신기하네. 게스토 길드가 발러 길드보다 더 진행도가 높다니…….”

서버 데이터를 확인한 유아영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내부 데이터상으로 보나 유저 인지도상으로 보나, 게스토 길드보다는 발러 길드의 전력이 한 급 정도 높았는데.

콘텐츠 진행도는 오히려 게스토 길드가 높았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놀란 목소리에, 근처에서 서류를 뽑고 있던 나지찬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당연한 결과야.”

“어째서요?”

“게스토 길드의 마스터가, ‘카브리엘’이니까.”

“……?”

게스토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마족 진영 최강의 흑마법사 중 한 명인 카브리엘.

게스토 길드는 칼데라스나 천웅, 다크블러드 등의 마족 최상위 길드들에 비해 한 급 떨어지는 길드였지만, 카브리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흑마법사 계열의 클래스를 가진 천웅 길드의 마스터 ‘류첸’과 비교하더라도, 카브리엘의 능력은 크게 뒤처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카브리엘은 평소 유저들 사이에서, 훈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분류되는 흑마법사였다.

“카브리엘은 흑마법사고, 그의 데스나이트 ‘가젤’이 라타르칸의 기사단 중 하나거든.”

“아…….”

“혼령의 탑을 지키는 군대가 라타르칸의 군대니까. 카브리엘만큼 이 콘텐츠를 쉽게 파훼할 수 있는 인물도 없을 수밖에.”

훈이가 명왕 라타르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카브리엘은 라타르칸의 군대들까지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훈이가 부리는 어둠의 소환수들 중에는 라타르칸의 권속이 없었지만, 카브리엘에게는 ‘데스 나이트 가젤’이라는 라타르칸의 최고 권속 중 하나가 소환수로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교적 떨어지는 길드 전력에도 불구하고, 게스토 길드가 혼령의 탑 9층까지 뚫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훈이 덕에 죽은 영혼의 사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발러 길드와 달리, 게스토 길드는 첫 공략 때부터 사슬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지찬의 정보력(?)에 당황한 유아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팀장님은 무슨…… 유저 개개인이 보유 중인 소환수까지 달달 꿰고 계신 거에요?”

“하하, 그 정돈 아니야.”

“아니긴 뭘 아니에요.”

“매일 데이터 수집하고 분석하다 보면, 카브리엘 정도급 최상위 랭커 정보는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더라고.”

“괴물…….”

유아영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서버데이터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방금 확인한 것은 층별 클리어 정보일 뿐이었고, 이제 세부 데이터는 따로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니터의 스크롤을 내리던 아영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되었습니다.

-데이터를 갱신하시겠습니까? Y/N

갑자기 모니터에 팝업 메시지가 뜨면서, 데이터 갱신 알림이 도착했으니 말이다.

“음? 데이터 갱신……?”

아영은 살짝 놀랐지만, 별생각 없이 Y 버튼을 클릭하였다.

데이터 열람 중에 신규 데이터가 갱신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

갱신된 데이터를 확인한 아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유 대리.”

“클리어 데이터가 갱신됐어요, 팀장님.”

“응……?”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7층이었던 발러 길드의 최대 클리어 기록이, 갱신된 데이터를 받고 나자, 8층으로 바뀌어 있었으니 말이다.

“발러 길드가 방금 8층을 뚫었나 봐요.”

“오호, 그래?”

“이러면 지금 9층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죠?”

아영의 질문에, 나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렇겠지. 실시간으로 트라이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데이터가 지금 갱신될 이유가 없으니까.”

나지찬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발러 길드에서 8층을 뚫는 것은 최소 다음 주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클리어 데이터가 날아왔으니 말이다.

‘호오, 실시간 데이터라…… 이거 재밌는데?’

하여 흥미를 느낀 나지찬은 정리하던 서류를 한쪽에 밀어 두고 유아영의 옆으로 다가갔다.

“유 대리, 모니터링해 보자.”

“발러 길드요?”

“그래. 9층 트라이 영상은 좀 보고 싶네.”

“알겠어요, 팀장님. 잠시만요.”

나지찬은 아영의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고, 그동안 유아영은 듀얼 모니터를 세팅하였다.

듀얼 모니터에 모니터링실 데이터를 스트리밍하면, 굳이 모니터링실까지 가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원하는 유저를 모니터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천천히 켜지는 모니터 화면에 고정된 나지찬의 두 눈은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 9층을 뚫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공략하는지는 궁금하잖아?’

유아영이 세팅한 듀얼 모니터에, 새하얀 글씨들이 주르륵 하고 흘러 내려갔다.

유아영이 스트리밍으로 불러온 유저는 발러 길드의 마스터인 아르케인이었고, 카일란의 유저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의 정보를 불러오는 동안 잠깐의 딜레이가 걸린 것이다.

-유저 ‘아르케인’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중략……

-유저 ‘아르케인’의 플레이 화면을 스트리밍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

피이잉-!

아르케인의 플레이 화면이 모니터에 떠오른 순간, 유아영과 나지찬은 동시에 헛바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헛!”

“커헉!”

분명 발러 길드의 마스터인 아르케인의 플레이 화면을 스트리밍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얼굴이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저 꼬마, 훈이 아니에요?”

“쟤, 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 그러게요.”

“뭐야, 유저 잘못 서칭한 거 아냐? 오류 아니야?”

“오류는 아닌 것 같아요, 팀장님. 저쪽에 길드 문양은 분명히 발러 길드의 문양이에요.”

“그러네. 저기 올리버도 있네.”

하지만 그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친……!”

훈이를 대문짝만하게 비추던 아르케인의 시야가, 이번에는 또 다른 낯익은 인물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이, 이안……!”

그리고 그 둘의 존재를 확인한 나지찬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역시! 생각보다 빨리 깼더라니……!’

이안과 훈이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면, 발러 길드가 곧바로 8층을 클리어한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으니 말이다.

‘훈이 정도면 충분히 라타르칸의 권능에 대해 알고 있겠지. 거기에 이안까지 가세했다면…….’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지찬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8층이 뚫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혼령의 탑이 정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9층의 난이도가 8층이랑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긴 하지만…… 어쩌면 여기서 뚫릴 수도 있겠어.’

-쾅-콰쾅-!

-위이잉-! 우우웅-!

화려한 이펙트가 난무하는 모니터를 응시하는 나지찬의 두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순간 나지찬의 머릿속에는 혼령의 탑이 정복되는 순간 연계될 수많은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 * *

세르누크의 이야기는 약 10여 분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심드렁하던 카브리엘의 표정은 점점 더 흥미롭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대박인데?’

사실 처음 세르누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카브리엘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끽해야 발러 길드 원정대의 구성과 혼령의 탑 공략에 대한 정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발러 길드의 길드원인 세르누크는 자신들이 혼령의 탑 진행도가 발러 길드보다 낮으리라 생각할 테고, 때문에 세르누크가 팔고자 하는 정보가, 탑 공략에 관련된 것들 위주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카브리엘은 애초에 발러 길드가 자신들보다 혼령의 탑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이것이 그가 심드렁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하지만 막상 세르누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카브리엘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세르누크는 카브리엘이 생각했던 것보다 혼령의 탑 공략법에 대한 정보를 잘 알지 못했으며, 때문에 그가 게스토 길드에게 넘기려는 정보는 혼령의 탑 공략에 대한 이야기 위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발러 길드의 원정대가 입장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났고.”

“맞아.”

“그 원정대에 로터스 길드의 랭커인 이안과 간지훈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후후, 재미있군. 재밌어.”

세르누크가 카브리엘에게 준 정보들은, 거의 발러 길드 랭커들의 개인 정보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세르누크가 전달하는 정보의 초점은 ‘발러 길드 원정대 상대법’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런 정보를 우리에게 넘기는 이유는……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간 원정대를 박살 내길 원하기 때문이겠지?”

“정확해.”

“발러 길드의 정예 멤버에, 이안과 간지훈이까지……. 너는 우리가 그 전력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내가 정보를 줬으니까.”

“후후.”

“그리고 지금은…… ‘조금’ 특별한 상황이니까.”

세르누크가 말하는 특별한 상황이란 발러 길드가 혼령의 탑 안에 들어간 지금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르누크가 경험한 혼령의 탑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고, 때문에 이안이 포함되었다고 한들 한 번에 이곳을 공략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발러 길드의 원정대가 7층에 진입할 시점이 되면,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길드원이 하나씩 탑 바깥으로 튕겨 나올 것이고, 카브리엘과 게스토 길드는 그렇게 튕겨 나온 발러 길드의 길드원들을 하나씩 주워 먹으면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혼령의 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카브리엘 또한, 세르누크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크,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거래가 되었군.”

만약 세르누크의 정보가 100% 확실한 사실이라면, 오늘 발러 길드의 혼령의 탑 원정대에 포함된 모든 유저들은 단 한 사람도 몸 성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좋아. 네놈 말이 사실이라면, 5만 코인 정도는 아낌없이 지불하도록 하지.”

“후후,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내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인 카브리엘은 즉석에서 세르누크에게 5만 코인을 지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세르누크의 말을 믿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나기 전까지, 너도 여길 벗어날 수 없어.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

“대신 네 말이 전부 다 사실로 판명난다면, 너만큼은 무사히 보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세르누크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카브리엘의 시선이 시커먼 망각의 심연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카브리엘의 표정은 점점 더 상기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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