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03화 (1,003/1,027)

< 1003화 6. 혼령의 탑 (3) >

혼령의 탑을 공략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바로 ‘혼령의 횃불’이었다.

혼령의 탑 1층에 들어설 때 필수적으로 가지고 입장해야 하는, 파티원 중 오직 한 사람만 들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 아이템.

결국 각 층을 돌파하기 위해선 정해진 위치에 이 횃불로 불을 붙이면 되는 것이었으니, 혼령의 횃불을 든 유저가 공략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안과 발러 길드의 파티에서 이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은, 다름 아닌 발러 길드의 마스터 아르케인이었다.

“마스터를 엄호하라!”

“서쪽 스팟부터 먼저 공략한다!”

물론 피지컬이든 퀘스트 공략 능력이든 이안이 아르케인보다 더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혼령의 탑 콘텐츠에서 만큼은, 아르케인보다 이안이 능숙하기 힘들었다.

아르케인은 이미 길드 파티와 함께 여러 번 혼령의 탑을 트라이한 상태였고, 이안은 이번이 완전한 초행길이었으니 말이다.

“올리버.”

“응?”

“나랑 훈이가 좌측 복도를 맡을게. 네가 마스터를 바짝 따라붙어 줘.”

“오케이.”

대신 이안과 훈이에게는 파티 내에서 거의 프리 롤이 주어졌다.

이미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일사분란하게 굴러가는 발러 길드의 원정대 안에서, 이안과 훈이가 굳이 그들의 규칙과 오더 안에 갇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유롭게 움직이며 따로 활약해 주는 것이 전력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아르케인은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난이도가 더 어려워질수록, 아르케인의 그러한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고오오오-!

이안과 훈이는 각자 본신의 전투력도 뛰어났지만, 그와 별개로 수많은 강력한 소환수들을 운용하는 클래스를 가지고 있었으니.

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최소 길드원 10인분 이상의 능력을 보여 줬던 것이다.

길드원 대여섯이 달라붙어도 버겁게 느껴지던 명왕의 병사들 한 개 소대를, 이안과 훈이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커버한 것이다.

“한 10분 정도만 얘들 묶어 놓으면 되겠지?”

“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다 잡으면 되잖아.”

“음, 쉽진 않겠지만, 역시 그게 더 깔끔하겠네.”

일반적으로 발러 길드에서 혼령의 탑 상층부를 공략할 때 사용하던 방식은, 강력한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사방으로 분산시키면서 최대한 빨리 다섯 개의 제단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특히나 ‘명왕의’라는 수식어를 가진 네임드 몬스터들의 경우, 특수한 고유 능력과 함께 1레벨이라고 믿을 수 없는 강력한 전투 스텟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들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내면서, 빠르게 다섯 개의 불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정공법처럼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당연히 리스크가 있었다.

결국 모든 불을 붙이기 전에 명왕의 군대를 막아 내던 사이드가 한쪽이라도 터져 버린다면, 그대로 모든 진형이 와해되면서 공략에 실패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공략법을 아는 마당에, 굳이 그런 리스크를 안고 갈 필요가 없지.’

복도를 따라 밀려드는 명왕의 병사들을 확인한 이안은, 씨익 웃으며 심판 검을 치켜들었다.

이어서 훈이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훈이, ‘소울 브레이커’ 가지고 있지?”

“있지. 그건 왜?”

“저기서 제일 방어력 약한 놈이 누굴까?”

“아마도 활 든 궁수들이겠지?”

“한 놈 골라서 걸어 줘.”

“알겠어.”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훈이의 양손에서 칠흑같이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훈이의 완드를 타고 뻗어 나온 그 어둠의 기운은, 명왕의 군대 사이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 이펙트를 확인한 명왕의 병사들이,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하아아……! 어둠의 마법사다!

-어둠의 마법사가 라타르칸 님을 적대하다니……!

-배덕자를 죽여라!

소울 브레이커는 사실 고유 능력이나 마법, 스킬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훈이의 목에 걸려 있는 해골 문양의 목걸이가 바로, ‘소울 브레이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소울 브레이커>

-죽음의 기운을 담은 고대 리치 킹의 유산입니다. 어둠의 마력을 이용해 이 소울 브레이커를 사용한다면, 원하는 대상 하나의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재사용 대기시간 : 180초)(모든 전투 능력–70%)

*소울 브레이커를 사용하는 동안, 시전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시전자의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소울 브레이커는 해제됩니다.

*‘소울 브레이커’ 효과의 최대 지속 시간(10초)은, 대상의 ‘어둠 저항력’에 비례하여 감소합니다.

*‘보스’타입의 몬스터에게는 소울 브레이커의 효과가 절반만 적용됩니다.

보통 소울 브레이커는 강력한 보스를 상대할 때 많이 사용하는 디버프 아이템이었다.

보스 타입의 몬스터에게 디메릿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투 능력 디버프량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물리, 마법 공격력을 깎을 뿐 아니라 방어력 감소에 둔화 효과까지 있었으니, 소울 브레이커를 걸어 둔 동안 공격을 집중시키면 보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수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해골병사에게 소울 브레이커를 사용하는 훈이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사용해 보기는 또 처음이네.’

물론 이안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바로 이해했기 때문에 군말 없이 아이템을 작동시켰지만 말이다.

-‘명왕의 해골병사’에게 ‘소울 브레이커’를 사용하였습니다.

-‘명왕의 해골병사’가 ‘영혼의 속박’ 상태에 빠집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물리 공격력이 70%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마법 공격력이 70%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물리 방어력이 70%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영혼의 속박’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훈이의 손에서 뻗어 나온 짙은 어둠의 소용돌이가, 활을 든 명왕의 병사 하나를 휘감아 옥죄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영혼의 속박’효과가 발동된 바로 다음 순간, 양 손에 심판 검을 쥔 이안이 할리의 등에 오른 채 쏜살같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타탓-!

이어서 훈이의 옆에 있던 이안의 소환수.

‘엘’의 양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타락한 그대의 영혼을, 빛으로 씻어 내리라……!”

화르륵-!

빛의 드래곤인 엘카릭스는 수많은 ‘빛’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마법의 일족’고유 능력을 통해 지금까지 강력한 빛의 마법들을 많이 습득해 두었으니 말이다.

물론 마법사나 사제 클래스 랭커들보다야 마법의 다양성이나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유저 레벨은 한참 뛰어넘는 수준.

팟 파파팟-!

엘의 손을 떠난 새하얀 다섯 개의 섬광이 해골병사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고 지나갔고, 그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소환수 ‘엘카릭스’의 마법, ‘빛의 섬전’이 발동하였습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에게 치명적인 마법 피해를 입혔습니다!

-명왕, ‘라타르칸’의 가호, ‘죽은 영혼의 사슬’ 효과가 발동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에게 입힌 피해가 분산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생명력이 82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7%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생명력이 61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7%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엘이 사용한 빛의 섬전은 제법 강력한 빛 속성 공격 마법이었다.

하지만 망각의 저주 효과로 인해 초월 1레벨이 된 엘이 사용한 데다 사슬로 인한 데미지 분산까지 적용되니, 두 자리 숫자라는 귀여운 데미지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빛의 섬전으로 딜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안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섬전이 해골병사를 관통한 바로 그 순간, 마치 그 빛을 따라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할리를 타고 날아든 이안의 심판 검이 해골병사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콰득-.

소울 브레이커에 빛의 섬전으로 인한 방어력 감소 중첩 효과까지.

방어력 감소 효과가 100%에 수렴하는 그 찰나의 순간.

이안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해골병사의 뼈 갑옷을 뚫고 쏟아져 들어간 것이다.

콰콰콰쾅-!

그리고 커다란 파열음이 터져 나온 바로 그 순간, 이안의 눈앞에는 간결한 세 줄의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생명력이, 19,250만큼 감소합니다.

-‘명왕의 해골병사’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명왕의 해골병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마치 죽은 영혼의 사슬로 인한 데미지 분산 효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버프와 디버프를 극한으로 중첩시킨 한 방의 공격으로 해골병사 하나를 그대로 터뜨려 버린 이안.

모든 생명력을 잃은 해골병사는 그 자리에서 뼛가루가 되어 주저앉아 버렸고.

후두두둑-.

멀찍이서 그 광경을 본 발러 길드의 길드원들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한 방에 터졌어!”

사실 아무리 네임드라 해도, 상대는 고작 해골병사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해골병사를 한 방에 부수는 정도는 어느 랭커나 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죽은 영혼의 사슬’로 인한 데미지 감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고 있는 발러 길드의 길드원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리고 발러 길드원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펑- 퍼펑-!

콰콰쾅-!

명왕의 병사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간 이안이, 미친 듯이 해골병사들을 쓸어 버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죽은 영혼의 사슬’로 인해, 사슬로 이어진 모든 해골병사들의 생명력이 10%까지 떨어졌기에 가능한 퍼포먼스.

하지만 이안과 훈이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은 몇몇 길드원을 제외하고는 ‘죽은 영혼의 사슬’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그들의 눈에 이안의 활약은 버그가 아닌지 의심될 수준이었다.

“한 개 소대를 저렇게 간단히 파괴하다니…….”

“괴물……!”

그리고 이안의 그러한 활약에 힘입어, 발러 길드의 원정대는 손쉽게 7층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띠링-!

-파티 리더 ‘아르케인’이 다섯 번째 제단에 불을 붙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혼령의 제단 7층’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혼령의 제단 7층’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이 소멸됩니다.

……중략……

-클리어 등급 : SS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발러 길드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게 이렇게 쉬운 난이도였나……?’

손쉽게 7층을 통과한 것은 물론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난 고생이 뭔가 허탈해진 것이다.

하지만 허탈감 보다는 혼령의 탑을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모두에게 더 크게 다가왔고, 때문에 발러 길드원들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좋았어! 이대로면 10층까지도 충분하다고!”

“이 지긋지긋한 혼령의 탑도 오늘까지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원정대 안에서 가장 행복(?)한 유저는 따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크흐흐, 역시 이안갓……!’

이안과 함께 명왕의 병사들을 쓸어 담으면서, 벌써 열 개도 넘는 명왕의 징표를 손에 넣은 한 사람.

‘분명해. 이걸 갖고 혼령의 탑 정상에 오른다면, 최소 명왕 셋이나 혼령 셋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는 다름 아닌 이안의 추종자(?) 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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