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2화 6. 혼령의 탑 (2) >
로터스에는 세계 랭킹 1위의 길드답게, 이안 말고도 수많은 강자들이 포진해 있다.
레미르, 유신, 레비아 등,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손에 꼽힐 만한 랭커들이 열 명도 넘게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중에서도, 훈이 하나만을 명계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선택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훈이는 ‘언데드’에 관한 한, 그 어떤 길드원보다도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어둠 소환술의 연구가 곧 언데드 연구나 다름없었고, 사실상 명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데드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훈이의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으니, 명계 공략에 훈이만큼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훈이는 로터스 길드원들이 정령계 콘텐츠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가장 많이 명계에 머물었던 유저기도 하였다.
물론 언데드에 대한 연구가 그 이유였고 말이다.
‘확실히 훈이와 함께라면, 정보 부족으로 인한 변수를 많이 줄일 수 있겠어.’
그리고 이안이 훈이를 콕 찍어서 데려온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첫 번째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훈이의 개인적인 스펙 업 때문이기도 하였다.
한때 랭커들 중에도 류첸을 제외한다면, 비교할 만한 인물이 없을 정도로 최강의 흑마법사였던 훈이.
물론 아직도 훈이의 스펙은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래도 이제 많은 흑마법사 랭커들이 훈이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흑마법사는 사실 명계의 콘텐츠를 진행할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가장 많은 직업군이었는데, 그동안 로터스 길드가 정령계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인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훈이는 그에 대해 어떤 불만도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그것이 항상 미안했던 이안이었다.
‘혼령의 날개와 관련된 콘텐츠를 할 때라도, 훈이가 이득을 볼 수 있게 해 줘야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 이것은 사실 훈이를 데려온 이유라기보다 훈이‘만’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은 원래 훈이 말고도 꼭 데려오고 싶었던 인물이 하나 더 있었으니 말이다.
‘레비아 님을 데려오지 못한 게, 아직도 너무 아쉽단 말이지.’
훈이가 언데드에 대해 가장 빠삭한 인물이라면, 언데드를 상대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인 레비아.
그녀 또한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큼 최상위권의 사제 랭커였고, 때문에 그녀가 있었다면 모든 콘텐츠가 훨씬 더 수월했을 테니 말이다.
다만 그녀를 데려오지 못하고 훈이만 함께한 이유는 발러 길드의 조건 때문이었다.
발러 길드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공유해 주는 대신, 최대 한 명만 더 데려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던 것이다.
사실 이안 외에 한 명을 더 허용해 줬다는 것도 파격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안은 여기에 더 토를 달 수 없었다.
‘뭐.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레비아를 데려오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훈이를 데려온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음은 분명했다.
혼령의 탑에 입장하여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공략 중인 지금.
훈이는 확실히 밥값(?)을 해 내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명왕의 병사들이라기에…… 어떤 녀석들인가 했더니.”
“음?”
“칠대명왕 라타르칸의 군단이었군.”
“라타르……칸?”
혼령의 탑 7층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명왕의’ 수식어를 가진 몬스터들.
녀석들에 대해 무척이나 자세한 정보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형, 뮤칸 기억나지?”
“물론이지.”
“라타르칸은, 뮤칸처럼 칠대 명왕 중 하나야.”
“오호.”
“서열이 누가 더 높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역시나 강력한 명왕이지.”
“그럼 이 혼령의 탑 끝에, 그 라타르칸이라는 명왕이 있는 건가?”
이안의 물음에, 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하였다.
“음, 그러면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건가?”
“맞아.”
“왜?”
“그럼 아마 이 콘텐츠 공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
명왕은 강력하다.
그리고 그 강력함을 이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칠대명왕 중 하나인 뮤칸과 싸워 본 것이,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하긴. 뮤칸이 만약 본신의 힘을 다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안은 지상계에서 뮤칸을 상대했었다.
그 말인 즉, 그의 초월 권능을 전부 봉인당한 상태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다.
물론 초월 권능이 없는 뮤칸은 상대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지만, 반대로 뮤칸이 가진 초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지 가늠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같은 칠대명왕이라면, 라타르칸이라는 녀석도 비슷한 수준이겠지.’
과거 뮤칸의 강함을 떠올리는 이안을 향해, 훈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명왕은 말 그대로, 이 명계의 왕 같은 존재야.”
“오호……?”
“나도 아직 뮤칸 이후로 명왕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고대서에 따르면 명왕은 반신의 존재라고 했어.”
“반신이라…….”
“중간자의 위격을 넘어, 절반 정도는 신격을 가진 존재.”
“그렇군.”
“초월 권능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명왕이라면, 못해도 찰리스보단 강력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훈이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자연스레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신이라는 단어와 신격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정말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니 말이다.
‘청랑…… 명왕이 그녀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라면, 아무리 발러 길드와 내가 전력을 다 해도 지금은 결코 상대할 수 없겠지.’
이안이 기사 대전을 끝내고 가장 먼저 향했던 콘텐츠.
‘근원의 숲’을 지키는 주인이자 ‘천상호리’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던 존재.
그녀의 강함을 떠올리면, 훈이의 이야기가 충분히 납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명왕은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속편하겠고…….”
“그렇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 명왕의 하수인이라는 녀석들은 충분히 상대할 만한 거지?”
지금 이안과 훈이가 위치한 곳은 혼령의 탑 7층의 입구였다.
혼령의 탑 각 층의 입구는 투명한 장막으로 막혀 있었고, 이 장막은 일방통행이었다.
즉, 이안을 비롯한 발러 길드의 원정대는 이 장막 너머로 언제든 입장할 수 있지만, 장막 안쪽에 보이는 명왕의 하수인들은 장막 밖으로 나와 이안들을 공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안 일행들 또한 장막 안으로 들어간 순간, 다시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금은 아무런 위협 없이 내부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분석할 수 있었고, 때문에 7층을 공략하기 전 이안이 훈이에게 명왕의 군대에 대한 정보들을 물은 것이었다.
훈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기사단장도 아니고 저런 병사 나부랭이들 정도는, 형 창질 몇 번에 그냥 푹 푹 쓰러질 거야.”
“그래?”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모든 명왕의 군대들이 가지고 있는 패시브 고유 능력인 ‘명왕의 가호’ 이건데…….”
“명왕의 가호……?”
“내가 기억하기로 라타르칸의 가호는 ‘죽은 영혼의 사슬’이라는 거야.”
훈이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아르케인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 훈이 님 말이 맞습니다. 저 녀석들, ‘죽은 영혼의 사슬’이라는 고유 능력을 쓰더군요.”
아르케인의 추임새(?)에 더욱 우쭐해진 표정의 훈이가 말을 이었다.
“죽은 영혼의 사슬은…… 쉽게 말해서 일정 범위 내의, 같은 고유 능력을 가진 모든 ‘언데드’끼리 생명력을 공유하는 패시브야.”
“공유한다고?”
“그러니까 형이 당장 저 앞에 있는 해골병사한테 100만의 데미지를 박아 넣었다고 해도, 그 데미지가 주변에 있는 모든 해골병사들에게 분산되어 들어간단 얘기지.”
“오호.”
“그리고 이 패시브가 진짜 까다로운 이유가 뭐냐면, 광역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
“어째서 그렇지?”
“영혼의 사슬로 이어진 존재들은 같은 공격에 중복 피해를 입지 않거든.”
“아……?”
“그러니까 해골 열 놈이 데미지 100만짜리 광역기를 맞았을 때.”
“열 마리가 전부 십분의 일 토막 난 10만의 데미지밖에 받지 않는다는 소리지?”
“정확해.”
훈이의 설명을 듣던 아르케인과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설명하기 전에는 영혼의 사슬이, 단순히 데미지 감소 패시브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아, 그래서…….”
“그냥 데미지 감소 고유 능력이 아니었군.”
그 둘 또한 최상위급 랭커였기에 훈이의 설명을 곧바로 전부 이해하였고, 영혼의 사슬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순간 파훼법도 곧바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호, 그럼 훈아.”
“응?”
“한 놈만 가둬 놓고 미친 듯이 패면, 범위 내에서 사슬을 공유하는 명왕의 병사들을, 순식간에 싹 다 죽여 버릴 수도 있겠네?”
“어, 그, 그런 셈이지?”
훈이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지만, 곧 이안의 표현을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좀 과격하긴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
확실히 이 죽은 영혼의 사슬 파훼법은 가장 강력한 단일 기술을 한 녀석에게 집중적으로 꽂아 넣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슬슬 공략해 볼까?”
“아니, 한 가지. 주의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어.”
“뭔데?”
훈이의 말에 이안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데 모였고, 훈이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공유 받은 피해로는, 생명력을 10% 미만까지 떨어뜨릴 수 없다는 점이야.”
“아……!”
“그러니까 한 그룹의 전체적인 생명력이 최저치까지 떨어진 시점에서는 결국 개별 처치를 해야 된단 말이지.”
“그렇군.”
훈이의 말을 머릿속으로 싹 정리한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어떤 식으로 명왕의 군대를 공략해야 할지, 완벽히 가닥이 잡혔으니 말이다.
옆에 있던 아르케인 또한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우리가 고전했던 데에는, 확실히 이유가 있었군.”
“그러게. 역시 정보가 중요하단 말이지.”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모든 길드원들과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눈 아르케인은 다시 7층의 관문 앞에 선두로 다가섰다.
“자, 그럼 이안 님. 순식간에 뚫어 보도록 하죠.”
“후후, 의욕적이십니다?”
“정보 없이도 공략에 성공했던 관문인데…… 사슬에 대한 정보를 얻은 이상, 뚫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아르케인의 말에 양손에 심판대검을 꺼내 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럼, 시작해 보죠.”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척- 처척-.
타탓-!
아르케인을 비롯한 모든 원정대의 인원들이 일제히 7층의 관문을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