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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1001화 (1,001/1,027)

< 1001화 6. 혼령의 탑 >

어두워졌던 시야가 천천히 밝아지고, 이안의 눈앞에 간결한 두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망각의 문’을 통과하셨습니다.

-‘혼령의 땅’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어서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환경에, 이안은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시작부터 위험한 필드는 아닌 건가?’

처음 발을 디딘 혼령의 땅은,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의 필드였다.

양 측면이 알 수 없는 어둠의 벽으로 막혀 있었으며, 길은 오로지 전방으로만 구불구불하게 나 있었으니 말이다.

평소 길치(?)인 이안으로서는 아주 선호할 만한 구조의 맵인 것.

미니 맵을 슬쩍 확인한 이안이,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르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맵의 끝에 혼령의 탑이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안 님.”

“보니까 맵도 엄청 좁네요. 금방 가겠네.”

이안의 말에, 아르케인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처음…… 와 보신 것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맵이 좁다는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르케인이 놀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혼령의 땅은 길이 하나밖에 없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그와 별개로 양 측면이 어둠의 벽으로 막혀 있는 구불구불한 구조였고, 때문에 맵의 크기와 관계 없이 아직 시야 어디에도 혼령의 탑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초행길이라면 미니 맵도 전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 이안이 어떤 식으로 추측했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의 아르케인을 향해 이안은 태연히 대답해 주었다.

“미니 맵 세부 정보 들어가면 축척이 보이잖아요.”

“아……?”

“축척 비율만 봐도, 전체 맵 크기 정돈 대충 짐작할 수 있죠.”

“오…… 그런 방법이…….”

지도에서 축척이란, 지표상의 실제 거리를 지도상에 줄여 나타낸 비율이다.

그 때문에 미니 맵의 축척 기준은 전체 맵의 크기가 클수록 비율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안은 이 비율의 크기가 큰 것을 근거로 맵의 크기를 짐작해 낸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리 어렵거나 놀라운 수준의 추론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꼼꼼하고 분석적인 성향의 유저가 아니라면,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보통이었다.

“자, 전부 넘어왔으면 이제 이동하죠.”

“좋습니다.”

“출발!”

이안과 아르케인이 한두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 모든 일행들이 망각의 문을 넘어 혼령의 땅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혼령의 탑을 향해 걷는 동안, 아르케인이 몇 가지 탑에 대한 정보들을 이안에게 전해주었다.

“혼령의 탑은, 총 10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층수가 그렇게 높진 않네요.”

“뭐, 탑 콘텐츠치고, 층이 높은 편은 아니죠.”

“발러 길드에서는 몇 층 까지 공략에 성공하셨나요?”

“이전에 도전했을 때, 7층에서 막혔었지요.”

“아하.”

“하지만 그간 연구도 많이 했고 스펙 업도 했으니, 아마 이번엔 저희 전력만으로도 8층은 뚫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랑 훈이가 추가되었으니, 좀 더 높게 잡으시죠.”

“물론입니다. 오늘 클리어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안 님의 제안을 받지도 않았겠지요.”

종종 다양한 괴수들이 등장하던 망각의 심연과 달리, 혼령의 땅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이안과 발러 길드의 일행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탑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혼령의 탑…….”

“이미지와 이름이, 확실히 어울리는 곳이죠.”

“다른 주의할 점은 뭐 없습니까?”

“흠…….”

이안의 질문에 아르케인은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몇 가지, 추가 정보들을 이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선 6층 정도까지는, 별생각 없이 가셔도 괜찮을 겁니다.”

“쉽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혼령의 탑을 한 차례 올려다본 아르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7층부터는 좀 까다로운 녀석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이름 앞에 ‘명왕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강력한 몬스터들이죠.”

“……?”

“명왕의 해골병사라든가 명왕의 호위궁수라든가…….”

“아하?”

“특히 명왕의 기사들은, 진짜 강력합니다. 겉보기만 초월 1레벨이지, 능력치는 최소 50레벨쯤 된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지요.”

아르케인은 이안과 훈이에게 몇 가지 정보들을 추가로 더 이야기해 주었다.

그 내용은 제법 길었지만, 결국 정보들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혼령의 탑은 총 10층까지 존재한다.

2. 탑의 각 층에는 다섯 개의 ‘혼령의 제단’이 존재하며, 시간 내에 이 다섯 개의 제단에 전부 ‘혼령의 불’을 붙여야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3. 혼령의 불은 ‘혼령의 횃불’을 사용하여 각 제단에 붙일 수 있으며, ‘혼령의 횃불’은 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4. 탑의 한 개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한 사람당 ‘혼령의 구슬’ 아이템을 하나씩 획득할 수 있다.(아직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 수 없으며, 혼령의 땅을 벗어나는 순간 소멸된다.)

5. ‘명왕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네임드 몬스터들이 7층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며, 해당 몬스터들은 ‘명왕의 징표’라는 아이템을 드롭한다.(명왕의 징표 또한 아직 용도를 알 수 없으며, 혼령의 땅을 벗어나는 순간 소멸된다.)

6. 혼령의 땅에선 생명력이 5% 미만으로 떨어질 시, 강제로 망각의 문 바깥으로 소환되며, 24시간 동안 다시 혼령의 땅에 재입장이 불가능해진다.

“음…… 혼령의 구슬과 명왕의 징표라……. 혼령의 땅을 나가는 순간 소멸된다는 걸 보면, 이 안에서 어떻게든 사용처가 있는 물건이겠군요.”

이안의 이야기에 아르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겠지요.”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사용처가 혼령의 탑 꼭대기에 있겠네요.”

아르케인이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희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안은 고개를 들어, 혼령의 탑 꼭대기를 슬쩍 응시했다.

시커먼 안개에 의해 상부가 희미하게 가려져 있는, 기괴한 형태의 혼령의 탑.

한 차례 탑을 훑어 본 이안의 입꼬리는 어느새 슬쩍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아마도 저 꼭대기에 혼령의 날개가 있을 테고…… 혼령의 보주로 그것을 교환할 수 있도록 되어 있겠지?’

이안은 이 혼령의 탑 콘텐츠의 시스템이, 과거 정령계에서 공략했던 유적들과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곳에서 혼령의 날개뿐 아니라 많은 고급 장비들도 구할 수 있으리라.

‘흐흐, 이거 기대되는데?’

콘텐츠 보상에 대한 생각들로, 한껏 행복 회로를 굴리는 이안!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아르케인의 말에 상념을 멈춘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 발을 내딛었다.

“좋습니다, 마스터. 일단 6층까지는, 다이렉트로 뚫어 보죠.”

“물론입니다.”

이어서 이안과 아르케인을 필두로, 일행들은 망설임 없이 혼령의 탑에 입장하였다.

띠링-!

-파티 리더 ‘아르케인’이 혼령의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모든 파티원이 동시에 입장해야 하는 필드입니다.

-‘혼령의 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만약 입장을 거부한다면, 파티에서 자동으로 탈퇴됩니다.

……후략…….

그리고 순식간에 30명의 인원을 집어삼킨 혼령의 탑 입구는 다시 고요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 * *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혼령의 땅에 인간 진영의 길드 파티가 들어갔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사람 말을 참 못 믿는군.”

“흐음…… 우리 게스토 길드 외에도, 혼령의 탑의 존재에 대해 아는 길드가 있었다니…….”

“너무 자만하는군, 마스터 카브리엘.”

“음?”

“우리 길드도, 이미 한 달 전부터 이곳을 공략 중이었다.”

“오호, 그래? 어디까지 뚫었는데?”

“그것은 내 제안을 그대가 수락한다면, 그때 하나씩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게스토 길드의 마스터 카브리엘은 지금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령의 탑 공략을 위해 움직이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을 만나 특별한 정보를 얻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이런 얼간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망각의 심연에 입장하기 전 카브리엘이 만난 인물은, 다름 아닌 발러길드의 길드원 세르누크.

길드 파티에 합류하지 못해 잔뜩 불만이 쌓인 세르누크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세르누크는 아직 자신이 발러 길드의 길드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카브리엘은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망각의 심연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는 인간 진영의 길드라면, 몇 군데 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심지어 세르누크의 제안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얘기해 주고 싶지는 않지만, 난 이제 곧 길드를 떠날 거야.”

“뭔가 길드에 불만이 있나 보지?”

“비슷해.”

“그래서?”

“내가 저 안에 들어간 길드에 대한 정보를 줄 테니, 그 대가로 데스 코인을 줘.”

“얼마나……?”

“5만 코인 정도면 얼추 만족할 수 있겠군.”

“흐음…….”

“너희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볼 일 없는 제안일 거야.”

세르누크가 제안한 것은 길드 파티에 대한 정보로 데스코인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단순히 정보 거래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 진영의 길드에게 자신이 속한 길드 파티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것은 완전한 배덕 행위였으니 말이다.

‘뭔가 길드에 단단히 불만이 쌓인 모양이군. 어딜 가나 반동분자는 항상 있는 법이지.’

그리고 카브리엘의 입장에선 이 정보가 쓸 만하다면 충분히 5만 코인이라는 가치를 지불할 만하였다.

혼령의 탑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 진영 상위 길드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아주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5만 코인이면 대략 2천만 페소 정도……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지만…….’

1데스코인의 가치는 1차원코인의 가치와 거의 흡사하다.

그리고 카브리엘의 모국인 아르헨티나 기준으로, 1데스코인은 대략 400페소 정도의 가치.

2천만 페소는 한화로 거의 5억에 육박하기 때문에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인간 진영 상위 길드를 털어먹을 수 있다면 5억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네가 가진 정보의 가치가, 5만 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충분히 그 배 이상의 가치라고 확신한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카브리엘의 물음에, 세르누크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 봐. 여긴 나 혼자야.”

“그래서?”

“내가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곧바로 이 자리에서 죽겠지.”

잠시 세르누크를 응시하던 카브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으며, 5만 코인이라는 액수가 길드 차원에서 볼 때에는 그리 큰돈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잘 생각했어.”

“만약 쓸모없는 이야기라면, 이 자리에서 바로 목을 날려 버릴 테니 조심하라고.”

카브리엘의 협박에 세르누크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지만, 그렇다고 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스토 길드의 앞에 나타난 순간, 그는 이미 기호지세였으니 말이다.

“후우, 그럼 얘기해 볼까?”

하여 그렇게 시작된 세르누크의 이야기.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리고 그 얘기가 이어질수록, 카브리엘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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