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1000화 (1,000/1,027)

< 1000화 망각의 강 레테(Lethe) (3) >

망각의 강 레테에 들어서는 순간 걸리게 되는, 필드 디버프 형식의 저주인 망각의 저주.

이 ‘망각의 저주’는 이안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수준의 강력한 디버프였다.

-‘망각의 저주’가 전신에 내려앉습니다.

-중간계의 모든 경험이 일시적으로 초기화됩니다.

-모든 파티원의 초월 레벨이 1로 조정됩니다.

-모든 전투 능력치가 대폭 감소합니다.

-‘망각의 저주’를 받는 상태에서는 경험치를 전혀 획득할 수 없습니다.

……후략…….

보통 아무리 강력한 디버프라도 특정 스텟을 어느 정도 하향시키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액티브 버프도 아닌 필드 디버프가 이 정도의 수준인 경우는, 이안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뭐 이런 무식한 저주가……!’

하지만 경악에 빠진 훈이, 이안과 달리. 발러 길드원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들은 이미 이 망각의 저주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말이었다.

“후후, 놀라셨군요.”

“놀라지 않게 생겼습니까. 무슨 이런 미친 저주가…….”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이곳, 망각의 강 안에선 모두가 평등하니 말입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이 강 안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 그리고 저희가 공략하려는 혼령의 탑의 모든 괴수들까지. 망각의 저주 안에선,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아하……?”

본래 카일란의 세계관 안에서 망각의 강 레테는, 무척이나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망각의 강 안에 빠지는 순간 모든 기억을 잃어, 강 안에서 표류하게 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강 안을 떠도는 수 많은 괴수들과 NPC들은 그 설정에 따라 강 안에 갇혀 버린 것.

하지만 그 설정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격’이 높은 존재들이었다.

실제로 ‘죽은 자’가 아니면서 에레보스를 밟을 수 있는, ‘중간자’이상의 영격을 가진 존재.

그들은 망각의 저주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모든 경험치를 잃어버릴지언정, 실제 기억은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자이건 중간자가 아니건, ‘유저’가 기억을 잃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사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중간자의 위격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레테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저승 감찰관을 피해 에레보스 3구역까지 진입하는 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여 이러한 설정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이안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명계의 세계관은 확실히 다른 중간계들 못지 않게 독특하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거 재밌네요.”

“확실히 재밌는 필드죠.”

“후후, 이 망각의 심연 안쪽에, 혼령의 탑이라는 곳이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한번 들어가 보죠.”

“아무리 이안 님이라 해도, 긴장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많이 하드한가 보죠?”

“그렇습니다.”

아르케인의 말을 듣던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어려운 던전일 것이라고 오기 전부터 예상하였으나, ‘망각의 저주’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의문점이 생겼으니 말이다.

“어차피 몬스터도 전부 초월 1레벨이라면…… 오히려 쉬울 것 같은데…….”

사실 초월 80레벨대일 때부터 10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잡고 다녔던 이안에게 레벨이 평등해졌다는 것은, 곧 난이도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그 의문은 옆에 있던 올리버에 의해 곧바로 풀렸다.

“일단 초월 레벨은 다 1레벨이라고 뜨긴 하는데…….”

“그런데?”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레벨로 사기 치는 것 같거든.”

“……?”

“1레벨짜리들 스텟이, 최소 초월 30~50레벨은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올리버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난이도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다른 의미에서 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올리버가 보수적으로 얘기했음 얘기했지,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가 이야기한 대로 몬스터들의 스텟 수준이 초월 30~50수준이라면,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1레벨 스텟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이 이어지자, 이안은 한 가지 놓쳤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 장비……! 장비가 있었지?’

레벨이 초기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벨 제한이 80~90 이상인 자신의 장비들이 그대로 착용되어있음을 떠올린 것이다.

이어서 정보창을 열어 본 이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고레벨 상위 티어 장비들의 옵션들을 전부 합하면 20~30레벨 정도 스텟 커버는 일도 아니었으니, 초월 1레벨인 상태로도 30~50레벨의 몬스터들과 충분히 싸워 볼 만한 것이다.

‘역시…… LB사에서 밸런스를 터뜨려 놨을 리가 없지.’

물론 레벨 제한이 높은 장비를 바꿔 착용하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저주를 받기 전에 착용한 장비들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

하여 모든 정보들을 이해한 이안은 발러 길드의 일행들과 함께 슬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여러 번 트라이할 것 없이, 한 큐에 끝내죠.”

이안의 패기에, 아르케인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요.”

* * *

차원 전쟁 콘텐츠가 모두 마무리된 뒤, 이안이 가장 처음 새로 연성해낸 마수인, 고대 파괴의 발록 크르르.

다시 연성된 크르르의 초월 레벨은 1부터 시작이었지만, 그것은 며칠 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초월 100레벨이 훌쩍 넘는 사냥터에서 며칠 동안 이안의 버스를 탄 크르르는, 이미 초월 60레벨이 훌쩍 넘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일반적인 중간계의 서민(?)이었다면 60레벨을 찍는 데에만 몇 달은 꼬박 걸렸겠지만, 이안을 그런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

애초에 사냥 속도를 떠나 사냥터 자체가 다르니, 이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안은 아직까지, 크르르의 제대로 된 면모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크르르……! 모조리 파괴한다!

허세 넘치는 대사만 항상 반복할 뿐.

아직 60레벨 정도인 크르르의 전투력으로는 이안이 사냥하는 사냥터에서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안은 크르르를 실전에 처음 활용해 볼 생각에,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망각의 심연 안에선, 지금까지와 이야기가 좀 다를 테지.’

모두 초월 1레벨로 평등한 망각의 심연 안에서라면, 초월 60레벨 대에 불과한 크르르도 충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이었다.

물론 90레벨대인 다른 소환수들보다 착용 장비 수준이 조금 낮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크리티컬한 수준까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고대 발록의 위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건가?’

하여 이안은, 일부러 크르르를 가장 선두에 세우고 앞장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심연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과 가장 먼저 싸워 볼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크르르의 전투력을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고대 파괴의 발록, ‘크르르’의 고유 능력. ‘파괴광선’이 발동합니다.

-심연의 괴수 ‘쿠르타’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심연의 괴수 ‘쿠르타’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후략…….

심연 초입에 등장한 몬스터들은 정말 액면가 그대로 초월 1레벨의 몬스터들이었고, 때문에 크르르의 파괴광선이 발동하기만 하면 그대로 픽 픽 쓰러져 죽어 버렸으니 말이다.

-크르르……! 나는 강하다!

쓸데없이 엄청난 크르르의 자신감만, 더욱 증폭시켜 주고 만 것.

-크르르! 이제는 인정해라, 주인!

“후…… 시끄러 인마.”

그리고 그렇게, 이안과 크르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안 일행은 어느새 심연 깊숙한 곳까지 도착하였다.

이어서 어두운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짙은 보랏빛의 게이트가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이안의 물음에, 아르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안 님. 저기가 바로, 망각의 문이죠.”

“망각의 문이라…….”

“저 안에 들어가면,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기대되는군요.”

“자, 그럼 이쪽으로…….”

망각의 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르케인이 다시 앞장서기 시작하였고, 그런 그의 뒤로 발러 길드의 원정대가 일사분란하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안과 훈이 또한, 어느새 발러 길드의 진영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형, 흑마법사 장비 나오면, 전부 다 내꺼야. 알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인 훈이를 향해, 이안이 피식 웃으며 답하였다.

“내가 먹는 건 다 줄게, 걱정하지 마.”

훈이가 왜 이렇게 들떠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후, 혼령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훈이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지.’

최근 커뮤니티에 올라와서, 수많은 흑마법사 유저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장비인 고대 혼령의 완드.

그것이 드롭되는 필드를 이제까지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이 혼령의 탑이라는 곳이 획득처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충분히 할 만했으니 말이었다.

하여 그렇게, 서로 다른 목적과 기대 속에서 망각의 문을 밟는 이안과 훈이.

두 사람의 신형이, 깊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 * *

“좋아.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하군.”

“그렇습니다, 마스터. 이번에 벽을 넘을 수 있다면, 분명 최상층까지 막히지 않고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하긴. 8층만 뚫으면 관문이 하나 남는 셈이니, 10층까지 한 번에 도달할 수 있겠지.”

“이번엔 기필코……!”

‘게스토’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카브리엘과, 스리케스를 포함한 30명의 정예 길드원들.

바짝 날이 선 게스토 길드의 길드원들은 지금 레테의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스리케스. 10층에 ‘혼령의 나룻배’가 봉인되어 있다는 정보는 확실하겠지?”

“예, 마스터. 퀘스트 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발러 길드와 게스토 길드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사실 두 길드는 지금껏 번갈아 가며 혼령의 탑을 공략하고 있었던 것.

다만 혼령의 탑 공략에 한 번 실패하고 나면 24시간 동안 입장이 불가능하다 보니, 이제까지 항상 번갈아가며 탑에 입장하여, 한 번도 두 길드가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발러 길드보다도 오히려 혼령의 탑 공략을 더 여러 번 시도한 길드가, 바로 게스토 길드였다.

가장 먼저 이 혼령의 탑을 찾아낸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며, 발러 길드로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혼령의 탑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은 이들 또한 바로 게스토 길드였으니 말이다.

“좋아, 제군들. 지금부터 10분 준다. 망각의 심연에 들어가기 전에, 각자 최종 점검을 시작하도록”

능숙하게 레테의 서쪽 끝까지 도착한 카브리엘과 게스토 길드원들은, 망각의 심연을 앞에 두고 최종 점검을 시작하였다.

이들 모두 혼령의 탑 공략에 여러 번 투입되었던 정예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각자 자신들이 뭘 해야 할지는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길드원들을 둘러보던 카브리엘의 두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있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해. 레테를 가장 먼저 건너는 길드는…… 분명히 우리가 될 거라고.’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한 뒤, 짙은 심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는 카브리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뭔가를 발견한 카브리엘의 두 동공이, 천천히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뭐지? 설마 유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심연의 강변 구석에서, 낯선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