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98화 (998/1,027)

< 998화 6. 망각의 강 레테(Lethe) >

발러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아르케인.

그리고 이안의 옆집 친구(?)이자 최상위 마법사 랭커인 마크 올리버.

둘을 따라간 이안과 훈이가 도착한 곳은 에레보스의 최심처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띠링-!

-에레보스 제3지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짙은 죽음의 기운이 영혼을 옥죄입니다.

-모든 저항력이 15%만큼 감소합니다.

-모든 재생력이 15%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메시지에 명시된 ‘에레보스의 제3지역’은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과 망각의 강 레테(Lethe)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곳은 사실상 명계에서도 가장 진행도가 높은 유저들만이 진입할 수 있는 구역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그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도 이동이 가능했어?’

‘음, 생각보다 후하게 퍼 주는데?’

그들이 이안과 훈이를 이동시켜 준 다크 홀은 길드 전용으로 만들어 둔 워프 게이트였고, 이 게이트를 사용해 길드원이 아닌 외부의 인물들을 이동시켜 준 것은, 꽤나 파격적인 대우였으니 말이다.

어차피 길드 전용 게이트를 3구역 안에 확보하지 않는 이상 다시 올 때에는 플레게톤을 건너야 하겠지만, 그래도 접속종료 전까지는 3구역에 머물 수 있었으니.

한 번도 3구역을 밟아 보지 못한 로터스의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가…… 3구역이군요.”

“그렇습니다. 정말 지옥 같은 곳이죠.”

“이거 제가 도움을 요청드리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큰 도움을 받은 것 같은데…….”

이안이 말끝을 흐리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아르케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어차피 이안 님 정도 되는 분이 마음먹고 공략하시면…… 플레게톤 넘는 정도는 1주일 안쪽으로 끊으실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뭐, 큰 도움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부담 좀 팍팍 가져 주셔도 됩니다.”

“…….”

“이안 님께 조금이라도 빚을 지워 드리면, 저희 발러 길드에겐 나쁠 게 없으니까요. 하하.”

아르케인은 무척이나 솔직하고 쾌활한 인물이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차갑고 무뚝뚝한 인상에 가까운 이미지였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아르케인과의 개인적인 조우는 처음이었지만, 이안으로서도 꽤나 호감이 가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재밌는 친구네.’

이안과 아르케인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 부담 팍팍 가지면서…… 기왕 받는 도움 최대한 한 번 받아 보죠.”

“후후, 밑천까지 털어먹으시려는 겁니까?”

“뭐,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네요.”

이안과 아르케인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일행은 계속해서 어디론가 움직였다.

아르케인과 마크올리버의 주도하에,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움직였을까?

“음……?”

뭔가를 발견한 이안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여기가 레테……?’

회색빛의 대지에 잔잔히 반짝이는, 드넓은 수평선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3구역의 끝자락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강이라면, 망각의 강 레테 말고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제 다 왔군요.”

아르케인의 이야기에, 이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제가 요청드린 그 ‘단서’가…… 역시 레테와 연관이 있었던 겁니까?”

이안의 물음에, 이번에는 조용히 있던 마크올리버가 답하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흠……?”

“우리도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니 말이야.”

마크올리버의 대답에 이안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 * *

마크올리버.

정확히는 발러 길드에 대한 이안의 도움 요청은 무척이나 직설적인 것이었다.

-혼령의 날개가 필요해, 올리버.

-혼령의 날개……? 그게 뭔데?

생각하기에 따라 ‘혼령의 날개’라는 이름 자체도 무척이나 고급 정보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올리버에게 이야기했으니 말이었다.

-내가 진행하려는 콘텐츠를 열기 위해 필요한 물건.

-……!

-이 이상은 내게 도움을 준다면 오픈하도록 할게.

그리고 이안이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발러 길드의 도움이 없다면 최소 몇 달 정도는 정보 수집에만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고,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확실히 얻어 내기 위해서라도, 구미가 당길 만한 미끼를 미련 없이 던진 것이다.

‘플레게톤을 건너는 정도야 아르케인의 말처럼 1주일이면 충분한 일이지만…… 정보 수집은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당장 이안이 원정대를 꾸려 에레보스의 3구역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몇 달 넘게 3구역에 머물며 콘텐츠를 진행한 발러 길드의 정보력은 하루 이틀 안에 따라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안이 던진 미끼는 발러 길드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으며, 때문에 이안이 오픈한 만큼, 발러 길드에서도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지원해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발러 길드 최고 수뇌부 중 하나인 올리버가 이안의 옆집 친구(?)이기도 하였고, 길드마스터인 아르케인의 그릇이 그만큼 큰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약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이안도 애초에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얼마 전 우리가 받았던 퀘스트 중에 이런 게 있었어, 이안.”

“경청할게.”

“망각의 저주를 극복한 자, 초월의 길에 도달하리라.”

“음……?”

올리버의 이야기에 이안이 반문하자, 이번에는 아르케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퀘스트의 이름은 ‘혼령의 땅을 찾아서’입니다.”

“……!”

“올리버가 이야기한 구절은 퀘스트 내용 안에 있는 문구이고요.”

혼령의 땅 이라는 말을 들은 이안의 두 눈이 순간 크게 확대되었다.

어찌 보면 너무 확대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혼령의 날개에 대한 단서를 더 쉽게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혼령이라는 단어야 워낙 명계에서 여기저기 쓰이긴 하지만, 초월의 길이라는 말도 의미심장하고…….’

하여 이안은 아르케인과 올리버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경청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카일란에선 이 명계의 세계관 설정상, 유저는 이 망각의 강을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죠?”

“망각의 강 뒤에 존재한다는 엘리시움(Elysium)과 타르타로스(Tartaros)는, 사실상 ‘사후 세계’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음……?”

“망각의 강을 건너며 모든 기억을 잃은 영혼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땅.”

“그렇군요.”

“퀘스트에서 칭한 ‘혼령의 땅’이라는 곳이 바로 이 엘라시움과 타르타로스를 뜻하는 것일 겁니다.”

아르케인의 말을 듣던 이안은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퀘스트 제목이 뭔가 아이러니하군요.”

“어떤 점이 그렇죠?”

“아르케인 님의 말씀대로라면, 설정상 유저가 갈 수 없는 곳을 찾아가라는 것이, 퀘스트의 내용이니까요.”

“아하,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잠시 뜸을 들인 아르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퀘스트 정보 안에, 아무런 방법 제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저가 혼령의 땅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나 보죠?”

“그렇다기보다는 힌트가 있죠.”

“어떤 힌트일까요?”

“혼령의 탑.”

“……?”

“망각의 저주를 극복하고 레테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이, 혼령의 탑에 있을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거든요.”

“아하……!”

“그리고 이안 님이 올리버에게 이야기하셨던 그 혼령의 날개라는 것이, 어쩌면 망각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르겠고요.”

“혼령의 날개라는 것이, 혼령의 탑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흐음…….”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던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야.”

“그렇겠지.”

“그래서 처음부터, 짐작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거고.”

여기까지 들은 이안은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오호…….’

이제까지는 어찌 구해야 할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던 혼령의 날개에 대한 실마리가, 슬슬 보이는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어쩌면 혼령의 탑이라는 곳에서, 혼령의 날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유저는 기억을 잃을 수 없다.

그 때문에 망각의 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면, 그 배는 가라앉고 만다.

기억을 가진 자는 절대로 건널 수 없는 강이, 망각의 강 레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퀘스트에서 말하는 어떤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유저도 레테를 건널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이 어쩌면 이안이 지금 찾고 있는 초월자의 마지막 피스인, ‘혼령의 날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만 확인하면 되겠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던 이안의 시선이, 다시 아르케인을 향해 움직였다.

“그럼 혼령의 탑이 있는 곳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이안은 아르케인과 발러 길드에, 혼령의 탑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확신하였다.

혼령의 탑이 어딘지 모른다면, 아무리 이러한 정보가 있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어서 이안의 예상대로, 아르케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혼령의 탑에 대해 알고 있으니, 이안 님을 여기까지 모셔 온 것이지요.”

아르케인과 이안의 눈이 허공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이안은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역시 마지막 패까지 그냥 까지는 않는군.’

반짝이는 아르케인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발러에서 이 정도까지 정보를 오픈했으면, 나도 마지막 패를 까서 보여 주는 게 아무래도 예의겠지.’

아르케인이 원하는 것은, 혼령의 날개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이안이 혼령의 날개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왜 원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이안은 처음 올리버에게 도움을 청할 때, 분명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 이상은, 내게 도움을 준다면 오픈하도록 할게.

발러 길드가 도움을 준다면, 혼령의 날개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오픈하겠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안은 망설임 없이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물론 용비늘 신발이나 원소의 목걸이에 대한 정보까지 오픈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혼령의 날개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공유해 줄 생각을 한 것이다.

“마스터께선 혹시, 성운(聖雲)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때문에 이안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아르케인과 올리버는 점점 더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성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곳을 밟기 위한 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처음 듣는 정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의 이야기가 끝난 순간.

“역시…… 이안 님께서 혼령의 날개를 찾으시는 이유가 확실히 있었군요.”

아르케인 또한, 가지고 있던 마지막 패를 오픈하였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같이 그것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

“혼령의 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안과 훈이를 대동하여, 혼령의 탑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깔끔하군. 확실해서 좋아.’

하여 이안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혼령의 날개에 대한 단서를 얻었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후후, 잘하면 1주일 내로 손에 넣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안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위해서는, 위에 했던 가정들이 전부 다 맞아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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