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0화 3. 찰리스와의 재회 (2) >
* * *
이안은 트로웰과 계약한 이후, 지금껏 그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능력을 사용하려면 그가 있는 차원 전쟁의 최전방에서 참전했어야 하는데.
퀘스트의 진행상, 전장에서 제대로 싸울 일이 아직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제일 아쉬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트로웰의 고유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써먹어 보지 못했다 뿐이지, 그의 고유 능력은 처음 계약했을 때부터 달달 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망설임 없이, 생각해 뒀던 첫 번째 고유 능력을 발동시켰다.
“권능의 수호령 소환……!”
고오오오-!
물의 정령왕 엘리샤에게 ‘권능의 보호막(水)’ 고유 능력이 있다면, 대지의 정령왕인 트로웰에게는 ‘권능의 수호령(地)’ 고유 능력이 있다.
정령왕이 가진 고유 능력 중, 가장 상징성이 큰 첫 번째 고유 능력.
그 성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권능의 수호령(地)>
-대지의 정령왕 트로웰은 자신의 강력한 권능을 사용하여 대지를 수호하는 ‘수호령’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된 수호령은 트로웰과 계약된 소환(정령)술사에게 동기화되며, 소환술사의 의지에 따라 전장을 누비게 됩니다.
수호령을 통제하는 동안 소환술사는 움직일 수 없으며, 대신 ‘무적’ 상태가 됩니다.(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도, 움직임이 필요 없는 종류의 고유 능력들은 발동 가능합니다.)
*수호령의 능력치는 트로웰의 전투 능력과 해당 능력을 발동시킨 소환술사의 정령 스텟에 비례하여 결정됩니다.
*수호령의 외형은 소환술사가 가진 레벨과 전투 능력치에 따라 변화됩니다.
*소환된 수호령의 생명력이 소모되면 해당 피해의 절반만큼을 트로웰이 대신 입습니다.
*수호령의 소환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소환술사의 정령 마력은 두 배로 소모됩니다.
*수호령을 소환 해제 하면, 600초 동안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소환 해제 된 동안, 수호령은 천천히 회복됩니다.(1초당 수호령의 생명력이 0.1% 회복됩니다.)
*수호령이 사망한다면, 1,800초 동안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이안이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이 고유 능력을 가장 먼저 발동시킨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유일하게 감이 안 오는 고유 능력이 바로 이 녀석이거든.’
트로웰의 다른 고유 능력들은 성능과 효율을 떠나 어떤 식으로 사용 가능할지 예측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이었는데.
이 권능의 수호령 만큼은 스킬 설명만으로 제대로 된 스펙이 파악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령술사의 능력과 정령의 능력.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탄생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아무리 이안이라도 예측이 불가능했으니까.
‘게다가 동기화라는 의미도 무슨 말인지 잘 감이 오지 않고 말이지.’
하지만 그래서, 이안은 오히려 이 고유 능력이 더욱 기대되었다.
어쨌든 정령왕의 ‘권능’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는 대표 고유 능력이었으니, 성능이 떨어질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고유 능력의 설명 중 이안은 이 부분이 가장 기대되고 마음에 들었다.
-수호령의 외형은 소환술사가 가진 레벨과 전투 능력치에 따라 변화됩니다.
‘이런 옵션은 또 처음 본단 말이지.’
카일란에서 닳고 닳은 이안조차도 처음 보는 종류의 스킬옵션.
이안은 이 수호령이라는 녀석의 외형이 자신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는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날지 궁금하였다.
‘기왕이면 멋진 외형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이안의 그러한 궁금증은 곧바로 해결될 수 있었다.
고오오오-!
-오너라, 기계문명의 하수인들이여……!
트로웰의 몸에서 뿜어 나온 초록빛깔의 빛줄기가 전장에 거대한 거인을 만들어 내었으니 말이다.
‘뭐지? 이건 무슨 요술 램프도 아니고…….’
짙은 청록빛에 빛나는 황금빛 금장.
거대하고 화려한 갑주를 걸치고, 위협적인 삼지창을 손에 쥔 거인.
빛줄기에서는 마치 램프의 요정처럼 하반신이 소용돌이에 잠긴 거인이 나타났고, 그를 확인한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엄청 우락부락하잖아……?’
좀 더 샤프하고 멋진 형태를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무식한(?) 외형의 수호령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에는 곧 흥미가 가득해졌다.
-트로웰이 가진 대지의 권능으로, 권능의 수호령을 소환하였습니다.
-수호령과의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우우웅-!
수호령이 마치, 이안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수호령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합니다.
-수호령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동안, 소환술사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수호령의 부가 효과로 인해, 일시적으로 ‘무적’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고유 능력이 본격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하자, 이안은 비로소 스킬 설명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호, 이런 거였어?’
수호령을 통제하는 동안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소환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움직일 수 없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호령과의 동기화는 수호령이 소환되어 있는 동안에도 on/off가 가능했다.
이안이 수호령과 동기화되어 그를 컨트롤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동기화를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동기화를 해제하면 그와 동시에 무적이 풀려 버리지만, 따로 재사용 대기 시간 없이 언제든 다시 동기화하는 것이 가능했으니.
소환술사의 컨트롤 능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 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박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무적 시스템을 입맛에 맞게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동기화를 해제하였습니다.
-소환술사의 ‘무적’ 효과가 해제됩니다.
-통제받지 않는 수호령의 모든 전투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동기화가 해제된 상태에서의 수호령은 전투 능력치가 본래의 절반도 채 나오지 않으며, 전투 AI도 무척이나 떨어지는 편이었으니.
이안이 무적만 이용하며 이 녀석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기계 군단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소멸되어 버릴 것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이쯤 했으면 파악은 다 된 것 같고…….’
여하튼 수호령의 사용법(?)을 금세 익힌 이안은 곧바로 다시 수호령에 동기화되었다.
이어서 수호령이 든 거대한 삼지창을 시원하게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자, 한번 싸워 볼까?’
그리고 수호령의 몸을 움직이는 이안은 무척이나 상기된 표정이었다.
과연 이 거인이 얼마나 강력한 위용을 보여 줄 수 있을지, 너무도 궁금했으니 말이다.
-크하하핫-! 모조리 쓸어 주마!
이안이 손을 뻗자, 수호령의 삼지창이 눈앞에 있던 기계 괴수의 어깻죽지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콰아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퍼엉-!
강렬한 푸른빛의 섬광이 타격점에서 폭발하였다.
-‘권능의 수호령’이 기계 괴수 ‘카크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계 괴수 ‘카크루’의 내구도가 1,619,820만큼 감소합니다!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수호령의 창격(槍擊).
그 위력을 확인한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이런 미친 딜이……?’
수호령 자체가 강력한 고유 능력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평타나 다름없는 단순한 공격이 100만 단위의 내구도를 깎아 버리는 것은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이안의 스텟 때문이라기보다 초월 200레벨 트로웰의 능력과 정령의 구원자라는 특수한 칭호 덕분이었지만.
그런 것을 다 감안하더라도, 경악할 만한 위력임은 분명하였다.
‘이거, 개꿀이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저 무식한 수호령을 우선적으로 파괴하라!
수호령의 위력을 파악한 것인지, 찰리스도 수호령을 먼저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콰콰쾅-!
-기계석궁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호령의 생명력이 291,809만큼 감소합니다!
-‘파괴의 섬광’으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호령의 생명력이 792,819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빗발같이 쏟아지는 공격에, 수호령의 생명력도 순식간에 깎여 나갔으니 말이었다.
‘이거, 컨트롤이 생각처럼 쉽진 않네.’
아무리 이안의 피지컬이 좋다고 해도, 수호령을 컨트롤하는 것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고.
이안이 항상 컨트롤하던 이안의 캐릭터보다 수호령의 몸집이 최소 10배 이상 더 거대했으니, 깔끔하고 완벽한 컨트롤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괜히 무식하게 센 게 아니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빠르게 수호령의 움직임에 적응해 나갔다.
컨트롤이 어려운 만큼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 리턴값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콰아앙-!
그리고 그렇게 거대한 수호령을 컨트롤하는 이안의 전투 영상은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와, 미쳤다. 저 거대한 소환수는 뭐야?
-소환수? 정령 아닐까?
-아까 보니 대지의 정령왕이 만들어 낸 소환수 같던데?
-뭐지……?
-으, 이안 부럽다. 나도 정령왕 한번 써 보고 싶어.
수호령에 빙의된 이안은 순식간에 기계 괴수들을 하나씩 터트려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안의 컨트롤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안의 평소 플레이보다 수호령의 움직임은 훨씬 둔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수호령의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터지는 화려한 이펙트와 전쟁 영상이 너무 멋진 것일 뿐이었다.
-캬……! 존멋!
-저도 이안의 요술 램프 한번 구해 봅니다. 파실 분 없음?
하지만 그렇게 전쟁의 서막을 장식한 이안의 수호령은 그리 오랫동안 전장을 누빌 수 없었다.
결국 데미지가 어느 정도 누적되자, 이안이 소환 해제를 해 버렸으니 말이다.
“수호령, 소환 해제!”
우우웅-!
이안이 수호령을 소환 해제 한 시점은 수호령의 생명력이 40% 정도 남았을 시점.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이안이 소환 해제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수호령이 소환 해제 되어 있는 600초라는 시간 동안, 회복시킬 수 있는 생명력이 정확히 60% 남짓이었으니 말이다.
‘좋았어. 이제 감 잡았다고!’
그리고 이 수호령을 컨트롤하는 동안, 이안은 이 고유 능력의 기획 의도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찰리스, 저 괴물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고유 능력이……. 바로 이거였군.’
어지간한 유저들의 공격에는 기스도 나지 않는 찰리스의 기계 발록.
녀석을 처치하기 위한 키 카드가 바로 이 수호령임을 10분여 정도의 체험판(?)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하여 수호령의 능력에 대해 완벽히 파악한 이안은 계획을 조금 수정하였다.
‘찰리스의 공략은 최대한 뒤로 미룬다.’
수호령의 숙련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때까지.
찰리스와의 교전은 최대한 피하며, 다른 기계 괴수들의 숫자를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움직임에 찰리스는 점점 더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 종전의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쥐새끼처럼 도망만 다니는 것이냐!
하여 분노한 찰리스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를 이안을 향해 쏘아내었다.
콰아아아-!
-‘찰리스’의 고유 능력, ‘멸망의 폭발’이 발동합니다.
퍼퍼퍼펑-!
‘멸망’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릴 정도로 위력적인 화염의 폭발을 일정 범위 내에 입히는 강력한 공격 기술.
게다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연쇄 폭발형 기술이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저 스킬을 벌써 쓰다니!”
궁극의 기술 중 하나가 전장 초반부터 나왔으니, 인간 진영의 랭커들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안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핑-피피핑-!
이안의 손이 뻗어 나가며 물 속성의 투사체가 휘몰아 쳐 나간 순간.
띠링-!
-물의 정령왕 엘리샤의 고유 능력, ‘권능의 보호막(水)’이 발동합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실드가 범위 내의 모든 정령들과 유저들에게 차올랐으니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