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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85화 (985/1,027)

< 985화 전장으로 (3) >

* * *

붉은 빛깔로 달아오른 조나단의 검.

마치 길게 휘어져 늘어지기라도 하듯 거대한 반달이 된 핏빛 검이 자기장을 뿜어내는 기계 구체를 그대로 가르며 지나갔다.

콰콰쾅-!

그러자 그와 비슷한 형상의 수많은 환영이 마치 춤을 추듯 그 궤적을 따르며 강철의 구체에 틀어박혔다.

펑- 퍼퍼퍼펑-!

이것은 조나단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고유 능력 중, 가장 강력한 대미지를 뽑아낼 수 있는 스킬.

‘혈월군무(血月群舞)’라는 이름의, 다소 동양적인 명칭을 가진 고유 능력이었다.

‘이걸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이야.’

혈월군무는 조나단이 가진 스킬들 중 최상위 티어의 스킬이었지만, 사실 평소에는 잘 사용할 일이 없는 스킬이기도 하였다.

그 위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사용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로웠으니 말이다.

어둠 속에 은신한 채, 총 마흔아홉 개의 반달 궤적을 완벽히 그리며.

혈월의 힘을 충전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발동시킬 수 있는 특이한 스킬이었으니까.

일반적인 경우 그 충전 시간 동안 다른 스킬을 퍼붓는 것이 더 많은 dps를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효율 측면에서나 실용성 측면에서나,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 스킬이었던 것.

심지어 차징 시간이 긴 만큼 적에게 적중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실용성은 아주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 혈월군무만큼 적절한 스킬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시간 비례의 총 dps를 떠나서, 한 방 대미지가 중요한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다카타루스의 어그로를 받지 않으려면, 최대한 한 방에 끝내야 해.’

아무리 이안이 완벽히 어그로를 끌고 있다 해도, 자기장을 만들어 내는 이 구체를 조나단이 공격한다면.

필연적으로 어그로가 다시 조나단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최소 이안 일행이 자기장 구체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다카타루스의 행동 패턴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조나단의 목적은 다카타루스가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도록 단번에 폭발적인 딜을 넣어 구체를 부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이라면, 이 혈월군무만큼 완벽한 조건을 가진 스킬도 없었다.

5분에 달하는 긴 세팅 시간을 소모함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백만, 1천만 단위를 뽑아낼 수 있는 유일한 스킬이었으니까.

게다가 자기장 구체는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구조물’이었으니.

아무리 혈월군무가 맞추기 어려운 스킬이라 할지라도,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핏빛 반달이, ‘자기장 생성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3,580,293만큼 감소합니다.

-핏빛 달의 폭풍이 몰아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579,201만큼 감소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621,215만큼 감소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559,018큼 감소합니다.

……후략……

시뻘건 반달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기계 구체를 난도질한다.

그리고 거의 보스만큼이나 커다란 내구도 게이지를 가지고 있던 ‘자기장 생성기’는, 순식간에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쿠쿵- 쿠쿠쿵-!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5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자기장의 위력이 대폭 약화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3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자기장으로 인한 저항력 디버프가 무력화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2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자기장으로 인한 광역 이동속도 감소 효과가 해제됩니다.

……후략……

조나단이 그려 낸 마흔아홉 개의 반달은, 자기장 생성기의 사이사이를 가르고 들어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연쇄 폭발에, 강철 구체는 거의 누더기 상태가 되었다.

아쉽게도 한 방에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20% 미만까지 내구도가 떨어지며 많이 무력화된 것이다.

그리고 디버프가 해제된 덕에, 이안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우, 큰일 날 뻔했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늦기는, 시부럴. 입 놀릴 힘 있으면 저 구체나 마무리해 보라고!”

“이미 그러고 있잖아.”

“……?”

이안은 너스레를 떨며 조나단에게 투덜댔지만, 사실 조나단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혈월군무라는 스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런 비슷한 류의 차징 스킬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은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조나단의 검이 자기장 생성기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이미 소환수들에게 오더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다카타루스를 합공하는 형태를 보이면서도.

언제든 자기장 생성기를 향해 공격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미리 포지셔닝을 다 해 둔 것이다.

어차피 성령 속성 이외에는 다카타루스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입힐 수 있는 스킬도 없었으니.

미련 없이 기계를 향해 다 쏟아 버린 것.

콰콰콰쾅-!

하여 카르세우스와 엘카릭스의 브레스. 그리고 루가릭스의 9서클 마법인 소울스톰이 동시에 전장을 휩쓸자.

기계 구체는 순식간에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퍼펑- 콰아아아앙-!

-‘자기장 생성기’의 내구도가 1,082,908큼 감소합니다.

-‘자기장 생성기’의 모든 내구도가 소진되었습니다.

-‘자기장 생성기’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에, 가장 당황한 것은 당연히 다카타루스였다.

-크라아아악……! 이놈들……! 지금 무슨 짓을!

가장 거슬리는 이안을 자기장 안에 가둬 곧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기장 생성기가 부서지며 상황이 역전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

“머리가 세 개나 되면 뭐 해. 셋 다 텅텅 비어 있는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이안의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은 70%도 넘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얼마의 생명력이 남아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카타루스를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자기장’이 무력화되었다는 사실과.

생성기의 파괴로 인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기장이 해제되어, 균열의 힘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메시지를 본 이안은,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균열? 균열이라고?’

쿠구구궁-!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균열’이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반가웠으니 말이다.

만약 이 균열이 이안이 알고 있는 그 균열과 같은 것이라면, 이제 자기장이 아닌 차원 마력의 힘이 이 공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차원 마력 저항력이 맥스치에 달한 이안에게, 최고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고오오오-!

모든 자기장이 사라지자, 갑자기 전장의 구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쿵-!

쿠쿵- 쿵-!

자기장의 인장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던 대전장의 구조가, 빠르게 무너져 내리며 내려앉기 시작한 것.

구구구궁-!

이안은 당황했지만, 무너져 내리는 대전장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이 자체가 하나의 페이즈 변환이었으니, 유저의 힘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여 이안 일행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커다란 쇳덩이들을 어떻게든 전부 피해 내야만 했다.

“빡빡이, 소환 해제!”

위이잉-!

일단 빡빡이와 같이 움직임이 둔한 소환수부터 해제한 뒤에,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쇳덩이들을 안간힘을 쓰며 피한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페이즈 변환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 다름 아닌 보스 몬스터 다카타루스 라는 점이었다.

-크아아악-!

민첩성과 별개로 너무도 거대한 몸집을 가진 다카타루스는, 떨어지는 쇳덩이들을 거의 다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301,928만큼 감소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291,092만큼 감소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344,231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쇳덩이의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탓인지, 시온 속성 외에는 거의 대미지를 받지 않는 다카타루스조차도 제법 대미지를 입은 것.

쿵-!

이어서 기계 제단이 전부 무너져 내리고 새 페이즈가 시작될 시점,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크…… 크아아아……!

페이즈 전환 과정에서, 이안에게 입었던 피해만큼을 추가적으로 더 입은 것이다.

그런 다카타루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이안은, 다른 의미에서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였다.

‘와…… 저 쇳덩이들을 저 만큼 쳐맞고도, 아직 생명력이 절반이나 남았다고?’

그러나 이안의 그러한 감탄(?)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새 페이즈의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이안의 눈앞에 주르륵 하고 떠올랐으니 말이다.

띠링-!

-자기장의 해제로, ‘기계 제단’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기계 구조의 균형이 붕괴되어, 숨겨져 있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균열의 힘’이,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공간 안의 모든 존재들이, ‘차원 마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장의 해제로, 다카타루스의 고유 능력 ‘절대의 비늘’의 위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메시지를 빠르게 확인한 이안은, 두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거지!’

그가 생각했던 대로 시스템이 말했던 균열의 힘이라는 것은.

차원 마력 버프(?)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평범한 유저였다면 이 마지막 페이즈는 오히려 더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

노가다로 저항력을 최대치까지 맞춘 이안에게나 차원 마력 디버프가 버프로 전환되는 것이지, 일반적인 유저들에게는 그 어떤 디버프보다 까다로운 것이 바로 이 차원 마력 디버프였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처럼 균열을 제 집처럼 오갈 정도는 되야 이 메인 퀘스트를 받을 수준이 되겠지만.

어쨌든 이안에게 이 마지막 페이즈는 전투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안, 차원 마력 저항력은 좀 세팅해 놨지?”

“설마 날 걱정하는 거냐?”

“후, 괴물 같은 놈.”

이안의 움직임을 확인한 조나단은, 또 한 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 또한 균열에서 살다시피 하여 차원 마력 저항력을 제법 올려놓은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약간의 디버프는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이안은 차원 마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으니, 조나단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안 저놈은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되는 건가?’

같은 랭커지만 이안의 실력을 떠나 그 스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나단.

만약 이안이 오히려 차원 마력에 의해 버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 조나단은 감탄을 넘어, 의욕을 상실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하찮은 인간 놈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한편, 다시 정신을 차리고 포효하는 다카타루스.

콰아아아아-!

새 페이즈가 시작되며 다카타루스의 주변으로 강렬한 광역 공격이 터져 나왔지만, 이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엘, 드라고닉 베리어……!”

위이잉-!

마지막까지 남겨 뒀던 보험 카드(?)를 망설임 없이 꺼내 든 뒤, 총공격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의 비늘 효과가 떨어졌으니, 이제 시온 속성 이외의 공격도 제법 피해를 입힐 수 있겠지.’

이안이 파악한 다카타루스의 고유 능력인 ‘절대의 비늘’은, 상성이 나쁜 공격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공격의 피해량을 흡수하는 능력이었고.

페이즈가 바뀌며 떠오른 메시지를 보면 이 능력의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하였으니.

이제는 충분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략해 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자, 그럼 이쯤 하자고 돌머리.”

-크아아악!

“이제 그만 버티고, 내 경험치가 되거라.”

-……?

어느새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이안은, 가진 모든 고유 능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모든 고유 능력과 소환수들의 스킬들을 쏟아붓는다면.

녀석을 충분히 처치해 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우우웅-!

하여 세 자루의 심판검을 모두 꺼내 든 이안은 모든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까지 발동시켰다.

우웅- 우우웅-!

그리고 차원 마력 버프까지 둘둘 감은 이안의 총공격을 다카타루스가 버텨 낼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고작 십여 분 정도의 전투 만에 모든 생명력을 소진해 버린 것이다.

-내, 내가…… 인간 따위에게…….

쿠쿵-!

-제단의 수호자 ‘다카타루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다카타루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악룡(惡龍)의 비늘’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악룡의 미늘창’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악룡의 비늘 갑주’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후략……

이어서 무너져 내린 거대한 다카타루스의 몸체는 균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띠링-!

또다시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드디어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이안의 눈앞에 떠올랐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물의 정령왕 ‘엘리샤’가 오랜 봉인에서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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