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82화 (982/1,027)

< 982화 7. 뜻밖의 만남 (4) >

* * *

카일란은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랭커만 추려 본다고 하더라도, 수백. 아니, 수천 명이 넘는 숫자였다.

한국 서버에만 ‘톱 랭커’에 꼽히는 유저가 100명도 훌쩍 넘는 상황이니,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너무 당연한 수치인 것이다.

그 때문에 카일란의 기획팀은 절대로 모든 랭커들을 모니터링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성실히 야근(?)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김 대리, 오늘 모니터링할 랭커 목록 뽑아 왔어?”

“네, 팀장님. 오늘은 다행히 80명 정도 선이네요.”

“휴, 그나마 다행이군.”

“그럼,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특이점 발생하면 곧바로 전화해서 보고하고.”

“옙!”

하여 LB사에는, 내부적으로 모니터링할 유저들을 뽑아내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었다.

전날 기준으로 특이점을 불러올 만한 행동을 한 유저들을 시스템이 기록해 둔 뒤, 다음 날 해당 유저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목록을 뽑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뽑히는 유저들은 대부분 랭커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간혹 시스템의 허점을 공략하는 특이한 저레벨 유저들도 존재했지만, 그래도 상위 랭커들만큼 그 위험도가 높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휴우, 모니터링팀 전화 올 때가 제일 살 떨린단 말이지. 오늘은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그러게요, 팀장님. 모니터링실에서 전화 한 번 올 때마다, 야근이 하루씩 늘어나는 기분이에요.”

“그런 기분이 아니라, 그런 게 맞아. 거의 과학이나 다름없지.”

“…….”

하지만 여기서 재밌는 것은 모니터링 목록에 포함되는 빈도수가 꼭 랭킹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쉬운 예로 전 세계적인 톱 티어 랭커인 카이의 경우, 모니터링 대상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최상급의 랭커라 하더라도 플레이 성향이 정직(?)하다면, 그러니까 쉽게 말해 기획팀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다면, 모니터링을 할 이유가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카이가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되는 때는 보통 메인 에피소드의 퀘스트를 빠르게 진행 중일 때뿐이었다.

“모든 유저들이 기획 의도대로 잘 움직여 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게. 그럼 워라벨이 3배 정도는 좋아질 텐데 말이지.”

그리고 카이같이 정직한(?) 유저가 있다면, 거의 그 대척점이나 다름없는 곳에 서 있는 유저도 있었으니…….

“뭐,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어?”

“…….”

“저 고철 거북이는 대체 왜 저기에 있는 건데?”

“그게, 팀장님…….”

“후우, NPC가 아주 콘텐츠를 양손으로 들어다 바치는구먼그래.”

“지, 진정하세요, 팀장님.”

그것은 1년 365일 중 거의 300일 이상 단골손님으로 모니터링실에 찾아오는, 바로 ‘이안’ 같은 유저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이라는 이름은 거의 항상 모니터링 유저 목록 최상단에 박혀 있었고, 어느 날 이안의 이름이 목록에 보이지 않기라도 한다면, 혹시 목록을 잘못 뽑은 건 아닌지 모니터링실에서 의심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저 거북이 히든 피스라며?”

“비, 비슷합니다.”

“히든 피스가 대체 왜 제 발로 유저를 찾아가는 건데?”

“그, 그게…….”

“히든 피스면 히든 피스답게, 좀 숨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안 유저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그리고 오늘도 ‘그 유저’ 덕분에 LB사의 기획팀은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것은 기획 1팀의 팀장인 김의환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모니터링실에 뛰어 내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 히든 피슨지 뭔지…… 저 멍청한 거북이 때문에 콘텐츠 하나 날려 먹게 생겼네.”

지금 온 기획팀의 신경은 중간계의 차원 대전에 쏠려 있었다.

정령계와 라카토리움 간의, 전면전이나 다름없는 대전쟁.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앞으로 메인 에피소드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테니, 기획팀으로서는 온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팀이 원하는 결과는 무엇일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기획팀은 특별히 어느 한 진영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기획팀이 원하는 것은 이 전쟁 에피소드가 최대한 길게 이어지는 것일 뿐이었다.

에피소드 자체에 들어간 기획팀의 공수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적어도 두 달 정도는 전쟁이 이어지며 콘텐츠 소모가 늦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전쟁의 결과를 앞당길 수 있는 이안의 퀘스트는 최대한 오래, 최대한 지지부진하게 길어져야만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죠, 팀장님.”

“지금 긍정적이게 생겼냐. 1주일 날려 먹은 것 같은데.”

“…….”

사실 김의환을 포함한 기획팀은 이안이 엘리샤를 구해 전장에 합류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령계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엘리샤가 귀환하는 순간, 찰리스와 간부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밸런스를 맞추도록.

애초에 에피소드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안이 퀘스트를 빨리 클리어할수록 엘리샤의 귀환과 더불어 찰리스의 등장도 빨라지게 되고, 그것은 곧 전쟁의 종료가 임박했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니, 철뿍이의 등장으로 이안의 기계 제단 공략이 빨라진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팀장 김의환과 달리, 무척이나 긍정적인 팀원도 하나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팀장님.”

“대체 긍정적인 게 뭔데?”

항상 기획 1팀의 행복 회로(?)를 담당하고 있는 김도훈 대리는 오늘도 김의환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사실 히든 피스가 없었다 해도, 이안은 분명히 제단을 클리어했을 것 아닙니까?”

“흐음…… 그야 그렇겠지.”

“물론 시간이야 며칠이 더 소요되었겠지만…… 하루 만에 뇌옥을 전부 통과한 이안이라면 분명 클리어했을 겁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김 대리?”

김의환의 반문에 김도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아마 제단의 기관 구조를 알고 있는 철뿍이라면, 이안을 거의 전투 없이 최상층까지 데려다줄 테죠.”

“그……런데?”

“그럼 이안은 네임드급 몬스터들과의 조우 없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될 테니, 막대한 경험치를 날려 먹을 겁니다.”

“…….”

“결국 차원 전쟁에 합류할 때까지, 100레벨은 찍지 못하겠죠.”

“그걸, 말이라고…….”

김도훈의 이야기를 듣던 김의환은 흥분이 가라앉는 것을 넘어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철뿍이 덕에 아낀 1주일 동안 어디서 대충 사냥만 해도, 그 경험치 차이는 충분히 메워질 수준일 테니 말이었다.

하지만 김도훈의 다음 이야기는 김의환에게도 제법 솔깃한 것이었다.

“이건 단순히 경험치 손해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팀장님.”

“그럼?”

“‘초월 100레벨’이 얼마나 중요한지, 팀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100레벨을 을 못 찍은 상태에서 이안이 참전하는 것과 100레벨이 된 이안이 차원 전쟁에 참전하는 것. 그 파급력이 얼마나 다를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분명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오호……?”

철뿍이라는 히든 피스 덕에 이안이 퀘스트에서 아낀 시간은 최소 3일에서 최대 1주일 정도였다.

하지만 철뿍이 덕에 퀘스트를 빨리 클리어했다 해서, 그 시간만큼 이안이 어디서 파밍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퀘스트를 빨리 깬 만큼, 전장에 참전을 빨리할 유저가 이안이었으니 말이다.

‘하긴. 이안이 100레벨 찍고 각성하지 못한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직 유저들 사이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초월 100레벨이라는 것은 중간자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99레벨에서 그토록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고 말이다.

하여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조금 진정이 된 김의환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휴우, 일단 다들 기획실로 돌아가자.”

“예, 팀장님.”

“올라가서 다시 회의하시죠.”

그리고 그렇게 오늘도,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던 기획팀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 * *

사실 철뿍이가 일행을 찾아 나타난 것은 꼭 일행에 이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철뿍이는 그의 말대로 강력한 정령의 냄새에 끌려 일행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고.

그것은 이안이 아니라 다른 정령술사가 파티에 포함되어 있었더라도 다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었다.

다만 이안이 뿍뿍이의 러브스토리(?) 덕을 본 것은 철뿍이와의 친밀도를 무척이나 쉽게 쌓았다는 점이었다.

이안이 아니라 어떤 유저였더라도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철뿍이가 합류했을 테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으로 파티를 돕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정상적인 루트대로라면 유저가 제단을 공략하는 동안, 철뿍이는 일정 시점까지 방관자의 역할을 했을 터.

하지만 첫 만남부터 철뿍이는 뿍뿍이에게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이안과의 친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의 NPC ‘철뿍이’와의 친밀도가 100만큼 증가합니다.

-‘철뿍이’와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히든 NPC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최대치의 친밀도까지 도달한 철뿍이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이안 일행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으, 여기 완전 미로잖아?”

-삐리뿍-! 이쪽으로 와라, 친구들.

“철뿍이, 넌 길을 다 아는 거야?”

-삐립-! 당연하다뿍. 나만 믿고 따라와라뿍!

마치 치트키를 치기라도 한 것인지.

철뿍이의 등껍질이 하얗게 빛날 때마다, 미로같이 얽혀 있는 기계 제단의 문이 하나둘 열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뇌옥에서 만났던 네임드급 간수들과 비교하면 귀여울 수준.

이안 일행은 철뿍이 덕에, 정말 일사천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제단의 중심부까지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리샤 님. 저희 지금, 맞는 길로 움직이고 있는 거죠?”

-예, 맞아요. 제 힘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네요.

“오오……!”

그리고 그렇게, 대략 2시간 정도가 더 지났을까?

기계 제단을 빙글빙글 돌며 중심부로 진입하던 이안 일행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엘리샤가 미니 맵에 찍어 준 좌표 바로 앞까지, 정확히 도착한 것이다.

-삐립-! 내가 안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뿍.

“아직 엘리샤 님이 봉인된 곳은…… 보이지 않는데?”

-저 톱니바퀴처럼 생긴 철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마 엘리샤 님이 봉인된 기계 감옥이 있을 거다뿍.

“안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

-그, 그건 안 된다뿍.

“왜?”

-저 안에는 차원 마력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자기장이 흐른다뿍.

“자기장?”

-나 같이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는 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릴 거다뿍.

철뿍이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그가 가리킨 철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엘리샤를 향해 다시 물어보았다.

“저 안에, 엘리샤 님의 본체가 갇혀 있는 거죠?”

이안의 물음에 엘리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이안 님.

“그럼…… 마지막까지 한번 힘내 보죠.”

이안의 이야기에 엘리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님이라면, 분명히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물의 정령왕 ‘엘리샤’와의 계약이 일시적으로 끊어집니다.

-‘엘리샤 구출(히든)(에픽)(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엘리샤와의 계약이 끊어진다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그녀의 잔영이 철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뭐, 뭐야? 마지막 페이즈는, 엘리샤 없이 클리어해야 하는 거였어?’

이어서 멈춘 듯 보였던 톱니 모양의 철문이,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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