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81화 (981/1,027)

< 981화 7. 뜻밖의 만남 (3) >

* * *

정령계는 인간 진영의 우호 차원계이다.

그리고 기계문명인 라카토리움은 그런 정령계와 적대적인 차원계이다.

그 때문에 인간 진영의 유저인 이안이 라카토리움을 밟기 위해서는 차원의 틈새라고 할 수 있는 ‘균열’을 이용해야만 했다.

마족 진영의 유저라면 소르피스 내성에 있는 차원 포탈만 이용해도 쉽게 라카토리움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인간 유저인 이안은 그러한 방법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처음 라카토리움과 관련된 퀘스트들을 진행하기 위해 ‘균열’을 찾아야만 했었다.

그리고 이안이 그 ‘균열’을 처음 찾을 수 있었던 계기는 다름 아닌 뿍뿍이의 연애 사업 덕분이었었다.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뿍. 우리 예뿍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뿍. 철뿍이만 구해 온다면, 예뿍이는 날 따라오기로 했뿍.

-아니, 그거 말고. 균열 말하는 거야. 방금 네 말에 따르면, 이 정령계에도 용천처럼 균열이 존재하는 거잖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뿍!

-응, 그게 제일 중요해.

당시 오랜만에 예뿍이와 재회한 뿍뿍이가 그녀로부터 처남(?) 철뿍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를 구하기 위해 ‘균열’을 통해 라카토리움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하였으니.

사실상 이안은 뿍뿍이의 연애 사업 덕에, 라카토리움으로 이어진 균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뿍뿍이에게 균열을 수배(?)하라고 시킬 때에도, 첫 번째 명분은 그의 연애 사업을 위함이었던 것.

-빨리 철뿍이를 구하러 가야 한다뿍! 예뿍이랑 약속했뿍!

-그래, 알겠어 뿍뿍아. 당연히 철뿍이도 구해야지.

-뿍……!

물론 메인 에피소드들이 정신없이 이어지다 보니, 그러한 첫 번째 명분은 계속해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안은 뿍뿍이의 연애 사업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뿍뿍이는 이안의 소환수이기 이전에,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어둠속에서 나타난 작은 실루엣을 확인한 순간, 자동으로 뿍뿍이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근데 뿍뿍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철뿍이라는 친구는 그 예뿍이가 기다리던 거북이 아니었어?

-맞뿍.

-그런데 걜 구해 오면, 예뿍이가 과연 널 따라 올까? 그냥 걔랑 행복하게 잘살 것 같은데?

-철뿍이는 예뿍이의 남자 친구가 아니었뿍.

-오, 그래……? 그럼 뭔데?

-내 처남이었뿍.

-……?

-처남을 구해 와야 한다뿍!

어둠 속에서 천천히 기어 나와, 어느새 이안의 앞에 선 작은 거북이.

녀석을 다시 확인한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렇게 이어지다니…….’

라카토리움을 처음 밟을 수 있었던 그 시작점부터 시작하여, 이곳에서 진행되는 퀘스트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처음과 끝을 뿍뿍이의 러브스토리(?)가 장식하니, 뭔가 재밌으면서도 신기한 것이다.

물론 아직 거북의 정체가 ‘철뿍이’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것은 정황상 너무도 확실한 사실이었다.

이곳 무간옥은 찰리스가 엘리샤를 오랜 시간 봉인해 둔 감옥이자 그의 작품이었고, 뿍뿍이의 예비 처남(?)인 철뿍이를 잡아간 장본인도 바로 찰리스였으니.

이곳에 철뿍이가 갇혀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저런 황금 비율(?)을 가진 거북이가 흔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재밌네.’

그리고 그런 이안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녀석의 앞으로 먼저 다가간 뿍뿍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뿍……! 네가 혹시 철뿍이냐뿍!”

이제는 완전히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작은 거북이.

녀석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이안은,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확인하니, 녀석의 몸통이 기계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뿍이의 동생은 오래 전에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뿍뿍이에게 들었었던 철뿍이에 대한 뒷이야기가 떠올랐다.

-근데 뿍뿍아, 지난번엔 예뿍이가 기다리던 거북이 이미 죽었을 거라며. 그게 지금 네가 말하는 철뿍이일 거고.

-맞뿍. 그렇뿍.

-그런데 어떻게 구한다는 거야?

-예뿍이의 말에 의하면, 아마 철뿍이의 영혼은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했뿍.

-음……?

-기계문명이 탐냈던 것은 자연의 힘이 가득한 철뿍이의 영혼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아마 어딘가에 가둬 뒀을 거라고 했뿍.

-주인이 전에 싸운 적 있다고 했던 찰리스라는 인간……! 그를 꼭 찾아내야 한다뿍.

철뿍이는 오래 전에 죽었을 테지만, 그의 영혼은 라카토리움의 어딘가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구해 온다면, 예뿍이는 ‘서리동굴 수호’라는 억겁의 굴레를 벗어내고, 뿍뿍이를 따라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뿍뿍아, 이 형이 꼭 찰리스를 찾아서 복수하고, 철뿍이를 구해 줄게.

-……!

-네 모솔 탈출을 위해서 그 정도는 내가 도와줘야지.

-뿌욱……!

뿍뿍이와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떠올린 뒤, 눈앞의 ‘기계 거북’이 더욱 흥미로워진 이안.

그런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두 거북의 대화가 이어기지 시작하였다.

-삐리뿍-! 당신들은 누구냐뿍. 어떻게 날 알고 있지?

당황한 철뿍이의 목소리에, 뿍뿍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난 뿍뿍이라고 한다뿍.”

-뿍뿍?

“철뿍이, 널 구하기 위해서. 정령계에서 달려왔뿍.”

-삐리뿍-?

마치, 오로지 철뿍이를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양.

등껍질을 으쓱거리며 말을 잇는 뿍뿍이.

“앞으로 매형이라고 불러라뿍.”

-삐릭-! 매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뿍.

경계심 가득한 철뿍이의 목소리에, 뿍뿍이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네 누나…… 예뿍이의 남자 친구다뿍.”

-삐리뿍! 나, 남자 친구!

“처남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거다뿍.”

-삐리삐리뿍-!

“내가 반드시 처남을 여기서 구해서, 정령계로 귀환하겠뿍.”

뿍뿍이의 이야기를 듣던 철뿍이는 점점 더 감동스런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억겁의 시간 동안 이 무간옥 속에 갇혀있던 그로서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이 뇌옥까지 달려왔다는 매형(?)의 이야기가 감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뿍뿍이에게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사실 너희들이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따라오며 지켜보고 있었뿍.

“뿍? 왜 그랬냐뿍.”

-너희들에게서 강력한 정령의 향기가 나서, 나도 모르게 따라왔뿍.

“정령의 향기……? 그게 무슨 말이냐뿍.”

-고향의 냄새랄까…… 너희들에게서 그리운 냄새가 났다뿍.

이야기를 하던 철뿍이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어서 뿍뿍이를 향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매형,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뿍.

“마, 말해라뿍!”

매형이라는 단어에 흥분한 것인지, 말을 더듬는 뿍뿍이.

그런 그를 향해, 철뿍이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매형이 그럼, 여기 이 파티의 대장인 거냐뿍?

“대, 대장? 그게 무슨 말이냐뿍.”

-매형이 날 구하러 오는데, 저 사람들이 따라온 것 맞냐뿍.

“그, 그렇뿍.”

-그럼 매형이 대장이니까, 여기까지 따라와 준 것 아니냐뿍?

“뿌욱……!”

철뿍이의 생각지도 못했던 오해에, 뿍뿍이는 당황하고 말았다.

당연히 뿍뿍이는 이 파티의 대장(?)이 아니었지만,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으니 말이다.

‘내, 내가 대장이 아니라고 하면, 처남이 실망할 텐데뿍.’

그리고 그 순간.

당황한 뿍뿍이의 시선이, 허공에서 이안과 마주쳤다.

그런 뿍뿍이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피식 실소를 터뜨리는 이안.

뿍뿍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그의 뒤에 있던 이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서 철뿍이의 앞에 선 이안은 뿍뿍이 대신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맞아. 여기 뿍뿍이가 우리 파티의 대장이야.”

-역시 그랬냐뿍!

“우린 뿍뿍이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삐리뿍-! 매형, 엄청나다뿍!

그리고 이안의 그 목소리를 들은 뿍뿍이는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감동에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 * *

이안은 철뿍이의 등장이 메인 퀘스트 진행에 있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수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얼떨결에 뿍뿍이의 숙원 사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딱히 정령계의 차원 전쟁과 어떤 연결 고리가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러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었다.

-삐립-! 이제 날 찾았으니, 다시 정령계로 돌아가는 거냐뿍?

“뿌뿍? 그, 그건…….”

“그건 아니야, 철뿍아.”

-삐리뿍?

“뿍뿍이 대장을 따라 널 찾으러 오긴 했지만, 여기서 할 일이 아직 남아있거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할 일이 대체 뭐냐뿍.

“저 기계 제단 안에 들어가서, 봉인되어 계신 엘리샤 님을 구해 내야 해.”

-삐리뿍……?

철뿍이의 물음에 이안은 차원 전쟁과 엘리샤의 봉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것을 들은 철뿍이가 이안 일행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퀘스트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지만…….

-삐립-! 악마 같은 찰리스가 정령계를 또 침공한 거냐뿍!

“그래. 지금 정령계는 또다시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고, 찰리스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엘리샤 님의 힘이 꼭 필요하거든.”

-삐리-뿍!

“네가 정령계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기계문명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잖아?”

-그야, 당연하다뿍!

“그러니까 우리가 엘리샤 님의 봉인을 풀어낼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줘, 철뿍아.”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철뿍이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안 일행을 돕기 시작하였으니 말이었다.

-기계 제단은 무척 위험한 곳이다뿍.

“기계 제단에 대해…… 아는 것이 좀 있어?”

-삐릭-! 물론이다뿍. 나만큼 기계 제단을 잘 아는 거북도 없을 거다뿍.

“그래?”

-제단이 처음 생길 때부터, 여기 있었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다뿍.

“오오……!”

-내가 도와주겠뿍. 제단의 안으로 안전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알고있뿍.

“그게 정말이야?”

비장한 표정이 된 철뿍이는 앞장서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안 일행은 녀석을 따라 조심스레 이동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하드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훨씬 더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 망설임 없이 그를 따른 것이다.

‘철뿍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전혀 없을 테고…….’

하여 그렇게 10분여 정도 이동하였을까?

뇌옥의 막다른 길에 도착한 철뿍이는 벽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철뿍이의 작은 등껍질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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