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9화 7. 뜻밖의 만남 >
무간옥을 지키는 강철 쇠뇌들은 그야말로 사기적인 스펙을 가지고 있다.
재장전 시간이 그렇게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딜러는 한 방에 터뜨릴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강철’이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어지간한 방어타워만큼 높은 내구도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뇌옥 곳곳에 존재하는 이 쇠뇌들은 어지간히 까다로운 기관 시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쇠뇌들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항상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
한번 쇠뇌의 위치 좌표를 파악해 두면 다른 변수가 생길 일이 없었으니.
이것을 잘만 이용하면, 충분히 공략할 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후욱, 후욱.”
그리고 조나단이 지금까지 단 한 발의 쇠뇌도 맞지 않고 카그루스에게 딜을 넣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강철 쇠뇌는 항상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간을 간격으로 발사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몸으로 체득한 조나단은 방금 전까지 모든 쇠뇌를 다 피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그 쇠뇌의 ‘약점’을 이안은 한 차원 더 높은 관점에서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무슨 실드야?”
“잘 피하네, 조나단.”
“……?”
“지금보단 조금 더 자주 맞아도 돼.”
“그게 무슨……?”
“좀 더 공격적으로 딜 넣어 보라고. 내가 실드 지원해 줄 테니까.”
“……!”
현존하는 정령술사 중 가장 정령 마력이 높은 유저는, 단연 이안일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만들어 내는 권능의 보호막의 실드량은 이안이 가진 정령 마력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물론 보호막의 계수가 사제들이 쓰는 보호막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4~5중첩을 한 번에 걸어 버리면, 쇠뇌 한 발 정도는 거뜬히 막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호막을 4~5중첩 하는 것이 쉬운 일이냐?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권능의 보호막은 재사용 대기시간이 없는 대신, 동시에 셋 이상의 적에게 물 속성 정령 마법을 맞춰야 발동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보호막 활용을 위해 미리 ‘설계’를 해 놓은 지금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흐흐, 역시 쇠뇌를 남겨 놓길 잘했어. 이건 거의 뭐 보호막 셔틀이잖아?’
지금 이안이 남겨 둔 세 개의 쇠뇌는 전부 좌측 측방에 설치된 쇠뇌들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가진 하급 정령 마법 중에는 ‘워터 건’ 이라는 기본적인 논타깃 마법이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거의 쇠뇌만큼이나 투사체 속도가 빠른, 말 그대로 물총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쉽게 말해 이안은 이 ‘물총’을 실드가 필요할 때마다 쇠뇌를 향해 쏘아 댈 생각인 것이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먼 거리의 쇠뇌 세 개를 동시에 맞추는 게 결코 쉽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안 같은 논타깃 장인에게는 반대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던 것.
적어도 움직이지 않는 목표물을 맞히는 것 정도는, 이안에게 식은 죽 먹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최대한 실드 셔틀에 집중해야겠어. 조나단도 단일 딜은 충분히 강력하고, 카이자르나 헬라임도 못지않은 DPS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여 이안의 말을 들은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내었다.
“좋아. 그렇다면 좀 더 격하게 싸워 보도록 하지.”
물론 이안의 대답을 들은 순간, 인상을 확 구겨야 했지만 말이었다.
“헬라임이랑 카이자르보다 DPS 낮으면, 바로 해고야, 조나단.”
“미친! 내가 무슨 네 가신이냐?”
“내가 언제 가신이랬냐? 해고당하기 싫으면 잘하라고 그랬지.”
“후우…….”
여하튼 이안이 만들어 내는 사기적인 실드를 본 조나단은 전투에 조금 더 힘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보험을 하나 들어 놓은 셈이니…… 확실히 싸우기 수월해졌군.’
물론 헬라임과 카이자르보다 DPS가 낮으면 해고라는 이안의 말이 은근히 거슬렸지만.
뇌리에 맴도는 그 말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가신이랑 날 비교하다니…….’
으득-!
이를 앙다문 조나단은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왜 암살자의 단일 딜이 카일란 최강인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 줘야겠군.’
우우웅-!
조나단이 쥔 검의 새하얀 검신이 붉은 핏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양손으로 쥔 검을 뒤로 넘겨 늘어뜨린 조나단의 신형이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카그루스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하였고.
쐐애애액-!
조나단의 잔영이 만들어 낸 핏빛 검기는 그대로 카그루스의 목덜미를 가르고 지나갔다.
* * *
카그루스는 강력했다.
하지만 이안 일행은 너무도 손쉽게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다.
-크롸아아악!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카그루스가 까다로운 것은 제법 자주 발동되는 광역 매즈기와 강력한 맹독 공격.
그리고 탱커형 몬스터답게 어마어마한 수준의 맷집 때문이었다.
하지만 쇠뇌를 이용한 이안의 실드가 계속해서 광역으로 파티원을 보호하니, 사실상 카그루스의 장점은 맷집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해, 체력만 많은 고깃덩이로 전락해 버린 것.
하여 카그루스가 아직 완전히 처치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안과 조나단은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뭔가 허무할 정도로, 난이도가 내려가 버렸군.”
“보호막 그거, 치트키 아냐?”
“글쎄, 그냥 내가 잘 쓴 것뿐인데?”
“잘난 척은…….”
심지어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 뒀던 드라고닉 베리어와 권능의 보호막 시너지는, 꺼내 들 기회조차 오지 않고 전투가 거의 끝나 버렸으니.
이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허무할 만한 것이다.
‘보호막 하나로 난이도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확실히 정령왕은 정령왕인가.’
만약 카그루스에게 강력한 단일기가 있었다면 권능의 보호막으로 커버가 힘들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격 페이즈가 광역 지속딜로 이뤄져 있던 것이 허무한 난이도(?)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빠르게 마무리하자고. 분명 이놈이 끝이 아닐 테니까.”
-건방진……!
“태초의 파도……!”
이안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커다란 푸른 빛깔의 기운이 전장에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
-정령왕 ‘엘리샤’의 고유 능력, ‘태초의 파도’를 발동하였습니다.
콰아아아-!
-범위 내 모든 아군의 생명력 회복량이 30%만큼 증가합니다.
-‘물’ 속성을 가진 정령 ‘블래스터’의 이동속도가 50%만큼 빨라집니다.
촤아악-!
-무간옥의 간수장 ‘기계 카그루스’의 저항력이 50%만큼 감소합니다.
-무간옥의 간수장 ‘기계 카그루스’의 이동속도가 50%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그리고 푸른 파도에 휩싸인 카그루스는 그대로 그 자리에 묶여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둔하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카그루스가 이속감소 효과까지 받자, 정말 옴짝달싹 못 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어서 카그루스의 공격 기술이 발동하려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권능의 보호막’을 발동시킨 뒤, 그대로 무기를 스와프하였다.
띠링-!
-‘태고의 땅(신화)(초월)’ 장비를 해제합니다.
-‘악령의 심판 검’ 장비를 착용하였습니다.
트로웰로부터 얻은 지팡이인 ‘태고의 땅’을 착용 해제하고 ‘악령의 심판 검’을 양손에 쥔 이안.
이안이 악령의 심판 검을 쥔 이유는 간단하였다.
카그루스의 주 속성이 ‘어비스’속성이었으니 말이었다.
녀석이 기계 괴수임을 감안할 때, 무척이나 특이하게도 말이다.
스르릉-!
아이언의 등에서 검을 번쩍 치켜든 채, 그대로 카그루스를 향해 쇄도하는 이안!
“헬라임, 측방의 쇠뇌를 부탁해.”
“명을 받듭니다, 폐하……!”
이안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헬라임에게 쇠뇌들을 마무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안의 활질을 제외한다면, 까망이와 헬라임의 고유 능력 시너지만큼, 깔끔하게 쇠뇌를 터뜨릴 수 있는 수단도 없었으니 말이다.
-소환수 ‘까망이’의 고유 능력, ‘어둠의 날개’가 발동합니다.
-‘강철 쇠뇌’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강철 쇠뇌’의 내구도가 198,200만큼 감소합니다!
-‘강철 쇠뇌’의 내구도가 210,930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가신 ‘헬라임’이 고유 능력 ‘다크비전(Dark Vision)’을 발동합니다.
-‘헬라임’이 ‘강철 쇠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강철 쇠뇌’의 내구도가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강철 쇠뇌’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강철 쇠뇌’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강철 쇠뇌’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까망이의 광역 어둠 공격이 묻은 뒤에 헬라임의 다크비전이 연쇄적으로 터지니.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절반 이상의 내구도가 닳아 있던 쇠뇌들은 깔끔이 정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탓-!
이어서 아이언의 등을 밟고 뛰어오른 이안이 카그루스를 향해 달려들자, 라카도르의 등에서 검을 겨누고 있던 조나단 또한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쐐애액-!
그리고 그것으로, 거대한 카그루스의 몸체는 부서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무간옥의 간수장 ‘기계 카그루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계 카그루스’의 생명력이 798,409만큼 감소합니다!
-파티원 ‘조나단’이 ‘기계 카그루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계 카그루스’의 생명력이 218,754만큼 감소합니다!
-‘기계 카그루스’의 생명력이 343,389만큼 감소합니다!
-‘기계 카그루스’의 생명력이 757,766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기계 카그루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이안과 조나단. 그리고 소환수들의 공격이 동시에 카그루스를 향해 집중되면서, 수천만 단위의 수치를 가진 카그루스의 생명력 게이지도, 결국 바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깔끔한 마무리!
키에에에엑-!
모든 생명력을 잃은 카그루스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극- 그그긍-.
뇌옥의 한쪽 벽에 똬리를 틀고 이안 일행을 상대하던 카그루스가 생명력을 잃자 그대로 바닥까지 추락해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거대한 몸집을 가져서인지 뇌옥 전체가 울릴 정도의 굉음을 만들어 내는 카그루스!
콰앙!
그런 카그루스의 몰락을 확인한 엘리샤는 놀란 표정이 되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카그루스를 이렇게 쉽게…….
오래 전 카그루스를 직접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엘리샤로서는 이안 일행이 이렇게 쉽게 카그루스를 처치해 낸 것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을 막고 있던 카그루스가 정리되자, 무간옥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피핑- 피피핑-!
콰콰쾅-!
이제 쇠뇌들이 위치할 만한 좌표를 예상까지도 가능한 수준이 된 이안이, 마치 허수아비 베어 내기라도 하듯, 선봉에서 순식간에 쇠뇌들을 제거했으니 말이다.
이어서 그렇게, 약 10분 정도를 더 이동했을까?
탓-!
드디어 이안 일행은 무간옥의 바닥을 밟아 볼 수 있었다.
“후, 진짜 이렇게 깊은 지하는 처음이야.”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뇌옥의 어둠 속에서, 커다란 두 눈이 이안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