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8화 다시, 라카토리움 (3) >
무간옥의 내부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빛이 점점 줄어들어, 점점 지하의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갔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엘카릭스의 도움을 받아 불을 밝혀야만 했다.
“엘, 길 좀 밝혀 줘.”
“알겠어요, 아빠.”
마법의 일족 고유 능력을 가진 엘카릭스는 낮은 서클의 마법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고, 마법사의 기본 스킬 중 하나인 라이트 스킬을 곧바로 발동시켜 준 것이다.
번쩍-!
물론 그것으로 깊은 어둠을 전부 밝히는 것은 무리였지만, 적어도 10m 전방 정도까지의 시야 확보는 가능한 것.
‘쇠뇌…… 쇠뇌를 조심하라 했지.’
엘카릭스가 확보해 준 시야를 꼼꼼히 확인하며, 이안은 최대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초입부는 별다른 위험 요소가 없었지만, 긴장을 늦추는 순간 골로 갈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으니 말이다.
‘쇠뇌만 있는 것도 아닐 거야. 분명히 기계 괴수들도 득실거리겠지.’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바로 그때.
반짝-!
이안의 눈에, 푸른 빛을 반짝이는 작은 물체 하나가 포착되었다.
‘쇠뇌다!’
하여 쇠뇌를 발견한 이안은, 반사적으로 아이언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쇠뇌의 사정거리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엘카릭스가 밝혀 놓은 가시거리 안에서 확인된 정도라면, 충분히 사거리 안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의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핑- 피피핑-!
이안이 발견한 쇠뇌뿐 아니라, 그 주변에 둘러져 있던 쇠뇌들이 일제히 강철 화살을 발사했으니 말이다.
화살이 아니라 총탄이라도 되는 것인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안을 향해 날아드는 강철 쇠뇌!
쐐애액-!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낸 이안은 곧바로 역공을 시작하였다.
마그리파의 힘을 빌려 ‘지옥의 화염시’를 꺼내 들고, 빠르게 연사를 날린 것이다.
피피핑-!
물론 이안 일행은 쇠뇌의 사거리 밖으로 멀찍이 떨어졌지만, 반대로 이안의 화살이 쇠뇌까지 닿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쇠뇌의 위치가 이안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었으니, 사거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아래서 위로 쏘아 올려야 하는 쇠뇌는 일정 사거리가 되면 힘을 잃어버리지만, 위에서 아래로 쏘아 보내는 이안의 화살은 최소로 잡아도 그 2배 이상의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문제라면 거리가 멀어지면서 쇠뇌의 위치가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실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퍼펑- 펑-!
어차피 쇠뇌가 이동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좌표를 기억해서 저격하면 충분히 맞출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이, 절대로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파티원 이안이 ‘강철의 기계 쇠뇌’를 파괴하였습니다!
-파티원 이안이 ‘강철의 기계 쇠뇌’를 파괴하였습니다!
쇠뇌가 파괴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조나단의 입은 이미 쩍 하고 벌어져 있었으니까.
“너…… 소환술사 아니었냐?”
“맞지.”
“근데 무슨 활을 그렇게 잘 쏴?”
“전직 궁사였거든.”
“이런 미친…….”
사실 중간계에 입성할 정도로 경험치를 쌓은 고레벨 궁사라면, 방금 이안이 보여 준 정도는 대부분 할 수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명중률 보정을 해 주는 궁사 클래스의 패시브를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고, 이안은 엄연히 소환술사였다.
그런 추가 보정 없이 속사를 하여 순식간에 세 개의 쇠뇌를 부숴 버린 이안의 퍼포먼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기에, 조나단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짜 피지컬이 무슨…….’
그리고 NPC인 엘리샤 또한, 이안의 활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이안 님……! 제가 사람을 제대로 봤군요!
“후후, 별말씀을.”
하지만 엘리샤가 놀란 것은 조나단과 달리, 단순히 이안의 활 실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철 쇠뇌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이안의 모습에서 더욱 신뢰를 얻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활약 속에서 추가로 등장하는 쇠뇌들을 차근차근 파괴하며, 점점 더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일행들.
그리고 그렇게 십수 개 정도의 쇠뇌를 더 파괴했을까?
순조롭게 던전을 공략하던 이안 일행은 드디어 첫 번째 난관을 맞게 되었다.
피피핑-!
이안이 쇠뇌를 향해 쏘아 내려 보낸 화살이 시커먼 소용돌이에 휘감기더니,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이잉-!
쿠구구궁!
하여 살짝 당황한 이안은 반사적으로 엘리샤를 향해 물어보았다.
“엘리샤 님, 이건 뭐죠?”
-자, 잠시만요……!
이어서 쇠뇌를 피해 아래쪽으로 살짝 내려간 엘리샤가 곧바로 굉음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다시 소리쳤다.
-카그루스예요!
“카그……루스요?”
-뇌옥을 지키는 간수장이죠.
엘리샤의 말을 듣는 와중에도, 이안의 시선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커다랗게 휘몰아치는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진 괴물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계 카그루스/Lv.180(초월)
이어서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기계 괴수의 형상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귀, 귀룡……?”
* * *
카일란의 소환수들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진화 트리를 가지고 있다.
일단 초보 소환술사가 가장 쉽게 접근 가능한 소환수인 늑대만 보더라도.
속성에 따라 등급에 따라 다양한 상위 개체로 진화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첫 번째 소환수인 라이의 경우 붉은 갈기 늑대를 거쳐 ‘펜리르’까지 진화했다면.
이안이 키워 보지 못한 푸른 갈기 늑대의 경우, 사족보행형 늑대인 ‘하티’로 진화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일반 등급부터 희귀, 유일, 영웅, 전설까지 모든 등급을 거쳐 진화하는 소환수가 있는 반면, 어떤 소환수는 유일 등급에서 곧바로 전설 등급으로 진화하기도 하니.
소환수 연구가 취미인 이안조차도, 모든 소환수들의 진화 트리를 외울 수 없는 수준으로 다양한 것이다.
하지만 이안이 거의 모든 진화 트리를 꿰고 있는 종족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안이 가지고 있는 소환수들의 종족이었다.
거북이나 용, 그리고 호랑이나 늑대 등의 종족은, 모르는 소환수나 진화 트리가 없을 정도로 빠삭하게 공부해 뒀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기계 괴수가 분명히 빡빡이와 같은 종(種)인 전설 등급 ‘귀룡(龜龍)’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녀석은 평범한 소환수가 아닌 기계 괴수였다.
하지만 녀석의 이름 또한 ‘기계 카그루스’였으니, 어딘가에 카그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소환수가 존재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보통 저런 이름을 가진 기계 괴수들의 경우, 실존하는 소환수를 모티브로 제작된 경우가 많았으니까.
‘지금까지 교수님 연구소에서 진화시킨 터틀이 수백 마리는 될 건데……. 아직 카그루스 라는 이름의 귀룡은 진화 성공한 적이 없어.’
보스급 몬스터로 만들어져서인지, 빡빡이보다 서너 배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카그루스.
용을 닮은 거대한 머리를 돌려 이안 일행을 응시한 카그루스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기깅- 기이잉-!
-건방진 침입자들…….
이어서 카그루스의 등껍질에 휘감긴 커다란 기계 뱀 또한, 혀를 날름거리며 이안 일행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무간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멍청한 인간들이로군.
“걸어 들어온 건 아니고, 날아 들어왔…….”
-캬아아악-! 시끄럽다!
촤라락-!
뱀의 머리가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자, 이안 일행을 향해 적보랏빛의 액체가 분무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강력한 맹독을 품은 광역 공격.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뿍뿍이의 고유 능력을 발동시켰다.
“뿍뿍이, 빙하의 장막!”
쿠구웅-!
뿍뿍이의 입에서 뿜어 나온 거대한 물줄기가 한기의 장막을 만들며 맹독을 막아 내었고.
촤아-!
-죽어라! 허약한 인간들이여!
그것으로 ‘기계 카그루스’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기계 카그루스’는 무척이나 강력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괴의 군단장 피켄로보다 강력한 수준은 아니었다.
‘맷집은 두 배도 넘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귀룡이라 그런지, 탱커에 더 가까운 녀석이야.’
한 방 한 방이 무식하게 강력한 공격인 것은 사실이나, 무척이나 느릿한 탓에 피해 내기 수월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광역 군중 제어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보스 자체의 난이도는 평범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스 하나만을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이 보스 페이즈 자체가 수월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카그루스와의 전투가 시작되자, 주변에서 까다롭고 강력한 기계 기관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말이다.
피핑- 핑-!
초입부터 이안 일행을 위협하던 강철의 쇠뇌는 기본이었으며.
그그긍- 지이이잉-!
필드 전체에 이동속도를 감소시키는 사악한 장판 디버프 까지.
게다가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필드 안에서 카그루스를 상대하고, 그 와중에 모든 쇠뇌 공격을 피해 내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의 난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쉬이익- 콰앙-!
그 때문에 비도술을 사용하여 카그루스를 공격하던 조나단은 다급한 목소리로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이안! 쇠뇌를 먼저 파괴해!”
디버프 장판이 깔리기 전까지만 해도 어찌어찌 쇠뇌를 피해 가며 딜을 넣고 있었는데.
이동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나니, 아무리 조나단이라 해도 모든 쇠뇌를 피할 수는 없게 된 것.
촤라악-!
그리고 그런 조나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이안의 화살이 두 대의 쇠뇌를 폭파시켰다.
쾅- 콰아앙-!
“나이스!”
하지만 잠시 후, 조나단은 다시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안, 뭐 해! 나머지도 부숴!”
카그루스의 주변으로 생성된 다섯 개의 쇠뇌 중, 두 대 만을 파괴한 이안이, 다시 카그루스를 타게팅하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남은 쇠뇌들은 먼저 파괴할 생각이 없는 것.
그리고 이어진 이안의 말을 들은 조나단은,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 대는 남겨 둬야 해.”
지금 세 대가 아니라 한 대의 쇠뇌만 있어도 버텨 내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일부러 세 대의 쇠뇌를 남겨 놓는다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대체 왜!”
“그 이유는 곧 설명해 줄게.”
“못 버틴다고, 이러면!”
“버틸 수 있게 해 줄 거야.”
“……?”
조나단은 이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그의 오더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파티를 움직이는 컨트롤 타워는 이안이었고,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러한 오더를 내리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세 대의 쇠뇌가 쏘아 내는 화살을 피해 내느라 보스에게 집어넣는 딜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이안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결국 조나단은 한 발의 화살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으아앗……!”
카그루스의 변칙 공격을 피하다 보니, 외통수에 걸리고 만 것이다.
‘젠장, 그래도 한 방에 뒈지진 않겠지?’
하지만 다음 순간.
“……?”
조나단은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파티원 ‘이안’이 정령 마법 ‘권능의 보호막(水)’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티원 ‘이안’이 정령 마법 ‘권능의 보호막(水)’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티원 ‘이안’이 정령 마법 ‘권능의 보호막(水)’을 사용하였습니다.
……후략…….
순간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실드가 순식간에 중첩되더니, 조나단에게 쇄도하던 쇠뇌를 그대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어서 다음 순간.
콰아아아-!
거대한 청록빛의 파도가, 전장에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