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5화 5. 물의 부족들을 찾다 (3) >
* * *
-‘물의 정령왕, 엘리샤의 안배 (에픽)(히든)(연계)’
트로웰의 부탁을 받아, 정령의 부족들에게 원군을 요청하던 당신은, 불과 바람의 권능을 얻어 그들 부족을 움직이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령왕의 자리가 공석인 불과 바람의 부족들과 달리, 물속성의 경우 물의 정령왕 엘리샤가 건재하였고.
때문에 그녀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물의 권능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여 당신은 물의 부족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섰지만…….
…….
정령왕의 대리인을 기다리며 샤이야 산맥을 떠돌던 아쿠스 일족은, 결국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부락으로 쫓겨나 봉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집념으로 부락을 찾아내었고, 엘리샤의 안배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
물의 부락에 잠들어 있는 물의 일족들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서는, 정령왕 엘리샤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이곳 물의 부락에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 안배를 남겨두었고, 오래 전부터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녀의 안배를 확인하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그것이 위기에 빠진 정령계를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퀘스트 난이도 : SSS
퀘스트 조건 : ‘정령왕 엘리샤의 목걸이’보유, ‘정령의 구원자’칭호 보유.
제한 시간 : 없음
-부락 내부에 있는 물의 구슬과 감응하면, 엘리샤의 환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엘리샤의 환영과 대화를 마칠 시, ‘보상A’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엘리샤의 모든 부탁을 수행하는 데 성공할 시, ‘보상B’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보상A – ‘정령왕 엘리샤의 목걸이’봉인 해제.
보상B - (물)의 정령 마법 강화석
이안이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조차도 잊고 있었던, ‘정령왕 엘리샤의 목걸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
‘와 씨,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오래 전 지상계에서 처음 엘리샤를 만났을 때, 그녀로부터 받았던 징표와 같은 목걸이가.
이 시점에 봉인 해제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으니 말이었다.
물론 아직 봉인 해제가 된 것은 아니고 ‘보상A’로 책정되어 있을 뿐이었지만.
사실 보상A까지는 변수 없이 확정적으로 챙기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 너무 오래 전에 받은 물건이라……. 지금 시점에서도 매력적인 액세일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이안이 놀란 두 번째 이유.
사실 위에 언급한 첫 번째 이유보다도, 이 두 번째 이유가 이안을 가장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 퀘스트를 진행함으로서 엘리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드디어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퀘스트 한 방으로 진짜 막혀있던 에픽 퀘가 싹 다 뚫리겠네.’
엘리샤를 만나는 것이 이안에게 중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 GM 철우로부터 들었던 정보를, 이안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성운을 밟기 위해 필요한, 정령계의 지고한 성물!
‘원소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NPC가 바로 물의 정령왕 엘리샤임은, 상위 콘텐츠로 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였으니까.
‘결국 엘리샤를 찾아서 잠들어있는 물의 부족들을 깨우고……. 엘리샤를 위시한 물의 부족들을 데리고 기계 대전쟁에 참전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게 깔끔한 시나리오겠네.’
이 퀘스트만 완벽하게 클리어해 낼 수 있으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던 기계 대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되며.
또, 성운을 밟기 위해 필요한 ‘원소의 목걸이’까지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니.
그야말로 꼬이고 꼬여 있던 에픽 퀘스트들을, 한방에 뚫고 올라갈 발판이 생긴 것이다.
‘자, 그럼 오랜만에…… 엘리샤 아줌마를 한번 만나 볼까?’
한층 표정이 상기된 이안은, 부락의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퀘스트 내용에 의하면 ‘물의 구슬’과 감응해야 엘리샤를 만날 수 있다 하였고, 그것이 부락 안에 있다 하였으니.
먼저 구슬을 찾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은, 다행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락 안쪽으로 들어가자 널따란 공터가 나타났고.
그 가운데에 영롱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물의 보주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으니 말이다.
누가 봐도 파랗고 거대한 보주는, 엘리샤가 남긴 안배였다.
저벅- 저벅-
이안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물의 구슬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고, 그의 뒤를 따라오던 미루도 감탄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강력한 물의 힘이라니…….”
미루 또한 ‘물의 정령’의 피가 절반 이상 흐르는 하프 정령이었기 때문에, 정령왕이 남긴 거대한 물의 힘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주의 앞에 도착한 이안은, 한 손을 조심스레 들어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우우웅-!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영롱하게 빛나던 푸른 구슬의 주변으로, 밝고 강렬한 청색 빛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
화아아아-!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낯익은 여인의 실루엣이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물의 구슬’과 감응하였습니다.
-물의 정령왕, ‘엘리샤’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 *
푸른빛이 휘몰아치며, 길쭉한 빛의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이어서 그 길쭉한 빛의 덩어리는 점점 더 형체를 갖춰 가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무척이나 황홀한 광경이었다.
완벽한 비율의 여체(女體)가 푸른빛을 뿜어내며 나타나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길쭉한 두 다리에 잘록한 허리.
가녀린 팔과 봉긋한 가슴.
그리고 그 위로 쏟아져 내리는 푸른 빛깔의 아름다운 머릿결.
그 위에는 곧 화려한 정령왕의 의상이 덧씌워졌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이안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분명 마계의 광산에서 처음 그녀를 소환했을 때 봤던 광경이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안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훨씬 더 영롱하고 선명한 모습이야.’
지금 이안의 눈앞에 소환된 정령왕의 모습은, 지상계에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더 또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엘리샤의 아름다운 외모까지 시너지가 나면서, 더욱 황홀한 장면이 연출된 것.
이안은 ‘아줌마’라고 종종 불렀지만 사실 엘프와 비견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npc가 바로 엘리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감상은 여기까지일 뿐.
더 감동(?)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허억……!”
‘파괴자의 부적’이라는 노예 계약서(?) 때문에 강제로 딸려온 조나단은, 엘리샤의 자태를 처음 보고 거의 반해버린 것이다.
처음 물의 보주가 빛나기 시작할 때 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조나단은, 저도 모르게 숨죽이고 그녀의 등장을 지켜보았던 것.
우우웅-!
보주의 진동이 전부 끝나고 엘리샤의 모습이 온전히 나타나자, 장내에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으며.
그 정적을 처음 깬 것은, 영롱한 엘리샤의 목소리였다.
-그대는 이안…… 오랜만이군요.
그리고 엘리샤의 첫 마디에, 조나단은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껴야만 했다.
여신과도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이안에 대한 호감이 느껴졌으니 말이었다.
‘뭐야, 이안 이 놈은…… 정령왕이랑도 친분이 있어?’
물론 트로웰과 계약까지 한 전적이 있는 정령술사가 이안이었지만, 그런 정보까지는 알 리 없는 조나단.
그런 조나단의 질투(?)와 상관없이, 이안과 엘리샤의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입니다, 엘리샤 님.”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이안님께서 이곳에 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다시 한 줄기 희망을 얻었는걸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안과 엘리샤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갔고.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신파극으로 오해될 수 있을 만한 둘의 대사에, 조나단은 더 없이 부러운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엘리샤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셀라무스의 힘을 계승하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엿한 중간자가 되셨군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지금의 이안님이라면……. 확실히 기계문명이라는 거악(巨惡)에 맞서실 수 있겠어요.
대화가 자연스레 기계문명과의 전쟁으로 흘러왔고, 그 흐름에 따라 엘리샤의 부탁이 이어진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엘리샤 님?”
-셀라무스의 절대자…… 그리고 우리 정령들의 구원자이시여…….
“……!”
-당신이라면 제게 씌워진 족쇄를 풀고, 이 정령계를 구해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 엘리샤에게 남은 마지막 정령왕의 권능을, 그대. 이안에게 위임합니다.
우우웅-!
엘리샤의 말이 끝나자, 다시 청백색의 빛줄기가 그녀의 몸에 휘감긴다.
‘왕’이라는 그 수식어에 걸맞게, 기품 있는 엘리샤의 자태.
청색과 백색이 물결치는 화려한 의장(意匠)의 드레스가 휘날리며,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이 이안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정령왕 엘리샤의 목걸이’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정령왕의 권능[물](신화)(초월)’ 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청백색의 화려한 목걸이가 나타났다.
그것의 정체는 당연히, 이안의 인벤토리 구석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정령왕 엘리샤의 목걸이.
물론 이안이 그것을 인벤토리에서 꺼낸 적은 없었지만, 퀘스트의 전개와 함께 강제로 이안의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이제는 ‘정령왕의 권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신화등급의 초월 액세서리.
엘리샤의 권능이 담긴 그 목걸이가, 이안의 목에 자연스레 걸렸다.
띠링-!
-‘정령왕의 권능[물](신화)(초월)’ 장비를 장착하셨습니다.
-‘물의 정령왕, 엘리샤의 안배’ 퀘스트의 모든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 까지, 해당 장비를 착용해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오오오-!
이안과 엘리샤의 사이에 있던 공간이 나선형으로 뒤틀리더니, 그 앞에 작은 공간의 균열이 생긴 것이다.
마치 새파랗고 짙은 심연과도 같은 빛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포탈.
이안은 그것이 뭔지,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엘리샤가 봉인된 곳으로 갈 수 있겠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의 심장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