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9화 3. 이안과 엘던 (3) >
* * *
마수 연성술의 레시피에는 크게 두 가지의 개념이 존재한다.
첫째는 아이템 드롭이나 특수한 퀘스트로 획득할 수 있는 완성된 레시피로 획득이 가능한 레시피 북.
둘째는 유저가 끝없는 노가다와 헤딩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낸, 커스텀 레시피 북.
사실 이 레시피의 개념은 처음 마수 연성 콘텐츠가 나왔을 때에는 없었던 개념이었다.
처음 마수 연성이 나왔을 때 레시피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조합식을 아느냐 모르냐의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레시피가 없는 유저도 얼마든지 조합식만 알고 있으면 해당 마수를 연성해 낼 수 있었으니, 사실상 레시피 북 자체의 의미는 별로 없었던 것.
하지만 마수 연성의 난이도가 너무 극한의 노가다를 요구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배려로 업데이트된 것이 바로 지금의 레시피 북 콘텐츠였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레시피 북 없이도 조합식에 대한 지식만으로 마수 연성을 시도할 수는 있었지만, 레시피 북이 있다면 마수 연성의 성공률을 훨씬 더 크게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레시피 북의 마수를 연성할 때마다 연성 경험치가 레시피 북에 스텍되고, 그 스텍 수준에 따라 해당 마수의 연성 성공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니.
처음 마수 연성술 콘텐츠가 업데이트 되었을 때보다는 레시피의 의미가 확실히 커지게 된 것.
그리고 이 레시피 시스템의 더욱 재밌는 부분은 역시 ‘커스텀 레시피’ 콘텐츠였는데, 이것이 바로 마수 연성 덕후(?) 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자신이 직접 커스텀한 레시피로 마수를 연성할 때에, 무척이나 매력적인 ‘특혜’가 있으니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 특혜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일단 가장 처음 해당 레시피를 커스텀해 낸 연성술사의 이름이 해당 레시피의 정보 창에 영원히 박히게 되고.
꼭 최초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창조한 레시피로 연성을 할 경우, 연성에 성공할 확률이 30%만큼 추가로 증가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연성술사들을 무한 노가다의 늪에 빠지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획득 레시피 북과 커스텀 레시피 북 두 가지에 전부 적용되는 요소가 하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엘던으로 하여금, 이안에게 ‘대리 연성’을 부탁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러니까 엘던 님 말씀은 제가 엘던 님 대신에 마법진을 그렸으면 한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는 고대 마수 연성의 마법진을 제대로 완성할 수 없으니까요.”
“그거라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안느 님. 전 이 녀석을 어떻게든 완성해 내야 해서요.”
엘던은 단순히 고대의 다크발록을 완성하고 싶어서라 말하였지만, 속내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진을 이안이 그린다면 연성 자체는 이안이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레시피의 주인은 여전히 엘던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연성에 성공한다면 해당 레시피의 최초 연성은 엘던이 한 것으로 판정되고, 엘던이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인 것.
*최초 연성을 달성할 경우, 연성으로 획득하게 되는 숙련도가 기존 수치의 1,000%만큼 증가합니다.
신화 등급으로 올라가는 연성의 경우, 연성 숙련도 획득량이 어마어마한데 이것을 10배로 뻥튀기되어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
엘던으로서는 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이안의 도움을 받았든 어쨌든 ‘고대의 다크 발록’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역으로 녀석으로부터 ‘고대의 마수 연성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엘던에게 중요한 사실이었다.
마수 연성술사의 스킬들 중에는 ‘마수 해체 분석’이라는 스킬이 존재했는데, 고대의 연성술로 만들어진 마수를 해체 분석하면, 분명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이안에게 그러한 이유들을 털어놓지 않은 이유는 이안을 NPC로 오인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의 절실함을 다 털어놓는다면, NPC가 요구하는 것은 더 커질 테니 말이다.
쉽게 말해 엘던은, 이안을 순진한 NPC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후, 네 속내를 모를 줄 알고?’
속으로 히히덕거린 이안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혼신의 연기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유저의 화법에 넘어가는 NPC연기를 하려면, 이안으로서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흐음, 불가능한 부탁은 아니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요?”
“제가 최근 시작한 연구를 끝내기 전에는 다른 연성에 손을 댈 여력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 그럼…… 연구가 끝나면 해 주시는 겁니까?”
엘던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한 이안은, 짐짓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무, 물론 해 드릴 수 있긴 한데…….”
“그런데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적어도 2주일 정도는 노가다할 거리가 남아 있어서 말이지요.”
이안의 대답을 들은 엘던은 더욱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2주일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그렇게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던이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릴 만큼 짧은 시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노, 노가다라면 어떤 노가다인가요?”
“협회 의뢰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협회 의뢰라면……?”
“전설 등급의 마수 키에클립스였나……? 녀석을 열 마리 정도 연성해야 할 것 같은데, 자원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거든요.”
“그, 그것만 다 끝나면 되시는 건가요?”
엘던과 다시 눈이 마주친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아마도요.”
“……!”
“다른 재료는 거의 다 있는데, 최상급 로튬을 구할 수가 없네요. 제가 연구가다 보니 전투 능력이 부족해서…….”
최상급 로튬은, 마계에서도 무척이나 희귀한 최상급의 마수였다.
전투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최상급 마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기를 품고 있는 녀석으로, 전설 등급 마수를 연성할 때 가장 많이 필요한 마수.
이안의 연성술 숙련도는 마스터까지 대략 25% 정도의 숙련 경험치가 남아 있었고, 이 정도의 경험치는 전설 등급의 연성 10회 정도면 전부 채울 수 있었기에.
전설 연성에 필요한 가장 희귀한 재료인 로튬을, 엘던에게서 뜯어내려고 작업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안이 직접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러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적지 않은 리스크도 따른다.
로튬이 서식하는 곳은 마계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었으며, 하나 찾아내는 데에도 보통 반나절 이상 걸릴 만큼 희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족 진영의 상위권 랭커가 분명한 엘던이라면 그에 걸맞은 길드도 가입해 두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로튬 정도는 길드 창고에 수십 마리 이상 쟁여 두었을 테니, 그것을 강탈하려는 것이 이안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흐흐, 로튬 열 마리 정도면, 대충 5천만 골드쯤 되는 가치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조공할 용의가 있겠지.’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엘던이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이안의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것이다.
“로튬만 열 마리 구하실 수 있으면, 오늘 안으로 협회 의뢰를 끝내실 수 있는 겁니까?”
기다렸던 엘던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다시 주억거렸다.
“물론입니다. 다른 재료들은 이미 모아 두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이안의 엘던 낚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이안느 님.”
“어떻게요?”
“제가 로튬 열 마리를 구해다 드릴 테니…… 고대의 다크발록 연성을 좀 도와주세요.”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짓말을 하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협회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안느 님. 지금 곧바로 로튬을 구해 오겠습니다.”
물론 이안은 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완전히 건져 올릴 때 까지, 혼신의 연기를 멈추지 않았고 말이다.
“로, 로튬을 그렇게 빨리 구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 구해 두었던 녀석들이 있습니다.”
“오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엘던은 이안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세라, 쏜살같이 도서관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엘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은 씨익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후후, 로튬도 얻고 고대의 다크발록인지 뭔지 레시피도 알아낼 수 있고…… 이거야말로 완벽한 거래로군.’
이안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착한(?) 엘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기 시작하였다.
* * *
엘던이 로튬을 가지러 길드 거점에 다녀오는 동안, 이안이 한 것은 협회의 연성실을 빌리는 것이었다.
“하루 정도 연성실을 빌리고 싶은데, 공헌도가 얼마나 필요할까요?”
“1,500백 공헌도면 이용 가능하십니다.”
“그럼, 대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전설 마수 연성을 길바닥(?)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아무리 엘던이 호구(?)라 하더라도 이안이 로튬을 들고 길드 거점에 다녀오는 것까지 용납하지는 않을 테니.
협회의 공용 연성실을, 하루 빌리기로 한 것이다.
‘공헌도 천이면 제법 비싼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여 미리 연성실에 들어간 이안은 다른 재료들을 빠르게 세팅해 두었고, 그동안 길드 거점에 다녀온 엘던은 정말 열 마리의 로튬을 데리고 이안의 앞에 나타났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이안느 님.”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 하루만 기다리면 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연성이 끝날 때까지 협회 연성실에서 계속 작업을 할 생각인데, 엘던 님께서는 그동안 어디라도 다녀 오시지요.”
“아닙니다. 저도 이곳에서 다른 마수 연성을 연구하며, 이안느 님께서 끝나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엘던은 이안이 NPC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로튬 열 마리를 전부 건네고 나자 불안한 표정이었다.
‘후후, 그럴 만도 하지. NPC가 먹튀를 할 일은 없겠지만…… 로튬의 가치가 워낙 크니까.’
하여 이안은 엘던에게 신뢰(?)를 주기 위하여, 그가 보는 앞에서 빠르게 연성을 시작하였다.
‘평범한 키에클립스를 연성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까지 엘던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겠지.’
이안의 연성 실력은 세르비안도 인정한 톱클래스 수준이었고.
그가 연성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한다면, 엘던의 신뢰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었다.
우우웅-!
보통 전설 등급의 마수를 연성해 내기 위해서는 마법진을 그리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소요되었지만.
키에클립스 마법진만 수백 번 그려 본 이안에게는 15분 정도면 충분한 것.
“……!”
그리고 이안이 공장처럼 키에클립스를 찍어 내는 모습을 본 엘던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NPC인가…… 전설 등급의 마수를 30분에 한 마리씩 찍어 내다니.’
하지만 엘던의 감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통의 유저라면 한 번의 연성술이 끝나고 진이 빠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이안은 쉬는 시간조차 전혀 없이 장장 5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마수를 찍어 내었으니 말이었다.
‘후, 유저라면 절대 저럴 수 없을 텐데. 역시 인공 지능인가.’
하여 의심 따위는 한 톨 조차 남지 않은 엘던은 이안의 옆에 앉아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엘던이 연성실 쇼파에 앉아 잠든 사이.
띠링-!
이안은 드디어 원했던 첫 번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전설 등급 마수 연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연성 등급 : SS
-높은 등급의 결과로 인해, 연성 경험치가 250%만큼 상승합니다!
-연성술 경험치가 9,812,093만큼 증가합니다!
……중략……
-연성술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달하였습니다!
-‘마수 연성술’ 고유 능력의 숙련도가 ‘마스터’ 단계로 상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