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65화 (966/1,027)

< 965화 2. 이안의 제안 (2) >

* * *

처음 마계 콘텐츠가 유입되고 ‘마계’라는 차원계가 유저들에게 오픈되었을 때, 마계는 무척이나 황량하고 황폐한 곳이었다.

마계 대부분의 구역이 주요 도시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마수들만 득실거리는 사냥터에 가까운 곳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마계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유입되면서, 거의 야생에 가까웠던 지역들이 많이 개척된 것이다.

각 구역의 개척 가능한 대지에는 대부분 새로운 마을이나 도시가 들어와 있었고,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된 새로운 구조물들도 많이 생긴 것.

그리고 그것은 마계 107구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세르비안의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어느덧 마수 소환술사들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소환술사의 도시가 생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시의 중심에는 한결같이 마수 연성을 연구 중인 ‘세르비안’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글부글-.

치이이익-!

처음 이안이 발견했을 때 보다 거의 10배는 커져 버린 세르비안의 연구실.

그곳에는 세르비안과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새로운 마수 연성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 레시피는 지난번에 실패했던 조합식이잖아!”

“앗! 그, 그랬던가요?”

“하아…… 쓸데없는 데다 아까운 재료들만 날려 버리다니…… 정신 못 차려?”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이안이 중간계의 콘텐츠를 진행하느라 마수 연성에 소홀했던 동안, ‘마수 연성술’이라는 학문 자체도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물론 전설 등급 이상의 희귀도 높은 개체가 필요한 고급 연성술의 발전이야 한계가 있었지만.

낮은 단계의 연성술에서 훨씬 더 다양한 조합식과 기술들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히든 클래스인 ‘마수 연성술사’가 되기 위해, 세르비안의 연구소에 찾아오는 유저들도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당연히, 세르비안을 찾아온다고 해서 마수 연성술사라는 히든 클래스를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세르비안은 어지간해서 제자로 받아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제자가 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마수 연성술사로 전직하는 데까지는 어마어마한 노가다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 근성과 노가다로 똘똘 뭉친 하드 유저가 아니고서는 방법을 알면서도 전직할 수 없는 클래스가 바로 마수 연성술사였다.

“에잉, 오늘도 별다른 성과는 없겠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승님! 제가 이번에는 반드시……!”

“시끄럽다, 이놈! 말만 말고 결과를 가져오란 말이다, 결과를!”

“크흑…….”

“휘유, 모자란 놈들…….”

세르비안은 자신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제자들을 슥 둘러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지금까지 마수 연성술을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 중, 그의 마음에 완벽히 차는 제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오늘따라 이안이 보고 싶어지는군.’

사실 세르비안은 이제, 이안을 ‘제자’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사실상 이안은 그와 마수 연성 연구를 함께하는 동료 연구가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최근에는 홀로 고독한(?)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이안이 더욱 보고 싶은 세르비안이었다.

이안에게 자랑하고 싶은 연구 성과물도 많았으며, 조언받고 싶은 연구거리도 무척이나 많았으니까.

‘중간자가 되었다더니, 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은가 보군. 한번 오면 내가 그간 연구한 연성술의 진수를…… 녀석에게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잠시 이안을 떠올린 세르비안은 너털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107구역의 용병 길드.

새롭게 연성의 재료로 쓰기 위한 마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용병 길드에 의뢰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나서던 세르비안은 잠시 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한숨만 푹푹 쉬며 걸음을 옮기던 그의 눈에, 무척이나 낯익은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으니 말이었다.

“자, 자네……!”

붉은 망토와 더불어 흔해 빠진 마족들의 장비를 꼼꼼하게 걸치고 있었지만, 세르비안은 한눈에 남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연성술 연구가이자, 그가 제자로 받았던 유일한 ‘반마(半魔)’.

이어서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오랜만입니다, 세르비안.”

세르비안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자네로구먼! 이안! 자네였어!”

한달음에 뛰어가 이안의 손을 덥석 잡은 세르비안은 곧바로 그의 손을 연구실 안으로 이끌었다.

방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용병 길드에 가려던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얼른 들어오시게, 이안.”

“하하, 오랜만에 뵈니 너무 반갑네요.”

“반갑다마다. 그동안 대체 뭘 하느라 이렇게 뜸했던 건가?”

“중간계를 여행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중간자에게는 항상, 권한보다 훨씬 더 커다란 책임을 동반하는 법이지.”

연구실로 다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세르비안은 쉬지 않고 이야기하였다.

“어쨌든 마침 잘 왔네, 이안.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보고 싶던 참이었거든.”

“하하, 제가 말입니까?”

“그래. 그동안 연구 성과를 알아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근질거렸거든.”

순식간에 이안을 개인 연구실까지 끌고 들어간 세르비안은 아예 문까지 닫아 버리고 이안의 앞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이안은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이 아재…… 최소 1시간은 날 붙잡고 얘기만 할 것 같은데.’

한시가 바쁜 타이밍에 세르비안의 수다를 들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안은 그의 말을 끊을 생각이 없었다.

세르비안의 수다는 사실 이안이 올려놓은 과도한 친밀도(?)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상황이었고, 지금 이안에게는 그 과도한 친밀도가 무척이나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고대 마수 연성술을 습득하려면…… 세르비안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야 하니까.’

하여 이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세르비안과의 수다를 시작하였다.

사실 세르비안과의 대화 자체는 생각보다 재밌는 편이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제는 골방(?)에 틀어박혀 회포를 풀기 시작하였다.

* * *

카일란에는 수많은 히든 클래스가 있다.

그 때문에 히든 클래스라고 해서, 항상 모두의 워너비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기본 클래스에 비해서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히든 클래스였으나, 그 콘셉트와 방향성이 유저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마수 연성술사는 마이너한 히든 클래스 중 하나였다.

처음 이안이 마수 연성술사로 알려지고 그가 연성해 낸 강력한 마수들이 유저들에게 공개되면서, 정말 많은 유저들이 세르비안의 연구소에 문을 두들겼지만.

노가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한 유저가 그들 중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수 연성술사라는 클래스가 한국에서 특히 더 마이너 클래스로 꼽히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이안에게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서버에 마수 연성술사라는 히든 클래스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NPC인 세르비안의 첫 번째 제자가 이안이었고.

첫 제자인 그가 보여 준 노가다의 수준이 어쩌다 보니 세르비안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상 이안의 근성과 노가다는 끈기를 넘어 재능의 영역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고.

어찌 보면 평범한(?) 유저들이 이안의 노가다를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

마수 연성술사가 한국 서버에서 더욱 마이너한 클래스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가끔 가다가 이안에 근접할 정도로 근성 있는 유저가 한 번씩 나오긴 했지만, 그들 또한 세르비안을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하였다.

세르비안을 만족시키려면, 근성뿐만 아니라 연성술에 대한 이해도 또한 이안의 수준이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서버에는 최상위 랭커급의 마수 연성술사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세르비안이 이안을 그토록 기다려 왔던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하, 그러니까 이놈들이. 매번 게으름을 부리지 뭔가.”

“게으름요?”

“그렇다니까. 고작 마수 포획 1,000번 정도 하고는 지쳐서 쉬러 간다지 뭔가.”

“하, 근성이 없네요, 요즘 친구들은.”

“내 말이!”

하여 세르비안의 한탄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이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절친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계속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이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일세, 이안. 내가 또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네.”

“말씀하시죠.”

“사실 얼마 전에, 중간계에 있는 마수 연성 협회에 다녀왔다네.”

“마수 연성…… 협회요? 그런 곳도 생겼나요?”

“각 차원계에서 각자 마수 연성을 연구하던 수많은 연성술사들 중…… 중간자의 위격을 가진 연구가들이, 정보 공유를 위해 중간계에 만든 협회라네.”

“아하.”

‘협회라고? 아마 각 서버에 흩어져 있는 마수 연성술사들이 중간계에 모여서 만든 곳인 것 같은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네.”

“왜요?”

“그곳에는 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연성술에 대해 깊게 연구한 연구가들이, 무척이나 많았거든.”

“오호, 그랬군요.”

처음 이 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안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흥미롭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르비안과의 모든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이안은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네 지금, 고대의 마수 연성술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세르비안.”

“그러니까 자네의 이야기는 그 고대의 연성술이 담긴 책자를 손에 넣었고……. 그것을 습득할 방법을 알고 싶다는 이야기지?”

“바로 그거죠.”

이안이 방문한 목적을 슬쩍 꺼내기 시작하자, 또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말 신기하구먼그래.”

“예?”

“사실 지난번 협회에 갔을 때, 고대의 연성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었거든.”

“……?”

“‘엘던’이라고 했던가……? 어떤 다른 차원계의 친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말이지.”

“그게 어떤…… 이야기였나요?”

“나도 잘 모르는 분야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네만, 원한다면 협회가 있는 곳을 알려 주도록 하겠네.”

“……!”

“그곳에 방문한다면, 자네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안이 흥미를 갖는 듯 보이자, 세르비안은 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해 주었고.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듣던 이안의 두 눈은 점점 더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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